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75화 (275/917)

먼저 움직인 것은 파올라.

상대는 계약의 마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녀가 만전이 아니라는 것에 최후의 희망을 걸었다.

이곳에서 전력을 다해 계약의 마녀를 물리치고 연꽃을 이동할 방도를 찾을 예정이다.

제물이 남지 않은 지금 파올라가 호문쿨루스를 강화하기 위해 바칠 수 있는 것은 제 비루한 몸뚱이 뿐.

혼탁한 마력이 주변에 퍼지며 그녀의 다리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파올라의 배후에서 아공간이 열렸다.

문어 다리를 닮은 두꺼운 촉수 가닥이 튀어나와 썩어 문드러진 파올라의 다리를 휘감았다.

빨판 대신 달린 것은 수천 개의 작은 입.

덩치에 비해 부족한 먹이를 뜯어 먹은 호문쿨루스는 그 대가로 파올라의 몸과 하나가 되었다.

파올라는 부족한 전력 차이를 채우기 위해 자신이 사역하는 마지막 호문쿨루스에게 제 육신을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융합한 것이다.

“계약한다.”

엘로아의 영창과 함께 청명한 마력의 파동이 공동을 휘몰아쳤다.

신체 강화에 이미 소진한 여섯 개의 계약을 제외하고 사용 가능한 계약은 총 4개.

여전히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대가의 징수를 강제로 유예한 상태로 마력은 충분하지만 손끝이나 발끝처럼 신체 첨단에서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공백을 마력으로 억지로 기워 넣으며 보충할 뿐.

“나는 그대를 벨 것이다.”

엘로아가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일곱 번째 문자가 빛난다.

계약이 체결되었다.

“나는 그대를 벨 것이다.”

엘로아의 계약은 단순히 ‘말’이 아니다.

그녀의 계약은 언령을 기반으로 한 자기 암시와 현실조작.

한번 체결된 계약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인과율마저 비틀며 이루어지려는 특성을 지닌다.

“나는 그대를 벨 것이다.”

가령 단일 대상을 지정해 ‘베겠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엘로아의 전신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기능한다.

눈도, 심장도, 근육과 혈관의 편린, 세포의 한조각까지도 오로지 계약의 이행을 위해 강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대를 벨 것이다.”

마지막 열 번째 계약이 끝났다.

이것이 엘로아 티페레트가 단일 상대를 대상으로 무적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는 이유.

그녀의 몸은 전에 없던 무거운 마력으로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죽어!”

사방에서 촉수가 뻗는다.

이 세상의 법칙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형의 생물체가 파올라와 동화된 채 죽음의 촉수를 휘둘렀다.

그러나.

“……”

족히 수백 가닥이 넘어가는 촉수의 홍수는 엘로아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씹어 삼킬 수 없었다.

우아하게 휘둘러진 엘로아의 검이 파올라와 동화된 촉수가 검역에 들어오는 족족 베어버리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의 격차는 본디 파올라가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엘로아의 몸이 앞으로 쏘아진다.

뒤늦게 그녀를 추적하는 촉수를 무시한 채 파올라의 심장 깊숙한 곳에 검을 박아 넣었다.

“커헉!”

파올라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솟았다.

파올라와 한몸이 되었던 호문쿨루스도 지리멸렬하게 촉수를 퍼덕이며 최후를 맞이했다.

엘로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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