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1.
헤아리기 힘든 시간이 흘렀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어둠은 가장 먼저 델라의 생체시계를 망가뜨렸다.
언제 잠을 자야 할지, 언제 일어나야 할지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제대로 분간할 수 없다.
하긴 이 몰골로는 생체시계가 정상이었더라도 잠 따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델라의 몸을 빼곡하게 몸을 꿰뚫은 백색창은 어느샌가 여린 살을 관통한 채로 아물어 신체 일부처럼 변했다.
웃음도 나오질 않는다.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신력이 강한 편이라 자부했는데.
벽에 곤충박제처럼 고정된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강제로 관람해야 하는 것은 꽤 구역질 나는 일이었다.
-우우우우우!
특히 저 소리.
지하 공동을 울리는 커다란 진동음이 귓가를 파고든다.
지옥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저 끔찍한 소리를 듣고 있자면 차라리 고막을 파내버리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었다.
“…….”
델라는 힘없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죽을 날이 머지않은 병자의 것처럼 초췌한 안색.
아무리 영체라도 신체에 누적되는 스트레스와 통증은 이미 임계값을 넘기고 있다.
이대로라면 미쳐버릴지도 모르지.
델라는 욕설을 내뱉고 싶은 심정을 꾹 참은 채 지하 공동 한가운데서 굉음을 내고 있는 기묘한 오브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봉우리를 완전히 피우지 못한 연꽃을 닮았다.
십수 미터에 달하는 높이와 둘레.
겹겹이 쌓여 움틀 시기를 기다리는 거대한 봉우리.
그 모든 꽃잎은 인간의 기도하는 듯이 맞물린 인간의 팔뼈로 이루어져 있다.
도덕적, 윤리적 허들이 한없이 낮은 델라조차도 구역질을 금치 못하는 예술품의 기괴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꽃을 떠받치는 줄기는 밧줄처럼 얽히고설킨 붉은 실타래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보기에 엉망진창으로 배선된 코드 다발을 연상시키는 그것의 정체는 인간의 중추신경계.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천천히 꿈틀거리는 줄기 아래에는 하얗고 흐리멍덩한 회백색의 살덩이가 생선내장처럼 구불구불 얽혀있다.
한 개라는 수식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찰흙을 둥글게 뭉쳐 놓은 듯한 뇌장 덩어리는 바닥에 깔린 뇌수와 핏물 아래 잠겨 마치 뿌리처럼 연꽃의 줄기와 꽃봉오리를 받쳐 들고 있다.
뼈로 된 꽃, 신경다발로 된 줄기, 뇌로 이루어진 뿌리라…
쓰레기 같은 B급 고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연꽃의 정체는 제단이다.
인간의 뼈, 뇌 그리고 신경 다발로 만들어진 거대한 제단.
파올라의 염원을 대신 기도하고, 소망하고, 갈구할 정도의 기능만을 남겨놓은 콤팩트 한 사이즈로 변해버린 군중의 집단예술이기도 하다.
저 예술품에 말려 들어 간 인간은 자신의 시냅스와 신경이 과부하로 타버릴 때까지 파올라를 위해 기도하겠지.
아니.
이미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저것을 ‘인간’이라고 칭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르지만 말이다.
-오오오오오오
셀 수 없는 망자가 일제히 소리를 지르는 듯한 진동음이 다시 한번 커다랗게 울렸다.
또 하나의 팔뼈가 꽃잎 하나를 움트듯 밖으로 펼쳐진다.
연꽃의 정중앙에 삐죽 솟아 있는 것은 ‘붉은가지’.
‘왜곡’이라는 특성을 지닌 적기사의 아티펙트이다.
그 위력은 델라가 잘 알고 있다.
적기사를 복제해 낸 백기사, 그들이 들고 있던 백색창은 레플리카에 불과함에도 붉은가지와 공명해 마법의 작용을 방해했다.
하지만 파올라가 꾀하는 것은 단순히 붉은가지의 전투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붉은가지가 보유한 ‘왜곡’이라는 개념에 집중하고 극한으로 끌어내,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한다.
공간을 왜곡, 마력장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순리를 왜곡하고 현실을 왜곡한다.
즉, 파올라의 견습마녀가 죽었던 사실은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크윽….!”
역겨운 공연의 관객이 되는 것은 비단 델라뿐이 아니었다.
지난번 다곤의 피리로 이뤄낸 습격 사건 그 피해자 중 ‘1200명’의 심장을 수집해 만들어낸 기사단.
그리고 가용한 모든 전투형 호문쿨루스를 동원해 사냥한 4명의 마녀 중, 살아남은 한 명 역시 미증유의 재앙을 끌어낼 예술품을 관람 중이다.
-오오오오오오!
연꽃 아래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던 파올라 소치틀.
오직 하나의 염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그녀의 광기와 의지는 소름끼칠 정도로 순수했다.
이 끔직한 광경에서조차 일견 성녀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찰팍!
파올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옷자락에 뇌수와 혈액이 묻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벽에 걸린 한 마녀에게 다가간다.
여태 파올라를 수호하던 적기사 역시 찰팍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힉… 히익… 이익…!”
가엽기도 해라.
얼굴을 보아하니 마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마녀였다.
궁극의 비밀을 추구하는 선택받은 존재라는 인식, 거기에서 기인한 비대한 자의식과 자긍심으로 넘치던 눈길도 지금은 한낱 겁먹은 여자아이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끔찍한 일들을 경험했다면 그럴 법도 하겠지.
“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금발의 마녀를 파올라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곤충처럼 무기질하고 건조한 시선이었다.
“뭐든지, 뭐든지 할게요… 부디 자비를….”
마녀는 몸이 부서질 것처럼 떨어댔다.
아마 창에 꿰뚫려 있지 않았더라면 파올라의 발치에 매달려 애원했겠지.
그녀의 구두를 할짝거리며 핥았을지도 모르겠다.
공포로 덜컥거리는 가녀린 마녀에게 파올라는 뜻밖에 인자한 말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아주 작은 희망에 표정이 밝아지려는 어린 마녀 앞에서 흑요석으로 만든 날카로운 칼날을 꺼내 든다.
“그렇게 아프지 않을 거야.”
“자, 잠깐…. 잠깐만요… 케흑… 흐윽… 꺄아아아악…!”
곧이어 꺄악꺄악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을 써는 소리도, 뱃가죽을 들어내고 자궁을 적출하는 소리도.
죄다 그 비명에 묻혔을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
“…….”
갑자기 전원이 꺼진 라디오처럼 툭 끊기는 비명소리.
파올라의 손에는 빨간 고깃덩어리 하나가 쥐여있었다.
마녀의 낙인과 마력을 듬뿍 머금은 신선한 고깃덩어리가.
파올라는 두 손에 피를 뚝뚝 흘리는 자궁을 소중하게 받쳐 든 채 경건한 걸음걸이로 연꽃을 향한다.
“바치나이다.”
그녀가 무릎을 꿇고 제물을 헌납함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백골의 팔들이 살덩이를 건네받는다.
-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잎이 일제히 피어났다.
공동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백기사들이 일제히 창으로 바닥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붉은가지에 공명한 백색창이 징징 울음을 토하고, 그 소란 속에서 파올라는 다시금 기도를 올렸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악마의 의식을 연상케 하는 광란의 포효 속에서 델라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인간의 마력만으로는 예식의 진행 속도가 충분치 않다고 느꼈는지 파올라는 마녀의 낙인을 추가로 제물로 바쳤다.
그럴 때마다 연꽃은 확연히 빠른 속도로 피어났고.
그럴 때마다 백기사를 비롯한 모두는 의식을 통제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즉, 지금까지 겨우겨우 모아왔던 마력을 활용해 탈출할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다.
-텅! 텅! 텅!
델라는 상처 부위가 벌어지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팔을 꿰뚫던 창을 억지로 뽑아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끔찍한 통증.
백색창과 혼연일체가 되었던 살점과 근육이 찢겨나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온몸의 창을 하나하나 뽑았다.
“크윽… 끄으윽….!”
한 자루 한 자루를 뽑을 때마다 의식이 날아갈 것 같다.
총 12자루의 창을 간신히 뽑아낸 델라는 흥분한 광신도처럼 창을 두드리는 백기사의 틈을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껏 3명의 마녀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관찰하며 쌓아온 데이터에 의하면, 겨우 5분 정도면 백기사들은 다시 철통 경계상태가 된다.
“크흑… 커헉….”
막아야 한다.
알려야 한다.
파올라의 계획은 아직 끝이 아니다.
연꽃을 피워올려 붉은가지의 잠재력을 끝까지 끌어낸다고 해도 결국 부활 의식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마력이 필요하다.
즉, 그녀는 1200기의 백기사, 그리고 적기사를 일제히 출격시켜 대학살을 벌일 예정인 것이다.
다곤의 피리를 이용해 민간인들을 마구잡이로 죽였던 것처럼 말이다.
얼마나 죽을까?
1만? 10만? 100만?
어쩌면 역병의 마녀보다도 많은 희생자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크윽… 크윽….”
간신히 공동에서 빠져나와 커다란 터널까지 기어 온 델라는 이대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부를 틀어막고 있던 창을 억지로 빼낸 까닭에 출혈이 너무 크다.
과다출혈로 죽거나 기절하거나.
어느 쪽이건 의식을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후우…후우…”
델라는 숨을 몰아쉬고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이미 넝마짝 같은 몸을 지탱하는 것은 한 줌의 마력인바 치유마법 같은 낭비 심한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델라는 소매자락을 둘둘 말아 입에 물고 손끝의 불길로 환부를 지졌다.
“……!!!!!”
죽을 것 같은 통증.
살이 그을리며 오므라드는 피부와 고기가 타는 냄새.
인간이었더라면 그대로 쇼크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통증에 꽉 다문 델라의 잇몸에서도 왈칵 피가 솟는다.
무식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출혈을 제어한 델라는 삭은 부직포가 너덜거리는 빗물 터널 벽면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발을 질질 끌다시피 너덜거리는 몸을 이끈다.
하지만 안심할 새는 잠시도 없었다.
-철컥 철컥 철컥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이쪽으로 향한다.
아마도 의식에 참여하지 않고 배치되어있던 백기사의 것.
잡히면 안된다.
델라의 몸이 만전의 상태였을 때도 20기의 백기사를 죽이는 것이 전부였다.
붉은가지의 왜곡능력에 공명하는 백색창은 마녀를 죽이기 위한 대 마녀 병기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설령 여기서 나가 모든 음모를 알린다고 해도 저 기사단에 대처할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티페레트 공작이나 에아 사달멜리크처럼 강력한 물리 공격을 행사할 수 있는 마녀가 아니면 당해낼 수 없을텐데…
하지만 이런 느긋한 감상은 완전히 탈출하고 나서도 늦지 않다.
“빌어먹을… 쿨럭! 쿨럭!”
어울리지 않는 상스러운 말을 쓰며 델라는 삐걱이는 몸을 마력으로 지탱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몸이 부서질 듯한 격통이 전해져온다.
-철컥철컥철컥철컥
여기서 다시 잡혀들어갈 수는 없다.
마지막 힘까지 짜낸 델라의 눈에 저 멀리 수직으로 내리쬐는 빛을 보았다.
처음 제 발로 파올라를 만나러 올 때,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눈여겨 두었던 탈출구였다.
“타올라라…!”
델라는 있는 힘을 다해 불꽃의 날개를 만들었다.
이곳은 지하 45M.
이 몸상태라면 사다리에 매달려 올라가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단숨에 날아야 한다.
불사조의 날개처럼 커다란 날개를 두른 델라의 몸이 순식간에 상승하더니 커다란 강철 덮개마저 부숴버렸다.
“으윽…!”
철문을 밀쳐내는 과정에서 또다시 의식이 흐릿해 질뻔했지만 어찌 됐건 나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상쾌한 공기가 기분 좋게 폐부를 간질인다.
“후우… 후우… 일단, 위치포인트로 가야겠어요…”
모든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곳에서 보호를 받고 치료를 받자.
그것만을 목표로 골목에서 뛰쳐나간 델라의 눈에.
-끼이이이익!
하얀빛이 들어온다.
말발굽처럼 기괴한 그릴을 지닌 스포츠카가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텅!
델라의 몸이 종잇장처럼 떠오르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