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1.
오후 3시.
엘로아 호텔 페리윙클 서울 스탠다드 룸 체크인.
페리윙클과 시우의 뜨거운 낮.
오전 0시.
엘로아 뒤척거리다 숙면.
아직도 계속 중
익일 오전 4시 기상.
엘로아 기상.
둘은 아직까지도 계속 중.
오전 11시.
엘로아 포기하고 체크아웃.
이후 위치포인트로 복귀.
아직도 계속 중.
오후 5시.
엘로아 명상.
페리윙클과 시우, 아직도 계속 중.
또 날이 바뀌어 오전 0시.
엘로아 수면.
이 시점까지도 끝나지 않는 섹스.
그리고 오전 4시.
엘로아는 퀭한 눈으로 일어났다.
어젯밤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오늘도 종일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시야를 확인한 뒤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끝났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근사해 보이는 차량 내부.
뭐든 간에 더는 페리윙클의 하얀 알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찌릿거리는 감동에 사로잡힌 엘로아.
“아.....”
하지만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다리 사이에 베개를 확인한 직후였다.
잠이 들기 직전까지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시우와 페리윙클의 교접행위.
문명화된 짐승에서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는 듯한 그 적나라한 광경을 보고 엘로아는 자꾸만 달아오르는 몸을 느꼈다.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쿵쿵거리고 자꾸 아래가 간지럽다.
호흡은 열기를 띠고, 얼굴 역시 주체할 수 없이 붉어진다.
그렇다고 잠을 잘 때까지 냉수 아래 기어들어 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서 엘로아가 선택한 것은 자위가 아니었다.
자꾸만 아래로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엘로아는 타협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우의 섹스 장면을 보고 그런 저속한 행위를 한다면 나중에 어떻게 그의 얼굴을 보겠는가?
무엇보다 옳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엘로아가 고안한 차선책은 베게 하나를 다리 사이에 끼우는 것이었다.
아예 손도 대지 않을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러나 허전한 가랑이에 푹신한 쿠션을 대줌으로써 번뇌를 잊을 수 있던 것도 잠시.
엘로아는 본능적으로 허리와 다리를 꿈틀거렸다.
허벅지로 베개를 꾹 끌어안았다가 놔준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한다.
허벅지 안쪽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베개와 팬티가 음부를 꾹꾹 누를 때마다 뭔가 답답한 것이 풀리는 시원한 느낌을 받았을 수 있었다.
야릇하고 간지러웠던 느낌이 개운함으로 바뀌는 감각에 몰입하듯이 침대 위에서 옆으로 누운 채 잠이 들기 전까지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엘로아가 알 도리도 없고, 자각도 없었겠지만.
그것 역시 명백한 자위의 일환이었다.
성에 막 눈을 뜬 소녀들이 본능적으로 쾌감을 추구하는 압박자위 말이다.
결국 잠이 들기 직전까지 베개를 부둥켜안고 비비적거리던 엘로아는 잠이 든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꿈틀거렸고 그 결과 다시 일어나자...
“........”
베개가 젖어있다.
엘로아는 잠시 그것을 망연히 살폈다.
땀인가?
자면서도 그 몹쓸 광경을 훔쳐본 결과 이렇게 땀이 듬뿍 난 것일까?
“어제는 이런 것이 없었는데…”
그 착각은 잠에서 깬 엘로아의 몸이 둔해졌던 감각을 온전히 되찾자마자 깨졌다.
엘로아는 비단 베개뿐 아니라 자신의 속옷 역시 축축하게 젖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파자마도!
“웃....!”
뾰족한 비명을 꾹 누른 엘로아.
초경을 경험했을 때처럼 혼란으로 가득해진 엘로아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시우가 선물해준 파자마 하의 아래로, 속옷 아래로.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안에서는 기묘한 열기와 끈적한 소리가 피어났다.
“하앗...!”
그리고 우연히 스친 손끝이 빳빳하게 발기해 젖어 있는 음핵을 톡 건드리자마자 엘로아는 자신의 허벅지가 의사와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경험했다.
당혹감도 잠시 엘로아는 베개, 팬티, 파자마를 적신 액체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바로 자신의 성기였다.
성감과 쾌락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능에 각인되어있다 한들 여성의 몸은 마치 아직 움트지 못한 새싹처럼 단단한 껍질 안에 단단히 숨겨져 있다.
반복된 학습과 자극으로 완벽한 쾌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통상 며칠, 길게는 몇 년에까지 걸쳐 일어나는 일을 고작 하루 만에 경험한 엘로아는 충격에 굳었다.
이건 설마...
“애....액?”
시우가 페리윙클과 교접할 때 페리윙클에게서 흥건하게 흘러나오던 끈끈한 액체.
그것과 아주 유사해 보였다.
티페레트는 냉큼 팬티 안에서 손을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 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도 없는데 누가 보면 곤란하다는 듯이.
흔들리는 동공과 그보다 더 흔들리는 사고.
최대한 차분히 마치 적을 분석하는 것처럼 관측한 현상과 상황을 분석한다.
“그러니까....”
지금 시우와 페리윙클의 비밀스러운 광경을 보고 페리윙클처럼 발정해버렸다는 건가?
엘로아는 다급하게 옷을 벗고 베개를 쓰레기통 안에 박았다.
시우는 차를 타고 귀가하는 길이다.
게다가 전해져 오는 시야로 보이는 주변 풍경은 익숙하기 짝이 없다.
도착전까지 모든 것을 처리해야 했다.
그런 다급함 덕에 엘로아는 자괴감에 빠질 일도 새도 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2.
위치포인트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시우.
확실히 같은 펜트하우스라도 5성급 호텔의 최상층과 일반 빌딩의 최상층은 차이가 존재하나 보다.
궁궐처럼 보였던 임시 숙소가 그냥저냥 커다란 방으로 보이니 말이다.
샤론의 상태를 확인한 시우는 방으로 가다가 빨랫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엘로아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어? 스승님 깨어 계셨군요.”
시우의 부름에 도둑질하다 걸린 것처럼 깜짝 놀라는 엘로아.
이 시간이라면 한창 자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파자마를 입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쩐 일인지 외출복 차림이다.
“…….”
“괜찮으세요?”
어딘가 평상시와 다르게 뻣뻣해 보이는 엘로아의 움직임에 시우가 물었다.
엘로아는 언제나 악몽을 꾼다.
자다 일어난 그녀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욕실로 들어가는 모습은 몇 번이고 봤기에 지금도 대충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생각 중이었다.
“말도 없이 이틀이나 수련에 빠져서 죄송합니다. 제가 연락을 드리려야 했는데 괜한 걱정을 끼쳐드렸네요.”
아무런 말도 없는 엘로아의 모습에 그녀가 화났다고 생각한 시우.
하긴 기별도 없이 사라졌다가 이틀 뒤에나 돌아왔으니 그녀에게 걱정을 끼쳤을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이 왜 그때는 생각이 안 났는지...
눈동자가 암순응이 되자 엘로아의 모습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
곤혹스러워하는 자홍색 눈동자는 시우의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지도 못한다.
“와, 왔나?”
아주 발칙한 생각이지만.
시우는 순간 엘로아의 표정에서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저런 얼굴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야릇한 분위기에서 키스할 때, 혹은 성욕에서 기인한 호의를 내비칠 때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근데 그럴 리가 없지.
엘로아는 시우가 만나왔던 그 누구보다도 진중한 성격이다.
게다가 시우를 제자처럼 아끼는 엘로아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녀에게 이런 생각을 덧씌운 자신의 모습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휘젔고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됐네. 수련을 땡땡이친 것은 마땅찮으나... 그대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니. 여태 하루도 빼먹지 않지 않았나?”
엘로아와 시우는 자연스럽게 집안 복도를 거닐었다.
아주 잠깐 망설이던 엘로아가 묻는다.
“그래서 어딜 다녀왔는가?”
예상보다 늦었지만, 말도 없이 밖을 나돌아다녔으면 당연히 나올 질문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위화감은 엘로아가 그것을 그다지 묻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일전에 절 구해주셨던 페리윙클 님과 만나고 왔습니다. 안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시간 가능하신가요?”
엘로아는 구깃구깃 구겨진 빨랫감을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시우를 돌아본다.
"마,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
언제나 당당했던 엘로아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동물이 말을 걸어오면 대충 저런 반응이 나올 것 같다.
혹시 지금 많이 힘드신 건가?
시우는 걱정되었다.
수아 지부장의 말에 따르면 시우 덕에 상태가 많이 호전된 엘로아라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고통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악몽을 꾸던 엘로아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것도 많이 지켜봤었고...
연민과 동정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잠에서 깬 직후 특히 상태가 좋지 않던 것을 보면 갑작스레 말을 꺼내는 것도 배려가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기다리는 것이 도리겠지.
“아, 그건 조금 나중에 말씀드려도 괜찮겠네요. 술 한 잔 올릴까요?”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는 엘로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해 놀라긴 했지만 고작 빨랫감을 옮기다 들킨 것이 전부다.
다행히 시우가 뭔가를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엘로아는 시우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의 성교 장면을 관음하며 저도 모르게 아래를 적시고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아닌 티페레트가 잘 알고 있다.
수치심이란 본인의 부끄러운 치태를 아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어찌 부덕한 스승인가?
엘로아는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드릴 말씀이 있다는 것이나 술을 함께하자고 하는 저의는 뭘까?
이도 저도 알 수 없게 된 엘로아는 삐걱거리며 시우가 건네는 술잔을 받았다.
“고맙네.”
그래도 술이 조금 들어가니 살 것 같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뭐, 뭐가 말인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셔서요. 걱정됩니다. 역시 제가 너무 염려를 끼쳐드린 건 아닌가요?"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나.”
갑자기 몸 상태를 묻길래 제 발 저릴뻔했던 엘로아는 여느 때와 같은 자상한 그의 모습에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한편 자꾸만 격렬했던 그의 언사가 눈과 귀에 아른거려 정신 사납다.
제발 머리에서 좀 떼어내고 싶었다.
“저번에 말씀 드렸던 대로 내일 수련이 끝나면 같이 옷 사러 가시지 않을래요?”
엘로아는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젖어버린 옷과 속옷을 본 건가?
그와 마주하는 순간 시각 공유가 풀렸기 때문에 엘로아는 종잡을 수 없었다.
제발저린 엘로아는 다급히 말했다.
“파자마는 저것 말고도 있다네.”
“아... 파자마 말고 밖에서 입을 만한 옷 말입니다.”
“파자마 말고? 아... 그, 그렇군. 옷, 옷이라... 좋지.”
도저히 안 되겠다.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는다.
자꾸만 불건전한 생각이 머리에 두둥실 떠다닌다.
조금은 시간을 두고 시우와 떨어져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가서 머리라도 식혀야겠다.
“오늘은 피곤하니 이쯤 마시세. 미안하네."
“엇...”
시우의 대답도 듣지 않은 엘로아는 벌떡 일어나 남은 술을 원샷하고 밖으로 총총 사라졌다.
“역시 많이 화나셨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시우로서는 그런 추측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