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50화 (250/917)

#250

1.

엘로아는 급한 대로 지갑의 돈을 탈탈 털어 페리윙클 호텔의 가장 저렴한 방을 체크인했다.

참고로 오늘 수련이 끝나면 시우에게 대접해줄 요리 재료를 사려고 들고나온 쌈짓돈이었다.

한쪽 시야에는 엘로아가 바라보는 광경, 한쪽 시야에는 페리윙클과 시우의 폭풍 섹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으니 어지럽고 매스꺼웠다.

이대로 이걸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최대한 가까이 머물다가 시우와 페리윙클이 잠시 떨어진 틈을 타 자연스럽게 만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아... 한번... 더?'

끝이 나질 않는다.

아니,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련에서 삐약삐약 병아리 같던 시우는 침대 위에서는 미쳐날뛰는 포식자였다.

발버둥 치는 페리윙클을 손쉽게 제압하고 그녀의 앞 구멍이든 뒷구멍이든 원하는 곳으로 삽입한다.

"맙소사, 맙소사...."

엘로아는 눈을 가리고 얼굴을 감쌌다.

눈을 가려도 시각 연동은 그대로였기에 별 효용은 없었으나 그렇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민망함이 얼굴을 뜨겁게 만들었다.

다시 한번 페리윙클의 좁아 보이는 구멍으로, 망가지진 않을까 걱정이 될 사이즈의 남성기가 침투한다.

그리고 격렬하게 왕복 운동을 하면 페리윙클은 마치 암컷처럼 목놓아 울부짖는다.

"그만 좀 하게, 그만 좀...."

호텔 방안에 들어온 지 3시간이 지났다.

또한 정황상 이미 몇 시간 째 성교를 계속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내일이 죽는 날인 것처럼 거듭 성교를 계속했다.

한쪽 귀를 징징 울리는 거친 숨소리와 교성에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벌떡!

소파에 앉아있던 엘로아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이상은 시우에게 오히려 실례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을지언정 일단 얼굴을 마주해서 계약 조건을 완수해야 한다.

그래야 이 원치 않는 시청각 성교육을 마무리 짓지 않겠는가?

엘로아는 호기롭게 일어나 객실 문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다 문 앞에서 멋지게 턴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못할 것 같다.

저 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라는 말인가?

임시 스승이라 한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계약해버린 것은 명백히 엘로아의 실책이다.

아무리 성격이 둥글둥글한 시우라도 자신의 사생활이 언제든 간섭당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면 기분이 좋지 않겠지.

심지어 엘로아는 이미 허락 없이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가 샤론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한 전과가 있다.

그 아무리 강대한 호문쿨루스와 대적해도 물러섬이 없고, 그 어떤 악랄한 공적과 마주해도 투지를 닦아 세웠던 엘로아.

그러나 이런 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다.

엘로아는 뚜방뚜방 걸어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혼미해진 정신을 차리고 싶을 때는 냉수마찰도 큰 도움이 된다.

우선은 찬물로 어푸어푸 세수를 한 엘로아는 거울을 들여 보았다.

"읏...."

거울 속 엘로아의 얼굴은 잘 삶은 문어처럼 익어있다.

이런 꼴로 시우 앞에 들어갔다간 서로가 더 민망할 상황이 연출될 뿐이겠지.

결국 모두 포기한 엘로아는 옷을 벗었다.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놓고 욕조 밑에 웅크려 들어간다.

-쏴아아아아아!!!

얼음장 같은 냉수가 머리를 젖히며 몸을 타고 흐르자 기묘한 열기인지 무엇인지 모를 뜨거움이 잠시나마 가라앉는다.

"하아....."

엘로아는 단 한 번도 남성과 몸을 섞어본 적이 없다.

성행위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적도, 그전에 성욕이나 성애조차 느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니 접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 근래에 들어 이상하리만치 많은 일이 생겼다.

우선 샤론과 시우의 교접 장면을 본의 아니게 목격하게 된 것도 그렇고.

시우와 대련 중 바짝 밀착했을 때 등허리를 짓누르는 그의 물건을 느꼈을 때도 그렇고.

몽마에게 미혹 당했을 때 상상 속 시우에게 알몸을 보이고 가슴을 주물러진 것도 그렇고.

또 오늘은 도저히 당사자에게 말할 수 없는 민망한 사고까지...

'하아... 하아... 히아앙!'

페리윙클은 시우의 물건에 찔릴 때마다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언뜻 들어도 단순한 비명이 아니다.

황홀하다는 듯한, 세상에 다시 없는 환락을 느끼는 듯한 환희의 목소리.

저렇게 커다란 물건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구멍을 억지로 넓히는데...

저게 그렇게 좋은 것일까?

심지어 아기씨를 받고 태아를 잉태하는 여성기가 아니라,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더러운 구멍에까지 남자의 물건을 받아들이고 있다.

설령 엘로아가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나 몸을 허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보여주기도 부끄러운 구멍까지 선뜻 내어주는 것이다.

엘로아는 수랭식 쿨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더위와는 달랐다.

이미 몸의 열을 잡아줄 요소는 충분하다.

이건 아랫배 안쪽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열기였다.

가슴 앞으로 얌전히 모인 양손에 콩닥콩닥거리는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아니, 엘로아는 예전 이미 비슷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몽마가 보여주었던 시우의 환상.

그의 몸이 엘로아의 위를 덮어내고 목덜미를 빨아들일 때.

처음으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는 간지러움이랄까, 소름이 돋는다는 쪽에 더 어울리는 감각이었지만 말이다.

동시에 엘로아는 흑역사나 다름없어 꾹꾹 눌러둔 그 날 밤의 일을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유혹하던 시우의 환상.

엘로아의 알몸을 보고 하나가 될 것을 요구해오던 시우가 환상이 아니었더라면...

즉, 만약 시우가 저런 걸 요구했다면... 엘로아는 과연 거절했을까?

물론 알고 있다.

몽마의 능력은 대상의 욕망을 개방하고 극대화해 자율방어를 무효화시키는 것.

필연적으로 엘로아의 태도는 평소보다 단호하지 못했다.

아마 현실이었더라면 단호하게 잘라냈겠지.

.....

잘라냈겠지?

잘라냈을 것이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마음에 맞으면 누구와도 짝짓기하는 짐승과 달리 도리가 있고 도의가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만약의 만약으로.

시우가 환영이 아니었고, 또 엘로아가 그의 행위를 받아들였다면...

그때는 저 페리윙클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까?

품위와 고아함을 잊어버린 채.

짐승처럼 짓눌려서 쾌락을 탐미하는 그런 몰골이 되고 말았을까?

그건....

"우우...."

엘로아는 고개를 좌우로 휙휙 흔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 실례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이상한 쪽으로 빠지려고 든다.

'흐앙, 앙....  하아앙...!'

눈에 보이는 것이 저런 광경이다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쏴아아아아아!

번뇌를 씻어내기 위한 엘로아의 찬물 샤워를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렇게 마음에 묻은 때를 완벽하게 씻어냈느냐면 글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2.

"후우."

날이 저물고 다시 아침이 찾아오고, 다시 밤이 되었을 때 시우는 옷을 여몄다.

설마하니 48시간 거의 연속으로 성관계를 하게 될 줄이야.

계속된 성교와 오르가즘으로 떡실신한 페리윙클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누운 채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고 있었다.

"이거 기네스 아닌가?"

검색을 위해 휴대폰을 뒤적이려던 시우는 부재중 전화 3통을 발견했다.

엘로아에게서 온 것이었다.

[오늘은 수련하지 않는가?]

[자네 어디에 있는가?]

[시우]

[어디인가?]

띄어쓰기까지 꼬박꼬박해 놓은 엘로아의 문자도 덩달하 네 통이 도착해 있다.

"아차차...."

페리윙클의 적극적인 어프로치로 섹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까닭에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시우는 재빨리 티페레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하긴 이 시간은 엘로아가 한참 쿨쿨 자고 있을 시각이다.

일어나자마자 안심할 수 있게끔 문자를 남겨놓자 벌써 정신을 차린 페리윙클이 부스스한 머리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아아암....! 힘들어 죽겠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머리카락을 넘긴 페리윙클은 시우를 보고 아쉽다는 시선을 보냈다.

믿어지는가?

거의 기둥뿌리를 뽑을 정도로 즐겨놓고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아 쌩쌩하게 회복하다니.

-딱!

페리윙클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몸에 묻어있던 타액, 땀, 정액 등이 모두 사라졌다.

더불어 침대 시트 역시 뽀송뽀송하게 변했다.

"회복이 빠르시군요."

"넌 지치지도 않던 걸?"

페리윙클이 기지개를 쭈욱 펴자 팔을 따라 출렁이는 가슴에 시선이 간다.

그리고 양옆에 선연하게 찍혀있는 손도장도.

저 출렁이는 가슴에 젖싸대기를 날리며 박아댔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페리윙클의 요청이었지만 잘도 그런 간 큰 짓을 했구나 싶다.

"최고로 즐거운 두날 밤이었어. 시우 군."

그녀는 싱긋 웃더니 발끝으로 선 채 시우에게 사뿐사뿐 걸어왔다.

양기를 듬뿍 보충할 수 있던 페리윙클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굴 수 있으면서 왜 이렇게 뺐던 거야? 응?"

그러면서 은근슬쩍 머리를 시우의 코밑으로 들이밀려 하길래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막았다.

페리윙클의 눈웃음이 손틈새로 보인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도 슬슬 할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존댓말 하는 모습 보니 너무 낯설어. 방금까지는 암캐 년이라고 해줬잖아."

"그건... 마녀님이 부탁하셨는걸요?"

페리윙클은 포기하지 않고 시우의 가랑이 사이로 손을 뻗어왔다.

그러면서 이마를 가로막은 시우의 손바닥을 아주 천천히 핥는다.

"나 같은 명품견한테 맘껏 박아댈 수 있는 기회... 지금 가버리면 다신 없을지도 모르는데?"

"죄송합니다. 티페레트 공작님이랑 쇼핑하기로 해서..."

"쳇, 쌀쌀맞아."

페리윙클은 여전히 존대하는 시우를 보고 김이 빠졌다는 듯이 물러섰다.

그 모습에 기가 찬 시우가 묻는다.

페리윙클은 이미 지나친 오르가즘 끝에 몇 번이고 혼절했다.

물론 즉각 시우가 자지로 깨워주었다지만 그렇게 하고도 더 원한다니...

정열의 끝을 알 수 없는 여자다.

"아직도 더 하실 생각이 드시나요?"

확실히 하룻밤이면 만리장성도 쌓는다고 시우는 페리윙클을 한결 편하게 대했다.

페리윙클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내가 명품견이라면, 넌 종마인걸? 만족은 했어도 아쉽단 말이지? 너도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페리윙클이 손을 휘젔자 멀리서 두둥실 날아온 옷가지들이 그녀의 나신을 감쌌다.

그러고 보니 저 하얀 살결이 가려지는 것을 보는 것도 48시간 만이다.

거의 쉴틈 없이 한참이나 서로를 물고 빨고, 일방적으로 때리고 박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즐거웠어."

"저 역시 영광이었습니다."

"하긴 어디 가서 마녀를 성노예처럼 부려보겠니."

페리윙클은 시우의 옷을 툭툭 털어 정리해주고는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키홀더에 담긴 차 키였다.

페리윙클이 오늘...이 아니라 엊그제 밤 시우를 데리러 왔을 때 탔던 차와 똑같은 로고가 박혀 있었다.

"아래 연락해서 대기시켜 놓을게. 날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게 해준 대가야."

"아뇨,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이 받았는걸요."

시우는 그 정체를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페리윙클은 차도를 달리는 빌딩을 시우에게 주려는 것이다.

부담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다.

이러다가 아예 코가 꿰일 것도 걱정이 되고 말이다.

"됐어 받아 둬. 내가 너한테 준 네잎클로버가 훨씬 비싼 건 아니? 어차피 선물로 받은 건데 뭘."

"선물로 받으신걸 제 맘대로 타고 다녀도 되나요?"

심지어 번호판에도 '외교' 문구가 떡하니 박혀 있었는데.

"상관없어. 감히 페리윙클이 하는 일에 토를 달까?"

페리윙클은 쿨하게 대답하고는 시우의 코끝을 살짝 꼬집었다.

어차피 한국을 뜰 예정이기도 하고 워낙 비싼 차이다 보니 내부에 GPS가 내장되어있어 훗날 시우를 다시 만나기도 편해질 것이다.

라는 속셈까진 전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시우는 그저 감동했다.

나쁜 꿍꿍이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너무 딱딱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에 스쳤다.

"제가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그때 구해주시고, 앞으로 위험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잘 대해주신 것도요."

페리윙클은 싱긋 미소지었다.

어느덧 전용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네잎클로버만 맹신하진 마. 그게 목숨을 구해주는 건 딱 한 번 뿐일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

시우가 엘리베이터에 타기 직전.

페리윙클은 시우의 목을 끌어안더니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해주었다.

"그대의 발걸음에 행운이 가득하길."

"아...."

"살아서 보자."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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