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49화 (249/917)

#249

1.

페리윙클은 영악했다.

전과 다르게 다시 미적지근하게 변한 시우의 반응을 보고 즉각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차렸다.

욕조에서 시우가 지나가듯이 했던 '마녀님의 향기를 맡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라는 말.

내내 빼기만 하던 시우가 각오를 다진 뒤 페리윙클의 머리 냄새를 맡고 광분했던 일을 조합해 순식간에 결론을 도출해냈다.

바로 버서커 시우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머리 향기를 맡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우에게 억지로 파고들어 향기를 맡게 했고 시우는 자중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잊은 채 페리윙클의 수작에 놀아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마치 강간이라도 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페리윙클의 구멍을 범한 것이다.

앞뒤 할 것 없었다.

질내사정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페리윙클을 결박해 놓은 채, 두 구멍의 맛을 번갈아 시식하며 허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이성을 잃은 까닭에 세 가지 사실을 깜빡했다.

첫째는 시우는 매일 엘로아와 대련을 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페리윙클과 만난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하고 연속 섹스를 즐기고 있다는 것.

셋째는 연락도 없이 대련에 빠지면 엘로아가 그를 애타게 찾으리라는 것이다.

2.

"......."

엘로아는 전전긍긍하는 표정으로 시우가 나타나지 않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시우는 성실하다.

말이 대련이지 사실상 얻어터지고 날아가길 반복하는 수련도 군소리 않고 성실히 임했다.

엘로아보다 일찍 도착해 커피를 사뒀으면 사뒀지 이렇게 말도 없이 대련에 늦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더군다나 뻔히 엘로아가 걱정할 것을 알면서도 밤새 어디를 나돌아 다닐리가...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

엘로아는 끝끝내 받지 않은 3번째 전화를 끊었다.

진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머리가 어질거리며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시우에게 걸어 주었던 '수호자의 계약'.

엘로아가 사용할 수 있는 12번의 계약 중 하나를 소모해 일시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가 활용할 수 있는 힘의 12분의 1을 그에게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시우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어지간한 자율방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효능을 낼 것이다.

또한 즉각적으로 시우의 위치가 엘로아에게 알려졌겠지.

라피를 잃어버린 이후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만든, 우수한 효능의 계약인 것이다.

그런 계약을 지닌 시우가 아무런 낌새도 없이 당할 리도 없고, 반대로 멀쩡히 잘 있는 시우가 아무런 말도 없이 엘로아의 연락을 무시하지도 않을 테니.

절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네."

그냥 자고 있을지도 모르고, 잠시 생각에 잠겨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엘로아는 시우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수호자의 계약의 또 다른 효과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히 위치만 특정했을 때 계약자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어떤 곤경에 빠진 건지 파악하는 것이 늦을 수도 있다.

따라서 수호자의 계약에는 한가지 부과 효과가 달려 있었다.

바로 대상의 시각과 청각을 공유하는 능력이다.

시우의 스승을 자처하고 있는 처지라도 그의 사생활에 일일이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엘로아는 한쪽 눈을 감고 계약을 이행했다.

시우의 위치가 파악됨과 동시에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뭣....?"

하얀색과 분홍색이 동시에 보이는 살의 향연이었다.

장소는 아마도 호텔 방.

완벽하게 공유된 시각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잎처럼 손자국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하얀 엉덩이가 보였다.

-찰싹 찰싹!

"으응! 하앙...!"

손바닥에 얻어맞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수축하는 뒷구멍 안에서는 허연멀건 액체가 뚝뚝 떨어지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살짝 아래에는 거대한 고기 막대기 같은 것이 흠뻑 젖은 채 속살을 후벼 파고 있다.

여성기의 소음순이 자지 옆에 달라붙듯이 빠져나왔다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게 생생하게 보였다.

실로 적나라하고, 노골적이며, 음란하기 짝이 없는 앵글이었다.

엘로아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게 굳었다.

"이...이게 어찌된..?"

화사한 침대 위로 흐트러진 짙은 군청색의 머리카락.

시우가 자궁구를 팡팡 찍어줄 때마다 자지러지며 시트를 쥐어뜯는 여자의 정체는 바로...

행운의 마녀, 키벨레 페리윙클.

그리고 지금 엘로아가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시우일 것이다.

왜 그녀는 시우의 앞에서 저런 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시우는 페리윙클과 침대 위에서 저런 짓을 하는 것일까?

저것이 남녀 간의 성교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시우가 샤론과 몸을 섞는 광경을 본의 아니게 엿본 적도 있지 않은가?

안 된다.

머리를 정리하려고 해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살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늘어만가는 하얀 설원 위의 단풍.

그때마다 허리를 꿈틀거리며 발작하듯 몸을 떠는 페리윙클.

'꺄악! 그, 그만 때려줘...! 부탁... 부탁할게...!'

'흐윽....윽.... 나... 망가질 것 같단 말이야....!'

그러나 이 모습은 흡사...

강간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시우가 페리윙클을 강간하고 있는 것일까?

'제발... 내가 잘못했어... 이젠 안 그럴 테니까... 하지 마... 그만!'

간신히 몸을 틀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간신히 애원하는 페리윙클.

자세히 보니 그녀의 손목은 시우가 항상 주무장으로 사용하는 그림자에 의해 속박되어 있었다.

동시에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엘로아의 귀를 울린다.

'제가 왜 그만둬야 하는데요?'

스승님, 스승님이라고 말하며 엘로아에게 보이던 음색과는 전혀 다르다.

본능에 충실한 듯한, 거친 숨에 섞인 거친 목소리.

'잘못했어... 내가 까불어서... 잘못했다니까....끼약! 꺄악! 꺄악!'

연신 비명을 내지른 페리윙클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저항하고 있다.

엘로아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감각 공유를 하는 사람은 시우가 확실하다.

위치도 이 근방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호텔로 보인다.

그런데 엘로아가 기억하는 시우는 언제나 상냥하고 착한 좋은 남자였다.

이렇게 여자를 물건 취급하며 함부로 다룰 사람은 아니었다.

구하러 가야 한다.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어쩌면 에아가 남긴 모종의 수작이 뒤늦게 그를 망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엘로아는 이미 시우를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그가 자의로 저런 짓을 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을 피하는 '박영의 부적'을 꺼내 들고 땅을 박찼다.

목적지는 시우가 페리윙클을 범하는 호텔.

단 한 번의 점프로 수백 미터를 뛰어 인근 빌딩 난간에 착지한 엘로아는 그만 미끄러질 뻔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힘들어 보이시네요?'

'나, 나... 무리야... 너무 힘들어... 그만... 조금만 쉬게 해줘... 부탁할게...'

'그럼 다른 구멍에 해드릴게요.'

'거, 거기도.... 이미 너무 많이 했단 말이야... 하아아앙...!'

연신 페리윙클의 엉덩이를 내려치던 시우의 두툼한 손이 페리윙클의 뒷구멍을 쩍 벌린다.

잦은 마찰로 부어있는 기색이 가득한 그녀의 뒷구멍으로 커다란 자지가 꾸물꾸물 밀려 들어갔다.

"아....."

그것은 엘로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벌어진 페리윙클의 항문으로 꾸역꾸역 파고든 거근은 마치 섹스할 때처럼 앞뒤로 움직였다.

'끼햐아앙...! 아앙! 그만...! 제발... 나 죽을 것 같아....!'

'뒷구멍에 싸드릴게요. 잘 조이세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페리윙클의 모습과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엉덩이를 내려치는 시우의 손바닥.

지금 항문에 물건을 넣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처음 봤을 때 움찔거리는 뒷구멍에서 흘러나왔던 것은 정액?

어질어질한 현기증을 느꼈다.

남녀가 육체를 섞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고지식한 정통파 마녀인 엘로아는 특별히 관심을 가져온 적이 없지만 실제로 무수히 많은 마녀가 인간 남성과 몸을 섞는다.

헌데 입에 담기조차 낯부끄러운 구멍에 남성기를 삽입하다니...

저런 건 듣도보도 못했다.

엘로아는 확신했다.

지금의 시우는 제정신이 아니다.

제정신인 마녀가 저런 행위를 허가해 줄 리가 없으니, 엘로아의 한쪽 눈에 비치는 광경은 분명 강간 현장이다.

도대체 어떻게 20 위계의 페리윙클을 (굳이 분류하자면) 15 위계 남짓한 시우가 제압할 수 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어도, 이대로 방치하다간 이성을 잃은 시우가 공적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자신이 시우를 감싸주어야 한다.

페리윙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한이 있더라도 시우의 상태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

엘로아는 두말하지 않고 모든 마력을 끌어올려 시우가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명동과 광화문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한 3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계약의 마법은 그 효과가 강력한 만큼 반드시 대가와 조건이 따른다.

진실의 빛의 발동이 끝나면 눈이 멀고, 육체 강화를 대가로 수면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수호자의 계약은 한번 발동된 이상 원래의 계약, '티페레트가 신시우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된다'가 수행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따라서 엘로아는 한쪽 시야에는 참혹한 강간의 현장을, 한쪽은 서울 시내의 정경을 담으며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막 호텔 앞에 도착한 엘로아의 무릎이 구부러지고 단숨에 51층으로 뛰어들려는 그때.

어느새 사정을 끝낸 시우가 페리윙클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하아... 하아.... 진짜 미친 것 같아....'

페리윙클의 뒷구멍 깊이 사정을 끝낸 시우의 몸이 페리윙클 위로 엎어지자, 페리윙클은 뒤로 손을 뻗어 그녀의 등 뒤로 누운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주 만족하고, 사랑스럽다는

"?????"

엘로아는 다른 의미로 뻣뻣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방금까지는 강간이었는데, 강간이 끝나자마자 마치 연인인 양 다정하게 시우를 바라보는 페리윙클.

조금 전까지 강간 피해자였던 페리윙클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 아까까지는 눈물을 흘리며 애걸복걸해오던 그녀였는데 말이다.

갑자기 왜?

'엉덩이가 너무 얼얼하잖아... 아무리 때려도 좋다고 말했지만... 당분간 비키니는 못 입겠네.'

'이게 다 페리윙클 님 때문 아닌가요? 제가 분명 자꾸 체취를 맡게 하시면 위험하다고 말씀드렸는데...'

'더, 더 맡아줘... 더 거칠게 해도 된다니까?'

곤혹스럽다는 듯이 몸을 빼려는 시우와 몸을 빙글 돌려 그의 목을 끌어안는 페리윙클.

페리윙클이 자꾸만 정수리 부근을 시우의 코앞에 바짝 붙이려는 모습이 보인다.

'너 같은 남자랑 할 수 있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 한국을 뜨기 전에 잔뜩 해놔야지 츄읍....'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의 주도권은 분명 페리윙클 쪽에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더 원한다는 듯이 시우에게 입을 맞춰왔다.

엘로아는 눈을 끔뻑이며 정지해 버린 사고를 다시 돌리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성행위가 일련의 합의를 거쳤다는 거겠지?

여기까지는 금방 도달할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도대체 왜?

페리윙클과 키스하며 체취를 또다시 듬뿍 머금은 시우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버릇없는 강아지를 훈련하듯 페리윙클의 목을 잡더니 짓누른다.

'진짜 안된다니까요...'

'케흑... 바, 반말해 주면 안 될까? 좀 더 강압적으로....욕! 욕도 섞어도 좋아...!'

저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기쁘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는 페리윙클.

엘로아는 항상 좋은 말만 해주던 시우의 입에서 '보지 벌려 썅년아'라는 대사를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비틀비틀 저혈압 환자처럼 서성이던 엘로아.

대충 상황도 짐작이 됐다.

최악을 상정했던 엘로아에게는 그나마 안도할 만한 결과였다.

기본적으로 꽤 정숙한 성관념을 지닌 엘로아지만 다 큰 시우의 이성관계에 간섭할 정도로 꽉 막혀있진 않다.

애초에 그럴 권리도 없다고 생각 중이고 말이다.

다만 지금 엘로아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보고 싶거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호자의 계약은  한번 시행되면 엘로아가 시우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될때까지 지속된다.

그 기준이 모호하긴 해도 아마 시우를 만날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시우는 지금....

저런 짓을 하고 있다.

중간에 난입할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즉, 시우가 저걸 다 끝낼 때까지 시야의 절반을 거친 성교의 장면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

왜 자꾸 시우와 관련되면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인지...

엘로아는 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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