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44화 (244/917)

#244

1.

화려한 객실에 걸맞은 화려한 침실.

이 방 역시 거실처럼 벽 한쪽이 유리였기 때문에 화려한 야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과장 좀 보태어 가구를 싹 밀면 풋살이 가능할 것 같은 널따란 방에는 침대 하나가 놓여있다.

페리윙클은 몸에 묻은 물을 닦지도 않고 침대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았다.

야심한 시각 자신의 침실로 남자를 끌어들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사실 페리윙클이 찾아왔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애초에 초대면부터 시원하게 쓰리썸을 제안했던 마녀이다.

게다가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던 '즐겁게 해주면'이라는 말이 침대 위에서 술 한잔 걸치면서 진실게임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테니.

"뭐해? 들어와."

시우는 방문을 닫고 완전히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은근한 눈빛으로 시우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눈길.

속 시원하게 말하자면 사실 시우도 예쁜 여자와 이것저것 하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남자로 태어났는데 미녀와의 섹스가 싫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페리윙클의 성격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마냥 속 편하고 질펀하게 침대에서 뒹굴 수 없는 몇몇 요인이 있다.

첫 번째는 샤론.

지금 샤론은 혼수상태로 누워있다.

비록 푹 쉬고 나면 저절로 상태가 좋아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샤론이 다치고 의식불명이 되었는데 희희낙락하며 다른 여자랑 몸을 섞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생명을 구해준 대가라 해도 말이다.

두 번째는 조금 현실적인 문제이다.

시우는 섹스할 때 질내사정 시 자연스럽게 마력이 증폭된다.

이미 남자 마녀라는 특이성을 지니고 있고 페리윙클도 자연스레 그 점에 관심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마력 증폭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지금까지는 가벼운 원나잇을 요구하는 듯한 페리윙클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그게 아니더라고 꽤 질척질척한 관심을 보일지도 모르지.

페리윙클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나마 시간을 보내면서 안심할 만한 정보를 취득했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마녀보다 변덕이 심하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이다.

"페리윙클 님."

"왜?"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근래 복잡한 일이 많아 심란했던 모양입니다. 말씀해주신 점괘 건 때문에도 그렇고요."

"그래서?"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그녀에게 끌려다니다간 손쓸 새도 없이 안 좋은 시나리오만 펼쳐질 뿐이다.

조금만이라도 주도권을 찾아오는 게 중요할성싶었다.

어차피 이대로 빠질 수 있는 분위기가 절대 아닌 이상 침대 위에서라도 전술적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타카쇼, 내게 힘을 줘.

시우는 조용히 그의 오랜 친구를 떠올리며 기도했다.

"원하시는 바를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분위기 다 망쳐놓고 이제 와서 그렇게 하는 것도 웃기지 않아? 게다가, 너 같은 숙맥이 뭘 할 수나 있겠어?"

아까까지 장난이다, 농담이다 말했던 것치고는 여전히 뼈가 있는 말이었다.

고압적으로 턱을 치켜세운 페리윙클은 혀를 쯧쯧 차며 시우의 자존심을 살살 긁으려 들었다.

그래도 일단 생명의 은인 아닌가?

잘만 대처하면 오늘내일 이틀 보고 안 봐도 되는 사람이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술병이 눈에 들어왔다.

맨정신으로는 좀 힘들 것 같으니까 더 취해야 할 것 같다.

와인 정도로 취기가 돌아야지.

"술 한잔 올려도 되겠습니까?"

"술? 술은 여태 실컷 마셨잖... 그래, 뭐 좋아."

페리윙클은 뭔가 알 것 같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술잔을 가지고 오는 시우를 기다렸다.

쪼르륵 소리와 함께 병만 봐도 비싸 보이는 위스키가 잔을 채운다.

공손하게 페리윙클에게 술을 바친 시우는 제 잔에도 술을 한가득 따랐다.

한 손으로 다 움켜쥘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온더록스 잔이었는데 절반 이상 따랐으니 원샷하면 찝찝함을 떨쳐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음을 좀 고쳐먹은 것 같은데. 기대해 볼게."

시우는 가볍게 페리윙클과 잔을 맞대고 독하디독한 위스키를 벌컥벌컥 마셨다.

뱃속에 불이 가라앉는 느낌과 반대로 조금 마음이 차분해진다.

페리윙클이 손가락을 튕기자 조명이 바뀐다.

살짝 밝다 싶었던 방안이 딱 좋을 정도로 어스름해지면서 페리윙클의 눈동자가 시우를 올려보았다.

"뭘 해야 할지는 알고 있어?"

"네, 짐작하고 있습니다."

"한심하네~ 왜 진작 이렇게 안 했어. 나도 좋은 말만 하고 싶었는데."

페리윙클은 빈정거리는 한편 속으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그를 취할 생각이긴 했다.

마력 증폭에 관한 것도 확인해보고 싶고 무엇보다 남자 마녀와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만나게 된 시우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식사 자리에서는 꽤 흥미진진하게 자신의 일대기를 펼쳐놓던 그가 호텔에 오자마자 거의 목석이 되어버렸다.

대놓고 섹스 어필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거의 무시하는 수준.

뻔했다.

페리윙클은 시우의 머리 위에서 놀 수 있을 정도로 다방면으로 경험이 많았다.

남자의 나약하고 어리석은 본능 따위는 모조리 간파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생명을 구해준 대가는 둘째치고 앞으로 위기를 극복할 도움을 주겠다는데도 저렇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한 가지.

당연히 다른 여자다.

이 경우에는 그와 함께 있던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됐던 에버그린이겠지.

가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사람을 챙기는 마음이 성가시거나 번거롭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번에 엿봤던 짐승 같은 섹스를 원했던 페리윙클로서는 마땅찮은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짐승 같은 섹스고 나발이고 그를 눕혀놓고 위에서 열심히 허리나 돌려야 할 상황이 뻔했으니까.

따라서 그를 도발했다.

빈정거리고, 대놓고 쪽을 주고, 은근히 에버그린도 건드렸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아예 약속을 파투 내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슬슬 열이 받을 정도로만 긁는 것이다.

수컷에게는 본능적인 정복감이 내재해있다.

이렇게 앞에서 화를 돋구다 보면 침대 위에서라도 여자를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기 마련이다.

괜히 남자들이 좋아하는 섹스 유형 중 순위권에 드는 것이 화해 섹스가 아니지.

앞에서 쓴소리를 내뱉던 여자를 자지 밑에서 앙앙거리게 만드는 것은 가장 확실한 정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또 날 실망시키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침대 위에서도 맥아리 없다면 그땐 정말 실망할 거야."

"특별히 원하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웃기네,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네가 맞출 자신은 있고?"

"자신은 없어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페리윙클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이게 진짜 중요한 말이다.

"뭐든 네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솔직히 너처럼 밋밋한 남자라면 뭘 해도 날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긴 한데."

"뭐든지요?"

"그래, 오늘 밤 일어나는 일은 절대로 앙금으로 남기지 않을게. 내 마녀명을 걸고 맹세해."

이 정도 양념 쳐놨으면 아무리 지겨울 정도로 착해빠진 남자라도 좀 오기가 생기지 않았을까?

주춤거리던 시우의 표정이 각오로 굳어진 것을 느끼며 괜히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2.

시우는 페리윙클을 껴안았다.

뾰족하게 찔러대는 태도와는 정반대로 몸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이미 마음의 셋업은 끝났으니 몸이 받쳐주면 된다.

일부로 그녀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마녀 특유의 서로 분간되는 체취.

인간적인 살 내음이라기보다는 뭔가 은은한 향수 쪽에 가까운 짙은 체취가 콧속을 깊게 파고든다.

아니 이건 후각신경만을 파고드는 그런 말초적인 느낌이 아니다.

냄새가 뇌를 직접 찌르는 자극적인 감각.

동시에 단순한 성욕과는 다른 충동이 가슴을 휘감는다.

순간 무엇인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을 붙잡고 있던 리본들이 풀어 헤쳐지듯, 마음속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존재가 튀어나오듯 본능에 충실하게 변화한다.

"뭐하는 거야? 간지럽잖아."

무시하고 코카인을 흡입하는 것처럼 페리윙클의 체취를 계속 맡자 뜨겁게 부풀기 시작한 고간.

수영복을 찢어버릴 기세로 우뚝 선 자지가 그녀의 눈에 보였나 보다.

"별난 취향이네."

페리윙클은 키득거리면서도 얌전히 시우가 하는 행동을 내버려 두었다.

"한 번만 확인해도 괜찮을까요?"

"뭐?"

"정말 하고 싶은 건 다 해도 되죠?"

"해보기나 하라니까?"

시우는 페리윙클을 밀쳐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군청색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똑바로 올려보며 얄상한 혀가 빨간 입술을 쓱 핥는 것이 보인다.

"아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걸?"

"......."

시우는 쿵쾅거리는 심장과 거칠어진 호흡을 느끼며 손을 뻗었다.

페리윙클의 가슴을 가리던 모노키니의 앞 리본.

선물의 포장을 뜯듯이 리본을 잡아당기자 매끄럽게 매듭이 풀리며 깊은 골을 만들던 가슴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누워있기 때문에 자연히 중력을 따라 벌어진 것이다.

애초에 천 면적이 좁디좁았던 비키니다.

시우가 가볍게 어깨끈을 미는 것만으로 하얗고 몰캉한 가슴과 연분홍빛의 유두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슴은 샤론에 버금갈 정도로 커다란데 유륜이나 유두나 매우 크기가 작아 마치 앵두 같았다.

"옷 하나 벗기는데 시간을 얼마나 쓰는 거야. 아까 풀장에서 벗겼어야지."

페리윙클이 뭐라고 하던 시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녀의 체취를 들이켤 때마다, 만져달라는 듯이 작은 몸동작에도 출렁이는 페리윙클의 가슴을 볼 때마다 시선이 끌린다.

시우는 나머지 비키니를 전부 벗기려 했다.

그러나 모노키니는 애초에 위아래가 하나인 형태이기에 상대가 누워있는 상태에서는 좀처럼 벗기기가 쉽지 않다.

"이건 내가 도와줄까? 으... 응?"

하지만 시우는 그림자를 이용해 단검을 만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주 살짝 당황하는 페리윙클의 시선이 보인다.

그렇게 떡 치는데 안달이 나 있다면 잡아먹어 주면 그만이다.

"아하! 그런 컨셉이구나?"

"어떤 방식이든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요?"

이미 시우의 목소리는 거칠 대로 거칠어져 있었다.

페리윙클은 그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이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난 싫다고 한 적은 없는데?"

한쪽에만 날이 서 있는 단검으로 페리윙클의 살을 꾸욱 누른다.

하얀 살결과 대비되는 검은 칼날이 얇은 옷자락 아래를 파고들었다.

시우는 단검을 놀려 툭툭 모노키니의 연결부를 끊어낸다.

섬유가 단검의 날에 걸려 끊어질 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몸을 가리던 하얀 모자이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치골에 걸쳐있던 끈 하나를 툭 끊어내자 드디어 개봉되는 페리윙클의 보지.

꾸미기에 열중한 것으로 보이는 모던한 누님답게 잔털 한 올까지 맨질맨질하게 왁싱 되어 있는 예쁘장한 보지가 보였다.

적당히 발달한 대음순과 소음순, 그리고 클리토리스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균형의 보지였다.

시우는 상체를 눕혀 페리윙클을 덮듯이 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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