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1.
최근 들어 마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커다란 이슈가 연달아 터졌다.
사냥꾼으로 악명 높던 에아 사달멜리크의 죽음, 비겁의 마녀의 짓으로 추정되는 코엑스 습격 사건, 게다가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남자 마녀의 등장까지.
사실 페리윙클은 물병자리의 마녀가 죽건, 비겁의 마녀가 무슨 난동을 부리건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어지간한 공적의 위협에서 제 한 몸 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데다가 금전적으로 궁색해 어쩔 수 없이 사냥에 나서게 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녀가 그렇듯이 유유자적 마법을 연구하며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 중 유독 페리윙클의 구미를 당기는 이야기 역시 있었다.
티페레트 공작, 제머나이 백작, 아가사 지부장이 동시에 공증을 한 남자 마녀.
마법적 연구가치는 물론이오, 영체로 변환되었을 테니 딱히 흠잡을 곳 없이 잘생겼을 것이다.
수명이 다한 전구마냥 늙어 죽지도 않는다.
한 번쯤 잠자리를 같이하기에 부족할 것이 없는 스펙이었다.
따라서 페리윙클도 접선소에서 우연히 만난 시우에게 추파를 던졌던 적이 있다.
엄청 복잡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실물을 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잘생겨서 더 흥미가 생겼을 뿐이지.
마음이 맞으면 자보고 아니면 말고.
물론 굳이 한쪽을 고르라면 호기심을 채워보는 쪽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명함을 받고도 한참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거절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가까이 붙은 것만으로 자지를 발딱 세워대길래 흥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내심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도 나름대로 수긍했다.
어차피 모든 것은 운명의 굴레 안에서 빙글빙글 돌 뿐이니 인연이라면 다시 마주하겠거니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남자의 존재를 잊고 살아갔다.
그런데 오늘밤, 기분 전환이나 할 겸 기사를 대동해 드라이브하던 중 발견한 두 사람.
샤론 에버그린이라는 빚쟁이 마녀와 얼마 전 페리윙클의 대시를 거절한 신시우가 나란히 눈에 들어왔다.
둘은 나란히 나침반을 들여다보며 호문쿨루스를 수색 중인 것 같았다.
아마 전에 야시장에서 봤을 때도 둘이 달라 붙어있더랬지?
원나잇 제안에 사탕을 빼앗기는 아이처럼 길길이 날뛰던 에버그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 예상대로 커플인가?
아니면 에버그린 쪽이 노예처럼 부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흥미가 생겨 미행을 개시했다.
존재감이 흐릿한 것을 보면 아마도 은폐 기능이 내장된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모양이다.
잠시만 집중을 놓지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고 착각할 정도의 고성능 아티펙트.
그러나 페리윙클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설령 일순 주의가 분산되어 눈앞에서 놓친다고 해도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다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애초에 페리윙클의 이명은 '행운의 마녀'.
행운이라는 개념을 통솔해 현실에 직접 간섭할 수 있는 그녀에게 그 정도의 럭키 이벤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나는 것이었다.
"오늘도 없네?"
"요즘은 되게 한산하다. 벌써 두 시간이나 돌아다닌 것 같은데."
봐라.
이렇게 대놓고 미행하는데도 두 사람은 페리윙클의 존재를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의 마력과 클로버가 남아있는 이상 페리윙클의 세상은 페리윙클 편의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뒤를 밟았건만 페리윙클의 흥미가 가시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시하네~."
야밤에 둘이서 길거리를 열심히 나돌고 가끔 으슥한 건물 같은 곳으로 들어가길래 야릇한 이벤트라도 기대했건만.
"설마 여기서 하나?"
"아님 혹시 여기서 하나?"
"이번엔 진짜 하나?"
"아니, 이번에도 안 해?"
라는 절차를 밟으며 지루함만이 늘어날 뿐이다.
고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마 더럽게 성실한 남자인 모양이다.
보통 남자라면 마녀의 옆에 달라붙기만 해도 눈이 돌아가는 게 정상인데 말이다.
슬슬 미행도 지겨워져 돌아가 술이나 마시려 돌아가려는 딱 그 순간.
입질이 왔다.
"음...아무래도 오늘도 허탕인 것 같은데 그만하고 쉬러 갈래?"
1시간 넘게 뒤를 졸졸 따라다닌 보람이 있었다.
페리윙클은 신이 난 발걸음으로 인근 호텔로 향하는 두 사람을 따라 호텔방을 예약했다.
사실 호텔 등 숙박업소는 여러가지 트러블을 대처하기 위해 랜덤으로 방을 배치하지만 그 점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원하는 대로 최대한 가까운 객실에 배치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비어있던 바로 아래층 객실에 묵게 된 페리윙클은 두 남녀가 씻는 동안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기대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공교롭게도 은폐장의 넓이는 위아래 층을 포함할 정도로 넓었기에 간단한 투시 마법 정도만 사용하면 됐다.
물론 들키지 않게끔 아주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페리윙클이 원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끼어들 심산이었다.
아니면 이대로 구경 좀 해도 좋고.
"오, 시작한다."
인류 첫 번째로 영체를 지닌 남자와 마녀의 섹스 관람.
돈을 줘도 구경 못 할 멋진 영화가 시작됐다.
뜨거웠다.
서로 얽히는 혀,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손.
왈츠를 추듯 선 자세에서 서로의 옷을 벗겨가며 진득하게 몸을 비빈다.
막 섹스를 한 지 얼마 안 된(이건 추측이다) 연인이 그렇듯 벽난로 속 마른 장작처럼 정열적이고 뜨거웠다.
"응?"
페리윙클은 순간 의아함에 눈을 치켜떴다.
연신 키스를 하던 에버그린이 남자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어머나?"
아무리 낙인이 있다지만 마녀가 남자 앞에서 거리낌 없이 무릎을 꿇다니.
게다가 남성기를 정성껏 입과 가슴으로 애무하다니.
이래서야 완전 지배를 당하는 포지션이 아닌가?
저런 경우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페리윙클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극진한 봉사 이후 시작된 삽입.
에버그린은 성관계 내내 전혀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녔다.
엉덩이를 두들겨 맞고, 가슴을 멋대로 움켜쥐어지고,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자지 아래서 번민한다.
중간중간 음란한 말을 듣거나, 말하기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얼핏 본다면 강간을 당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
"까지는 아닌가?"
잘 보면 은근히 남자 측에서 배려해주는 것도 있는 듯하고 특히 에버그린 쪽은 쾌락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튼 좀 색달랐다.
"근데 뭐, 사람 취향도 가지각색이니까."
마녀가 저래도 되나? 정도의 생각은 들었어도 남의 성관계를 관음하는 주제에 흉이나 잡을 정도로 오지랖 넓은 성격도 아니다.
"음....."
그렇게 몇 십분 가량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몸이 좀 달아오른다.
원래는 구경하다 슬쩍 시식만 해 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쏙 드는 영상에 조금씩 몰입하게 되었다.
미지의 영역을 엿본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흐음.... 괜찮네. 거기도 크고, 몸매도 멋있고... 이모저모 합격."
구경은 구경일 뿐 궁상맞게 혼자 다리나 비비적거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에버그린의 발목을 머리 옆까지 잡아 넘긴 채 위에서 내리찍는 모습을 보다보니.
선뜻 욕정이 동한다.
"흐음...음...."
페리윙클은 가운을 젖히고 검은 레이스 팬티 안으로 슬며시 손을 넣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남자 측에서 사정하는 순간.
몸이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은폐장 내부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페리윙클의 낙인이 텅텅 비어도 한 번에 채울 수 있을 법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사정과 동시에 생성되는 것이 관측됐다.
"????"
어안이 벙벙해진 나머지 팬티에 손을 넣던 자세 그대로 뻣뻣이 굳은 페리윙클.
남성이 사정할 때 미약한 마력이 발생하긴 하지만 저 양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남자가 최상급 정제 마력수 몇 병 분의 마력을 일순간에 생성하겠는가?
게다가 그걸 자궁에 있는 낙인으로 곧장 밀어 넣는다고?
상식의 선을 두 세개 쯤 벗어난 이야기다.
페리윙클의 경악에 개의치않고 곧장 2라운드 개시.
페리윙클은 눈을 끔뻑이며 둘의 행위를 관찰했다.
몹시 자극적인 섹스 장면에 대한 탐닉과 마법에 대한 탐구심 중 고민하던 페리윙클은 결국 관음 자위를 관두고 시우가 사정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미약한 마력의 파동을 계측했다.
어떤 식으로 생성될지, 어떤 성질의 마력인지를 역산하는 것만으로 꽤나 가치가 있어 보였다.
다행히 둘은 네 번 다섯 번 넘게 발정기 짐승처럼 엉겨 붙었기에 꽤 쓸만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중간중간 대화가 더해져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들도 알게되었다.
몇 시간 동안 내리 섹스하는 남자의 정력보다도 충격적인 사실 말이다.
그는 사정 시 아주 순수하고 투명한 마력을 대량으로 복사한다.
또한 에버그린은 그 기능을 바탕으로 불완전계승을 치료받고 있다.
불완전계승의 치료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도를 넘는 마력의 거듭 증폭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연구 분야에서든 최초 발견은 희귀하다.
이모저모 뜯어보고 연구할 구석이 넘쳐나는 지혜의 금맥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미가 더욱 당겼다.
이러니 에버그린이 필사의 견제를 했구나 싶다.
페리윙클이 알게 되는 순간 저 진귀한 금맥을 독점할 수 없게 변하니 말이다.
"흐음...."
그럼 이제 슬슬 합류해 볼까?
이미 거물들의 공증을 받고 있는 그를 협박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페리윙클은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한 성격도 아니다.
대신 오늘 봤던 모든 일을 비밀로 해주고 빼앗지도 않을 테니까 쓰리썸 한 번 하자고 하면 안 튕기지 않을까?
어찌보면 이것도 협박 비스무리 해보일 수도 있다만 설령 거절해도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닐 생각은 없다고 합리화 한다.
그때 별안간 이면결계가 펼쳐졌다.
"어머?"
호텔 전체를 감싸는 협소한 결계 내부.
이런 경우는 대체로 호문쿨루스의 습격을 뜻했다.
페리윙클은 불청객을 맞이하기 위해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객실 문을 와장창 날리며 들어온 것은 황소의 머리를 지닌 수인.
그리스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랑 판박이로 생겼다.
칼날조차 박히지 않을 것 같은 다부진 근육과 날카로운 뿔, 두 손에 각각 쥐고 있는 도끼를 보고 든 감상은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소머리 국밥 땡기네."
뭐 이 정도였다.
페리윙클이 소의 머리를 비틀어 뽑아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지성으로 육탄공격을 해오는 호문쿨루스의 공격은 강력했고, 검붉은 피부는 어지간한 마법을 튕겨버리는 모양이지만 쓱쓱 공격을 흘리며 그녀의 예장인 레이피어로 몇 번 찔러주니 알아서 고꾸라졌다.
그래도 생명력 하나는 끝내줘서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재생했기에 결국 도끼를 빼앗아 목을 쳤다.
피는 조금 묻었지만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래."
페리윙클은 천장을 올려보았다.
고전하고 있는 에버그린과 시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상대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익사한 마녀.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요새 시끌시끌한 비겁의 마녀가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레귤러한 일을 잔뜩 겪을 날인가 보네."
페리윙클은 마법으로 가운에 달라붙어 있던 핏덩이들을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소머리를 죽이고 가운을 정돈하는 사이 벌써 에버그린 쪽이 리타이어 됐다.
"아, 조금 서둘러야 했는데."
사실 페리윙클은 이런저런 트러블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섭거나 두려운 것을 떠나 성가시고 귀찮기 때문이다.
만약 저기에 있는 것이 에버그린 하나였더라면 이대로 호텔 밖으로 나섰겠지.
무릇 마녀란 제 옷에 떨어진 불똥 정도는 저 혼자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안 되면 불똥에 타서 죽는 거고.
그러나 모처럼 관심이 생긴 상대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멋대로 섹스를 훔쳐보기도 했고, 이 상황이라면 원하는 바를 쉽게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겸사겸사 처리해주자.
페리윙클은 느긋한 발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향했다.
그 뒤로는 예정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