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35화 (235/917)

#235

1.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샤론의 등 뒤로 난데없이 삐쭉 솟은 작살.

삐쭉삐쭉한 톱니를 연상시키는 그것은 너무나도 생뚱맞아서 작살도, 그것에 꿰뚫린 샤론도 기묘한 오브제로 보이게 만들었다.

아득히 유리되는 현실감각의 갈라진 틈새에는 검고 찐득한 감정이 샘솟는다.

공포다.

의식이 몸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바로 눈앞에서 샤론이 저런 짓을 당했는데도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생기지 않는다.

숨을 쉬는 것조차 의식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성싶었다.

-털썩!

샤론의 몸이 쓰러지기 직전.

시우는 혀를 깨물어 정신을 차렸다.

콰득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혀가 반쯤 잘려나가는 고통을 느끼고서야 간신히 몸을 움직여 샤론을 받아낼 수 있었다.

괜찮겠지.

아무 일 없겠지.

별일 아닐 것이다.

방금까지 그렇게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나누던 샤론이.

그것도 일반인도 아닌 무려 마녀가 이렇게 쉽게 죽을 리 없다.

짓궂은 샤론이라면 틀림없이 시우를 놀리기 위해 치명상을 입은 척하는 걸거다.

"샤론, 야. 대답해 봐."

시우는 조심스럽게 미동도 없는 샤론의 몸을 뒤집는다.

망토에 가려졌던 그녀의 처참한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작살이 서서히 형체를 잃어버리고 검은 바닷물처럼 돌아가자 탁구공 크기 정도의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보인다.

명치께에서 고스란히 등까지 관통한 깊은 상처.

붉게 아가리를 벌린 환부로는 톱날이 후벼판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분홍빛 살도, 근육도, 심지어 희끗한 갈비뼈까지도 적나라하게 벌어졌다.

"욱...우욱...."

샤론의 몸은 쇼크 탓에 벌벌 떨리고 있었다.

관통상을 입었을 때 관통했던 물체를 빼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출혈을 막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샤론의 몸이 파들파들 경련할 때마다 한 움큼이나 되는 피가 울컥거리며 솟아났다.

마치 고장 난 스프링클러처럼 심장이 뛸 때마다 피를 토해낸다.

시우는 엉겁결에 그것을 막아 보려했지만 손틈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솟을 뿐이다.

시우는 그 모습을 꿈을 꾸는 것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샤론이 죽는다고?

몸이 떨린다.

반쯤 잘려나간 혀에서 나온 피가 입안을 가득 채웠는데 이미 사방이 혈향으로 가득해서 누구의 냄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

지금까지 기고만장해 있었다.

호문쿨루스를 좀 해치웠다고.

운 좋게 델라를 한번 이겼다고.

그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칭찬 한번 받았다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자만심에 잠겨 거드름을 피웠다.

그리고 그 방심의 대가가 바로 이 두 손 앞에 있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샤론의 모습이 시우를 비웃는 듯하다.

이것이 네가 머물던 현세였노라고.

방만의 대가는 네 눈앞에 있노라고.

그간의 평화는 울타리 안에서 누리던 잠깐의 안식에 불과했음을 똑똑히 시사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분노했겠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눈앞의 호문쿨루스를 해치우고 샤론을 살려야겠다는 일념 하에 일어섰을 것이다.

그러나.

익사한 마녀의 튀어나올 듯한 눈과 마주치자 모든 전의가 소멸한다.

꿇어앉은 시우의 허리까지 차오른 컴컴한 바닷물은 싸우고자 하는 마음의 근간부터 부러뜨렸다.

그림자의 갑옷이 흩어진다.

최악의 상황에서 언제나 최후의 한 수를 만들어주었던 갑옷이 맥없이 떨어져 나가고.

시우는 그저 피투성이가 된 샤론을 껴안았다.

-철그럭!

수면 위로 갖은 무기가 떠올랐다.

닻과 사슬, 로프와 작살.

사형을 집행하는 기요틴의 칼날이 조금 더 넓게 변한 객실을 가득 채운다.

"어둠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면 안 돼."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제3의 조력자가 있을 거란 발상 따위 떠올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절망적 속에 기지도, 투지도 모두 잃어버린 인간은 새삼스레 희망을 찾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목소리는 너무 여유롭고 차분해서 도저히 이 비극적인 장면과 어울리지조차 않았다.

"검은 수면에 일렁이는 괴물의 모습은 결국 인간의 공포에서 기인한 거야. 두려움 속에서 탄생한 호문쿨루스는 두려움을 먹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법이지."

어느샌가 모습을 드러낸 마녀.

군청색의 머리카락은 드레스의 일부처럼 엉덩이까지 내려와 찰랑거렸고, 같은 색의 눈동자는 한점의 동요도 없이 적의 모습을 꿰뚫어 보았다.

펑퍼짐한 목욕가운을 입었음에도 가릴 수 없는 뇌쇄적인 몸매와 색기를 흘리는 눈물점.

일전에 접선소에서 시우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졌던 마녀.

'키벨레 페리윙클'이었다.

"따라서 죽음의 공포를 많이 느껴본 마녀일수록 익사한 마녀에게는 대응할 수 없어. 두려움을 아는 자의 상상력은 그렇지 못한 자의 것보다 깊고 짙으니."

새하얀 레이피어를 한 손에 쥐고 차분히 둘 사이에 들어선 페리윙클은 시우를 쓱 바라보았다.

연민의 시선도, 동정의 시선도 아니었다.

차분하게 분석하는 듯한 눈빛이 흥미로운 기색을 보이며 시우를 내려다본다.

"넌, 죽음을 너무 가까이서 경험한 것 같네."

"도와...주세요.... 전 괜찮으니...샤론이라도...."

시우는 얼얼하게 부풀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 혀를 굴리며 간곡하게 애원했다.

마비된 머리로 할 수 있는 사고는 거기까지가 한계다.

이미 익사의 침식은 심지(心志)의 끝까지 이루어져 있었다.

"원래 이런 트러블에는 잘 끼어들지 않는 편이야. 하지만 네겐 관심이 있으니까 특별히 도와줄게."

페리윙클이 손을 휘적이자 하늘하늘 날아온 네잎클로버 하나가 샤론의 몸에 툭 떨어졌다.

"그거라면 치명적인 악화까지는 진행되지 않을 거야."

응급처치를 끝낸 페리윙클은 레이피어를 익사한 마녀에게 멋들어지게 겨누었다.

하지만 그 자세는 무술에 관해서는 거의 초심자인 시우가 보더라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레이피어가 아니라 나무 작대기를 쥐고 있어도 자세를 제대로 취한다면 저것보다는 위압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페리윙클은 너무나도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아무튼, 귀찮은 일은 빨리 처리해야지."

갑자기 끼어든 훼방꾼의 모습에 주춤했던 익사한 마녀 역시 더 이상의 유예를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기이하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쿠우우우

방 전체가 떨리며 기괴한 소리를 낸다.

역시 전투 경험이 풍부한 호문쿨루스답게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지를 알았다.

일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난 흉흉한 무기.

쳐다보는 것만으로 생리적 혐오와 공포를 느낄 외관.

점점 차오르는 바닷물과 녹슬어가는 주위의 풍경들.

의도적으로 두려움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마음속의 공포를 강제로 벌려내며 자신은 강해지고 상대는 약해지게 하는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전술이었다.

적어도 페리윙클에게는 말이다.

"정말 추하구나. 내 눈앞에 두고 있는 자체가 역겨울 지경이야."

비하에 호응하듯 사방에서 무기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6개의 닻이 동시에 흉흉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고, 수면에서 비스듬히 쏘아진 작살이 페리윙클을 향한다.

그 파괴의 폭풍 앞에서 페리윙클이 취한 것은 아주 간단했다.

마력을 끌어올리지도 번거로운 방어진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을 뿐.

-쿠쾅! 쾅! 콰광!

그것만으로 이변이 일어났다.

정확하게 휘둘러지던 닻과 작살이 표적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제멋대로 엉키고 헝클어지고 부서진다.

녹슨 사슬과 썩은 밧줄이 공중에서 굉음을 내며 서로 부딪히고 통제를 잃은 것처럼 제멋대로 튕겨 나갔다.

그렇게 부서진 파편들이 세열수류탄처럼 사방에 흩날렸음에도 페리윙클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아주 '우연히' 모든 사고와 피해가 페리윙클을 비껴간다.

"오늘 점괘는 굉장히 좋았어. 뭐 항상 좋은 점괘밖에 나오지 않지만."

예상 밖의 사태에 잠깐 당황한 듯 했던 호문쿨루스는 다시 한번 커다란 닻을 크게 휘두른다.

"아, 맞아."

페리윙클은 문득 떠올렸다는 듯이 다시 시우에게 돌아섰다.

그것은 적에게 완전히 등을 보이는 행위였다.

그런데도 공교로운 타이밍으로 원래 움직임을 예상해 휘둘러졌던 거대한 닻이 종이 한 장의 차이로 페리윙클을 스쳐 간다.

"이 말을 깜빡한 것 같은데. 내가 도와주면, 너도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 거 맞지?"

시우는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

손끝 하나 댈 수 없을 것 같던 압도적인 적이 너무나도 쉽게 유린당하고 있다.

저것이 20 위계 마녀의 힘.

시우가 과대평가했던 자신의 강함 따위와는 격을 달리하는 압도적인 힘.

"일단 동의했다는 걸로 알게. 대답할 여력이 없어 보이니까."

페리윙클을 대답도 듣지 않고 다시 몸을 돌려 익사한 마녀를 바라보았다.

주춤주춤 물러나는 호문쿨루스를 느긋한 걸음걸이로 쫓는다.

-쿠오오오오!

지금까지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익사한 마녀가 지옥의 밑바닥, 망자의 절규 같은 것을 내지른다.

"초조하니? 이걸 어쩌나, 괴물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무서운데."

공격이 더욱 매서워졌다.

그래도 일련의 규칙이라는 것이 있던 동작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처럼 사납게 변한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페리윙클이 정원을 거닐듯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행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자동권총으로 러시안 룰렛을 했는데 총알이 불발탄이라 발사되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크레모아가 터졌는데 산탄이 빗나가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런 수준의 행운이 거듭거듭 반복되는 것이다.

-쿠우....쿠오오....

익사한 마녀는 천천히 뒷걸음질 친 끝에 벽에 등이 맞닿았다.

신음처럼 흘리는 기괴한 소리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처럼 주눅 들어있다.

툭 튀어나온 안구가 도망칠 곳을 찾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무섭니?"

어느새 허벅지까지 차올랐던 바닷물이 점차 점차 사라지며 간신히 발꿈치를 적실 정도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처럼 삭아버렸던 실내 내장이 시계를 되돌린 듯이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승리를 믿는.

죽음을 두려워 해본 적이 없는 압도적인 에고는 아주 작은 침식조차 묵과하지 않았다.

호문쿨루스에게도 희미하지만 지성이 있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익사한 마녀는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도주를 결심했다.

도주로와 방법을 확보하려는 아주 찰나의 간극.

방어와 공격에 치중할 의식이 분산되는 그 순간에 하얀 레이피어가 쭉 뻗는다.

-쿠엑!

그렇기에 느릿느릿하게 뻗어온 레이피어에도 익사한 마녀는 반응할 수 없었다.

꼬챙이에 꿰듯 가슴을 푹 찌른 새하얀 칼날을 내려볼 뿐이다.

저 혐오스러운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는 것은 지나친 착각이 아니겠지.

호문쿨루스의 내구성은 대체로 높다.

17개의 눈을 가진 정도가 되면 대물저격총 정도는 가져와야 씨알이 먹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마력만 조금 두른 레이피어는 썩고 불은 살을 두부처럼 가르며 호문쿨루스의 핵을 파괴했다.

냉엄한 군청색의 눈동자가 익사한 마녀의 최후를 비춘다.

"운이 좋았어. 너에게는 불행이었겠지만."

일방적인 싸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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