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34화 (234/917)

#234

1.

-삐걱

얼마 전 리모델링이 끝났다고 선전하던 호텔의 문에서 나는 소리가 '삐걱'이라니.

웃기지도 않을 이야기다.

그리고 시우와 샤론은 왜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호문쿨루스의 등장으로 변한 것은 비단 바닥 아래 자작하게 깔린 정체불명의 물 뿐만이 아니었다.

객실 내의 모든 것이 삭아있었다.

방금까지 반짝이던 스탠드도, 새로 벽지를 바른 벽도, 아직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은 가구 하나하나가.

마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푸석푸석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코끝을 찌르는 진득한 물비린내에서는 깊은 바다의 냄새가 났다.

".....어?"

하지만 문이 열리고.

어느샌가 객실의 풍경과 같이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복도가 보여도.

적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시 봐도 고약한 취향의 그림 한 장이 맞은편 벽에 걸려있을 뿐이다.

"방심하지 마! 균형이여!"

손에 쥔 검을 느슨하게 내려놓는 시우에게 일갈한 샤론은 곧장 완드를 휘둘렀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샌가 스톤 사이즈의 토파즈가 쥐어있었다.

자신의 몸을 '제단'으로, 토파즈를 불의 원소에게 바치는 '제물'로 승화한 샤론이 완드를 휘두르자 화염방사기를 분사한 것처럼 일대가 화염으로 물든다.

-화르륵!

순식간의 주변 산소를 빨아들이며 내뿜어지는 불길을 그냥저냥 뜨거운 불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정도의 고품질 제물을 사용한다면 어지간한 제철소의 용광로는 우스울 정도로 고온의 열이 방출된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사각을 없애 주위의 모든 것을 공격한 것이다.

날름거리며 분사된 화염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재로 되돌린다.

일반적으로 '연소'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보일 법한 광경이 아니었다.

방금 뜨거운 밤을 보내던 침대도 불에 닿자마자 불길이 이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정작 적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샤론은 벌써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법 탓이 아니다.

지나친 긴장과 공포심에 몸이 얼어붙은 것이다.

"시우야,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빨리 말할게."

"그 정도로 위험한 상대야?"

"익사한 마녀야.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적 중에 제일 위험해. 비겁의 마녀가 사육하는 호문쿨루스 중에서도 악명이 높은 녀석이니까."

비겁의 마녀.

일반적으로 마녀의 강함이란 위계에 의해 좌우된다.

위계가 높을수록 더욱 다채로운 마법을 더욱 많이 구사할 수 있으며, 위계가 두 개 이상 차이 난다면 이미 전투 경험이니  운운할 것도 없이 승패가 판가름 나는 정도이다.

하지만 세상의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비겁의 마녀, 소치틀의 위계는 19 위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소치틀은 공적이 된 이후로 21 위계의 마녀 하나, 20 위계의 마녀 하나, 19 위계의 마녀 둘을 죽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일까?

그것은 소치틀의 자성마법이 '호문쿨루스를 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강력한 호문쿨루스를 강화하고 지배한 채 전장에 내세운다는 것은, 전략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대 다수의 전투를 강요할 수 있다.

각기 다양한 특성을 지닌 호문쿨루스를 바탕으로 유리한 상성의 전투 구도를 짤 수 있다.

본인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소모전을 강요할 수도 있다.

비겁의 마녀는 시우와는 다른 의미로 '대 마녀전'에 특화된 마녀인 것이다.

-우우우

귀곡성 같은 소리가 방안에 퍼진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흩어져 타닥타닥 타고 있던 불길이 촛불을 분 것처럼 훅 꺼졌다.

바닥에 차오른 물은 어느새 발목까지 차올랐고 벽면과 천장에서는 녹물 비슷한 것이 줄줄 흐르고 있다.

심해 깊이 침몰한 타이타닉 객실에 갇혀있는 기분이다.

이제 곧 수몰되어 죽게 될 운명과 함께 말이다.

시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 모든 것은 어찌 됐건 마법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왼눈이 꿰뚫어 볼 수 있다...라는 맹신은 곧장 무너졌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

"마력의 흐름이 안 보여. 분명 제대로 보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두터운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아무리 둘러봐도 마력의 흐름과 적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언제나 좌안의 능력으로 전투 중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던 시우에겐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것과 같은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이젠 정말로 암실에 갇힌 것 같다.

-촤아악

그리고 그것은 바닥에 깔린 수면을 찢으며 나타났다.

시우도 샤론도 그 끔찍한 모습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해초류처럼 잔뜩 젖은 긴 머리카락을 가졌고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외관은 더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물에 잔뜩 불어 인체 비례를 무시하고 커다랗게 변한 몸은 복어 같다.

거기에서 뻗은 팔과 다리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풀어 부자연스럽게 꿈틀거린다.

창백한 얼굴에 튀어나올 것처럼, 아니 이미 안와에서 반쯤 튀어나와 있는 안구만이 새파란 빛을 내며 시우와 샤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우웁...."

익사한 마녀, 그 이름대로의 모습에 시우는 욕설을 내뱉었고 샤론은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역겨운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릴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다.

시우는 즉시 자신이 만들어낸 창을 쥐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비록 갑작스러운 호문쿨루스의 출몰에 당황하긴 했지만 막상 그 모습을 확인하자 내심 자신감이 생겼다.

저 익사한 시체 같은 호문쿨루스에게는 두 개의 눈만이 달려있었으니까.

지금까지 꽤 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아 왔다.

더군다나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시우는 체계적인 전투술을 지니고 있다.

더 이상 그림자의 갑옷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마력을 통해 직접 신체를 강화하고, 발경의 묘리를 이용해 그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 강하다고 이름 높은 티페레트 공작조차 시우의 성취를 한껏 칭찬했던 것이다.

고작 눈이 두 개밖에 달리지 않은 '호문쿨루스'라면 능히 당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페레트가 말하길 무기란 결국 수족의 연장이라고 하였다.

창을 쥐고 찌르는 동작이 똑같아도, 그간 연마되고 단련된 시우의 찌르기는 좀 더 섬세하게 '만병지왕의 계약'이 그리는 본능 속 심상을 베껴냈다.

더욱 강하게, 더욱 빠르게, 더욱 정확하게.

꽤 창을 휘둘러왔던 시우가 생각하기에도 지금까지의 공격 중에 가장 깔끔한 일격이었다.

-후웅!

공기를 가르는 필살의 찌르기가 호문쿨루스의 통통한 몸체를 찌르기 직전,

맥없이 잘려나갔다.

"....뭐야..."

시우는 힘차게 내질렀던 그림자의 창을 보았다.

아주 예리한 낫에 잘려나간 수수깡처럼 창대가 잘려나가 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창끝에 뭔가 닿는 정도의 감각과 더불어 눈앞에 희끗한 게 지나가는구나 싶더니 어느샌가 창이 잘려있었다.

시우는 시선을 올려 괴물을 보았다.

등골이 얼어붙는 한기가 작렬한다.

그것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양 입술은 위로, 안 그래도 커다란 눈알은 데굴데굴 굴러가고, 슬며시 벌어진 입 사이에서는 검은 바닷물 같은 것이 흘러나온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저 표정은 미소였다.

저것은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혐오와 공포가 범벅이 된 장면에 굳어 있는 사이.

-콰아아앙!

갑작스러운 폭음이 코앞에서 들려왔다.

"갑자기 튀어 나가면 어떡해! 도망가야 한다고 말했잖아!"

완드를 움켜쥔 샤론.

그 앞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름모가 새겨진 마법진이 떠올라 있다.

그리고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법진에 격돌한 호문쿨루스의 무기가 두 사람의 코앞에 멈춰 있다.

무기의 정체는 사슬에 매여있는 커다란 닻이었다.

허나 배를 멈추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용도가 아님은 분명했다.

한눈에 봐도 느껴지는 육중한 중량감과는 다르게 닻머리는 작살 끝처럼 뾰족했고 닻가지는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쿠구구구궁!

뒤늦게 닻이 휘둘러진 궤도에 있던 것이 무너져 내린다.

너무나 빠른 속력으로 이뤄진 일이기에 파괴의 여파가 반 박자 늦게 찾아온 것이다.

객실 벽이 최소 3개가 동시에 허물어졌고 그사이에 끼어있던 철문이나 가구 같은 것도 유리공예처럼 부서져 나갔다.

-촤르르륵!

사슬이 감기는 소리와 함께 닻이 발밑에 깔린 수면으로 퐁당 사라진다.

예상 밖의 전개에 당황한 시우가 샤론과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두 번째 공격이 왔기 때문이다.

한계까지 집중력을 끌어올린 끝에, 간신히 아무런 사전 동작도 없이 돌고래처럼 수면 위로 솟구친 두 개의 낯을 포착했다

시우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 아마도 훨씬 강한 힘.

"큭!"

산호 두 개를 소모해 두 개 방어진을 만들어낸 샤론은 그것을 방패처럼 내세워 닻의 공격을 막아냈다.

전신의 마력회로에 과부하가 가해진다.

여느 때처럼 페트병에 담긴 물 따위로 같은 마법을 전개했었다면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익사한 마녀는 그 악명대로 강력했고, 그리고 앞으로 점점 강해질 것이다.

곧바로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흉측한 호문쿨루스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를 갸우뚱 저었다.

시우는 뒤편에 반쯤 녹아내린 거울로 자신의 판단이 섣불렀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비스듬하게 흐른 까닭에 거울에 비쳐 보이는 호문쿨루스의 등.

거기에는 빨간 눈알 17개가 종기처럼 박혀 있다.

애초에 호문쿨루스의 핵은 얼굴이 아닌 등에 돌출되어 있던 것이다.

저번에 온갖 힘을 다 쥐어짜내서 건물까지 무너뜨리며 잡았던 어미개가 눈이 몇 개였더라?

8개였던가?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던 것 같긴 하지만 개고생을 하며 이겼던 백기사는?

눈이 4개였다.

그런데 17개의 눈을 지닌 호문쿨루스라니.

언제나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했던 시우다.

그때는 언제나 자신의 약함과 상대의 강함을 인지하고 인정했다.

따라서 압도적인 격차가 보인다 한들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발버둥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설픈 자만감에서 피어난 자기 확신은 상정 밖의 위협으로 단숨에 꺾여나간다.

"시우야. 내 말 잘 들어."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샤론은 침착하게 읊조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익사한 마녀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촤르륵 흘러가고 있었다.

익사한 마녀는 에아 사달멜리크처럼 강력한 물리 계열의 마법을 휘두른다.

이 자체라면 크게 위협이 될 것이 없다.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발목까지 차오른 해수에 있다.

이것은 호문쿨루스가 마력을 흩뿌려 공간 일대를 '침식'했다는 증거.

광역 디버프와 다름이 없는 침식은 마법의 효율과 영체의 기능은 물론, 싸우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 자체를 저하시킨다.

급류에 휘말린 인간이 허우적거리다가 끝내는 힘이 빠져 가라앉아 죽는 것처럼.

마음은 공포에 잠식당한다.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마법은 점차 무력해져가고, 끝내는 자가 호흡이 불가능할 정도로 쇠약 상태에 빠져 사망한다.

상대를 늪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이 능력이 이 호문쿨루스에게 익사한 마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넌 도망쳐."

"내가 멋대로 나선 일이니까 내가 해결할게."

시우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공포를 간신히 뿌리치며 새로이 만들어낸 창을 쥐고 다시 나서려 했다.

하지만 샤론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우의 흉갑을 쾅 두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간절한, 떨리는 음색이었다.

"도망쳐. 제발 부탁할게.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공작님께 도움을 부탁해. 그게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샤론은 말을 건네면서도 마법을 전개했다.

거액을 투자한 제물을 아낌없이 소모하며 대규모 마법식을 전개한다.

물, 불, 바람, 흙 그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조화시키는 공(空)의 원소.

18 위계의 샤론이 낼 수 있는 최고 출력으로 만들어낸 동그란 구체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한다.

자연에서 말미암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이 구체와 맞닿은 순간 소멸할 것이다.

과연 통할까?

확신할 수 없었다.

마음마저 '침식'시키는 마법이라니.

문자로 봤을 땐 그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하자 차원이 다른 공포감이 전해져온다.

끔찍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공업용 분쇄기에 손을 밀어 넣으려는 것처럼.

익사한 마녀의 앞에 마주 선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가는 것을 느낀다.

무섭다.

두렵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마음은 잔뜩 휜 활대처럼 아슬아슬한 소음을 냈다.

"시우야."

그러나 샤론은 도망치지 않았다.

물러서지 마.

뒤에는 시우가 있잖아.

커다란 실패를 떠안은 채 아무것도 없이 내던져진 도시는 언제나 차가운 비에 휩쌓인 것 같았다.

당당한 척해도, 굴하지 않는 척해도...

실은 외로웠다.

괴롭고, 이따금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너를 만났어.

나 혼자 쓸쓸히 비를 맞던 세상 속에, 네가 뻗어준 손이 좋았어.

주저 없이 건네주었던 손끝의 온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그 온기가.

샤론 에버그린이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

샤론은 뒤로 내달리고 싶은 충동을 꾹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말이니까.

전해야 한다.

언젠가 그의 곁에 나란히 섰을 때 반드시 말하려고 했던 그 말을.

"나 정말 너를...."

샤론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녹이 슬었음에도 날카로운 작살은 샤론의 가녀린 몸을 가볍게 꿰뚫었다.

샤론의 등 뒤로 선홍의 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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