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1.
"아름다우십니다."
"뭐, 뭣?"
"아름다우셔요. 제가 살면서 만나왔던 그 어떤 마녀님보다 더요."
엘로아의 동공이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제 귀를 의심했다.
달콤하게 속삭이는 시우.
그 은밀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막 사춘기를 지난 소녀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었다.
그는 지금 티페레트를 유혹하려드는 것이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엘로아는 동요를 감추며 시우의 시선을 피했다.
꼭두새벽에 찾아와 이런 추파나 던지다니.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어제 대련에서 있던 일이 시우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촉발한 걸까?
"스승님..."
시우가 무엇인가 말하려는 타이밍에 엘로아가 말 허리를 끊었다.
"칭찬은 고맙네.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자리를 비켜주게나."
짐짓 냉정하게 잘라내면서도 엘로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름답다....라니.
견습마녀 시절에나 숱하게 들었던 평가이다.
정식으로 마녀가 되고 공작 위를 승계받은 뒤에는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기도 하다.
엘로아가 아부와 겉치레를 싫어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티페레트는 자신의 용모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눈에 띄는 분홍빛 체모도, 요괴처럼 빛나는 자홍색의 눈동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 키는 어떤가?
계약검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작다.
자랑스러워할 구석 따위는 어디에도 없던 것이다.
"못 들은겐가?"
하지만 시우는 엘로아의 퇴거 요청에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황당함이 가중된다.
엘로아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처신하던 시우가 어울리지 않게 대뜸 외모를 칭찬하고 부탁을 듣고도 모른 체하다니...
위화감이 느껴졌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시우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도와? 무엇을?"
"당연히 옷 갈아입는 것 말입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얼토당토않은 말에 엘로아가 분개하기 직전 시우는 갑작스레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왔다.
두 사람의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깝게 붙었다.
엄중한 질책으로 시우를 꾸짖으려던 엘로아도 그 기백에 압도당한 듯이 합죽이가 되었다.
"제가 골라드린 거지만 역시 예쁘네요. 스승님과 잘 어울려요."
".....그, 런가?"
"네, 정말로요."
반쯤 엘로아를 덮치듯 거리를 좁힌 시우가 팔을 뻗는다.
뭔가 멍했다.
마음을 먹는다면 떨쳐낼 수 있다.
마법을 사용할 것도 없이 단순한 체술로도 시우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엘로아는 그러지 않았다.
"절 믿으세요.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옷 갈아입는 걸 도와드리고 싶은 거잖아요."
"나, 나는..."
"괜찮아요. 대련 때도 이 정도 거리에서 자주 있었잖아요?"
시우는 가슴께를 부여잡고 파자마의 단추를 가리던 엘로아의 손목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그저 손이 맞닿았을 뿐인데도 찌릿한 전기가 등골을 울리는 것 같다.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지금의 '접촉'은 단순히 대련할 때 팔과 다리가 맞닿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엘로아의 손이 사탕을 뺏기는 어린아이처럼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마치 마녀가 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대가 없는 행복을 향유했던 철 없고 행복했던 그 시절로.
"먼저 단추를 풀러야 겠네요. 하나씩 도와드릴게요."
시우의 손은 마술사 같은 손놀림으로 단추를 하나씩 풀러 갔다.
엘로아가 '어...어...'하며 넋 놓는 사이 벌써 다섯 개의 단추가 풀리며 옷 앞섶이 벌어졌다.
군살 하나 없는 엘로아의 배와 가슴골, 그리고 앙증맞은 배꼽까지 새벽 찬 공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제 됐네. 고마우니 이 이상은..."
"아니요, 여기까지 도와드렸는데 그냥 가는 것도 아쉽잖아요."
"....내가 아쉬울 게 뭐가 있다고 그러나?"
"제가 아쉽다는 말이었습니다."
"앗...!"
시우는 자연스럽게 단추가 풀린 파자마를 옆으로 젖혔다.
자연스러운 물방울 형태를 그리는 미려한 젖가슴이 낱낱이 드러난다.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스포츠 브라로 꽉꽉 부여 매지만, 충분히 여성미를 느낄 수 있는 크기와 모양이었다.
아.
방금 그것으로 시우의 눈앞에 반나체가 고스란히 노출되게 되었다.
엘로아는 느릿하게 자각했고, 그 자각을 뒤쫓아 미칠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느꼈다.
부끄럽다.
호흡은 가빠지고, 몸을 양귀비즙을 마신 것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닐진대 이미 몸은 통제를 벗어났다.
"마저 벗겨드리겠습니다."
시우는 엘로아의 맨 가슴을 보고도 담담하게 벌어진 옷깃을 잡았다.
엘로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벗겨간다.
의도된 것인지를 모르겠지만 그의 손끝이 슬쩍슬쩍 피부 위에 닿으며 소름 돋는 간지러움을 전해주었다.
"아....."
꽁꽁 얼어붙었던 엘로아가 멈췄던 숨을 내뱉었을 땐 이미 시우의 손에 파자마 상의가 들려있었다.
엘로아는 뒤늦게 두 손으로 주춤주춤 가슴을 가렸다.
새삼 그에게 가슴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 낯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우가 뒤이어 취한 행동은 단순히 알몸을 보이는 것보다 훨씬 부끄러운 행위였다.
"흐음, 잠을 잘 때 땀을 많이 흘리시나 봐요."
"하, 하지 말게나!"
시우는 간밤에 흐린 땀과 체취가 듬뿍 배었을 것이 분명한 엘로아의 파자마에 코를 박고 보란 듯이 숨을 들이쉬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가슴을 보이는 것보다 저게 훨씬 부끄럽다.
엘로아는 황급하게 팔을 뻗어 파자마를 빼앗으려 했지만 이게 웬걸.
흐느적거리는 팔은 파자마를 빼앗기는 커녕 그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그만 두게! 내 경고했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다급히 꺼낸 경고.
시우는 아쉽다는 듯이 파자마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환복을 도와주는 것도 이제 됐네. 당장 나가주게나. 지금까지의 일은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니..."
더는 안된다는 본능의 외침에 일단은 시우를 밖으로 내보내려던 엘로아는 말문이 멎었다.
고작 눈을 한번 감았다 뜬 것 같았을 뿐인데 그는 어느샌가 옷을 전부 벗고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오늘 등으로 느끼고 말았던 커다란 물건이 범선의 선수상처럼 우뚝 서 있다.
머리가 아찔해진 탓인지 제대로 된 모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엘로아는 황급하게 눈을 감으며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아무리 자네라도 이 이상의 만행은..."
"만행이라 하셨나요? 제가 샤론과 섹스할 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셨던 건 스승님 아닙니까? 샤론의 알몸뿐만이 아니라 제 알몸도 낱낱이 보셨죠."
반쯤 억지를 부리는 시우의 항변에 엘로아의 목소리도 자연 뾰족해졌다.
아무리 시우를 아낀다고 해도 봐줄 수 있는 한도가 있다.
어리광도 너무 많이 받아주다 보면 아이를 망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고였네."
"이것도 사고지요. 스승님의 몸을 보고 나니 제 본심을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니까요."
"...그런 건 사고라고 하지 않네."
성을 내는 엘로아의 말투도 시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알몸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있던 엘로아는 가슴을 가볍게 떠미는 충격에 침대 위로 풀썩 넘어졌다.
그 방자한 행동에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자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덮치는듯한 모양새의 시우가 보인다.
차분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보는 시우의 눈동자는 마치 거울처럼 엘로아의 모습을 비췄다.
반쯤 헐벗고 위축되어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또다시 아연해진다.
무례한 수작이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일방적이고 배려가 부족한 난동이나 다름없다.
그런 시우의 행동에 반드시 화를 내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눈동자에 맺힌 엘로아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밀면 미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닐 것만 같은 유약함을 품은 채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두게....이런 행위는....앗!"
발칙하게도 시우의 손은 허락도 없이 엘로아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생각 이상으로 뜨겁고, 두껍고, 거칠거칠한 남자의 손이 보드라운 젖가슴을 슬며시 감싼다.
엘로아가 가장 걱정한 것은 그녀의 맨가슴에 시우의 손이 닿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고장난 것처럼 뛰고 있는 심장박동을 그가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나, 나는 그대가 말한 대로... 그대의 스승이야."
"그리고 여자이시죠."
"여자라니..."
반쯤 확신을 하고 있던 것이 확실해졌다.
역시 시우는 엘로아는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 찾아와 엘로아의 옷을 벗기고 침대 위로 밀친 것이다.
시우는 손을 치우고 몸을 천천히 기울였다.
마른 잔 근육으로 뺴곡한 그의 상체와 부드러운 엘로아의 알몸이 바짝 맞닿았다.
긴장된 엘로아의 숨이 색색 잇새로 뻗는다.
"아직 가을이라 해도 새벽공기는 차갑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라면 동이 트기 전까지의 추위도 비껴갈 수 있을 겁니다."
"아, 아니되네... 아니....하아...."
어떻게든 시우를 밀쳐내기 위해.
힘이 들어가지 않는 양팔로 그의 가슴을 밀쳐내려던 엘로아는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탁하고 몸에 힘이 풀렸다.
그의 입술이 엘로아의 목덜미를 살짝 깨문 것이다.
그것만으로 엘로아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달콤한 한숨.
이빨이 목덜미를 파고들었음에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코끝을 한껏 채우는 그의 체취와 땀냄새 그리고 맞닿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두려울 정도로 팽창한다.
전신을 깃털 끝으로 살살 간질이는 것처럼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이건 잘못된... 잘못된 일이야...."
"사랑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부질없이 시우를 밀어내는 엘로아.
굴하지 않고 더욱 밀착해오는 시우.
부드러운 아랫배를 꾹꾹 누르는 뜨거운 물건의 감촉이 무엇인지 깨달은 엘로아는 탁한 숨을 뱉으며 얕게 헐떡였다.
"스승님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시우의 손이 느릿하게 엘로아의 파자마 바지를 벗기기 시작한다.
이제 곧 그의 앞에서 알몸이 된다.
이대로 하나가 되는 걸까?
시우가 샤론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 그의 밑에 깔려 파르르 떨게 되는 걸까?
그건 그것대로 좋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내면의 속삭임 속에서 한 줄기의 위화감이 피어난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영문모를 오한이 치솟았을 뿐이다.
그것은 사지를 넘나들며 갈고 닦아진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엘로아는 강하게 시우의 가슴을 밀쳤다.
그녀의 부름을 쫓아 계약검이 오른손에 현현했다.
힘이 빠져나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던 몸에 활력과 완력이 깃드는 것을 확인한 엘로아는 침대 위에서 가볍게 몸을 굴려 일어난 뒤 계약검을 시우에게 겨누었다.
"스, 스승님!"
당황하는 시우의 표정.
엘로아의 격한 대응을 보고 진심으로 곤경에 처한 듯한 몸동작까지 너무나도 생동감 넘친다.
"제, 제가 잘못 생각 한 것 같습니다. 이,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만약 시우가 이런 상황에 부닥쳤다면 틀림없이 저런 반응을 했을 것이다.
분명한 위화감과 위기를 감지한 엘로아조차 '잘못 판단했나?'라고 생각해 검을 내리려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엘로아는 흐릿한 이성보다, 전장에서 갈고 닦인 본능을 믿었다.
"계약한다."
모든 허위와 거짓을 꿰뚫는 진실의 빛이 엘로아의 두 눈에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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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 3만 돌파 기념으로 곰퓨터AC님이 그려주신 고양이 샤론입니다!
제가 글을 쓴지는 3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렇게 특전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네요!!!
너무 귀엽고 이뻐요! 그리고 글씨체도 예쁘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