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1.
통상적인 마녀라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시우가 사정 중에 발하는 마력이 강력하다 해도 오르골의 마력 은폐 효과는 막강하다.
거대한 스텔스기가 레이더에는 작은 새 정도 크기로 잡히는 것처럼 오르골 안에 있는 마력의 발산은 아주 작은 규모로 축소되니 말이다.
아무리 티페레트라도 바로 아랫집이 아니었더라면 그 파동을 느끼지 못했겠지.
하지만 엘로아는 마력의 잡음에 굉장히 민감한 체질이었고 무엇보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뭐지....?"
엘로아는 자신의 예장 '계약검'을 꺼내 들었다.
12개의 문자가 새겨진 계약검은 부름에 응해 허공에서 찬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티페레트는 기본적으로 시우를 신뢰하고 있다.
에아와 연관은 있을지라도 결코 공적의 편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철석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파장은 뭔가 비정상적이다.
사건의 진실을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다.
"계약한다."
엘로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젠타 빛 눈에 마력반사광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허위와 거짓을 꿰뚫어보는 '진실의 빛'을 개안한 것이다.
단순히 마법적인 눈속임만이 아니라 1M 두께의 콘크리트 벽도 가볍게 투시할 수 있는 엘로아라지만 지금은 여의치 않았다.
마치 희미한 장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시야가 차단되었다.
다른 주변의 모든 집을 엿볼 수 있어도 유독 시우의 집만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물론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위태로운 신분이었다.
많은 마녀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처지였으며, 일반적인 추방자보다 훨씬 안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간단한 은폐 장치 정도를 마련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게 마련한 은폐 장치가 진실의 빛마저 가로막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은폐를 발현한다면?
왜 이제껏 말하지 않았을까?
왜 신분이 공증된 상황에서, 심지어 공작인 티페레트가 바로 아랫집에 사는 상황이 되어서도 이토록 강대한 은폐장으로 일거수일투족을 숨기려 들고 있을까?
왜 하필 엘로아가 잠든 시간에 이 정도의 파문이 발생할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까?
사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저 시우가 자신의 안전을 신경 쓰는 성향일 수도 있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엘로아에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예전의 굳세던 엘로아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그러나 순식간에 가슴에 돋아나는 화살표가 일제히 의구심을 향한다.
시우를 수상쩍게 생각하게 할만한 확증편향이 유약해진 마음에 어두컴컴한 의심암귀를 드리운다.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아무리 믿을 만한 남자라고 해도.
어쨌거나 처녀의 베틀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라피의 그릇을 갖게 된 남자다.
거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 역시 들은 바 없다.
방심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껏 그가 선량한 가면을 쓴 채 뒤에서 검은 속내를 감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돋았다.
엘로아는 조심스레 거실 발코니 창을 열었다.
아래로는 까마득한 부감이 펼쳐지지만 이 정도 높이에서 추락해도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는 그녀로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탓!
밤 고양이처럼 박차고 위층 난간에 매달리는 엘로아.
암막 커튼 사이로는 거실 내부가 보였으나 인기척이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엘로아는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다행히 잠겨있진 않았기에 방충망을 열자마자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슈우우우우우!
거리가 가까워진 탓일까?
마력의 파동이 한결 가까이 느껴졌다.
엘로아는 검을 단단히 잡은 채 한 발짝씩 걸음을 옮겼다.
방은 두 개.
그중 하나는 열려있으니 닫혀있는 방문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겠지.
발소리를 감춘 채 천천히 방으로 향하던 엘로아는 자신의 몸이 아주 얇은 막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사태를 숨기고 있던 은폐장이었다.
그리고 은폐장을 넘어서자마자...
은폐장 내부를 울리던 소리가 들려온다.
"크흥...흥....허...끄으.....하아...하아...."
일순 엘로아는 머리가 아연해졌다.
그것은 어떤 여자의 앓는 소리였다.
이 집 안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샤론 에버그린.
문제는 그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상처 입은 짐승처럼 끙끙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시우는,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습격?
자세한 고민을 할 시간은 없다.
엘로아는 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
거실의 공기와 전혀 다른 뜨거운 열기가 훅 풍겨왔다.
짙은 살 내음, 땀 냄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릿하고 짭조름한 체취.
마치 습도를 높게 유지하는 사우나에 온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부딪힌다.
"....아.'
그리고 보고 말았다.
벌거벗은 샤론은 마치 교미하는 짐승처럼 침대에 엎드린 채 달콤한 신음을 짜내고 있다.
탐스럽게 익은 과실처럼 아래로 늘어진 커다란 유방과 전신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보인다.
그 뒤로는 마찬가지로 알몸이 시우가 샤론의 엉덩이를 움켜쥔 채 덮치듯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가랑이 사이에서 뻗은 성기가 여성의 비소에 깊숙하게 박혀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
사정의 여운에 잠겨 숨을 몰아쉬던 시우는 별안간의 인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엘로아의 휘둥그레진 눈과 시선이 마주치고는 뻣뻣이 굳는 시우.
"하아...하아.... 시우야....내.... 보지... 맛있어...?"
시우보다 더한 절정의 여운에 잠겨 아직도 엘로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샤론.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로 칭얼거리며 시우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엘로아의 머릿속에서 모든 의심과 시나리오가 깔끔하게 날아갔다.
대신 머리가 새하얀 백지가 되었다.
마법, 복수, 토벌에 목숨을 걸어왔던 티페레트 공작이라도 남녀관계에 대해 아주 무지한 것은 아니다.
남녀는 아기를 만들기 위해 알몸으로 뒹굴며 성교를 나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기를 만들 수 없는 마녀도 이따금 성적 향응을 위해 성교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남녀의 동거 = 성교를 하는 사이'라는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새벽의 야음을 틈타 집안에 잠입했을 때.
이런 민망하고 남사스러운 장면과 대면하게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
"......."
"뭐야아~ 왜 대답 안해 줫...?!"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뒤를 돌아보려던 샤론의 시선에도 엘로아가 포착되었다.
입을 쩍벌린 채 계약검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로아를 말이다.
세 사람의 시간이 동시에 멈췄다.
그래도 엘로아에겐 세상을 살아온 연륜이라는 것이 있다.
난감하고 불미스러운 상황에 봉착해지만 이 상황을 먼저 나서 수습하고자 했다.
단정치 못하게 벌어진 입을 다물고 의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연다.
"하던 일 마저... 하려무나... 머, 멋대로 들어와서 미안하네.. 그대도 알겠지만... 아니 모를 수도 있을 것도 같지만, 내게는 마력 감응 능력이 있다네... 그, 은폐장을 뚫고 마력이 느껴져서 확인 차 왔다네..."
"......."
"......."
그러나 막상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고 내용 또한 지리멸렬했다.
그도 그럴 게 티페레트는 근래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엘로아에게 난감한 상황이란 대체로 '적'이었고 힘과 무력으로 짓눌러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해를 거듭해 불법 침입까지 해놓고 당혹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둘을 베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최대한 말을 정돈해 전하려던 엘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포기했다는 방증이었다.
"....실례했네. 미안하네."
예의바르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엘로아.
-철컥!
잠시 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까지 켄타우로스폼을 유지하고 있는 두 사람은 그 상태로 5분가량 멍하니 엘로아가 사라진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2.
티페레트 공작의 깜짝 방문을 환영하는 섹스 장면 대공개.
공개 딸딸이에 이어 공개 대딸, 그리고 이미 쌍둥이와 3P경험으로 예방접종을 맞은 시우에게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처음인 샤론의 섬세한 마음은 심리적 쇼크가 큰 모양이다.
"샤론."
"잠만 유서 쓰고 있어. 왜?"
반쯤 넋이 나간 채 옷을 챙겨입은 샤론은 곧장 테이블에 앉아 빈종이 위에 펜을 끄적였다.
뭔가 싶었는데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하며 유언장을 남기던 모양이다.
불과 오늘 점심 무렵 시우에게 섹스를 조르기 위해 신나게 달려오다가 공작과 마주쳤거늘.
다음날 새벽에는 섹스하는 장면을 보였다라...
이 정도면 단단히 악연이거나 영 좋지 못한 저주가 걸려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크게 신경 안 쓰실 거야. 내가 가서 조금 따지고 올게."
"아냐, 나도 괜찮아. 어차피 내일이면 난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샤론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죽음을 받아들인 인간은 차분해지는 법이라고.
"흐, 흐흐흐... .흐흐흐...."
게다가 열심히 유서를 써가던 샤론은 몸을 앞으로 웅크린 채 웃기 시작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웃음소리였기에 꽤 호러다.
"미쳤어, 왜 오신거야... 도대체 왜.... 게다가, 게다가 나 뭐라고 했는지 알아...? '시우야 내 보지 맛있어?'래... 아하하핳...."
정신줄을 반쯤 놓은 샤론은 공허한 목소리로 웃었다.
아 어쩐지.
그냥 섹스 장면을 들킨 것치고는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했다.
그저 알몸을 들킨 수준인 시우와는 다르게 샤론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하는 음란한 대사까지 세트로 들켜버린 것이다.
시우조차도 '시우 자지 누구꺼야?'같은 대사를 치다가 들켰더라면 지금보다는 충격이 컸으리라.
시우는 샤론의 어깨를 토닥였다.
"귀엽다고 생각하셨을거야. 그래도 나름 산전수전 온갖 경험 다 하셨을 분인데."
"귀여워?"
곧장 돌아오는 샤론의 서슬 퍼런 반응에 시우는 곧장 꼬리를 내렸다.
"아니, 미안. 내가 잘못 생각했다."
"큰일났어.. 나 공작님이 진심으로 미워지려고 하고 있어.... 진짜, 진짜, 진짜!"
샤론은 버티지 못하고 침대로 몸을 던져 난동을 부렸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라는 기다란 비명이 돌림노래처럼 들려왔다.
이건 경험에서 나온 판단인데.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부끄러워할 때는 차라리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시우는 샤론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무튼, 난 좀 제대로 말씀드리고 올 테니까 나쁜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무슨 말씀을 드릴건데... 아! 이건 꼭 부탁할게! 절대로! 이거 진짜 발설하면 나 죽는다고 전해줘! 죽어버릴거라고 전해줘!"
"...애초에 그런 거 퍼트리실 분도 아니고. 그냥 앞으로는 조심해서 올라와 달라고 말하려고."
"끄으으으......자살 마렵다... 하아... 진짜...."
반쯤 죽어가는 샤론을 뒤로 한 시우는 자살하지 않겠다라는 서약을 몇 번이고 받아낸 뒤 계단을 내려왔다.
"후우...."
티페레트 공작이 변명이랍시고 했던 말을 천천히 되짚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오르골의 은폐효과를 벗어날 정도로 강렬한 마력의 파동을 느꼈다.
따라서 확인 차 올라왔다.
뭐 거기까지라면 시우도 큰 불만이 없다.
어찌 됐건 시우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무엇 하나 해명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가장 큰 문제라면 샤론이라는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니 샤론에게 사과해 줄 것을 부탁하고 전후 사정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것이 낫겠지.
-똑똑
-철컥
노크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들어오게나."
엘로아는 쭈뼛쭈뼛 문에서 물러나 비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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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어묵 님이 제공해주신 아멜리아 메리골드 입니다...!
아멜리아의 마녀 의상을 볼때마다 가슴께에 뚫려있는 마름모꼴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건 저만 그런게 아니리라 믿습니다
진짜 너무 이쁘네요...! 저 한줌도 안될 것 같은 허리를 보세요!
기쁨의 눈물 흘리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