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16화 (216/917)

#216

1.

소위 '북극'이라고 말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풍경.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설경이 앞도 뒤도 분간 없이 펼쳐진 눈밭 위로 아멜리아는 발을 내디뎠다.

아멜리아는 이 단단하고 끝도 없이 펼쳐진 지면이 실은 바다 위를 느리게 떠다닌 거대한 얼음덩어리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온종일 피부를 할퀴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도.

태양을 빼앗긴 하늘이 어스름 속에 며칠씩이나 잠겨 있는 것도.

그런 척박함 속에 생명을 움트고 살아가는 생명을 관찰하는 것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한 손에는 여행 가방을, 한 손에는 케테르가 준 살생부를 손에 쥔 채 얼어붙은 눈길 위를 걷던 아멜리아는 문득 멈춰 섰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평선이 보이는 설원에서 주머니 차원에 숨은 호문쿨루스를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이다.

살생부에 적혀진 위치란 그야말로 '대충 그 호문쿨루스가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다' 정도였으니 말이다.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영체는 수면과 식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 역시 마법으로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상상 속의 무한동력 발전기 같은 것은 아니다.

지도 한 장 손에 쥐지 않은 채, 잠시도 쉬지 않고 호문쿨루스를 추적하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하지만 아멜리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낙심하거나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따위의 의문은 진작에 버려둔 지 오래다.

기계장치처럼 주어진 일을 거듭할 뿐.

"울어라."

아멜리아의 입술이 달싹이자 마력의 파동이 일대로 퍼져나간다.

그녀의 부름의 호응한 아주 작은 수억 개의 입자들이 아멜리아의 촉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한다.

먹지 같은 극야를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입자는 분명 장관이었으나 아멜리아는 무심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뿐이다.

의문을 품는 것은, 감상을 느끼는 것은, 마음을 갖는 것은 괴로울 뿐이다.

하여 혹한의 바람에 심장을 내놓는다.

마음을 냉동시키고 검푸른 보랏빛이 돌 때까지 괴사하게 한다면 괴로움도 외로움도 느끼지 않을 터다.

아멜리아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일이자 가장 오랫동안 해왔던 일.

의무와 책무를 규정하고 감정을 투영하지 않은 채 자신을 매몰하는 일.

그것을 거듭할 뿐이다.

아멜리아의 주변으로 뻗어 나갔던 입자들은 흩어졌던 속도보다도 빠르게 그녀의 주위로 돌아왔다.

그 모습은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천체의 법칙을 따라 자신의 궤도를 지키는 아름다운 별무리 같다.

하늘색으로 빛나던 아멜리아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쿠궁! 쿠구구궁!

진동이 울렸다.

이면 결계가 펼쳐지고, 단 한 번도 녹거나 부서진 적 없던 북극해의 얼음덩어리 위에 금이 간다.

아멜리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가 며칠째 반복하는 이 작업은 엄밀히 말하면 호문쿨루스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극지로 숨어들어 휴면기에 들어선 호문쿨루스에게 마녀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것.

먹음직스러운 마녀가 이 곳에 있음을 알리는 초대장이다.

그리고 호문쿨루스는 아멜리아의 초대에 응했다.

-쿠오오오오!!!!

본능에 각인된 대로 마녀를 먹어치우고 유산을 지키기 위해 포효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호문쿨루스.

그 외향은 고래를 닮았다.

현세로 향한 이후 아멜리아도 바다 근처를 거닐 때 하얀 배를 뒤집고 물보라를 일으키는 고래를 보았다.

생물이라고 믿기 어려운 커다란 크기와 위용 또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아멜리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괴수는 '고래를 닮았다'라는 한 마디로 그 모습을 일축하기 어렵다.

유선형의 동체와 짧은 목, 몸체와 거의 차이가 없는 굵은 꼬리와 날개처럼 좌우로 뻗은 가슴지느러미, 입에서 뻗어 가슴까지 새하얗게 뻗은 수염은 그리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허공에서 느릿하게 유영하는 동체의 크기.

길이만 따지자면 900m, 아니 1000m쯤 될까?

가볍게 몸을 비틀기만 해도 풍경이 움직이는 듯한 거대한 몸체에서 내지르는 초저주파의 포효는 그 자체로 충격파가 되어 얼어붙은 눈발을 모조리 하늘로 띄워버린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뭉툭한 머리 옆으로 12쌍의 눈알을 지닌 거대한 고래는 마치 등에 지고 있는 것처럼 부서진 전함의 자재를 얹고 있었다.

살생부의 첫 페이지는 이 기이한 존재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300년간 깊은 심해를 유영하며 수백 척의 군함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무장으로 삼은 살아있는 재액(災厄).

심연의 왕, 다곤(Dagon).

-쿠오오오오오!!!!

고래가 다시 한번 내지른 포효가 아멜리아를 스쳐 지나간다.

심해 깊은 곳의 비린내와 질척한 석유 내음이 섞여있는 그것은 얼음을 쪼개고 가른다.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그것만으로 내장이 터져 즉사했을 충격파임에도 아멜리아의 표정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호문쿨루스를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목숨을 앗아갈 전투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아멜리아는 놀랍도록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능력이 부족하여 이 목숨이 다한다면 그뿐.

잃어버릴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두 손을 가득 메워 주었던 온기는 이미 두 번이나 실수로 놓쳐버렸으니까.

-기이이이이잉

마력이 엉키고 모이는 것을 살갗으로 느끼고 나서야 아멜리아는 상념을 털어냈다.

다곤의 몸에 얹혀 있는 수백 문의 주포로 마력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동체에서 기인하는 압도적인 마력 출력과 반사광은 새카만 북극의 밤을 깨운다.

하늘은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밝아지고 압도적인 두께의 주포가 아멜리아를 겨냥하여 발출되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제아무리 군함의 주포라 한들 어느 정도 위계 이상의 마녀에게는 무용지물일 터.

하지만 자신이 침몰시킨 전함을 몸에 이어붙인 그것은 이미 다곤의 일부나 다름없다.

마녀에게 위협이 되는, 실제로 3명의 마녀를 죽인 전적이 있는 위협적인 공격이다.

아멜리아의 작은 몸을 거대한 폭발이 뒤엎었다.

농축되고, 압축되어 세상 그 어떤 기술을 사용해도 막을 수 없을 강렬한 폭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거대한 빙하를 과자처럼 박살 냈다.

압도적인 열량에 고체에서 기체로 변해버린 수증기가 극저온의 기후에 얼어붙는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 더스트 가운데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온다.

그곳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아멜리아가 있었다.

딛고 선 곳은 이미 지도가 바뀔 정도로 바뀌었건만 아멜리아는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낙인의 마법과 본능이 합일되는 15 위계의 경지를 넘어, 순리와 법칙마저 비트는 20 위계 대마녀의 경지를 넘어.

역사를 통틀어 10명도 되지 않는 23 위계.

그 경지에 올라선 마녀는 전투 경험이 없다 한들 존재 자체로 발밑의 모든 것을 압도한다.

-쿠우우우!!!

다곤은 다시 몸을 비틀었다.

이 공격을 받고 저렇게 태연하게 몸을 드러낸 마녀는 300년의 존재 동안 처음이다.

그러나 반복한다면, 더는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포격을 쏟고 쏟으면 될 일.

하늘을 헤엄치는 짐승은 또 한 번 마력을 모아 일제 포격을 계시한다.

유성군처럼 아멜리아를 향해 쇄도하는 마포의 폭격 속에서.

천재지변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은 파괴의 폭풍 속에서.

"울어라."

아멜리아는 그저 읊조린다.

입가에 하얀 입김이 솟았다.

정적이 일었다.

수백 수천 가닥의 마포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범위를 가득히 메우는 것은 개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한 아멜리아의 '입자'.

에아 사달멜리크를 죽이며 한계를 초월한 그녀의 자성마법은 사방 일대의 모든 마력 통제권을 자신의 손에 넣는 것이 가능했다.

공중에서 정지한 마포는 점차 그 응집력이 약해지며 곧장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흩어진 마력은 또다시 아멜리아의 입자로 치환되어 그녀의 힘이 되었다.

-쿠우우우우!!!!

영문을 알 수 없는 기현상에 당황한 거대한 고래는 기이한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짐승에겐 이 상황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저 연거푸 마포를 쏘며 최후의 발버둥을 시도할 뿐.

그리고.

-슈웅 슈웅 슈웅

무엇하나 제대로 닿지 않는다.

한 발 한 발이 벙커버스터에 필적하는 마포를 쏟아붓는다 한들 중간에서 멈추고 소멸해 목표에 닿지 못한다면 그건 의미가 없는 공격이다.

아멜리아는 손끝을 튕겼다.

자욱하게 퍼지는 꽃내음과 함께 허공을 유유히 헤엄치던 거대한 고래가 부력을 잃고 떨어진다.

아멜리아의 입자는 어느덧 다곤의 동체 구석구석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구궁!!!

손쓸 새도 없이 추락한 다곤이 빙하를 반쪽 내며 너부러졌다.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뿌옇게 흩어진 눈발은 하늘을 날던 섬이 떨어졌다 해도 믿을 것 같다.

아멜리아는 발걸음을 옮겼다.

옮기는 그녀의 발걸음마다 극지에서 피지 않는 야생화가 피어난다.

그러나 한 무더기의 꽃에는 색이 없었다.

저주로 모든 빛깔을 빼앗긴 것처럼 무채색으로만 직조된 꽃길이 아멜리아의 발꿈치를 따라 융단처럼 길게 펼쳐졌다.

얼마 걸음을 옮기지 않아 다곤의 머리맡에 당도한다.

저 정도의 중량을 가진 몸뚱이가 수백 미터 상공에서 자유 낙하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치명상이 된다.

그 탓인지 벌어진 입에서는 석유 같은 검은 피가 질질 흘러나왔다.

-쿠우... 쿠우....

이제와서 최후의 발버둥을 쳐보려 한들 늦었다.

아멜리아는 다곤이 눈치챌 새도 없이 벌어진 입과 피부로 입자를 침투시켰다.

호문쿨루스가 마력으로 움직이는 이상 무색무취의 독가스를 잔뜩 들이킨 것이나 다름없다.

"........"

아멜리아는 지그시 눈을 보았다.

하나하나가 그녀의 몸보다 훨씬 커다란 번질거리는 눈이 아멜리아에게 데구르를 눈동자를 굴린다.

곧 이것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입자가 충분히 몸에 퍼진다면 꽃을 피워올려 소멸시킬 것이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만약 아멜리아가 죽이지 않았더라면 죽임을 당했겠지.

이렇게 누워있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선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아멜리아는 문득 아주 예전 스승님이 읽어주셨던 동화 속 망자를 떠올렸다.

살아가는 의미와 이유를 상실한 채 썩어가는 육신으로 구천을 떠돌며 방황하는 가련한 영혼.

그래.

이 생은 그와 다를 것이 없다.

상처를 입고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는 짐승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 보인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멜리아는 고래의 커다란 주둥이 위로 손을 뻗었다.

"....당신도 나와 같네요."

손에서 퍼져나간 마력의 파동은 다곤의 몸 이곳저곳을 침투한 입자를 꽃 피운다.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파도를 피듯 만개하기 시작한 꽃들은 확실히 생명을 앗아갔다.

부서지는 몸뚱어리.

흩어지는 무채색의 꽃잎을 뒤로하고 아멜리아는 살생부의 다음 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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