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14화 (214/917)

#214

1.

“너 진짜 왜 그랬냐.”

샤론이 홀로 방에 틀어박힌 이후.

시우는 진지한 면담을 시작했다.

“내가 널 28년 동안 방치하기는 했지. 그건 내 잘못 맞아. 그래도 요즘엔 나름대로 호강시켜줬잖아. 어? 안 그래?”

면담 상대는 색끈한 마녀님을 보고 절조 없이 커져 버린 자지였다.

모처럼 나쁘지 않았던 분위기가 이 녀석 때문에 전부 초를 치게 되었다.

“넌 나한테 그러면 안 됐어. 몇 대 맞을래. 니가 정해.”

“……..”

“대답 안 해?”

허튼짓도 혼자 하다 보니 가속도가 붙어 조금 더 해봤는데 금방 흥미가 식었다.

자괴감이 몰려온다.

자지가 무슨 죄가 있겠어.

사실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 왜 이렇게 됐냐…”

시우는 자신이 나름 순정파라고 자부했다.

물론 제대로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지만 만약 알콩달콩 로맨스를 찍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바람 이딴 거 안 피우면서 헌신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아까 페리윙클의 손이 허벅지를 쓰다듬는 순간.

아니다, 그보다 조금 전 그녀의 체취를 들이켠 순간.

마치 브레이크가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먼저 반응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다.

만약 샤론이 옆에 없었더라면 시우는 틀림없이 쫄랑쫄랑 따라가 즐거운 밤을 보냈을 것이라는 점이다.

확실히 샤론과의 관계는 정립되어있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여자랑 신나게 떡치고 돌아다녀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시우는 그것이 샤론에게 실례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이상해졌나…”

시우는 한숨을 쉬며 품 안의 명함을 북북 찢었다.

페리윙클이 보는 앞에서 버릴 수는 없어 일단은 품에 넣어두었다.

“이제부터 어쩌냐…”

어쩐지 사과는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과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시우가 샤론을 여자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반대로 샤론이 화를 내는 이유는 그녀가 시우를 남자친구로서 생각하기 때문일까?

솔직히 딱 이거다! 잘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남녀관계는 더럽게 어려운 것 같다.

“와 미쳤네…”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자가 성찰을 하던 시우는 한가지 과오를 더 알아챘다.

지금까지 샤론에게 쌍둥이와 은밀한 관계를 지녔다는 것을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치 자연스럽게 양다리를 걸치려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런 거부감 혹은 의심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샤론, 그리고 쌍둥이와 몸을 섞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시발 뭐가 잘못된 거지…?”

현세로 돌아와 수학책을 들여보았을 때 사고가 헝클어지고 엉키며 한 문장도 풀 수 없던 경험을 떠올렸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에아의 리본, 그리고 라피의 자성마법을 사용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좋게 말하면 닳고 닳은 카사노바처럼, 나쁘게 말하면 발정 난 개처럼 마녀만 보면 고추를 세워대며 양다리 각을 잡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렸다.

“뭔가 이상한데… 제대로 치료된 거 맞나?”

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신체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시우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그 이상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블랙박스다.

“윽!”

아주 잠깐 두통이 일었다.

위화감을 일으키던 일련의 사고가 사라지고 잊혔다.

그리고 잊혔다는 사실조차도 잊히고 말았다.

시우가 떠올린 모든 의문이 지금은 떠올려서는 안 된다는 듯이 다시 깊은 무의식으로 침잠한다.

시우는 한동안 영혼이 빠져나간 꼭두각시처럼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반쯤 벌어진 입에서 침이 한줄기 흐르려던 때.

외부 소음에 의해 각성한다.

-똑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시우야, 들어가도 돼?”

“아, 응.”

시우는 침을 쓱 훔치고 후다닥 침대에서 일어나 샤론을 맞았다.

아무래도 충격이 컸던 듯해서 한동안은 안에 콕 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니 다행이었다.

정확한 묘사는 어렵지만 단순히 감상을 따지자면 썸타던 여자애 앞에서 다른 여자보고 발기하는 모습을 들킨 꼴이니…

귀싸대기 한 대 얻어맞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고는 생각 중이다.

그러나 샤론은 울적함이 눈에 빤히 보이는 표정과 자세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샤론 일단…”

“내가 먼저 말해도 돼?”

“아, 그래.”

잘못한 것은 분명히 자신인 것 같은데 도리어 샤론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다.

비싼 꽃병을 깨고 엄마한테 혼나는 아이처럼 손과 발을 꿈지럭거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일단… 화내서 미안해. 내가 너한테 그럴 입장이 아닌데…”

원래는 차분하게 끝까지 들을 생각이던 시우가 끼어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발언이었다.

“샤론, 일단 너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 같아. 어제 바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건 아직 정리가 안 된 거잖아. 나 혼자… 나 혼자 분위기 싸하게 만들고 너한테 눈치 준거고…”

샤론은 시우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넌 내가 아니라도 훨씬 더 좋은 마녀랑 만날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너도 남자니까… 예쁜 여자들이랑 많이 만나고 싶을거고…”

샤론은 시우에게 많은 것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시우를 향한 호감도 커졌지만 반대로 부채 의식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작 위기에 처했을 때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받아오고, 구원받기만 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인생에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따끔따끔 아파졌다.

“난 아무것도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걸… 마법공부도, 사실 다른 마녀한테 가면 훨씬 더 수준 높은 걸 배울 수 있을거고… 내가 기껏 가르치는 것도 너가 나한테 해준 일에 비하면 별것 아니야…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를 속박할 생각은 없다.

안에서 혼자 생각했던 것을 시우에게 말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지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을 맹세하며.

“페리윙클… 그 마녀랑 있다 와도 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는 절대 눈치도 안 주고 내색도 하지 않을게.”

“…….”

“대신 다 끝나면… 꼭 돌아와주라.”

주변 친구들에게 넌 자존심도 없냐? 라는 핀잔을 들어 마땅한 발언이다.

비굴할 정도로 굽히고 들어가는 샤론의 태도에 시우도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딱히 얘기할 거 없으면 가볼게.”

당장에 울지는 않았지만 시우는 알 수 있었다.

이 대화가 끝나고 샤론을 그냥 보낸다면 혼자 방에 박혀서 광광 눈물을 쏟으리라는 것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정신을 차리고 나니 샤론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놀란 듯이 동그랗게 떠진 샤론의 눈가에는 예상대로 퐁퐁 눈물이 솟으려 하고 있었다.

“가긴 뭘 가. 안 갈 거야. 명함도 방금 찢었어.”

“뭐? 그걸 왜 찢어?”

“어차피 연락할 일도 없을 건데 버려야지. 뭣 하러 가지고 있어.”

“너 페리윙클이 어떤 마녀인지는 알아? 복합원소마법에 새 지평을 넓혀가는 대마녀야! 그 사람이 학회에 논문 제출할 때마다 얼마나 이슈가 되는데!”

샤론은 명함을 찢어버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부정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얄팍함에 실망한다.

이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시우가 더 잘 됐으면, 더 좋은 선택을 했으면 싶은 선의가 결국엔 자신의 이기심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닌가?

“나…난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야. 너에 비하면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대로 점점 발목만 잡을 거고…. 아무런 도움도 못 줘…”

지리멸렬하게 쏟아지는 자기비하는 자기 자신에게 느낀 실망감 때문일까?

아니면 시우가 이것을 부정해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욕심일까.

“내가 마녀 중에 특출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나 때문에 너가 원하는 거 못하게 되는 것도…”

“샤론.”

시우가 입을 열자마자 샤론은 숨을 멈췄다.

조심스레 얼굴을 올려보자 쓴웃음을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는 시우의 얼굴이 보인다.

“뭐, 뭐야? 왜 웃어? 누구는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샤론의 손목이 시우의 손에 붙잡힌다.

두 사람의 거리는 단숨에 가까워졌다.

묘하게 화를 내려던 샤론의 기세도 쏙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불안 반 기대 반의 눈빛으로 시우를 올려보는 샤론.

그런 샤론을 보며 시우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타카쇼의 강의를 떠올렸다.

‘여자가 불안해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뭔 일이냐 너 같은 샌님이 그런 것도 물어보고.’

어떤 경위로 나오게 된 주제인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느낌의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타카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이것만 기억하면 돼. 키스, 섹스, 섹스.’

사실 시우는 타카쇼의 조언을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은 적이 없다.

제 입으로 말하기를 살면서 섭렵한 여자만 600여 명.

거의 AV 배우 수준의 여성 편력을 살아온 타카쇼와는 세계관이 다르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이 콤보면 성공률 95%로 여자는 마음이 풀리고 넘어오게 돼 있어.’

‘왜 섹스는 둘이야?’

‘그만큼 중요하다 이 말이지. 섹스 한 번으로는 변수가 있어. 원래 여자라는 생물이 분위기 타서 한 번만 하면 나중에 어라? 그게 맞았던 걸까? 하면서 전전긍긍하거든.

첫 섹스는 키스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계하고 두 번째 섹스로 딱! 못을 박는 거야.’

‘실패한 5%는 어떻게 되는데?’

타카쇼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은팔찌를 차는 모션을 취했다.

‘근데 대부분 훈방 조치해주더라.’

‘미친 새끼.’

라고 끝났던 문답이지만 지금은 확신이 있다.

게다가 타카쇼의 조언은 진짜 정말 의외로 쓸모 있게 먹혀들어 간 적이 많았다.

시우가 자연스럽게 입술을 가까이 붙이자 샤론은 눈을 질끔 감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가만히 보고 있자 슬그머니 샤론의 한쪽 눈이 떠진다.

앞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시우를 보고 펄펄 화를 내는 샤론.

“아! 진짜! 뭔데…! 장난치지 마! 난 심각하단 말이… 웁….!”

이번에야 비로소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시우의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열을 내던 샤론도 진정제를 투여한 것처럼 순식간에 차분해진다.

“츄웁…움….흐음….”

그리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도리어 시우의 옷깃을 꽉 붙잡고 적극적으로 혀를 섞어왔다.

불안하고 떨리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마치 아주 위대한 자성마법 같았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샤론은 무언가를 바라는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달짝지근하게 거칠어진 한숨과 열기를 띤 시선.

오늘따라 그녀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히 성욕 같은 것 때문이 아니겠지.

“아….”

시우가 가볍게 손목을 당기자 샤론이 침대 위로 털썩 쓰러졌다.

그렇게 큰 힘은 아니었기에 저항하려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샤론도 시우가 쓰러뜨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샤론의 몸 위를 덮듯이 올라간 시우는 그녀의 옷을 하나씩 벗겨가며 키스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말이 필요 없었다.

교미하는 짐승처럼 서로 탁한 숨을 토해내고, 맨팔과 맨다리로 서로의 몸을 끌어안으며 하나가 되어갈 뿐.

그날 샤론은 네 번의 마력 보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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