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01화 (201/917)

#201

1.

당연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제쳐놓고서라도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우울한 일이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괜히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샤론이 울적해 보이기도 하고, 쌍둥이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을 텐데 자기까지 축 늘어져서야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름 어른의 배려라는 것이다.

“자자, 왔습니다. 저희 오피스텔의 명물 배달음식 디펜스!”

드넓은 6인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차려진 배달음식들.

저 음식들을 그릇에 옮겨 담느라 주방 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릇까지 죄다 꺼냈다.

약간 억지 텐션으로나마 분위기를 돋워 평소처럼 행동하자 쌍둥이가 잘 협력해주었다.

미지근하게 감돌던 암운은 간데없고 활기찬 식탁.

“와아아아!!!”

“김치! 김치! 김치!”

“조수님! 우리 오늘 이거 다 먹을 거야!”

“말리지 마세요!”

물개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오딜. 오늘 처음 알게 된 신문물 김치를 연호하는 오데트.

쌍둥이의 코스튬이 상당히 귀엽다.

오늘 아쿠아리움에서 기념품으로 산 파자마였다.

오딜은 파란색 상어 후드 파자마. 오데트는 분홍색 토끼 후드 파자마이다.

아쿠아리움에 토끼가 웬 말이냐 싶긴 한데 워낙 키우기도 쉽고 귀여움도 많이 받는 생물이라 그런지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육지 거북이와 같이 있더라고.

이제 다시 그 아쿠아리움을 가게 될 수 있을지는...

관두자.

우울한 생각은 그만뒀다.

“이 정도면 대충 다 온 건가?”

“그런 것 같은데?”

“오딜님이랑 오데트님, 두 분 다 귀여우시네.”

삼파장 스탠드처럼 발광하는 쌍둥이의 분위기에 감화된 것인지 샤론도 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싱글싱글 미소를 지으며 시우에게 말을 걸었다.

곧장 반응하는 오딜.

“귀엽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맞아요, 저희도 어엿한 숙녀이니 귀엽다는 표현보다는 우아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구요, 오호호!”

이상할 정도로 어른스럽다는 말에 집착하는 오딜과 오데트는 갑자기 자리에 착 앉더니 우아하게 부채질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진짜 하나도 안 어울린다.

슬쩍 지적해 보았다.

“근데 그런 파자마 입고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파자마가 왜? 귀엽잖아, 앗....!”

“파자마가 어때서요? 예쁘고 귀여워서 좋은데요? 앗!”

보라.

순식간에 완성되는 꽁트 한 편.

딱히 의도한 것도 아닌데 함정에 빠진 쌍둥이를.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녀 때려치우고 연예인이나 유튜버 해도 잘 먹고 잘살 것 같았다.

워낙 예쁘고 예능감이 넘쳐서 말이지.

시우야 그런 둘의 모습이 익숙해서 피식 웃고 말았지만 옆에서는 고개를 숙인 샤론이 필사적인 웃음 참기 챌린지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간에! 그런 사소한 지적은 없던 일로하고! 앞으로는 단어 선택에 주의해주세요! 샤론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괜찮죠? 말도 놓아주시면 편할 것 같아요! 저희보다 먼저 마녀가 되신 선배님이시잖아요!”

“그럴까요...? 아니 그럴까?”

““네!””

시우가 불평하며 끼어들었다.

“그렇게 치면 저도 선배 아닌가요?”

“조수님은 조수님이니까.”

“저는 항상 존댓말 하는데요?”

구김살 없는 쌍둥이의 행동에 샤론도 슬슬 쌍둥이와 편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하긴 쌍둥이의 평소 행실을 생각해보면 샤론과는 은근히 궁합이 잘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샤론도 은근히 개구지기도 하고.

나중에 더 친해져서 함께 생활하게 되면 셋이서 편을 먹고 시우를 핍박하는 미래가 그려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시작된 저녁 만찬.

시우는 손뼉을 쳐 주의를 끈 뒤 호스트로서 조촐한 파티의 개시를 알렸다.

“오늘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술술 털어버리고 즐겁게 먹어보죠.”

“조수님! 나 술 마실래!”

“언니언니, 그럴 줄 알고 내가 아티펙트에서 꺼내왔어.”

어떻게 알았는지 냉장고에서 양손 가득 캔맥주를 들고 온 오데트.

그걸 거침없이 따는 오딜.

역시 배우는 게 빠르다.

“조수님이 하나씩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모르는 음식이 너무 많아요!”

“그럴까요?”

“조수님 오랜만에 조수님 같네.”

키득거리는 쌍둥이들에게 시우는 하나씩 음식을 알려주었다.

먼저 빨갛게 익어 있는 대게다.

“아아, 이건 대게라는 겁니다. 이쪽에 앉은 샤론이 제일 좋아하는 거죠.”

“이상하게 설명하지 마!”

찰싹 시우의 어깨를 때리는 샤론. 손이 맵다.

“와! 엄청 크다!”

“아르스 마그나 타운에서 먹었던 거랑은 비교가 안 돼요!”

“이렇게 내장에 밥을 볶아서 먹으면 맛있어.”

쌍둥이는 열심히 게살을 뽑아 먹다가 샤론이 건네준 볶음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고소한 내장의 풍미와 고소한 참기름으로 코팅된 밥알.

그사이에 톡톡 튀는 주홍색 날치알의 조화는 쌍둥이의 입맛에도 쏙 들어맞았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점잖게 맛을 품평하려던 쌍둥이도 게 등딱지에 코를 박을 기세로 볶음밥을 퍼먹기 바빴다.

그 모습을 샤론과 시우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뭔가 엄마 아빠 같네.”

샤론이 흘러가듯 말했고 시우도 동감했다.

속도 없이 날름날름 고기만 집어 먹던 시우를 뿌듯한 얼굴로 바라보시던 부모님 심정이 오늘은 이해가 간다.

어찌나 맛있어 보이게 먹는지 두 뺨이 빵빵해진 채로 오물오물 밥을 먹는 쌍둥이.

“다음! 다음!”

“다음 거 주세요!”

“이번 메뉴는 삼겹살입니다.”

시우가 선보인 두 번째 음식은 배달 삼겹.

여타 업장과는 다르게 가격이 좀 있지만 국내산 냉장 돼지를 쓰는 집이다.

“조수님? 이건 그냥 고기를 구워놓은 거잖아.”

“비계... 비계가 있어요...너무 많아요...”

게헨나의 식문화는 상당히 서구적이다.

제머나이 가문처럼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의 마녀들일수록 더했다.

보통 중하층에 위치한 시민과 마녀는 닭과 돼지를 먹고 상위 계층의 마녀는 소고기, 양, 거위 등을 즐겨 먹었다.

그중에서 비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삼겹살은 게헨나에서 베이컨이나 소시지, 혹은 라드를 만드는 데만 활용되었기 때문에 쌍둥이에게 무척 낯설고 위협적으로 보이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자신 있었다.

“한번 드셔보시면 그 말이 쏙 들어가실 겁니다.”

“정말로?”

“킁킁, 냄새는 참 좋은데....”

옆에서는 샤론이 상추, 깻잎, 쌈장에 파채를 얹어 쌈을 쌌다.

생마늘은 아무래도 뺀 것 같다.

“새, 샐러드로 고기를 감쌌어.”

“즉석 캐비지롤 같은 게 아닐까...?”

“그치만 저건 익히지도 않았는걸?”

쌍둥이는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생소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오딜 양, 오데트 양. 좀 낯설어 보여도 이거 진짜 맛있어. 누가 먼저 먹어볼래?”

휘둥그레진 두 쌍의 눈이 샤론이 흔드는 쌈을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나 오딜이었다.

“제가 먼저 먹어볼게요. 아앙....”

샤론이 그렇게 크게 만든 것도 아닌데 입을 한껏 벌려 간신히 들어가는 쌈.

신중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씹어넘기던 오딜의 눈이 띠용 커졌다.

“이마숩....너후 대다해...!”

“진짜? 그렇게 맛있어?”

“오딜 님 꼭꼭 씹어 삼키고 말하세요.”

“움움움움...!”

오딜은 열심히 고개를 삼키며 한국의 명물 삼겹살을 꿀꺽 삼켰다. 얼굴에 건강한 홍조가 떠오른다.

“오옷! 이, 이, 이 맛은...!”

오딜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동안 오데트가 샤론에게 졸랐다.

“언니! 뭔데뭔데? 왜? 저도 하나 싸주세요!”

샤론은 오데트의 마음이 바뀔세라 냉큼 쌈을 싸주었다.

촉촉하고 신선한 상추 안에 산뜻하고 향긋한 깻잎.

살짝 까슬거리는 질감을 지나고 나면 은은한 숯불 향이 배어나오는 기름진 고기의 육즙이 입안을 흥건히 적신다.

야들야들한 돼지고기의 기름기가 질린다고 생각할 때쯤 훅 치고 들어오는 파의 풍미.

열심히 먹더니 오딜과 똑같은 표정이 되어 멍하니 입을 벌린다.

“이... 이 음식은 완벽해요...”

“인생 절반 손해 봤어!”

“어떻게 하는 건지 저도 알려주세요!”

시우는 오딜에게, 샤론은 오데트에게 손수 쌈 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삼겹살과 함께 볶은 김치나 생마늘, 고추, 참기름 소금장과 함께 먹는 바리에이션도 전수해 주었다.

동시에 쏙 입에 쌈을 넣은 오딜과 오데트가 엉덩이로 방방 뛰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돼지 농가를 인수하자고 할거야!”

“이런 맛있는 음식을 소시지로 만들어버리는 시민들이 딱해요! 신문물을 전파해야겠어요!”

시우는 차례로 게헨나에서 먹기 힘든 한국의 전통 음식을 선보였다.

쌍둥이는 매운 음식을 굉장히 잘 먹는 편이었다.

게다가 음식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게헨나의 요리법과는 다르게 고춧가루, 후추, 소금, 마늘, 간장을 팍팍 넣는 한국의 조리법은 조금 더 직관적으로 쌍둥이에게 어필이 된 모양이다.

떡볶이 김치찜 같은 것도 맛있게 먹으니 말이다.

그 반례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삼계탕은 의외로 인기가 별로 없었다.

한약 냄새가 나서 그러려나.

대신.

“이게 조수님이 말했던 치킨이구나? 닭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맞아요, 저는 삼계탕보다는 칠면조가 더 맛있더라구요!”

“네, 일단 드시고 말씀하세요. 이쪽은 양념 치킨이라고 고추장이랑 물엿을 섞어서 소스를 만든 겁니다. 이쪽은 후라이드 치킨, 그냥 튀긴 거고요.”

“일단 먹어볼게요!”

말과는 달리 이미 음식 전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는지 츄릅거리는 오딜 오데트.

이윽고 다리 하나씩을 사이좋게 손에 쥐고 물어뜯는다.

그간 시행으로 이미 쌍둥이의 입맛을 대충 짐작한 시우다.

“오옷...!”

“아니...!”

실로 만화 같은 리액션을 보이며 치킨을 음미하는 쌍둥이.

조금 악마 같은 발상이지만 붉닭볶음면을 먹이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유튜브 1000만 조회수는 거뜬하지 않을까?

“이게... 닭고기?”

“육즙 뭐야....”

뭐지? 군대 다녀온 이후로 애국심은 모근까지 사라졌다고 느꼈는데.

제머나이 가문의 저자극 요리만을 먹다 단짠맵 한국 음식에 정신을 못 차리는 쌍둥이를 보니 가슴이 근질거린다.

“이게 국뽕?”

“응?”

“아무것도 아니야.”

옆에서 열심히 족발을 먹던 샤론이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어물쩍 넘어갔다.

지금은 쌍둥이의 남은 리액션을 구경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건 요리의 혁신이야! 나는 당장 이 닭고기 가게를 게헨나에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 분명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될 거야!”

“옳소 옳소! 우리 집 옆에 차리자!”

그 밖에도 족발, 막창, 물회, 불고기, 김치찌개 등에 대한 쌍둥이의 호평이 연달아 쏟아졌다.

맥주는 또 어찌그리 잘 마시는지 쌍둥이 옆에는 그윽하게 캔맥주가 쌓였다.

“하아...하아.... 돌아가기 싫어...”

“어, 언니... 나 토할 것 같아....”

2시간에 걸친 먹방 이후 쌍둥이는 소파에 곧장 드러누웠다.

언뜻 예의가 없어 보이지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쌍둥이가 ‘밥을 먹으면 직접 치워야 한다’라는 교육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으니 넘어가 두자.

일단 오늘 먹은 음식도 다 쌍둥이가 계산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가서 놀아줘. 난 설거지하고 갈게.”

“아, 아냐. 놔두면 밤에 내가 할게.”

“내가 한다니까~ 다 같이 영화라도 보자. 좋아할 거 같거든.”

샤론은 고무장갑을 낀 채 시우를 등 떠밀었다.

녹아내릴 듯 침대 등받이에 목을 기댄 채 누운 오딜. 그 옆에 똑같은 자세로 나란히 뻗은 오데트.

“그대로 주무시게요?”

“벌써 자긴 아쉬운데?”

“맞아요, 저희의 밤은 지금부터, 하아암~, 시작이라구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눈꺼풀이 무거운 게 보인다. 끔뻑끔뻑 소처럼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으니까.

“그럼 영화나 같이 보죠.”

“영화? 아! 그거 나도 보고 싶었어!”

“저, 저, 저도요!”

설거지를 끝낸 샤론까지 합류했다.

네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