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00화 (200/917)

#200

1.

구석에 웅크려 있는 샤론.

그 모습은 옥탑방에서 쫓겨나 시우를 찾아왔던 날의 샤론을 연상시켰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우울해 보인다.

찰랑찰랑하던 머리카락조차 시들어 버린 것처럼 푸석푸석했으니 말이다.

“...시우야....”

샤론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시우의 이름을 불렀다.

애처로울 정도로 힘이 없었다.

“나 때문에 다칠 뻔했다고 들었는데... 괜찮아?”

이렇게 기운이 빠져있는 샤론을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샤론은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씩씩하고 기운차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모토로 보일 정도였으니.

위로를 위해 슬며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샤론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난 괜찮아, 다치지도 않았고... 근데... 근데...”

두어차례 말을 더듬던 샤론은 아까의 충격적인 광경이 생각났는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저체온증에 걸린 환자처럼 떨리는 목소리와 몸짓으로 시우의 손을 꽉 움켜쥔다.

“나는... 나는... 너가 잘못되는 줄 알고... 너가 죽는 줄 알고....히끅... 힉....”

울음기가 차오르더니 이내 거의 오열하는 수준이 된 샤론이 시우의 품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와 안긴다.

온몸에서 풍기는 산뜻한 향기와 부드러운 몸의 감촉.

어깨가 부서질 듯 들썩이는 샤론의 머리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너무, 너무너무 무서웠어... 너무 무서웠어.... 으아아앙.....!”

“괜찮아, 뭐 이런 거로 울고 그래. 괜찮아. 나도 멀쩡하잖아.”

“난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 했단 말이야....!”

안도와 무기력함, 그 순간의 공포와 절망이 일제히 피드백되며 샤론은 더는 꽉 안을 수 없을 만큼 시우에게 매달렸다.

영영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던 시우가 품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가 생겨난다.

그가 죽어버릴 뻔했던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무기력함이 떠오른다.

그 복잡된 감정 앞에 시우도 가슴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샤론을 이렇게나 울린 티페레트 공작에 대한 분노이자, 이렇게나 걱정해준 샤론에 대한 고마움이 겹쳤다.

“여기 봐, 잘 있잖아. 부상도 다 나은 것 같고 진정해 샤론.”

“응...응, 진정할게... 응....”

한편 시우를 뒤따라와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쌍둥이.

“.........”

“.........”

오딜은 오데트의 옆구리를 콕콕 찌른 뒤 손목을 잡아끌고 슬그머니 방문을 닫았다.

오데트는 왠지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아 얌전히 있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왜 언니?”

“그냥 비켜있어 주자. 막 울잖아.”

“나도 조수님한테 안기고 싶은데...”

“넌 어제도 안겼다며!”

“아까도 말했지만 먼저 배신한 건 언니거든?”

쌍둥이는 털레털레 거실 소파에 앉았다.

참 많은 일이 있던 하루였다.

사실 아직도 옥상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던 시우를 생각하면 심장이 철렁하다.

물병자리의 마녀가 게헨나를 습격해왔던 당시의 일을 그대로 따라간 추체험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도 지금 조수님이 더 필요한 사람은 저 언니인 것 같으니까. 우리는 의젓하잖아.”

“뭔가 기분이 찜찜해. 분해.”

“나도 그래. 그래도 뭐 어쩌겠어. 조수님이 현세에 있는 동안 도와주신 분이고 도와주실 분인걸.”

시우가 현세에 나오며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는 스승님께 들어 알고 있다.

연이 소멸해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외로운 상태.

게다가 호문쿨루스와 추방자가 자칫 시우를 노릴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샤론을 봤을 때 시우에게 배신감도 느끼고 화도 났지만 그래도 고마움을 느꼈다.

시우가 혼자 전장에 남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이 뒤집혀 달려간 모습을 보고 그가 외롭지 않을 수 있게 옆에 있어 주던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게 어른의 아량이라는 거야.”

“힝....”

“새로 사온 파자마나 입어볼까?”

“응, 언니.”

시우가 샤론을 진정시켜주는 동안 쌍둥이는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2.

위치포인트 광화문 지부는 굉장히 분주했다.

광화문 지부의 창립 이후 이토록 할 일이 많았던 적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위치포인트 소속의 마녀는 물론 일반적인 추방자들에게도 거액의 보수를 내건 소집 공고가 내려갔다.

“호사난량이로군요....”

수아 지부장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탄했다.

조금 전까지 불이 붙은 것처럼 울리던 핫라인의 항의에 일일이 대꾸하고 지시하느라 족히 일 년 분의 정신력을 소모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만에, 그것도 이면결계가 아닌 상태에서 3000명 내외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억을 조작해야 하는 생존자는 그 5배 이상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통해 보도 통제를 내리고 해당 지역에 있던 군경을 비롯한 목격자들을 일시 격리했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던 옛날과 달리 현대는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기 때문에 더욱 조속하게 처리해야만 했다.

집단최면을 통한 기억 소거 및 조작을 위해 총 10명의 마녀가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다른 위치포인트 지부에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대규모의 산불을 양동이만 들고 진압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까스로 데드라인을 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즉시 조속하게 대응한 데다가 범국가적 행정력에 마법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코엑스 몰에서 있던 사고는 가스유출로 인한 사고로 마무리 지어질 것이다.

이 경우 건축사나 해당 건물의 소유한 회사가 독박을 쓰겠지만 어쩔 수 없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중일 등 강대국의 지도자들 역시 마녀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즉, 외신을 통해 진상이 알려질 일도 없다는 말.

물론 모든 자료와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수상쩍은 면이 가득한 만큼 의문을 품는 자들도 여럿 생겨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지.

하지만 과학의 발전이 낳은 과학 지상주의는 이런 부분에서 편리하게 작용했다.

사람들은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으적으적 씹어먹었다는 목격담보다 국가에서 공식으로 발표한 자료와 공신력 있는 해외기사를 더 신뢰할 것이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당 사건에 대한 관심 자체도 시들해지겠지.

나중에 뒤로 나오는 목소리가 있다 한들 음모론 따위로 치부되며 힘을 잃을 것이다.

실제로 꽤나 여러 굵직한 역사적 재앙이 호문쿨루스나 공적에 의해 일어났지만 적절한 각본과 대처로 마녀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데네브 백작, 수아 지부장이옵니다.”

[네, 말씀하세요]

극악의 사고가 벌어졌음에도 불행 중 다행이 있었다.

대규모 정신조작에 능한 데네브 백작이 때마침 업무차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자성마법은 항마력이 없는 인간에게는 수천이든 수만이든 동시에 작용할 수 있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어느 정도이옵니까?”

[건물 내부에 있던 생존자들의 치유는 모두 끝났고 현재 부상자를 치료 중입니다. 어디 보자... 대충 12시간 정도는 추가로 필요하겠네요]

“귀하의 조력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 정도로요. 이 안건에 대해서는 차후 논의토록 하죠]

수아는 통신을 끊고 티페레트 공작에게 연락했다.

두 번째 행운은 적기사를 추적하던 엘로아 역시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는 점.

그녀는 사고 직후 계약의 대가로 인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음에도 이 사건의 원흉을 수색하며 추가적인 사고를 방지했다.

“귀주, 들리시옵니까?”

[....듣고 있네]

“조금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떤지요?”

하지만 오랜 경험에서 비롯한 추적술을 지닌 엘로아가 아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함은 이미 흑막이 멀찌감치 자취를 감췄으며 연속적인 위협도 없음을 방증한다.

엘로아가 여러모로 궁지에 몰려있음을 익히 아는 수아는 그녀에게 거듭 휴식을 권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더 찾아보겠네]

“네, 귀주께서 바라시는대로....”

무뚝뚝하고 지쳐있는 목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겼다.

3.

엘로아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100년 전만 해도 산과 논밭밖에 없던 동부의 시골이 이토록 번영했다.

하늘을 할퀴는 마천루가 수십 개씩 대지를 굽어보고, 거미줄처럼 복잡한 도심 속에서 천만 명의 인간이 살아간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감개를 품을 여유도 원흉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색할 여력도 없었다.

그저 몸에 박혀있는 대로, 익숙한 행동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며 속내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

에아 사달멜리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시우라 불리던 남자에 대한 의혹을 풀지 못했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삶의 목적이 다시 눈앞에 등장했음에도 놀라울 만큼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깎여나간 듯한 마음 틈새로 날카로운 여러가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얼마... 얼마 없어요 그래도 다 드릴게요... 시우는 절대로 나쁜 일 할 사람이 아니에요... 공작님도... 좋으신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후회하실 거예요...]

자신의 전 재산이라는 카드를 내밀며 그를 구하려던 녹발의 추방자.

[그는 저희 가문의 손님입니다! 이번 일과는 당연히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그런 짓을 할 사람도 아니고요!]

드물게 성을 내며 엘로아에게 언성을 높이던 데네브.

[니가 이렇게 만들었어?]

분노에 찬 눈빛으로 엘로아를 힐난하던 한 견습마녀.

눈동자에 비쳐 보이던 자신의 모습마저 생생하다.

그 순간 견습마녀와 겹쳐 보인 사람이 라피라는 것을 엘로아는 부정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앗아갈 뻔한 악당이 여기에 있었다.

“나는... 나는....”

엘로아는 제자리에서 주저앉아 자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세상 속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어가는 자들에게, 자신이라도 손을 건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경계가 흐릿해진다.

옳고 그른 것.

행해야 하는 것과 행해서는 안 될 것.

정의와 복수.

피해자와 가해자.

혜안과 아집.

이타심과 이기심.

모든 것들이 뒤엉켜 토사물처럼 가슴 위로 역류한다.

무너질 것 같았다.

이대로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낙인을 넘길 필요도 없다.

엘로아의 견습마녀는 오직 라피 티페레트 뿐이었으니.

‘티페레트’는 여기서 끝이 나는 것이다.

“아닐세.”

엘로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조각조각 기워 넣으며 억지로 의지를 북돋는다.

시체에 끈을 메다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작업이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다.

모든 것을 확인한 뒤에 끝내고 늦지 않다.

아직 모든 의혹이 풀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남자를 찾자.

엘로아는 서울의 밤하늘로 몸을 날렸다.

모든 것을 마무리할 단서를 찾기 위하여.

삐뚜름하게 기운 달은 차게 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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