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99화 (199/917)

#199

1.

엘로아는 샤론을 제압하자마자 그녀의 손목을 밟아 완드를 떨어트렸다.

그렇게 떨어진 완드를 발로 차서 저 멀리 보냈다.

원소계통의 마법을 사용하는 마녀는 대체로 완드가 없으면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무수히 많은 공적들을 토벌한 경험에서 나온 지식이다.

“내 판단은 이러하네. 이 남자는 에아와 어떻게든 연이 있는 자이고, 자네는 그것을 보조하기 위해 등장한 사악한 추방자. 어떠한가?”

샤론은 금방이라도 시우의 목을 잘라내갈 것 같은 엘로아의 검을 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

저런 무방비 상태라면 검을 내리긋는 것만으로 목숨이 날아갈 것이다.

‘공작인 그녀가 아무런 확신도 없이 일반인을 죽일까?’라는 태평한 의문을 떠올리 새도 없었다.

단지 멈추어야 한다는, 시우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만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안 돼! 안 돼! 그만 하세요! 시우는 절대로 나쁜 일을 할 사람이.... 끄윽... 흑....!”

엘로아는 비명에 가깝게 소리치며 버둥거리는 샤론의 목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급소를 붙잡힌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버둥거림으로는 부족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혹은 기술의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샤론은 엘로아에 비해 너무나도 약했다.

두 손으로 손가락 하나를 잡아떼려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컥... 커흑....흑....하지... 하지마... 진짜, 내가 말했어... 가만히 안 둘거야...! 시우는...그 물병자리 마녀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공범이에요....”

예절 훈련 중인 강아지처럼 목을 억눌린 채 안간힘을 다해 말하는 샤론.

그러나 엘로아의 표정은 무감정했다.

고작 그 정도의 말로는 그녀의 의심을 깨뜨릴 수 없다.

“죽을 뻔했다고? 에아의 손에 죽을 뻔한 자가 그녀의 마법을 다루고 내 견습마녀의 마법을 다뤄?”

“절대로, 정말로 아니라고....”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나? 아니면 그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나?”

그렇게 말한 엘로아는 검을 한층 더 짓눌렀다.

그 모습에 샤론은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키며 어떻게든 엘로아를 막으려 들었다.

“하지... 커흑...! 하지 말라고...! 진짜 아니에요 뭔가 잘못알고 있는 거예요! 제발... 제발 죽이지 말아요....”

호흡이 부자연스러운 고통과는 별개로 시우가 눈앞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온다.

폭포수처럼 펑펑 쏟아지는 샤론의 눈물을 보자 엘로아의 손끝에 힘이 슬쩍 빠졌다.

아무런 타산 없이 남을 위해 쏟는 진실한 눈물.

악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투명한 눈물이 독기에 잠식됐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하지 마세요... 진짜 잘못 알고 계신 걸 거예요... 제발... 이거, 이거 드릴게요... 안에... 54억... 있어요.... 제 전재산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 말을 들어주세요...”

샤론은 목을 붙잡던 손을 뗴더니 주섬주섬 자신의 품을 뒤져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무엇인가 싶어 봤더니 엘로아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위치포인트에서 거액의 현상금을 받아갈 때 사용하는 위치뱅크.

그 계좌 정보가 수록된 카드이다.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쏟는 샤론은 더듬더듬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얼마... 얼마 없어요... 그래도 다 드릴게요... 시우는 절대로 나쁜 일 할 사람이 아니에요... 공작님도... 좋으신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후회하실 거예요....”

지금 샤론의 행동은 이성적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시우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만으로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았다.

더 좋은 설득과 이성적인 대화법을 모조리 잊어버린 채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상태.

그저 샤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건을 내민다면 어쩌면 시우를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에 돈을 줘야겠다라는 다소 황당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바보 같은 행동이다.

백 년의 원한이 고작 몇 푼으로 멈춰 세울 수 있는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서 더욱 맥이 풀렸다.

이렇게 경황이 없음에도 간절하게 구명을 부탁할 지인이 있는 자가 과연 악인인가.

이렇게 타산 없이 모든 것을 내던지며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 드는 자가 과연 악인인가.

지금 이 위에, 악인은 누구인가?

샤론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있던 티페레트의 손아귀에서 힘이 스스륵 풀렸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

“티페레트!”

날카로운 목소리가 엘로아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검은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옥상에 착지한 사람은 데네브 제머나이, 그리고 그 견습마녀들이었다.

“뭐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드물게 커다란 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엘로아에게 다가왔다.

힐난하는 듯한 눈초리가 날카롭게 노려본다.

엘로아는 지지 않으며 대답했다.

“수상한 사람이 있어 심문 중이었네. 분명 에아 사달멜리크와 연결고리가 있는 자야. 이번 사태에도 무관하지는 않을걸세.”

“그게 무슨...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이람.”

데네브는 엘로아의 검을 탁 쳐내고는 사이에 끼어들듯 하얗게 얼굴이 질려있는 시우를 일으켜 품에 안았다.

겉으로 보기에 큰 상처는 없지만 몸 안이 엉망이 되어있는 것을 진찰로 파악했다.

동시에 이 부상이 엘로아의 손에 의해 일어난 것도 알 수 있었다.

데네브는 즉시 회복 마법을 사용하며 외쳤다.

“그는 저희 가문의 손님입니다! 이번 일과는 당연히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그런 짓을 할 사람도 아니고요!”

“나는....”

엘로아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술을 달짝이려 들때.

“조수님!”

“조수님!”

데네브의 뒤에 꼭 매달려있던 쌍둥이가 후다닥 뛰어내려 시우에게 다가선다.

“스승님, 조, 조수님 죽은 건가요? 이번에도.. 이번에도...”

“조수님, 눈 떠 보세요! 조수님...!”

옷이 더럽혀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눈물을 흘리며 시우에게 달려든 쌍둥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시우와 피, 창백한 얼굴.

쌍둥이에게 있어서는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장면이었다.

에아와 맞서 쌍둥이를 피난시켰던 시우와 다시 마주했을 때는 이렇듯 반 시체 같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하늘이 무너진 듯 몸을 벌벌 떨며 불안해하는 쌍둥이를 데네브는 차분하게 달랬다.

“괜찮아, 애들아. 얌전히 있으렴 큰 문제는 아니란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저희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죠?”

“그래, 괜찮아. 날 믿어.”

데네브는 우선 치료에 열중했다.

환부를 살피니 엘로아의 발경은 정통으로 맞은 모양이다.

살아있는 것이 용하다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시우의 뺨을 더듬으며 전전긍긍하던 오딜이 매서운 눈길로 엘로아를 바라보았다.

“니가 이렇게 만들었어?”

“오딜!”

데네브가 말릴 틈도 없이 성큼성큼 엘로아에게 다가가는 오딜.

엘로아와 제머나이 가문은 잦은 교류가 있던 만큼 오딜 역시 티페레트가 공작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가 저 꼴이 된 원흉이 엘로아임을 파악하자 계급장이고 뭐고 따질 정신이 없었다.

“조수님 잘못되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내가 똑같이 만들어줄 거야!”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악을 지르며 항의하는 오딜을 보며 엘로아는 멍하니 굳어버렸다.

저 기세와 가감 없는 분노는 단순히 데네브가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만용 따위가 아니었다.

아마 이 견습마녀는 자신의 스승이 곁에 없더라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혹은 잃을 뻔한 사람의 반응은 누구보다 엘로아 본인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조수님이 이 사건이랑 관련이 있다고? 있겠지! 우리가 위험할까 봐 고집부리면서 혼자 해결하려고 했었으니까!”

“........”

“물병자리의 마녀랑도 관련이 있지! 그때도 우리를 구하려고 그 나쁜 마녀랑 싸우다가 죽을 뻔했단 말이야...”

‘........”

“너가 뭔데, 너가 뭔데 조수님 괴롭혀... 어? 히끅... 흐아아아앙....”

마침내 오딜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엉엉 울음을 쏟았다.

그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금도 뒤늦게 달려와 만신창이가 된 시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력함과 분함, 그리고 원망스러움이 철철 넘쳤다.

울고 있는 오딜을 보던 엘로아는 망연자실하게 검을 늘어뜨렸다.

2.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뭐여 시벌.”

푹신한 침대와 가슴까지 덮여있는 이불까지 익숙한 감각이다.

시우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갑자기 나타난 3기의 백기사와 그걸 토막 치던 한 마녀.

그 마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더니 냅다 시우의 가슴에 붕권을 찔러넣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 폴 피닉스의 얼굴이 주마등에서 아른거렸던 것을 떠올리면 기억이 왜곡되거나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침대 위라니.

이게 무슨 변고인가 싶다.

“조수님!”

“오라버니!”

“끄악!”

어리둥절해 하는 시우의 시야에 불쑥 나타난 쌍둥이.

거의 몸을 날릴 정도로 시우에게 폭 안긴 오딜과 오데트는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시우의 뺨에 자신들의 뺨을 비볐다.

매끈매끈하고 말랑한 뺨이 비벼지며 훅 좋은 향기가 풍긴다.

“오라버니?”

한편 갑자기 변한 오데트의 호칭에 태클을 거는 오딜과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오데트.

“응, 오라버니라고 부르기로 했어.”

“뭐? 왜?”

“사실 어제 조수님이랑 밤 산책을 하러 갔거든. 언니가 쿨쿨 자고 있을 때. 완전 좋았다?”

“뭣...?”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에 입을 쩍벌린 오딜과 한 방 먹였다는 듯이 씩 웃음을 짓는 오데트.

오늘 내내 호칭을 숨겨왔던 것이 통렬한 한방을 위한 인내였음을 시우는 즉시 알았다.

희번덕한 눈빛으로 시우를 휙 돌아보는 오딜.

뒤에서 ‘언니도 나 빼놓고 다녀왔잖아~’라는 천연덕스러운 오데트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수님 사실이야?”

“네네, 사실이긴 한데 우선 뭐가 어떻게 됐는지 말씀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방금 알았는데 누워있는 침대 양옆을 쌍둥이가 꿰차고 있었다.

오딜과 오데트는 사전 설명에 앞서 갑자기 시우의 뺨을 한쪽씩 잡았다.

마치 제머나이 백작들이 쌍둥이를 꾸짖을 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쭉쭉 늘리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 전에! 해명해!”

“맞아요! 그런 식으로 또 혼자서 다 떠맡는 게 어딨어요!”

“조수님이 또 크게 다쳤으면 우린 어쩌라고!”

“완전 너무했어요!”

“아파요... 놔주시져....”

농담이 아니라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쌍둥이는 한동안 멋대로 혼자서 싸운 시우를 통렬하게 규탄하며 뺨을 쭉쭉 잡아당기더니 그에게 꼭 안겼다.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듯한 손길이었다.

“앞으로 우리 더 강해질게. 조수님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맞아요, 조수님이 저희 치마폭에서 덜덜 떨 수 있을 정도로 세질 거에요.”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걱정받는다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대단치도 않은 일을 칭찬받는 기분이라 뭔가 코를 쓱 문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어떤 일이 있었냐면....”

쌍둥이가 번갈아 가며 해설한 바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시우를 공격한 것은 티페레트 공작이다.

뭔가 오해가 있어 시우를 에아, 혹은 그녀와 연관이 된 사람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샤론이 먼저 도착해 시간을 벌어주었고 데네브가 연이어 나서 설득해 오해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내가 아주 큰소리쳐놨어. 다시 한번 조수님 괴롭히면 혼쭐을 내주겠다고.”

“오딜 님이요? 티피레트 공작에게요?”

“응! 비록 실제로 싸우면 내가 지겠지만 내 카리스마 넘치는 언변 때문일까?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니까?”

“.....엉엉 울면서 떼썼으면서...”

“오데트 입 다물어!”

“언니야말로 거짓말하지 마!”

언니 혼자만 활약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중얼거리는 오데트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역정을 내는 오딜.

“그럼 지금 두 분은 어디 계신가요?”

“둘 다 위치포인트로 갔어. 이번 사건이 너무 커다란 일이라 뒤처리로 분주하대.”

“샤론은요?”

“언니는 지금 방에 있을걸?”

“아, 맞아!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크게는 아니지만 다칠 뻔하셨거든요.”

“네?”

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샤론의 방을 달려갔다.

문을 열자 침대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샤론이 보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