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1.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었다.
머리를 아득하게 만드는 퀴퀴한 냄새는 악의가 가득한 어둠과 버무려져 사신의 향수처럼 코끝에 감돈다.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잘려나간 손가락, 내장 조각, 팔다리 따위가 발에 짓밟혔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희 매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쇼핑 되십시오!]
아직 전원이 나가지 않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안내 방송과 클래식 음악.
그리고 이 끔찍한 풍경의 부조화는 구역질을 일으켰다.
새로운 층도 똑같았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떠다니는 피라냐가 수십 마리.
저마다 주둥이에 피 칠갑을 했음에도 아직 공복이라는 듯 새로 나타난 먹잇감에 반응해 달려들었다.
“....개새끼들!”
트럭만한 크기의 괴어가 허공을 헤엄쳐 덮쳐드는 광경.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거나 기피할 만한 광경임에도 시우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달려드는 타이밍을 계산하고 두 자루의 롱소드를 휘두른다.
-촤아악!
왼손으로 쥔 검이 부드럽게 피라냐의 옆구리를 헤집으며 꼬불꼬불한 내장을 드러냈다.
오른손으로 쥔 검은 곧은 직선으로 뻗어 빽빽한 이빨을 부러뜨리며 피라냐의 입안에 처박혔다.
그 정도의 체격 차에도 시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것들은 완력이 약하다.
외골격 파워드 슈트처럼 신체를 강화하는 그림자의 갑옷은 200kg이 넘어가는 중량의 돌진을 거뜬히 받아내었다.
-퍽! 퍽! 퍽!
시우는 일전 에아가 했던 것처럼 리본을 비비 꼬아 탄력을 이용해 발출했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재빨리 쏘아진 리본은 몇 마리나 되는 피라냐를 단숨에 꿰뚫었다.
어찌나 기세가 흉흉한지 커다란 구멍이 뚫릴 정도이다.
-퍼덕 퍼덕 퍼덕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입을 뻐끔거리며 죽어가는 피라냐.
격렬한 전투 속에서 들리는 것은 살이 터지고 내장이 으깨지는 소리.
그리고 추락한 피라냐가 덧없이 땅바닥을 후려치는 건조한 소리뿐이다.
“시발, 시발, 시발...”
눈길을 두려 하지 않아도 배경처럼 도처에 깔린 시체에 저절로 눈이 간다.
피해자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다.
아직 유모차에서 눈을 뜨지 못하는 어린아이도 있다.
살아계셨다면 시우의 부모님과 나이가 비슷할 중년 부부도 있다.
먹잇감처럼, 한 끼 식사처럼 가벼이 사라져서 될 생명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전시에 적응한 몸과 정신은 분노를 격렬하게 연소시키지 않았다.
눈 앞을 가릴 정도의 분노는 전투의 빈틈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잿불처럼 잔잔하게, 마음이 서글거린다. 부글거린다.
시우는 욕설을 뇌까리며 막 달려든 피라냐의 턱을 건틀렛으로 잡아 멈춰 세웠다.
나이프처럼 날카로워 보이는 이빨이지만 갑옷을 뚫을 정도는 못되었다.
-퍼덕 퍼덕
당황한 듯이 열심히 몸을 꿈틀거려보는 피라냐지만 그 모습은 날개 한쪽이 잡힌 나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압도적인 완력 차이 앞에서는 헛된 몸부림일 뿐이다.
“뒤져!”
시우가 힘껏 턱을 아래로 당기자 버둥거리던 피라냐의 턱이 바스러지며 주둥이가 위아래로 찢어졌다.
손에 덜렁덜렁 매달린 피라냐의 아래턱을 쓰레기 던지듯이 패대기쳤다.
“숨어 계신 분들 나오세요! 괴물은 다 처리했어요! 밖으로 보내 드릴게요!”
시우는 대충 한 층을 정리하자마자 목청을 돋워 외쳤다.
“나오세요! 이제 안전합니다!”
혹시 외곽 쪽까지는 목소리가 닿지 못했을까 구석구석을 뛰고 달리며,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 확인을 하며 외친다.
“저기요! 아무나! 대답 좀 해봐요!”
없다.
단 한 마디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
그 많던 사람 중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답하지 않는 것이다.
“.........”
시우의 얼굴은 차가웠다.
쌍둥이가 보면 울음을 터뜨릴 만큼 일그러진 표정으로 옥상을 바라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로 층을 올라가도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피라냐들은 옷걸이와 마네킹을 해초 사이처럼 헤집으며 돌아다녔고 시우는 그것들을 죄다 때려잡았다.
망치로, 창으로, 롱소드로.
베고, 찌르고, 꿰뚫고, 으깨고, 박살 내며 전진했다.
시우는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채 일련의 작업을 자연스레 해냈다.
그 어떤 형태의 무기라도 일단 손에 쥐면 사용법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잊혔던 기억을 몸만이 기억하는 것처럼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지금은 의문을 품지 않기로 했다.
청소가 끝나면 생존자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옥상 근처에 도달했을 무렵 시우는 더는 생존자를 찾지 않았다.
“어차피 숨어있겠지. 그 사람들이 뭘 믿고 나오겠어.”
이런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작 한 사람의 말을 믿고 밖으로 나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일일이 생존자를 찾는 것보다는 더 이상의 피해확산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믿었다.
한편 옥상에 가까워질수록 확실히 보였다.
건물을 덮고 있던 불쾌한 마력의 흐름이 이곳에서 흘러넘치고 있는 것이.
검고 탁하고 무거운 마력이 진흙의 폭포처럼 옥상에서 건물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두껍게 잠겨있는 옥상 문이 시우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뒤에 다곤의 피리라는 예장이 놓여있다.
그리고 이 문을 열고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시우도 안전하지 않다.
미지의 위험이 아가리를 벌린 채 기다리고 있다.
“........”
-끼기기긱 쿵!
시우는 철제문을 그대로 밀었다.
가볍게 밀었을 뿐인데도 문을 고정하는 시멘트와 프레임이 통째로 무너졌다.
시취와 비린내로 가득했던 실내 공기와는 전혀 다른 시원하고 달콤한 공기가 귓바퀴를 스쳐 간다.
눈앞에는 제단이 있었다.
신에게 공양을 바치듯이 정성스럽게 꾸며진 제단 위에는 피리 하나가 놓여있다.
“넌 또 뭐야?”
그리고 제단에 접근을 가로막는 것처럼 그것을 지키고 있는 파수병이 있었다.
2M에 달하는 새하얀 판금 갑옷이었다.
손에 꼬나쥔 3M 정도의 장창.
상박부부터 무릎 아래까지 완벽하게 가릴 수 있는 카이트 실트.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으로 세공된 갑옷의 두께는 인간이 입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 보인다.
하얀 기사는 시우가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투구 안에서 두 쌍의 눈을 번뜩이며 일시에 임전 태세를 갖추었다.
호문쿨루스다.
마주하자마자 발끝에서 시작된 전율이 등골을 타고 정수리까지 올랐다 다시 내려온다.
지금껏 많은 사지를 넘어온 직감이 말해주고 있다.
이 녀석은 아래에서 상대했던 잡것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지금부터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시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확신도 있었다.
자신은 예전처럼 무력하지 않다.
비록 상성, 그리고 전투 이후 소진상태라는 행운이 겹쳤지만 20위계 델라 레드클리프를 이겼다.
동네를 박살내며 뛰어다니던 어미 개도 잡아 죽였다.
무엇보다 이 녀석에겐 에아 때 느꼈던 만큼 무시무시한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해볼 만 하다.
-철컥!
시우는 양손에 쥐고 있던 검 중 하나를 없애고 백기사를 본떠 방패를 만들었다.
어쭙잖게 쌍검술을 흉내낼 바에는 확실한 방어와 반격을 도모할 수 있는 방패 쪽이 훨씬 낫다.
저 피리를 멈추기 위해서는 이놈을 지나쳐가야 했다.
시우는 먼저 리본을 공중에서 꼬았다.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공격할 수 있는 원거리 견제수단을 탐색전에 사용할 예정이다.
-끼이이익!
한계까지 꼬여졌던 두 가닥의 리본이 한껏 구부렸던 스프링을 놓은 것처럼 촤르륵 허공을 가른다.
백기사의 반응은 기민했다.
원래 목표로 했던 지점에서 사라지듯 벗어난 백기사는 손쉽게 아음속으로 발출된 리본을 피해냈다.
그렇게 초격을 흘려낸 백기사는 어느샌가 시우의 목전까지 쇄도해 있었다.
2M에 달하는 무거운 갑주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속도.
“이런 시발!”
시우는 욕설을 내뱉으며 황급히 몸을 틀었다.
길고 하얀 창이 아래서 위로 곧게 찔러온다.
시우는 본능적으로 방패를 내밀었다.
흰 창이 사라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시우는 제때 공격을 포착했다.
찌르기의 궤도는 필연적으로 직선일 수밖에 없다.
반신을 완전히 가리는 방패는 유효한 방어 수단이다.
막았다.
이제 충격만 대비하면 된다.
라고 안일한 방심을 품으려던 때 시우는 오한을 느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찰나의 직감이었다.
시우는 즉시 방어를 포기하고 회피를 시도했다.
그리고 보았다.
올곧게 날아오던 창끝이 휘어진다.
굽이치는 뱀처럼, 창대의 중간부터 구부러져 몸을 뒤집어 후퇴하는 시우의 심장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캉!
시우는 창대 부분을 검으로 후려치고 나서야 집요한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시우가 제자리에서 막으려 들었다면 휘어진 창이 방패의 빈틈으로 기어들어 와 텅 빈 오른쪽 몸을 꿰뚫었을 것이다.
고작 일 합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리고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저 상식을 뒤흔드는 기묘한 찌르기가 마법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백기사의 일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일격은 순전히 육체의 기술이다.
마법처럼 감각을 현혹할 정도로 단련된 창술(槍術)이자 일신의 기예(技藝).
지금껏 지켜봐 왔던 무지성 호문쿨루스와는 명백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고작 눈의 개수로 전투력을 판가름할 것이 아니었다.
이놈은 달랐다.
몇 걸음이나 물러선 시우와 곧장 달려드는 백기사.
백기사는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팔을 어깨 위로 올렸다.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듯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호쾌한 오버핸드다.
그 덕에 겨드랑이가 드러나고 몸통이 비었다.
지금 측면을 파고든다면 틈을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초 현묘한 창술에 당황했던 시우는 승부수를 조금 유보하기로 했다.
위축된 것이다.
대신 신중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맞대응한다.
-쉭! 쉭! 쉭!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어느샌가 오버핸드에서 언더핸드로 변한 창이 빠르게 3번의 공간을 점했다.
공간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흉맹한 찌르기였다.
-캉! 캉! 캉!
한 번 한 번도 제대로 식별하기 힘든 공격을 방패로 가로막은 것은 순전히 반사신경과 저절로 움직여준 몸 덕분이었다.
시우는 뒷걸음질 치며 방패에서 느껴지는 찌르르한 떨림을 느꼈다.
손이 아프다.
백기사는 단순히 완력을 놓고 봐도 시우와 비슷해 보였다.
게다가 어정쩡한 자세로 애매하게 힘이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체중과 힘이 창끝에 실린 것처럼 묵직하다.
창이라기보다 파일 드라이버에 찍힌 듯한 감각이었다.
낭패다.
지금까지 시우가 마녀, 혹은 호문쿨루스를 상대할 수 있던 것은 마법적인 상성을 활용하거나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법칙은 대다수의 마법에 대해 상성으로 우위를 점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백기사의 강함은 순전히 물리적인 힘과 창으로 부리는 기교에서 나왔다.
임기응변이나 잔머리로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조금의 쉴 틈도 없다.
심지어 리본을 활용할 여유도 없었다.
이번에는 방패를 앞으로 내민 백기사가 돌진해 왔다.
이 이상 물러서면 안 된다.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기 전에 반격해야 한다.
본능의 속삭임.
시우도 방패를 앞쪽으로 내민 채 뒷발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든다.
-쾅!!!!!
냉병기끼리 부딪혔다기에는 믿기지 않는 충격과 소음.
한 사람과 한 호문쿨루스가 밟고 있던 옥상의 시멘트가 쿠키처럼 갈라진다.
통했다.
처음으로 호문쿨루스의 공격에 간격이 생겼다.
다시 한번 방패치기를 시도하는 호문쿨루스에 맞춰 시우도 우직한 육탄공격을 시도했다.
“엇!”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투구 안을 가득히 울릴 충격에 이를 악물고 있던 시우의 입이 덧없이 벌어진다.
한껏 마주 달려올 것처럼 굴었던 백기사가 이번에는 전혀 맞대응을 해주지 않은 채 은근슬쩍 몸을 뒤로 뺀 것이다.
힘차게 내디뎠던 발끝의 균형이 무너지고.
몸 전체가 쏠리듯 앞으로 넘어간다.
기울어져 가는 시야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창날이 보였다.
“크윽!”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시우를 구한 것은 두 가닥의 리본이었다.
리본을 팔처럼 이용해 억지로 땅을 떠받들며 몸을 휘두르는 것처럼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허억... 허억....”
그것은 꽤나 의외였는지 백기사는 거리를 섣부르게 좁히지 않고 척 창을 겨눈다.
창날에 걸려 눈꺼풀이 깊게 찢어졌다.
흥건하게 흐른 피가 오른쪽 시야를 붉게 물들이는 것이 느껴진다.
천만다행으로 안구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안 그래도 기술의 격차가 현격한 상태에서 시야가 방해받는다는 것은 너무 큰 패널티다.
완벽하게 궁지에 몰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