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95화 (195/917)

#195

1.

신대륙을 개척하고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 굳게 믿었던 16세기 무렵.

마녀들 역시 과학 기술과 마법을 접목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미천한 인간의 기술이라 한들 위대한 마녀의 마법이 더해진다면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리라 믿었던 것이다.

연금술에 정통한 마녀들은 물론 다른 계통의 마녀들도 마공학의 가능성에 몰두한 바야흐로 마공학의 시대였다.

물론 100년도 가지 않아 시들시들 인기가 쇠락하고 이제 대부분의 마녀는 마공학을 하나의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지만, 예장용인 양 호화롭게 꾸며진 ‘예니체리’도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공격형 아티펙트였다.

이 총은 화약도 납탄도 필요 없다.

마력을 빚어 마법에 탄환을 연성한 뒤 몇 배의 위력으로 발출하는 아티펙트이기 때문이다.

떡갈나무로 만들어진 총몸 위로 새겨진 마법식이 마력을 가져간다.

그렇게 빨려 들어간 마력은 화약접시를 거치며 하나의 탄환을 만들어낸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총열 내부에 새겨진 특수한 강선이 그 위력을 수십 배로 증폭시키고 또한 압축시켰다.

-탕! 탕! 탕!

순식간에 쏘아진 마탄은 오렌지빛의 자취를 그리며 피라냐를 폭사시켰다.

“언니!”

“알아!”

쌍둥이는 서로 복잡한 신호를 주고받을 필요도 없이 각자 서로의 빈틈을 보조하며 막힘없이 피라냐를 소탕해나갔다.

구운 진흙으로 만든 원반이나 날아가는 오리를 맞추기보다 훨씬 쉬웠다.

표적과의 거리도, 표적의 크기도, 움직임마저도 단순한 까닭이다.

총탄이 미끈한 비늘을 찢는다.

이빨을 부수고 삐뚜름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눈알을 파헤친다.

메케한 화약 연기 대신 자욱하게 흩어지는 마력의 연기 속에서 쌍둥이는 원 없이 머스킷을 난사했다.

수십, 어쩌면 백 마리까지 될지도 모르는 피라냐가 눈대중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을 때 등 뒤에서 푸른 빛이 번쩍이며 커다란 마력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시우가 시민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끝냈어요.”

“역시 조수님이야 멋져!”

“나머지도 저희가 할게요!”

시우의 턱밑으로는 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이 정도의 인원을 좌표이동으로 움직이는 것은 처음 있던 일이다.

거기에 이 안의 흐르는 마력은 일반적인 것과는 뭔가 달랐다.

마법의 발동을 방해한다고 해야 하나 끈끈하게 들러붙는다고 해야 하나.

흐르는 진흙처럼 느릿하게 변화하며 연산을 방해하는 탓에 평소의 배나 되는 계산을 억지로 수행해야 했다.

복잡한 계산을 암산하는 과정에서 지끈거리는 두통과 매스꺼움이 느껴졌다.

“후우....”

“조수님 괜찮아?”

“괘, 괜찮으세요?”

시우의 안색이 퍽 나쁘게 느껴졌는지 마지막 피라냐까지 깔끔하게 정리한 쌍둥이가 물어온다.

대충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훔쳐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못 견딜 정도는 아닙니다.”

“조수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가요?”

“방금 저 생선들을 잡다가 느낀건데...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예장’에 대해서 읽은 기억이 있는 것 같아요.”

“어? 마, 맞아!”

오데트의 말에 오딜도 퍼득 깨달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백작이 쌍둥이에게 선물했던 서고에는 온갖 잡다한 서책이 쌓여있었고, 그 안에는 역사상 존재한 다양한 예장과 아티펙트를 다룬 것도 있었다.

“저 괴물들은 호문쿨루스가 아니에요. 호문쿨루스라기에는 생김새도 전혀 다르고 무엇보다 결정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렇다.

지금까지 시우가 상대해온 호문쿨루스는 죄다 동물형이었지만 원래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기괴한 생김새였다.

그에 비해 저 피라냐는 수조에서 건져 확대해놓은 것처럼 굉장히 멀쩡한 형태이다.

뭐, 그래서 더 기분 나쁘지만.

“그래서 뭐죠?”

“아마 ‘다곤의 피리’라는 예장으로 알고 있어요. 오백 년 전에 한 마녀가 지녔던 물건이라는데... 주변을 이계화(異界化)시켜서 사역마들의 사냥터로 만드는 예장이라고....”

“그러니까 저건 창조의 마녀가 만든 호문쿨루스가 아니라 사역마라는 뜻이야. 사역마를 존재하게 하는 매개가 예장일 테니까 그게 없어지면 이 난리통도 사라진다는 의미지.”

이 난리통에서 몇 명이 죽어 나갔을까?

살아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살아있다면 아마도 괴물의 눈을 피해 곳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생존자를 찾아 일일이 밖으로 보내는 것보다 이 사태를 종식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예장의 위치는 우리가 찾아볼게.”

“그럴 수 있어요?”

“상시 발동되는 종류라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럼, 목표는 정해졌네요.”

오딜과 오데트는 서로 손을 맞잡았다.

참사가 벌어진 백화점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운 노랫가락이 조화를 이룬다.

인간의 발성과는 확연히 다른 신묘한 음색은 차라리 현악기의 선율에 가깝다.

주위의 마력이 맥동하더니 잔잔한 파장이 되어 사방으로 뻗기 시작했다.

음파를 통한 초지각은 근방에 머물지 않았다.

아주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더라면 건물의 어느 곳이든 깊숙하게 뻗어 매핑을 시작했다.

그렇게 2~3분의 시간이 흐르고.

“찾았다.”

“찾았어요.”

쌍둥이는 노래를 멈추고 눈을 떴다.

“이 빌딩의 옥상이야.”

“같이 가요 조수님! 저희도 이제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예전 에아와 격돌했을 때 벌벌 떨기만 했던 쌍둥이는 그 일을 계기로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았다.

즐비한 시체와 코끝을 찌르는 피냄새가 느껴지지 않을 리 없건만 두려운 기색을 꾹 누르고 시우를 돕겠다고 나서니 말이다.

대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함께 갈 수 없다.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네?”

쌍둥이는 시우의 대답에 발밑을 휙 내려보았다.

시민들을 탈출시켰던 좌표이동식이 발밑에 뻗어있다.

둘이 열심히 피리를 찾는 동안 시우는 둘을 오피스텔까지 옮기기 위한 계산을 완료한 것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쌍둥이가 마법진 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급하게 몸을 움직일 때.

“잠깐! 이런 말 없었잖...!”

“싫어요! 저희도 조수님이랑 싸울....!”

푸르스름한 빛이 번쩍하더니 쌍둥이의 시끌시끌한 목소리도 사라졌다.

“후우....”

좌안의 낙인에서 빨려 나가는 마력.

이번에는 훨씬 거리를 길게 잡았더니 고작 두 명 인데도 꽤 무리가 왔다.

어쩌면 10명의 시민을 대피시킨 직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나중에 사과할게요.”

시우는 들리지도 않을 사과를 중얼거렸다.

의기투합해 시우를 도우려는 쌍둥이의 마음은 고맙다.

하지만 역시 이곳에 남겨두는 것은 위험했다.

그저 잔챙이들은 사냥하며 사람들을 돕는 데 집중했다면 리스크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시우가 상대한 피라냐는 호문쿨루스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약했고 쌍둥이의 머스킷 총은 그것을 무찌르기 충분한 전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다곤의 피리라는 ‘예장’을 활용해 이 지옥을 의도적으로 일으켰다면 그 정체는 아마도 공적.

당연히 예장 쪽으로 다가갈수록 방비가 철저할 것이고 따라서 위험도도 높아질 것이다.

시우라고 공적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곧 사태를 파악한 마녀들이 달려올 것이다.

즉, 시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학살의 현장을 방불케 하는 끔찍한 참상.

그것을 보고 있자 가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도 좌시할 수 없다.

그저 일상을 보내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마녀는커녕 마법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선량한 시민들.

지금 이 순간에도 건물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겠지.

제 한 몸 사리겠다고 그걸 수수방관하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의 생존자라도 더 생길 수 있게,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나아갈 생각이다.

“어떤 미친년인지 얼굴이나 보자.”

시우는 다시 한번 몸을 그림자로 감싸고 양손에 검을 쥐었다.

투구를 뒤집어쓰고 피가 계곡처럼 흐르는 어둠 속으로 뛰쳐나갔다.

2.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온지요...?”

위치포인트 서울 광화문 지부.

지부장실에 앉아 느긋이 오후의 녹차를 즐기던 수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한 마녀의 보고 때문이었다.

“다곤의 피리가 강남 도심 한복판에서 발동되었다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습니다.”

호문쿨루스나 공적에 의한 인명피해를 숱하게 접하고 듣는 마녀조차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의 대사건이었다.

다곤의 피리는 케테르 공작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심해의 마녀’, 그녀가 사용했던 예장 중 하나이다.

사실 그 자체는 마녀에게 그리 위험한 예장이 아니었다.

일대를 이계화시켜 사역마를 풀어놓는다 한들 호문쿨루스보다도 약한 괴어들은 마녀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다곤의 피리의 본질은 인간을 학살하는데 맞춰져 있었다.

피리가 불러낸 이계속에서 괴어에게 사냥당한 인간의 생명력은 막대한 마력으로 치환되고 피리 속에 저장된다.

즉, 전투를 위한 예장이라기보다는 마력을 수집하는 것이 목적인 물건이다.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강남 한복판에 인외마경이 열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막아야 할 인간으로서의 의무가 어깨에 짊어져 있다는 것.

“지금 즉시 연락망이 있는 마녀들의 소집을 부탁드리옵니다.”

“넷!”

수아는 피리가 있는 곳으로 움직일 채비를 갖추는 한편 티페레트에게 연락했다.

“귀주 들리시옵니까?”

수아가 목에 걸고 있는 귀걸이가 웅웅거리며 진동한다.

이면결계의 내부에서는 전파를 사용한 통신이 불능이 된다.

이 귀걸이는 그런 이면결계에서도 통신할 수 있게끔 제작된 마도구였다.

[듣고 있네. 거의 도착했네]

“흉란의 주축이 된 것은 다곤의 피리. 소유주와 목적은 불명이옵니다. 생존자를 수습하고 피해를 막는 것은 소녀를 비롯한 다른 마녀에게 일임하시옵고, 귀주께선 원흉의 확보를 부탁드려도 되겠사옵니까?”

[케테르 공작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사옵니다.”

[알겠네]

용건만 주고받은 통신은 끊겼다.

마녀가 마법을 사용해 세자릿수, 어쩌면 네자릿수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했다.

그럼에도 케테르 공작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라면 이미 알고 있음이 틀림없는데도.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충분히 직접 몸을 움직일 만도 한데.

이번에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시온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수아는 중얼거렸다.

3.

엘로아는 사건이 발생한 코엑스를 향해 힘껏 내달리고 있었다.

건물 외벽을 박차며 높다란 빌딩의 옥상 끝에서 옥상 끝을 날아오른다.

저 멀리서 거대한 구형의 결계에 감싸인 건물이 보였다.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와 대피 명령이 강너머까지 들린다.

원체 서울이 스모그로 공기가 좋지 않다지만 그 부분만 유독 곰팡이가 파먹은 듯이 짙푸른 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저 정도로 침식당했다면 이면결계로 위를 덮어씌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현대에 들어 저 정도로 커다란 사고는 없었다.

“빨리 가서 사람들을 구해야....”

습관처럼 중얼거리던 엘로아는 깨달았다.

놀라운 만큼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마땅히 가슴에서 솟았어야 할 의분도, 저 안에서 희생당했을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애도도.

텅 비어버린 것처럼 마음을 한차례 휘감고 사라질 뿐이다.

지금의 엘로아는 모든 진력이 다 한 것 같은 허무함 속에서 스스로 의무와 속죄라고 규정지었던 것을 수행할 뿐이었다.

“.......”

삶의 목적이 없다.

이유도 없다.

공허한 의무만이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복수심.

그 원동력이 사라지자마자 위선이 모조리 벗겨지는 꼴이라니 우습기도 하지.

무심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문 엘로아는 그럼에도 사고지역을 향해 날듯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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