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1.
“컥! 커억! 컥!”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피라냐의 입에 들어간 학생은 날카로운 이빨에 폐가 난자당해 비명다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잘 익은 산딸기를 입에 넣었을 때 즙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피라냐의 입가에서는 예쁜 선혈이 흘렀다.
“꺅!”
“........”
“뭐야 이거....?”
“죽었나?”
“이거 진짜야?”
“몰래카메라 아닌가?”
“지랄 이딴 게 무슨 몰카야. 이건 고소해야지.”
그런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도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수군거리기나 할 뿐 도망치지 않았다.
차라리 총소리가 들렸더라면, 폭발물에 휘말려 사람이 날아갔더라면, 흉기를 든 강도가 난동을 부렸더라면.
이보다는 확실한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의 할로겐 조명 아래 거대한 물고기가 와그작와그작 사람을 씹어먹는 광경.
그 B급 공포영화 감성이 물씬 풍기는 광경에 뇌가 위기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라냐의 이빨 사이로 시래기가 낀 것처럼 학생의 팔다리가 덜렁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착각이라 치부할 수 없는 지독한 물비린내가 비강을 채우고 나서야.
턱을 타고 흐르는 이상하리만치 많은 혈액이 모조 대리석 위에 웅덩이를 이루고서야.
“씨, 씨, 씨발 뭔데!!!”
“꺄아아아아악!”
“119! 112! 다 불러!”
“뭐야! 왜 전화가 안 돼!?”
“엄마! 엄마!”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다.
비명과 눈물 그리고 절규와 혼돈으로 아비규환이 된 백화점의 남성복 코너.
새끼 거미처럼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검은 갑주가 공포의 원인이던 피라냐를 베며 지나간다.
2.
에스컬레이터의 중간 부분에서 뛰어내린 시우는 순식간에 그림자의 갑옷과 롱소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체중과 추락하는 힘을 더해 전력을 다한 일격으로 피라냐를 베어 넘겼다.
묵직한 손맛이 있다.
시우의 검날이 지나가자 깔끔하게 이등분된 피라냐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피라냐는 몸이 반토막 난 채 바닥에 떨어지고서도 입을 뻐끔거리고 꼬리를 퍼덕였다.
그 모습조차 소름이 끼친다.
“이리 모여요!”
시우가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그러나 극한의 혼돈에 달한 군중이 고작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따를 리 없다.
낭패다.
“이건 시발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시우는 안대를 벗고 주위를 살폈다.
이 피라냐가 호문쿨루스임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주위의 마력 흐름으로 보았을 때 이 내부는 이면결계가 아니었다.
애초에 호문쿨루스는 사냥감을 사냥할 때 이렇게 많은 인간을 결계 내부로 들이지 않는 것도 샤론에게 들어 알고 있다.
즉, 호문쿨루스가 이면결계도 없이 현세에 등장해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말이다.
““조수님!!!””
혼란스러워하는 시우에게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달려오는 쌍둥이.
“일단 제 뒤에 붙어 계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었다.
어떤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임전 태세로 들어간 시우는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냉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목숨을 건 전투가 꽤 여럿 있었음을 감안해도, 마치 백전노장처럼 마음의 혼돈과 별개로 두 눈은 전장의 상황을 살피며 변수에 대비하고 있다.
“데네브 님께 연락은 되나요?”
“아니... 안 돼!”
“저, 저도 아티펙트랑 휴대전화 둘 다 해봤는데 전혀 되지 않아요.”
“이게 도대체 무슨 개 같은....”
이 혼돈을 야기한 피라냐 한 마리는 이미 죽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그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가 알려주고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아직 시작조차 않았다고.
뭔가 또 올 것이다.
-팅 팅 팅 팅 팅
시우의 예상에 답하듯 백화점 내부의 모든 조명이 차례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치 깊은 심해에 침잠한 것처럼 그 광량이 한계까지 억눌린 것뿐이다.
백화점에는 달리 창문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건물 전체가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꺄아아아악!”
“뭐야, 뭔데? 테러야?”
어둠은 공포를 이끈다.
백화점의 소란 또한 극에 달했다.
현재 층은 물론 에스컬레이터의 위 아래층에서도 소란이 커졌다.
“아.....”
그리고 시우는 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족관을 배회하는 것처럼 유유히 지느러미와 꼬리를 휘저으며 나타난.
수십 마리의 피라냐를.
몸이 굳은 시우의 옆으로 만류할 새도 없이 쌍둥이가 튀어나왔다.
각자 한 정씩 근사하게 세공된 머스킷 소총을 들고 있다.
조준과 동시에 총탄이 발사되자 허공을 배회하던 피라냐 두 마리가 퍼드득 떨어졌다.
“조수님, 우리도 도울게!”
“저희 한 몸은 저희가 지킬 수 있어요!”
“오딜 님, 오데트 님.”
에아 사달멜리크의 습격 사건 이후 쌍둥이들이 최소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백작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아티펙트 마탄을 쏘는 머스킷 ‘예니체리’였다.
“우리도 사냥이라면 자신 있어.”
“많이 해봤거든요!”
시우는 더 고민하지 않고 곧장 두 가닥의 리본과 쌍검을 만들어내고 피라냐 사이로 뛰어들었다.
제발 가만히 있어라.
제발 움직이지 말아라.
시우의 바람이 허무하게, 왁! 하는 불특정 다수의 경악과 함께 순식간에 피보라가 일었다.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가 몰려들어 사냥감을 물어뜯는 것과 똑같이 수십 마리의 피라냐가 일제히 자기 주변의 인간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한 학생이 이빨에 물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빨에 꿰뚫려 올라간 학생에게 시체에 꼬린 파리 떼처럼 여러 마리의 피라냐가 일제히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사지는 갈기갈기 찢기고 뜨겁고 탁한 액체만이 후두둑 떨어졌다.
“꺄아아악! 엄마아아!!!”
“으아아악, 이거, 이것들 다 뭐야!”
“상태창! 스테이터스! 인벤토리! 나는 유희 생활을 각성한다아아아아악! 끄악! 물렸어!”
시우는 그 순간 벌써 5마리의 피라냐를 베어넘기고 리본으로 꿰뚫고 있었다.
피라냐는 형편없을 정도로 약했지만 재빨랐다.
대응할 수단이 없는 민간인에게는 공중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맹수와 다를 것이 없었다.
거기에 영악하기 그지없어 제대로 된 전투를 해주기는커녕 시우를 피해 차려진 만찬을 만끽하기 바빴다.
시우가 열심히 달려들어 몇몇을 베어도 주변 사람이 죽어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쌍둥이도 열심히 총을 쏘아가며 보조했지만 손바닥으로 태풍을 막는 격이었다.
“여기로 와! 여기로 오라고!”
아무리 시우가 목청 터지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 해도 비명과 절규 그리고 살과 뼈가 찢어지는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기껏해야 10명 정도 되는 눈치 빠른 사람만이 열심히 총을 쏘는 쌍둥이 옆에 붙어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순식간에 층 전체가 시뻘건 피로 물든다.
이제는 어느 곳을 딛어도 검붉지 않은 곳이 없었다.
코끝을 찌르는 악취와 쇳내, 내장 쪼가리와 잘려나간 팔다리 따위가 진열대 위에서 차갑게 나뒹군다.
“이런... 개 좆같은 일이....”
시우는 머리에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늦었다.
시우가 10마리의 피라냐를 리본과 검을 이용해 잡아 족치는 20초 만에 이 층에 있던 대부분 인간이 피라냐의 먹이가 되었다.
“저, 저기요. 이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방송 촬영 그런 거죠? 이거 실제 상황 아니죠?”
“트, 특수 부대 이런 겁니까?”
“엄마... 엄마... 무서워... 살려줘....”
쌍둥이의 옆 있던 생존자들 저마다 패닉에 질린 모습으로 갑주를 입고 괴물을 학살하던 시우에게 매달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이게 현실은 맞는 걸까?
저것들은 아마도 이 층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몇 명의 사람들이 휘말린 거지?
더 많은 사람을 살릴 방법은?
누군가 배후로 있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규모의 사건이다.
누구의 사주지?
다른 마녀들은 뭐 하고 있는 거지?
쌍둥이는 먼저 보내야 할까?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일까?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수님!”
“조수님!!!”
갑자기 귀에서 들리는 커다란 쌍둥이의 외침에 시우는 헉 숨을 들이켰다.
“정신 차려! 넋 놓고 있다고 뭘 어쩔 거야?”
귀에서는 이명이 들려오고 흐릿해졌던 시야가 뚜렷해지자 남아있는 먹잇감을 먹어치우기 위해 나란히 이쪽을 바라보는 피라냐만이 눈에 들어왔다.
만만한 먹잇감과는 다르게 저항이 거센 시우와 쌍둥이를 경계하는 것인지 쉽사리 덤벼들지 않는 피라냐 떼.
오딜은 대치 상태로 머스킷을 조준한 채 물었다.
시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고민은 나중에.
우선은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일단, 대피시키겠습니다.”
“대피? 어떻게요?”
조금은 정신이 돌아왔다.
“좌표이동식을 사용할게요. 예전에 오딜님과 오데트님을 탈출시켰던 마법이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엄호 가능하신가요?”
“물론이지, 맡겨만 둬.”
오딜은 당차게 말했다.
시우의 체감상 이 피라냐들은 일전에 상대했던 들개보다 힘이 약하다.
다만 속도만큼은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개체보다도 빨랐다.
속도가 빠르고 공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시우처럼 근접 전투에 특화된 유형이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오딜과 오데트의 사격은 시우가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도 훌륭한 것이었다.
비록 견습마녀라 할지라도 훌륭한 화력의 공격형 아티펙트를 들고 있는 이상 믿고 맡겨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모두 제 앞으로 모여주세요.”
“이게 뭔지 설명이나 해주라니까요! 아저씨 군인이에요?”
“뭐가 뭔지 말해줄 수는 있잖아요!”
이 혼란의 상태에 패닉에 빠진 생존자들은 혼자 무엇인가 알고 있는 시우에게 따지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아저씨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데,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그냥 모이라고. 도망치게 해주려는 거니까.”
그러나 시우가 피에 절은 칼을 털어내며 큰소리로 외치자 군소리가 쏙 들어갔다.
저들로서는 갑자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나, 그런 괴물을 삽시간에 도륙하며 피를 뒤집어쓴 남자나 똑같이 두려운 대상이겠지.
그걸 알고 있기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편이 통제가 편하리라 생각했기 떄문이다.
“오딜님, 오데트님 두 분도 근처에 서 주세요.”
시우는 여기 남을 작정이었다.
아마 재난을 피해 숨어든 생존자가 있으리라 생각 한다.
이 학살의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쌍둥이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말했다시피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이상 대피시키고 안의 상황을 밖에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오딜과 오데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도 조수님과 싸울 거야.”
“맞아요! 사람들을 구할 거에요!”
“그렇게 말씀하실 때가 아닙니다! 데네브 님께 알리셔야죠!”
“그건 여기서 나가게 되는 사람에게 시키면 되는 일이야. 전화 한 통이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만....”
덧붙여 설명하려는 시우의 말을 오딜은 단호하게 끊어냈다.
“조수님, 귀족의 명예는 가문의 이름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고귀한 자로서 의무와 책임을 수행할 때 나오는 거지.”
“조수님이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거잖아요?”
그런 걸 알려준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지금은 당장 한 사람의 조력이라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쌍둥이가 들고 있는 저 총은 끔찍한 피라냐를 상대로 훌륭한 전력이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민간인의 대피를 우선으로 할게요. 다만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은 낌새가 보이면 두 분을 먼저 대피시키겠습니다.”
행동의 우선순위가 정해지자 마자 시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좀 전부터 이면결계와는 전혀 다른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훨씬 더 무겁고, 깊은 바다에 짓눌린 것처럼 거무칙칙한 색상을 지닌 마력이 일대에 대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훨씬 멀리, 이 빌딩의 바깥 부분까지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시우는 생존자 중 한 명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이곳에서 나가게 되자마자 이 번호, 그리고 이 번호로 연락해서 상황 설명 부탁합니다. 꼭 해주셔야 해요.”
“뭐, 뭐라고 말하면 될까요?”
“그냥 코엑스에 괴물이 나타났다고만 해주세요.”
“네, 네...”
휴가 나온 것으로 보이는 까까머리의 군인은 벌벌 떨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히 위로를 해줄 상황 따위는 아니다.
“오딜님, 오데트님 그럼 엄호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의 발밑으로 푸른색 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시우의 자성마법 좌표이동식이 발동하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인원과 거리.
계산에는 어림잡아 1분 이상이 소요된다.
그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쌍둥이의 몫이였다.
한동안 사태를 관망하던 피라냐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푸른 빛에 자극을 받았는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생존자를 덮쳐들 준비를 하는 포식자들.
시우는 쌍둥이를 믿은 채 눈을 감고 완벽한 집중에 빠져들었다.
오딜과 오데트는 예전처럼 벌벌 떨지 않았다.
일전에는 보호만 받았지만 지금은 둘이서 조수님을 지켜야 할 때이다.
오딜과 오데트는 시우를 가로막듯이 서서 머스킷 소총을 꾹 움켜쥐었다.
“준비됐지 오데트?”
“물론이지 언니.”
쌍둥이는 척 총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겨 마력의 산탄을 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