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93화 (193/917)

#193

1.

이 커다란 빌딩이 죄다 아쿠아리움인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전시관이 모여있는 건물인데 각종 백화점, 식당, 영화관 등 편의 및 오락 시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오늘 이곳에서 뽕을 뽑기로 한 만큼 시우는 곧장 음식점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후아... 맛있었다.”

“조수님 배불러서 걷기 힘든데 업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따 집에 가서 업어드릴 테니 일단은 걸으시죠.”

“뭐? 그럼 나도!”

“네, 오딜님도 번호표 뽑으셔요.”

오늘의 점심은 김치찜.

조수님의 고향 음식을 먹고 싶다고 야단법석을 떨어대는 쌍둥이들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일단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 골랐어도 쌍둥이 입에 맞을까 걱정했는데 모두 기우였다.

셋이 들어가서 거의 8인분을 먹고 나왔으니 말이다.

“맵지는 않으셨나요?”

“전혀? 짜기는 했지만 그대로 동치미랑 먹으니까 괜찮았어.”

“전 그 보들보들한 수육이 참 맛있었어요. 아, 그리고 굴이 들어간 김치두요!”

“입에 안 맞으실까 봐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역시 인터내셔널한 코리안 트래디셔널 푸드 김치.

고급스러운 쌍둥이의 입맛까지 단박에 사로잡은 것을 보니 뭔가 국뽕이 차오른다.

젓가락질이 서툰 쌍둥이를 위해 시우가 손수 김치를 찢어줬는데 어찌나 잘 받아먹던지 끊임없이 먹이를 조르는 아기 새에게 먹이를 주는 기분이었다.

이어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향한 곳은 시끌벅적한 게임 소리와 음악 소리로 흥성이는 오락센터였다.

이런 분위기를 처음 접하는 쌍둥이에게 오락실은 아쿠아리움과는 다른 의미로 별천지였다.

“와, 와, 와... 이건 다 뭐야?”

“아, 아티펙트가 한가득....!”

남아있던 아이스크림을 우걱우걱 입으로 밀어 넣고(참고로 아이스크림은 평가가 미적지근했다) 쪼르륵 달려가는 쌍둥이.

스크린에 흐르는 게임 영상과 온갖 기이한 기믹이 장착된 게임기를 이것저것 둘러보기 바쁘다.

“조수! 이거 봐! 뭐가 막 빙글빙글 돌아!”

“조수님 이것 보세요! 반짝거려! 인형? 인형이 이렇게 많아?”

어째 아쿠아리움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통통 튀어 다니는 쌍둥이.

어찌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는지 잠깐 눈을 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시우는 만 원짜리 세 장을 게임 카드로 교환했다.

“하고 싶으신거 있으신가요?”

“이게 다 뭔데? 뭘 할 수 있는 거야 이걸로?”

“일종의 오락이죠.”

“체, 체스나 오리 사냥 같은 거요?”

“어.....”

전기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쌍둥이에게 비디오게임을 설명하려면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쌍둥이의 관심은 금방 오락기 쪽으로 옮겨갔다.

오딜의 경우에는 장총 모양의 컨트롤러가 달린 서부시대 배경의 건슈팅 게임이었고, 오데트는 핑크핑크한 인형뽑기 쪽이었다.

“나 이거 해볼래.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

“아, 줘보실래요? 이쪽 페달을 밟으면 엄폐할 수 있고요, 화면에 표적을 대고 쏘시면 됩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발사되는 건 똑같고... 어디 보자 장전은 총을 흔드시면 되네요.”

“해볼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더니 화면에 총을 겨누는 오딜.

오딜이 튜토리얼을 하는 동안 이번에는 쪼르륵 달려온 오데트가 시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조수님, 조수님! 저는 이거 해볼래요. 인형 어떻게 가져가는 거예요?”

산처럼 인형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인형뽑기 기계 앞에 섰다.

이건 보면서 하는 편이 빠를 것 같아 대충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거는요. 이렇게 이 레버를 조작하고 버튼을 누르면 크레인이 내려와서 인형을 집어가요.”

“앗! 아깝다! 거의 될 뻔했는데...”

확실히 둘 다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똑똑해서인지 학습이 무척 빠르다.

오데트는 곧장 레버를 잡고 아까부터 눈독을 들이던 토끼 인형을 열심히 노려보았다.

아까 아쿠아리움에서도 토끼를 유독 귀여워하고 파자마도 토끼 옷으로 사더니...

토끼 고기가 맛있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의식의 흐름으로 예전 아버지와 시골에 갔을 때 먹었던 토끼탕이 생각났다.

“...시우 오라버니.”

오딜이 미아가 되지 않게 시야에 넣어두며 오데트의 옆을 지키고 있던 시우.

사악하게 설정된 크레인으로는 도저히 뽑을 수 없을 것 같은 토끼 인형을 노리던 오데트가 별안간 그를 불렀다.

오딜이 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는지 모처럼 오라버니 호칭이다.

단 둘이 있으면 호칭이 바뀐다니.

이거 뭔가 바람피우는 불륜커플의 기분인데.

“네, 오데트 님.”

“그냥 불러봤어요. 어제 모처럼 새로운 칭호를 만들었는데 하나도 못 써서 속상했거든요.”

“그러신가요?”

“네, 오라버니 덕분에 너무 즐거운 일들을 많이 경험하는 것 같아요. 감사하다구요.”

“저야 제머나이 백작가 덕에 호의호식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건 조수님의 선행이 불러온 결과일 뿐인데요.”

시우는 오데트의 모습이 퍽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끼 인형에 집중하느라 그 손길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오데트가 깜짝 놀라 이상한 곳에 크레인을 강하시켰다.

이윽고 50이라고 적혀 있던 시도 횟수가 0으로 변하고 마지막 크레인이 상품 사출구 위에 허망하게 매달렸다.

불행히도 오데트는 시우가 충전한 게임카드에 돈을 전부 쓰고도 단 하나의 인형도 뽑지 못했다.

-띠리리링!

게임오버를 알리는 전자음.

오데트는 바르르르 어깨를 떨며 시우에게 항의했다.

처음에는 순전히 재미 위주로 시작했던 오데트도 슬슬 오기가 생긴 모양이다.

“이거 진짜 말도 안 되거든요? 저는 분명히 제대로 잡았단 말이에요! 크레인이 내려오며 회전하는 경우의 수 5가지도 확실하게 계산했어요! 정확하게 머리를 잡았는데 토끼를 들어 올리기는커녕 꼼짝도 하지 않잖아요! 이건 사기예요!”

“하하....”

시우가 보기에도 이상하긴 했다.

애초에 인형 사이에 파묻혀 있는 구도라 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오데트는 울분을 삼키며 시우에게 물었다.

“마법 써도 되나요? 염동만 쪼끔 쓸게요.”

“당연히 안되죠. 그런 게임이 아니거든요. 제가 뽑아 볼까요?”

“아니요! 이건 저의 싸움이에요!”

“음, 그럼 충전 좀 더 해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전 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검토해봐야겠어요.”

오데트는 다부지게 입술을 다물며 씩씩거렸고 시우는 게임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다가 아직까지도 게임기 앞에 서 있는 오딜을 발견했다.

“어?”

그러고보니 이미 꽤 시간이 지났을 텐데?

시우는 슬쩍 연신 비명과 폭발음이 흘러나오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게임 안에서 오딜의 모습은 서부의 무법자 그 자체였다.

빛살같이 적을 쫓아 움직이는 총구와 사정없이 당겨지는 방아쇠.

적을 따라 움직이는 트레킹도, 순간적으로 끌어치는 플릭샷도 10발을 쏘면 10발 모두 깔끔하게 적에게 클린히트한다.

갑작스레 화면에 나타나는 장애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딜은 척 보기에도 숙련된 견착과 조준으로 순식간에 5개의 수류탄을 공중에서 폭발시켜 버렸다.

여러명의 적이 사방에서 등장해도 페달을 딸깍딸깍 밟고 총을 흔들어 장전하더니 순식간에 청소해버린다.

“이건 또 뭔...”

시우도 남자이기에 이런 건슈팅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

애초에 2명이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게임이 대다수이고 혼자 플레이했을 때는 1탄 보스를 깬 기억조차 없다.

시우가 매드무비를 감상하는 동안 마지막 히든보스까지 원 코인으로 끝내버린 오딜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시우를 발견했다.

“어? 조수님,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와, 대단하시네요.”

“응? 뭐가?”

“이런 게임 이번에 처음 하시는 거잖아요. 전 이거 아무리 해도 2탄도 못 가겠던데.”

“나 원래 사격은 자신 있어. 오데트도 이 정도는 할걸? 근데 별로 재미없다. 맞출 때 박살나는 것도 현실감 없고 총소리도 비현실적으로 시끄럽기만 하고.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다른 건 없을까? 더 어려운 것도 한 번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은 저렇게 해도 시우가 칭찬하자 콧대가 높아진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는 오딜.

원래의 오딜이라면 여기까지 데려온 시우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게임의 험담을 늘어놓지 않았을 테니 저 모든 말이 작위적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즉, 안간힘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인 것이다.

웃음을 참으며 오딜을 챙긴 시우는 모처럼 온 거 다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제안했다.

“그것도 좋은데 더 여러 가지도 둘러보죠. 저거 꽤 재밌거든요.”

“그래?”

“조수니이이임! 뽑았어요!!!”

때마침 토끼인형을 두 손으로 치켜든 오데트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달려왔다.

그다음 시우가 고른 게임은 에어핑퐁.

아무리 구진 오락실이라도 커플들을 위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이다.

신나게 리그전을 벌인 결과.

오데트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오늘의 짐꾼이 되었다.

2.

“.........”

“오데트 뭘 그렇게 꽁해 있어?”

“........”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처음 하는 게임은 항상 내가 너보다 잘하는걸.”

“.........”

“설마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건 아니지?”

구깃.

나란히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올라가던 길 오데트가 쥐고 있던 토끼 인형이 조금 찌그러졌다.

보다 못한 시우가 나섰다.

“오딜 님 그만 놀리셔요. 오데트 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상대가 저잖아요?”

자신의 편을 들어주리라 예상했던 시우조차 한술 거들자 오데트의 인내심도 바닥났다.

“이이이익! 다 나빠요! 언니는 말 걸지 마! 저 집에 갈래요! 데려다주세요!”

“농담입니다, 농담.”

시우는 난동을 부리려는 오데트를 어르고 달랬다.

오늘 일과의 마지막을 장식할 옷을 사기 위해 여성복 코너로 이동하는 중이다.

확실히 쌍둥이는 적응력이 남다르다.

처음에 엘리베이터만 봐도 신기해하던 쌍둥이가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얌전히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으니 말이다.

제머나이 백작님이 하사하신 블랙카드로 쌍둥이들이 만족할 만큼 옷을 듬뿍 산 다음 귀가.

이후에는 신시우 오피스텔의 명물 ‘샤론 아가씨도 끔뻑 간 배달음식 퍼레이드’까지 선보일 예정이었다.

쌍둥이는 디저트를 제외하면 현지 음식이 썩 입에 잘 맞는듯 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거 신기하긴 하네. 가만히 있어도 움직이는 계단이라니 공간 마법을 활용한 거지?”

“아뇨, 이건 일종의 띠처럼 생긴 거라서요. 빙글빙글 돌면서 아래 공간 쪽으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겁니다. 마법 같은 건 없고요.”

“호오, 그렇구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도 되지만 백화점 전체를 구경시켜줄 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이.

시우는 시끌시끌한 소리를 들었다.

원래도 백화점이 조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유독 시끌벅적하다.

뭔가 놀라는 듯하기도 했고, 신이 난 것 같기도 했으며, 아무튼 정확한 분위기를 분류를 할 수 없는 군중의 웅성임이었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는 도중.

맞은편 천장 부근에 기이한 것이 쌍둥이의 호기심 센서에 포착되었다.

오딜과 오데트는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 쪽에 바짝 붙어 공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물체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조수님 저건 뭐야?”

“어! 저 저거 아쿠아리움에서 본 것 같아요! 피라니아? 피라냐? 그거였던 것 같아요.”

“엄청 크네! 택시만 하겠는걸?”

쌍둥이의 손가락 끝을 쫓아 시선을 옮긴 시우는 눈을 부릅떴다.

“어?”

거기엔 공중이 수중이라도 되는 것처럼 유유히 지느러미를 팔락이는 괴이한 생명체가 있었다.

얇고 넓적한 몸체.

입이 다물리지 않을 정도로 뾰족하게 솟은 창살 같은 이빨.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를 눈깔이 데굴데굴 구른다.

아래층에서 들리던 웅성거림의 정체는 저 피라냐를 본 사람들이 폰을 꺼내며 사진을 찍고 쑥덕이는 소리였다.

그야 당연하겠지 정상적인 백화점에 저딴 게 존재할 리가 없으니까.

유유히 떠다니던 피라냐는 지느러미를 천천히 파닥이며 아래로 내려가더니 자신의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꺄악! 이게 뭐야? 진짜 징그러워.”

“무슨 이벤트인가?”

“홀로그램 아니야? 야 찍어 찍어 일단 찍어.”

“야, 경성아! 아직 화장실이야? 빨리 와봐 여기 존나 신기한 거 있어.”

문명과 사회질서에 의해 보호받기만 해온 까닭에 본능적인 위기 감지 능력마저 퇴화한 것일까?

사람들은 괴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괴물을 보자마자 도망치거나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지 않았다.

그저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상식과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만 현상을 관측하고 방조할 뿐이다.

“도망쳐!”

시우의 커다란 외침.

“어래?”

동시에 쩍 벌어진 피라냐의 주둥이가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밀던 한 학생의 상체를 와그작 씹어먹었다.

축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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