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92화 (192/917)

#192

1.

밤새 비를 퍼붓던 태풍은 서울 상공을 가로질러 갔다.

지금도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비가 내리긴 하지만 어제 같이 미친듯이 내리지는 않다는 말이다.

“음... 현세는 굉장하네.”

“크다... 높다...”

택시에서 내린 오딜과 오데트는 높다란 빌딩을 목이 부러지라 올려다보며 감상을 말했다.

“하지만 그저 높다고 해서 대단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 자고로 건축물이란 하나의 예술작품이니 그저 높이만으로 대단함을 측정하는 건 불가능해.”

오딜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짐짓 평론가가 된 것처럼 건물을 품평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저에게는 이 높은 비...비....”

“빌딩이요.”

“아 맞다, 고마워요 조수님. 아무튼 이 빌딩이라는 게 좁은 토지 면적을 활용하기 위해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어떻게든 쌓아 올린 건축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10점 만점에 7점 드릴게요.”

오데트 역시 언니를 따라 하며 팔짱을 끼고 으리으리한 건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오데트와 밤산책을 나섰던 일은 비밀로 하기로 했기에 자연 호칭도 조수님이었다.

게헨나의 건물, 특히 레노먼드 타운이나 아르스 마그나 타운의 건물은 죄다 아름답다.

오데트가 정곡을 짚은 대로 빌딩은 토지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산물이니 단순히 미적가치를 놓고 보자면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

“네네, 품평도 좋지만 들어가실까요?”

“좋아, 조수님이 얼마나 근사한 관광코스를 준비했는지 기대하고 있을게.”

“저두요!”

오딜과 오데트는 아주 어여쁘게 차려입고 있었다.

앞뒤로 토끼가 프린팅되어있는 루즈핏의 맨투맨티셔츠에 테니스 스커트 마지막으로 하얀 스니커즈.

시우의 염려와 다르게 데네브가 제대로 현세의 옷차림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뭘 입어도 잘 어울렸을 쌍둥이지만 이렇게 캐쥬얼한 옷차림으로 있는 걸 보니 또 새롭다.

묘하게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모델 같다고 해야하나.

사실 둘 정도의 미모라면 대충 찍은 사진만 SNS에 올려도 어렵지 않게 세계적인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수님 그런데 정말 이런 복장으로 돌아다녀도 되나요? 치마가 너무 짧은 것 같아요. 가볍고...”

“속바지 입으셨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도 무릎이 다 보이는데....”

한편 오데트는 좀 전부터 자신의 옷차림이 무척 신경 쓰이는 모양새였다.

하긴 근사하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만 입어왔을 둘에게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테니스 스커트는 조금 파격적일 수도 있겠다.

“정말 괜찮습니다. 가시죠.”

건물 앞에서 속닥거리는 것도 어연 10분.

이제 슬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쌍둥이는 이곳저곳에 정신이 팔려 그때마다 시우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오딜이다.

“조수님! 잠깐 귀 좀.”

“네네....”

“저기봐 봐.”

오딜은 눈짓을하며 저 멀리 지나가고 있는 서울 시민 한 명을 힐끗거렸다.

착 달라붙는 레깅스에 크톱티를 입고 있는 여성분이었다.

“저기 몸매를 죄다 드러내며 걷고 있는 저 여자 보이지?”

“네 보이네요.”

“저분 혹시 윤락업소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저런 옷차림이에요?”

중간에 끼어드는 오데트.

“현세에서 여자들은 몸매에 자신이 있으면 과감하게 드러냅니다. 저 정도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의 노출이죠.”

“하지만 저건 속옷 차림이나 다름이 없는걸요? 가슴골이 죄다 보이는데...”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 테니까 따라오세요. 우선 구경하셔야죠.”

시우는 쌍둥이의 손을 한쪽씩 잡고 반쯤 질질 끌고 갔다.

쌍둥이의 호기심이 대폭발 할 것이야 예상은 했다지만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세 걸음 옮길 때마다 속닥속닥 뭔가를 물어보는 통에 여기까지 오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아쿠아리움.

쌍둥이들이 뭘 가장 즐거워할까 고민하며 놀이동산이나 아쿠아리움을 데려가려 했는데 비가 오는 관계로 후자를 선택했다.

입장할 수 있는 시간과 인원이 정해져 있었기에 티켓팅 이후 기다릴 겸 카페에 앉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데네브는 언제나 이런 쌍둥이를 돌봐 온 걸까?

갑자기 제머나이 백작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르골까지 없었더라면 이보다 100배는 더 힘들었겠지.

아마 쌍둥이의 미모 탓에 온갖 이목이 쏠렸을 테니 말이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녹초가 된 것 같은 시우.

한편, 쌍둥이는 진동벨을 한쪽씩 움켜쥐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딜이 먼저 기진맥진한 시우에게 말을 건다.

“조수님 왜 이렇게 힘들어 보여?”

“글쎄요, 왤까요...”

“내가 쓰담쓰담해줄까?”

그렇게 말하며 벌써 시우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 오딜.

참 신기한 게 그게 뭐라고 웃음이 나오면서 체력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두 분 다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낯선 곳인데도 평소랑 똑같으시잖아요. 주눅들지도 않으시고.”

“저희 옆에 조수님이 계시잖아요! 든든하다구요!”

“맞아, 그리고 나는 현세가 마음에 들어. 공기가 좀 나쁘긴 하지만 조수님이랑 함께라면 꽤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저도 그래요!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빨리 낙인을 물려받으려구요!”

조수님과 함께라...

그러고 보니 쌍둥이는 임시 외출을 한 상태였다.

정식으로 제머나이의 낙인을 물려받고 나서야 현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낙인을 물려받는다는 건 곧 알비레오와 데네브 백작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쌍둥이는 이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걸까?

그녀들로서는 스승이자 곧 어머니 일 텐데.

“저, 이런 질문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는데.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될까요?”

“뭔데?”

“낙인을 물려받으신다는 말은 곧 제머나이 백작님이 사라... 지신다는 게 아닌지.”

시우의 조심스러운 질문.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오딜과 오데트의 반응은 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지.”

“생각보다 태연하시네요.”

“스승님이 사라지신다는 건 슬프지만 낙인을 물려받는다는 건 저희가 스승님의 유지를 이어갈 자격이 생겼다는 말이잖아요. 전 무척 뿌듯할 거고 스승님도 저희를 자랑스러워하실 거에요.”

“오데트 말이 맞아. 그게 우리가, 우리 마녀가 존재하는 이유인걸.”

알고 있던 설명을 덧붙여 듣는다 한들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게헨나에서 유년기부터 배우고 자란 쌍둥이와 현대인이었던 시우 사이에는 까마득한 인식의 격차가 있었다.

쌍둥이가 운동복으로 돌아다니던 여자의 옷차림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도 그렇네요.”

시우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닌 듯했다.

꽤 나중에 있을 일이기도 하고.

대신 문득 한 사람을 떠올리며 물었다.

사실 어제부터 물어볼까 말까 꽤 망설이던 것이었다.

그런 사실이 티나지 않게 넌지시, 정말 넌지시 묻는다.

“그러고 보니 아멜리아 부교수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일부로 의식의 구석으로 몰아두었던 그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커피 같은 씁쓸함이 번진다.

“몰랐구나? 조수님이 회복된 이후로 담당 교수님이 바뀌었어.”

“예?”

“교수님이 개인 사정이 생기셔서 아베느가 수석교수님이 원래 부교수님이 담당하셨던 과목까지 맡아주시게 되었어요.”

“왜죠?”

“그야 나도 모르지.”

“저도 모르겠어요.”

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이 정도 시간이 흐를 때까지 시우가 남긴 쪽지를 읽지 않았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꺅!”

그때 쌍둥이의 짧은 비명이 시우의 잡념을 끊었다.

진동벨이 바르르 떨며 음료가 나왔음을 알린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번쩍거리며 윙윙대는 진동벨을 바라보는 쌍둥이.

“이...이거, 아티펙트?”

“아닙니다. 시간 슬슬 됐으니까 가시죠.”

시우는 귀여운 쌍둥이의 반응에 슬쩍 미소를 짓고는 아쿠아리움 쪽으로 들어섰다.

2.

“와......”

“와......”

쌍둥이는 별천지에 들어온 것마냥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땡그랗게 변하고 둘 다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쌍둥이의 넋을 쏙 뺏어간 것의 정체는 커다란 수조에서 너울거리며 헤엄치는 해파리 떼였다.

은은하게 쏘아지는 네온 조명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둘은 수조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처럼 뺨을 가까이 붙이고 해파리를 구경하는 중이다.

“어머 쟤네 봐. 너무 귀엽게 생겼다.”

“모델인가?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볼까?”

“옆에 남자도 잘생겼네.”

아무리 오르골이 작동 중이라도 이 정도로 어그로를 끌면 어느 정도는 인식이 되는 모양이다.

누가봐도 보호자로 보이는 입장에서 좀 부끄럽긴 한데, 평일 낮이라 입장객이 거의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이게, 이게 뭐지....?”

“해파리래....”

“드레스를 입은 것 같아. 만지면 기분이 어떨까?”

“몰캉몰캉해보여.”

쌍둥이 모두 얼이 빠진 것처럼 말끝이 흐리다.

그도 그럴게 이 아쿠아리움은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로 온갖 물고기와 해양생물은 물론 희귀 동물 곤충들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기왕 신비로운 현세를 보여줄 것이라면 게헨나에서 절대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자, 라는 생각이 아주 잘 들어맞았던 것 같다.

아쿠아리움에는 호기심 많은 쌍둥이의 호기심을 풀 만족시켜줄 구경거리들이 곳곳에 널려있었으니 말이다.

“자자, 그만 구경하고 옆으로 갈까요? 여기 보니까 아마존 물고기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다네요.”

“조금만 더 보면 안 돼? 너무 예쁜데.”

“아쉬워서 두고두고 보게 사고 싶어요! 얼마에요?”

“음, 아마 비매품일걸요? 그리고 이 앞에 더 신기한 것도 많아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파리 수조 사이를 돌아다니는 쌍둥이의 등을 슬슬 떠밀며 재촉했다.

구경하는 건 좋지만 팜플렛을 보니 이것저것 앞으로도 볼거리가 많다.

이 페이스라면 오늘 안에 아쿠아리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마음이 좋다.

이번에는 아마존 물고기 코너.

쌍둥이는 1M 잘하면 2M 가까이 될 것 같은 거대한 물고기를 보며 신기해했다.

“와, 지금까지 이렇게 큰 생선 처음 봐!”

“조수님 조수님! 이건 경매로는 안 나오나요? 한 마리 가져가고 싶어요!”

“이런 건 생선이라고 부르지 않을걸요? 그리고 아마 이것도 비매품일 겁니다.”

“조수님, 우리 제머나이 가문의 압도적인 재력 앞에 비매품 따위는 없어.”

“제가 백작이 되면 꼭 이 수족관을 살 거예요!”

“오,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당찬 포부를 밝히는 쌍둥이에게 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예전 라티푼디움에 피크닉을 따라갔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는 시우가 신기해하면서 쌍둥이가 이것저것 알려주는 처지였는데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아마존 수조가 내려다 보이는 구름다리를 건너자 커다란 터널이 등장했다.

당연히 그냥 터널은 아니었고 거대한 수조 안을 걷는 것처럼 느낌을 낼 수 있는 해저터널이다.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한 가운데 곳곳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와 상어, 가오리 따위가 보였다.

“.........”

“.........”

시우조차 뭔가 압도당하는 느낌을 느끼는 가운데 쌍둥이는 오죽할까?

물색에 조명이 더해져 푸르스름한 던전처럼 보이는 터널입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를 꾹 껴안고 있다.

“저, 저 무시무시하게 생긴 게... 상어 맞지?”

“어디 보자, 네 흉상어라고 하네요.”

“저, 거북이가 저렇게 커요? 예전에 페챠가 주워왔던 건 손바닥만 했는데...”

“아, 저건 푸른바다거북이래요.”

머리 위로 지나가는 거대한 가오리, 뾰쪽뾰쪽한 이빨을 드러내고 옆을 스쳐 가는 상어, 비늘을 번쩍이며 무리를 지어 헤엄치는 수천 마리의 정어리 떼, 느릿느릿 입을 벌리고 헤엄치는 거북이.

곧 용기를 낸 쌍둥이는 신이 난 발걸음으로 터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시우는 느긋이 뒤를 쫓았다.

마지막, 기념품 상점에서 파자마 두 벌을 사는 것으로 아쿠아리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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