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1.
평상시 시우가 쌍둥이를 구별하는 기준은 두 가지이다.
눈빛과 말투.
뭐 또 굳이 더하자면 뒷구멍에 박을 때의 감각까지... 이긴한데 실생활에서 바로바로 써먹을 순 없으니 보류하고 말하자면.
오딜의 눈빛의 경우 언제나 의지로 똘똘 뭉쳐있다.
강한 의지에서 비롯한 용기와 긍지는 어느 상황이 와도 물러섬이 없고 평상시에도 다부진 적극성이 엿보인다.
그에 비해 오데트은 전형적인 곱게 자란 아가씨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관상 보는 아저씨도 아니고 무슨 눈빛으로 사람을 구별하냐 싶겠지만 정말로 보면 구별이 되더라고.
하지만 사실 여기까지 굳이 살필 필요도 없었다.
쌍둥이가 시우를 부르는 호칭은 조수님으로 같지만 오딜의 경우 뒤에 반말을, 오데트의 경우 존대를 섞으니 말이다.
다시 말해 평상시에는 둘을 쉽게 구분하는 시우라도 눈빛이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둑한 방에서, 오데트가 오딜의 흉내를 작정하고 낸다면 구별이 몹시 어렵다는 말이다.
그것이 오딜인 줄 알았던 오데트의 정체를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던 이유였다.
“매일 나만 따돌리고... 너무해요 완전....”
오데트는 서럽다는 듯이 울먹이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조수님이랑 마지막 날도 못 보내고.... 매일 언니랑만 놀고...”
“그때는 오데트 님이 주무시고 계셔서...”
“깨워서라도 데려가 줬으면 좋았잖아요! 저도 조수님이랑 밤산책 같이 하고 싶었단 말이에요.... 분수대에서 헤엄도 치고 같이 풍차도 견학가고 싶었단 말이에요...”
아이고.
시우는 속으로 탄식했다.
사실상 게헨나에서 쌍둥이와 보냈던 마지막 밤.
숙취에 절었던 시우가 일어나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은 오딜 뿐이었다.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제머나이 백작에게 걸려 곧바로 접근금지 신청이 되었으니 오데트는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것이다.
“조수님은, 저도 귀엽다면서 왜 언니만 예뻐해요? 저도 착하다면서 왜 언니랑만 따로 놀아요?”
“저기... 오데트 님 그건 사정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시우는 오데트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려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위로는 그간 오데트의 서러움을 보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거짓말이에요! 진짜 완전 나빴어. 뒤로 하는 것도 언니랑만 먼저 해주고, 둘이 노는 것도 언니랑만 해주고... 나빴어요 진짜!”
“아.....”
“언니는 그걸로 맨날 놀리고... 저라고 무작정 언니만 따라하려는 거 아니에요. 조수님이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이랑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거에요!”
“오데트 님 우선 진정하시는 게....”
“매일 나보고만 진정하래. 오딜 언니가 이럴 때도 진정하라고 했어요? 치사해, 치사해, 와아아안전 치사해요.”
오데트는 시우의 가슴을 퍽퍽 때리며 울분을 풀었다.
저 작은 손으로 맞는다고 아플 리는 없다.
대신 오데트의 쌓이고 쌓였던 속상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서럽고 소외된 느낌을 느꼈으면 언니 흉내를 내면서까지 시우에게 왔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입맛이 썼다.
“오데트 님.”
“싫어요, 안 들을 거에요. 저 아직 화 다 못 냈어요!”
오데트는 귀를 틀어막으며 몸을 움츠린다.
시우는 오데트의 감정이 연인에게 품는 치정이라기보다는 ‘왜 나랑은 더 안 놀아줘?’ 같은 섭섭함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데트가 딱히 시우에 대해 독점욕을 보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안해요. 더 못 챙겨줘서. 그럼 지금 둘이 밤산책 갈까요?”
“정말요?”
“네, 내일 조금 피곤하시겠지만 이곳저곳 구경시켜드릴게요. 밤에도 나름 보는 맛이 있다니까요.”
“정말정말정말요?”
조금 전까지 톡 건드리기만 해도 봉선화 씨알 같은 눈물을 우수수 쏟아낼 것 같은 오데트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네! 갈래요! 지금 갈래요!”
오데트는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바르르 떨며 좋아했다.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가 많기도 하다.
“네, 그럼 저도 옷 입고 준비할게요. 오데트 님이 입으실 옷도 찾고요.”
보호 없이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약간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만전을 기했다.
오데트의 기척과 인식을 지워줄 아티펙트 오르골을 지참.
원래 옷차림으로 나갔다가는 마녀라고 광고를 하는 꼴이니 행여 나쁜 마녀가 육안으로 봐도 확인할 수 없게끔 시우의 후드티와 샤론의 반바지를 입혔다.
“어때요? 제 현세 옷차림?”
“잘 어울리시네요.”
시우는 드로워즈와 이너드레스 위에 옷을 걸친 오데트를 보며 웃음을 꾹 삼켰다.
3단이나 소매를 접어준 후드티는 여전히 너무 커서 헐렁거렸고 오데트가 모자라도 쓴다면 그녀의 입술 위까지 전부 가려버릴 것 같았다.
또 샤론의 반바지는 오데트가 입자 칠부바지가 되어 벨트를 매주었다.
한마디로 오버핏 오브 오버핏.
이미 패션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이즈지만 가뜩이나 귀여운 오데트가 커다란 옷에 파묻히는 꼴이 되자 더 귀여워졌다.
“신나요, 조수님. 어떡하죠? 너무 신나요.”
오데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방방 뛰며 기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우산을 챙겨 들고 옆에 나란히 선 시우.
오데트는 고작 현관 앞에 나왔을 뿐인데 벌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신기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여기 오면서부터 궁금했는데 이건 장식불인가요? 사람이 오면 저절로 켜지는 구조인 것 같은데.”
“센서등이라는 겁니다. 게헨나와는 달리 장식불이나 기름등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전기를 이용해서 전구에 불을 밝히는 겁니다. 현대에서는 이것저것 사용할 때는 마력 대신 전기를 많이 써요.”
“전기?”
“음.... 어렵네요. 설명해 드리기가.”
전자의 흐름이라고 이야기하면 또 전자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고 그 이상을 물어보면 전공자가 아닌 시우는 할 대답이 궁색했다.
“괜찮아요 조수님! 모를 수도 있죠!”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행히 기분이 좋아진 오데트에게 그 정도의 의문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활기찬 위로를 끝으로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고작 자동문이 열리는 것뿐인데 진귀한 것을 보는 것처럼 집중하는 오데트.
그리고는 달에 첫발을 내딛는 암스트롱처럼 신중하고 의미깊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어찌나 경건한지 시우도 숨을 죽일 정도였다.
“조수님.”
“네.”
“그 1이라고 숫자가 적힌 버튼을 누르면 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할게요. 여기 올 때는 스승님이 눌렀거든요.”
“그래요.”
오데트는 조심스레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1이 적힌 네모난 버튼에 빨간 LED 램프가 점등되자 오데트는 ‘어때요? 잘했죠? 칭찬해주세요!’ 하는 눈빛으로 시우를 슬쩍 올려보았다.
“대단해요, 오데트 님!”
“과분한 칭찬이에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짐짓 손뼉을 치며 칭찬해주자 오데트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며 겸양을 떨었다.
3자가 좌로 90도 회전한 입 모양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게 되자 오데트는 불안한지 시우의 손을 꼬옥 잡았다.
“모, 몸이 위로 붕 뜨는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안전하거든요.”
“무슨 일 있으면 조수님이 지켜주실 거죠?”
“네네.”
“지금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내려와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쿠구구구궁!!!
풍랑에 휩싸인듯한 길거리였다.
풍랑이라 함은 수면 위에 들이친 바람에 생겨나는 거대한 물결을 일컫지만 이 경우 전혀 어색한 비유가 아니었다.
길거리는 이미 발목이 잠길 정도로 물이 들어 차 있었고 그 위로 작은 파도가 일고 있었으니 말이다.
뉴스에서 힐끗 보길 10년 만의 태풍이라더니.
일기예보에서 으레 하는 겁주기 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체감된다.
“........”
“와.... 신기해요...! 아까보다 더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어찌나 세차게 바람이 들이치는지 물방울이 치덕치덕 로비에까지 들이닥쳤다.
이 정도면 우산이 의미가 있을까 싶어 멀거니 우산을 바라보는 시우와 이마저도 즐거운 듯이 눈을 반짝이는 오데트.
하긴 게헨나는 이면결계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이런 극적인 날씨는 좀처럼 없다.
“음, 오데트 님 먼저 나가자고 해놓고 죄송하지만...”
“빨리 와요 조수님!”
일단 들어가서 생각해보자고 말하기도 전에 쪼르르 밖으로 달려나간 오데트.
회색의 후드티가 순식간에 검게 물드는 데는 3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푸후...푸훕.....”
상상 이상으로 많이 얼굴에 쏟아지는 빗물에 졸지에 세수하게 된 오데트.
시우는 우산을 들고 황급히 뛰쳐나가 오데트에게 씌워주었다.
그냥 우산을 펼쳤을 뿐인데 벌써 빠직 소리를 내더니 우산대 하나가 부러졌다.
역시 이런 날에 산책은 무리가 아닐까.
“뭐 하시는 겁니까! 감기 걸리셔요!”
“전 감기 같은 거 안 걸려요! 완전 상쾌하고 시원해요!”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이 귀곡성을 내는 탓에 거의 소리 지르듯이 대화하는 두 사람.
오데트를 말려서 돌아가려던 시우도 해맑게 웃는 그녀의 미소를 보자 어깨에 힘이 빠졌다.
본인이 좋다는데 악써가며 말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오데트 님! 그럼 안내할게요! 가시죠!”
“네! 조수님, 출발!”
시우와 오데트는 물을 찰팍거리며 골목을 달려나갔다.
2.
“후아...후아..... 완전 짜릿해요! 신나요!”
한동안 함께 골목을 쏘다니며 물장구 아닌 물장구를 치던 두 사람은 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연신 비를 쏟아내는 모습은 열대지역의 스콜을 연상시킨다.
건물 안으로 꽤 들어왔는데도 비냄새가 훅 풍겼다.
앞도 옆도 분간되지 않는 빽빽한 시야 속에서 발길 닿는 대로 달리다 들어온 곳은 신촌 기차역의 역사.
유치권 행사 중인 상가 건물이었다.
참고로 우산은 강풍에 망가져 버려 쓰레기통에 버려두었기에 두 사람은 홀딱 젖은 채로 쉴 곳을 찾았다.
비와 바람을 가려주는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자연 한숨이 나온다.
밖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차서 말이지.
영체가 이 정도로 지칠 리는 없지만 심적으로 지친 시우와 새싹에 물을 부은 듯 오히려 텐션이 높아진 오데트.
“빗방울에 얻어맞는 느낌이에요! 스승님은 이런 거 절대로 못 하게 하셨을 텐데!”
오데트의 파릇파릇해진 목소리가 방범 셔터가 내려진 실내를 찡 울렸다.
“쉿쉿, 오데트 님 이제 목소리 낮추셔도 돼요.”
“아하, 네 조수님. 쉿. 소리 울리는 게 꼭 무도회장 같아요.”
오데트는 왈츠를 신청받은 귀족 영애처럼 무릎을 살짝 굽히며 말했다.
원래는 조금 더 소극적인 편이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야밤의 일탈이 그녀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나 보다.
물에 젖은 것이 영 무거웠는지 후드티의 모자를 훌렁 벗은 오데트.
모자 안으로도 완전히 젖어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 탓에 원래도 작던 오데트의 머리가 거의 주먹만 해 보였다.
신화 속 요정처럼 신비롭게 빛나는 자색 눈동자는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했고 말이다.
“이제 좀 섭섭한 게 없어지셨어요?”
“네! 태어나서 두 번 다시 못할 경험이었어요! 신기한 것도 너무 많고, 신호등도 건물도 상가도 자동차도 다 신기해요. 심지어 이 건물도 신기해요!”
“잘 노셨으니 이제 슬슬 돌아가야죠. 조금만 숨 돌리고 가요.”
시우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쭉 짰다.
후두둑 물이 떨어진다.
그걸 본 오데트도 옆에서 수건을 짜듯이 머리카락을 정돈해 쭈욱 짜내며 애원했다.
“조금만 더 둘러보면 안 될까요? 여기도 너무 신기한데...”
오데트는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사실 시간은 이미 너무 늦었다.
“제발요 조수님. 이대로 돌아가기 너무 아쉬워요...”
실외라면 아무래도 부담감이 생기지만 그나마 건물 내부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시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습니다.”
“야호!”
결국 수락을 받아낸 오데트는 팔짝팔짝 뛰며 가동을 멈춘 에스컬레이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데트 님! 그러다 넘어지십니다!”
“괜찮아요! 빨리 따라오세요!”
지금까지 봐왔던 오데트의 모습 중에 가장 활기찬 모습을 보니 무작정 말리기도 그렇다.
시우는 순순히 오데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