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87화 (187/917)

#187

1.

“시우야, 잠깐 와 봐.”

이불 하나와 베개 하나를 챙겨 들고 소파에서 잠잘 채비를 끝냈을 때.

방문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샤론이 손짓했다.

슬슬 부를 줄 알았던지라 그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가는 시우.

잠옷 차림으로 갈아입은 샤론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불안한 듯이 가슴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놓은 손이 그 심리를 대변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 나도 갑작스럽네. 원래 5년 뒤에야 만나러 온다고 했는데.”

“저분들이, 그러니까 네가 말했던 견습마녀 말하는 거 맞지? 너가 예전에 멋지게 구해줬다던.”

“멋지게 구해준 건가 싶긴한데... 일단 그렇지.”

샤론은 굳게 닫힌 문 너머, 시우의 방에서 자고 있을 쌍둥이 쪽을 바라보았다.

셋의 사이는 말할 것도 없이 친근해 보였다.

어찌보면 샤론보다도 가까워 보일 정도로 말이다.

시우의 이름을 부르던 샤론을 견제(라고 생각한다)하던 쌍둥이의 모습.

과거 셋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불안함.

그리고 시우에게 감출 생각도 없이 호감을 보이던 쌍둥이의 태도가 세 박자를 이루자 일말의 불안함이 샘솟았다.

무슨 불안감이냐 하면 설명할 도리가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시우가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받기만 해온 자신이 시우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섭섭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왜 그를 불러들였는지도 모르면서 방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갑자기 놀랐겠네. 어차피 나흘 정도만 머물다가 간다니까 조금 불편해도 참아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치면 나도 얹혀사는 처지인걸.”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어...”

대화 도중, 전혀 뜬금없는 타이밍에 샤론이 시우의 품에 안겼다.

그저 맞닿은 것만으로 느껴지는 여성적인 곡선.

부드러운 샤론의 몸이 시우를 한껏 품는다.

잠시 놀랐던 시우도 피식 웃으며 샤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쑥 찾아온 채권자 데네브 탓에 놀란 마음이 혼란을 불러온 것이다, 라고 생각 중이다.

“왜 이러실까?”

“그냥... 그냥...”

두 사람의 생각이 조금 어긋난 가운데 샤론은 뭔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솟는 것을 느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요즘 들어 이상하다.

이렇게 울보였던 적은 없었는데.

아무리 힘들고 일이 꼬이고 복잡한 일이 생겨도 굳세고 씩씩하게 살아왔는데.

그를 만난 이후로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다.

퍽 하면 울고, 퍽 하면 안기고, 퍽 하면 상냥한 위로를 갈망하게 된다.

한번 기댈 곳이 생기자 자꾸만 기대려는 나쁜 습관이 들어버린 걸까?

“왜 그래? 울어? 쌍둥이가 이상한 얘기 했어?”

별안간 안겨든 샤론의 목소리에 축축한 물기가 스며들었음을 느낀 시우가 정색하며 물었다.

하지만 샤론은 눈물을 쓱 훔치더니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시우의 허리에 두른 손은 놓지 않고 꾹 붙잡은 채이다.

“아냐, 아냐... 나 혼자 이상한 거야...”

일단 손을 떼어낸 채 자초지종을 묻고 싶었으나 샤론은 한사코 시우의 허리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뭔데?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아냐, 진짜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정말 아무 말도 안 들었어.”

처음에는 샤론이 진 빚에 대해 한 소리를 들었나 싶었는데 견습마녀에 불과한 쌍둥이가 샤론의 빚을 알고 있을지도 미지수고 무엇보다 쌍둥이가 그렇게 고약한 심성의 마녀는 아니다.

샤론도 무언가 부연설명을 할 정도로 상황판단을 한 것이 아니니 시우는 이도 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미안.”

“미안할 건 없지. 혹시 나한테 말 못 한 힘든 일 있으면 이야기해. 저번처럼 혼자만 숨겨두지 말고.”

“아냐, 정말 없어. 정말이야.”

“그럼 다행이긴 한데.”

시우는 침착한 목소리로 샤론을 진정시켰다.

샤론은 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그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상하게도 그것만으로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

“무슨 부탁?”

“키스..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 애인한테 하는 키스 말고 그냥 친구를 위로하는 키스로... 불편하면 안해줘도 괜찮고... ”

키스 자체가 애초에 연인 간의 행위인 만큼 친구를 위로하는 키스라는 게 따로 있을 리 없다.

샤론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따라서 그와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을 그런 애매한 궤변을 포장지 삼아 돌돌 말아 전했다.

그저 친구 사이라기엔 이미 아슬아슬한 선타기를 하는 중인 시우는 그 부탁이 막 부담스럽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샤론이 울먹이며 해달라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먼저 다가온 샤론의 입술이 시우의 입술과 부딪혔다.

첫 키스 이후 샤론이 먼저 키스를 요구하는 일은 없었고 반대 경우도 당연히 없었기에 꽤 오랜만이었다.

“흐음....음....”

조심스레 시우의 이를 톡톡 건드리던 촉촉하고 몰캉한 혀가 입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상쾌한 가글액의 향과 끈적한 타액이 섞이며 혀끝에 아릿함을 남겼다.

길지는 않았다.

맞닿았던 입술의 온도, 그 미묘한 체온 차이가 비슷해지는 정도의 시간.

두 사람은 조용히 입술을 뗐다.

“.........”

“잘 거지?”

“응, 고마워 시우야.”

아까까지 오랫동안 주인을 못 만난 강아지처럼 불안해 보였던 샤론이 한결 진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할 시간인 것 같아서 먼저 갑작스러운 키스 요청이 무엇 때문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2.

“언니 자?”

“아니 오데트 너는?”

“안 자니까 말하지.”

시우의 강력한 의사표출로 잠자리로 격리된 쌍둥이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처음에는 사방에서 풍겨오는 조수님의 향기에 황홀해하던 쌍둥이.

하지만 후각은 가장 자극에 빨리 둔감해지는 감각이다.

어느새 전신을 감싸던 시우의 체취는 느낄 수 없게 되었고, 대신 만나자마자 떨어지게 되었다는 속상함만이 남았다.

“너무한 것 같아 조수님.”

“하지만 스승님이 돌아오시면 문제가 되는 것도 맞잖아. 빨리 자고 내일 아침부터 일어나서 조수님이랑 놀 생각하면 되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모처럼 스승님 없을 때야말로 그동안 못했던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언니, 기회는 언제든지 있을 거야. 작은 스승님께 들키면 마녀가 되기 전까지 두 번 다시 현세에 못 나오게 될지도 몰라.”

웬일로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오데트를 오딜은 슬쩍 바라보았다.

“너 뭐 잘못 먹었어?”

“난 언제나 어른스러웠는데? 애처럼 구는 건 항상 언니잖아.”

“어휴, 됐다.”

쌩쌩할 때라면 이걸로도 한바탕할 준비가 되어있던 오딜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새벽 일찍 현세 행을 준비해야 했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현세의 풍경을 보며 정신력도 많이 소비했다.

그래서인지 오데트의 선제공격에도 평화로운 노곤함이 몸을 감쌌다.

“내일 꼭... 조수님이랑 재밌게 놀자...하아암.... 잘자 오데트.”

“응, 언니도 잘자.”

쌍둥이는 사이좋게 코코낸내 눈을 감았다.

3.

밤새 세차게 내리는 비는 장막처럼 야경의 불빛조차 가려버렸다.

그 덕에 거실은 숯검댕이를 펴바른 듯한 어스름으로 감싸여 있었다.

“흐음....”

시우는 소파 등받이에 누운 채로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시우가 필기한 마법 공부 내용이 적혀 있다.

세상 참 좋아졌지.

구태여 스탠드를 켜거나 종이를 번거롭게 몇 장씩 들지 않아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으니.

때때로 진보한 생활 과학 기술을 느낄 때마다 새삼 게헨나에서 보낸 5년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당장 시우가 머무는 오피스텔 현관에 있는 스타일러 같은 것 말이다.

옷을 걸어두기만 해도 살균 제습을 해주고 구김도 펴준다니.

저런 건 게헨나에도 없다.

문명의 이기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달칵!

그때 조용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샤론이 나왔나 싶어 잠깐 고개를 드는 시우.

하지만 조그마한 그림자의 크기와 실루엣을 보아하니 아마도 쌍둥이 쪽이었다.

잠깐 태블릿을 끄고 내려놓은 뒤 자리에 앉는다.

“조수님 안 자고 있었네.”

“저야 뭐, 이제 자도 그만, 안자도 그만이라서요.”

“하긴 조수님도 이제 마녀니까.”

자다 일어난 탓인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

하지만 원체 쌍둥이들은 목소리 톤이 높으므로 속삭이듯 말하는데도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들렸다.

행여 다른 사람이 깰까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오딜은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냉큼 시우의 품에 안겼다.

“아이쿠, 지금 주무셔야 내일 실컷 놀 수 있다니까요.”

“그치만... 그 동안 조수님이 너무 보고 싶었는걸... 거실만 나오면 조수님이 계시는 데 어떻게 그냥 누워 있어.”

“오데트 님은요?”

“자고 있어. 쿨쿨.”

품에 안기는 오딜을 위해 이불을 살짝 치워주자 마치 둥지를 파고드는 것처럼 안에 쏙 들어왔다.

오딜은 이불 안에 들어서자마자 쓰읍 냄새를 한껏 들이킨다.

“흐으음, 이거야 이거.”

“겨드랑이 아래는 자꾸 손 넣지 마세요.”

오딜의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질일뿐더러 그녀가 자꾸 간지럼을 태우려 들었기 때문에 시우는 웃음 섞인 말투로 만류했다.

평상시 오딜이라면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된다. 아주 시어머니네!’ 같은 말을 할 법도 한데.

오늘따라 조용히 시우에게 안기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다.

대신 한참 동안 체온을 나누다가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수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네, 편히 물어보세요.”

“조수님은 오데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오데트 님이요? 좋은 분이죠. 귀엽기도 하고.”

“그게 다야?”

“뭐 더 할 말이 있을까요? 마법은 오딜 님에 비해 조금 서투르시다지만 그래도 심성이 착하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딜 님도 너무 싸우지만 말고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사실 뒷말은 공연하게 덧붙이긴 한 것 같다.

항상 둘이 티격태격하긴 해도 실은 항상 꼭 붙어 다니고 사이도 좋으니.

“그, 그렇구나... 그럼 난 어떻게 생각해?”

“오딜 님이요?”

“응, 나.”

그저 오데트에 대해 물어볼 때는 그녀가 방 안에 있기도 하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본인의 앞에서 이런저런 평가를 늘어놓으려니 부담된다.

말을 꺼낸 진의가 아리송하기도 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귀여우시죠.”

귀여운 건 펙트이니 전해 두었다.

“그리고 그게 다야? 막 내가 오데트보다 특별하다거나 그런 건 없어?”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네요. 두분 다 워낙 저에게 잘해주셨잖아요.”

시우는 피식 웃으며 여전히 시우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있는 오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족스러운 콧소리와 들숨이 앞섶을 미지근하게 물들였다.

꿈찔꿈찔 움찔거리는 게 상당히 기분 좋은 모양이다.

이제 슬슬 돌려보내야겠다.

“들어가서 쉬셔요. 내일 아침부터 제가 근처 맛집들 알려드릴게요. 시간은 많잖아요.”

“우웅우웅....”

오딜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대신 떨어지기 싫다는 듯 자석처럼 시우에게 달라붙는다.

“조수님은 오데트보다 내가 좋지?”

“네?”

“그래서 오데트 말고 나랑 마지막 밤산책한 거 아니야?”

“그건....”

딱히 그런 건 아니다.

오데트 역시 오딜 만큼이나 귀엽게 생각하고 있다.

예의 밤산책은 오딜이 마지막으로 위로를 해주러 나와서 함께한 것뿐이다.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오딜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혹시 오데트 님이 그걸로 많이 섭섭해하시나요?”

“응, 아주 많이 섭섭해.”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시우의 가슴팍을 더듬던 오딜의 손이 슬그머니 아래로 향하기 시작한다.

어딘가 오기가 담긴 듯한 손길이였다.

“억!”

“쉿....! 깨겠어.”

“뭐하시는 거에요. 갑자기...!”

그러더니 구렁이같은 시우의 물건을 냉큼 움켜쥐었다.

아예 팬티 안으로 손을 넣더니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지에 살금살금 감기는 가느다랗고 작은 손가락.

익숙한 손길에 자지가 반갑다고 인사를 하며 커지려는 기색이 보인다.

“두, 둘이 시간을 보내려면... 지금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응? 조수님....”

“안 됩니다. 오늘은 조심하셔야죠. 말씀드렸잖아요. 데네브 님이 불시에 들이닥치실지도 모른다고.”

“한 번만, 짧게만 조금만 하면 되잖아.”

시우는 오딜의 손목을 잡고 자지를 꾸물거리는 손을 떼어내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데네브의 신뢰를 하룻밤만에 배신하는 건 조금... 이라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딜은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여전히 물건을 놓지 않은 채로 아예 아래로 파고들어 입으로 물건을 애무하려 든 것이다.

“오딜 님!”

막무가네로 나오는 오딜의 태도에 엄한 목소리를 내고만 시우.

시우는 이불을 휙 걷고 오딜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언니는 치사해요... 조수님도 나빴어요....”

워낙에 어두웠던데다가 결정적으로 말투를 완전히 바꿔버린 까닭에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눈가에 진주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울먹이는 얼굴을 보자 곧장 알 수 있었다.

오딜인 척하면서 시우의 품을 파고들었던 사람이 오데트였음을.

“매일 나만 따돌리고.... 너무해요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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