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1.
옛날 옛적에 한 마녀가 살았습니다.
그녀는 비단처럼 고운 흑발을 가지고 있었고 사파이어처럼 어여쁜 눈을 가진 마녀였어요.
마수를 부리는 무시무시한 마법을 부릴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했어요.
그녀는 창조의 마녀가 남긴 나쁜 괴물을 물리쳐주었고 또 길들여 주었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언제나 겸손했고 자신의 힘을 남에게 뽐내지 않았어요.
마녀의 도시 시민들에게는 물론 같은 마녀들에게조차 ‘천수(千獸)의 마녀’라고 불리며 존경을 받았답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천수의 마녀는 자신의 마법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느 마녀들이 그렇듯이 마녀의 핏줄 중에 자신의 견습마녀를 골랐죠.
마법을 가르치고 아껴주며 마치 가족처럼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어요.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났어요.
그릇을 받은 견습마녀는 이제 낙인을 받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천수의 마녀는 자신의 견습마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했어요.
곧 천수의 마녀가 쌓아온 멋진 마법을 견습마녀가 계승 받고 마법 연구를 이어나갈 참이었죠.
하지만 의식 도중 천수의 마녀는 덜컥 겁이 났어요.
낙인을 넘겨주면 마녀는 영면에 들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무서웠던 거에요.
그녀는 전수 의식이 시행되는 도중 의식을 강제로 중단하고 자신의 견습마녀를 죽여버렸어요.
자기 딸처럼 어여쁘게 키우고, 제자처럼 마법을 가르치던 견습마녀를 죽여버린거예요.
신께서 분노하신 까닭일까요?
견습마녀에게 전수되던 낙인을 다시 뺏아아간 마녀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아리따웠던 한쪽 얼굴이 아주 징그럽게, 화상을 입은 것처럼 쭈글쭈글해져 버리고 말았어요.
사람들은 더는 그녀를 천수의 마녀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진 나머지 견습마녀를 죽인.
아주아주 비열하고 겁쟁이인 마녀에게 근사한 호칭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요.
천수의 마녀는 너무나도 겁쟁이였던 까닭에 비겁의 마녀라고 불리게 된 거랍니다.
아직까지도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고치기 위해 사람과 마녀를 죽인다니...
참 끔찍하죠?
이런 벌써 시간이 늦었네요.
내일부터 먼 걸음을 하셔야 하니 잠자리에 드시죠.
네, 양치는 잘하셨고요?
기특하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오딜 님 그리고 오데트 님.
2.
시우의 극적인 활약으로 기형적인 호문쿨루스를 사냥한 지도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사건사고가 없는 영화나 드라마는 지겹기 늘어지는 법이지만 실제 인생에서 목숨을 건 혈전 같은 건 가능한 피하고 싶은 일이다.
조금 따분할지언정 무난한 일상이 최고지.
시우는 소파에 반쯤 누운 채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올해는 비가 많이 오네.”
시우의 옆에 찰싹 붙어 허리를 옆으로 기울이고 있던 샤론이 답했다.
“헤읍....태풍이라잖아. 하암....!”
올여름 들어 처음으로 서울에 직격한 태풍은 하루종일 따가운 빗줄기와 거센 바람을 흩뿌렸다.
얼마 전에는 강풍으로 상가 건물 유리창이 떨어져 사달이 났더랬지.
어두컴컴한 창문을 사선으로 내리친 빗방울이 콩 볶는 소리를 냈다.
조금 전까지 호문쿨루스를 수색한답시고 저 한가운데 서 있었다니.
시우는 스스로가 조금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변한 것은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샤론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대신 요즘은 부동산 공부로 열심이다.
확실히 한푼 두푼 모아서는 갚을 엄두가 나지 않는 거액의 빚이니 이쪽이 훨씬 그녀에게 잘된 일이지.
또 다른 변화 한가지.
이제 샤론은 파이즈리든 펠라치오든 제법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5분도 버틸 수가 없다!’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빨에 귀두가 걸리지 않게 조심하며 기분 좋은 곳을 살살 훑어 줄 정도의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암..... 츕...쮸윱.....”
영화를 보는 지금도 시우의 옆에 앉은 샤론이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물건을 입술과 혀로 정성껏 애무 중이었다.
약간 룸살룽에서 아가씨에게 펠라받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처음에는 기묘한 상생 관계에 이게 뭔가 싶었던 시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했다.
육체적으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샤론 역시 봉사를 통해 어느 정도 빚을 졌다는 마음을 지우는 중인 것 같으니...
어찌 됐건 서로가 윈윈이 아닐까? 하는 조악한 변명을 읊조리며 말이다.
“샤론... 슬슬 쌀 것 같은데?”
“응응! 음...음! 츕, 츄우웁....!”
시우가 말하자 샤론은 알았다는 듯이 움직임을 가속했다.
한 손은 시우의 허벅지에 나머지 한 손은 가슴팍에 올려놓은 채로 열심히 고개를 까딱인다.
입술이 만든 보드라운 링에 귀두가 츄룹츄룹 소리를 내며 왕복하는 것이 보였다.
사정 직전에는 이렇게 라스트 스퍼트를 올리며 귀두 위주로 자극을 하는 것.
샤론의 새로운 테크닉이었다.
그리고 능수능란한 그녀의 기술에 항복한 시우의 자지.
-퓨슛 퓨슛 퓨슛!!!
“웁...움....우웁....!”
거세고 탁한 정액 줄기가 샤론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우가 사정을 시작함과 동시에 샤론은 모든 동작을 멈추고 빨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쭙쭙 귀두를 빨기 시작했다.
자위나 섹스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입싸의 쾌감.
원래 정액이 발사되는 힘에 흡입력이 더해지자 불알에 남아있는 한 방울의 정액까지 삐져나가는 황홀한 사정감이 생겨났다.
하루에도 최소 한 번, 어쩔 떄는 두 번씩도 샤론의 입 혹은 가슴에 아기씨를 뿌려댔지만 이 사정감만큼은 지겨워지지 않는다.
“읍....퉤에에....”
샤론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물티슈에 정액을 한 움큼 뱉고는 물수건으로 시우의 물건을 꼼꼼히 닦았다.
“오늘도 고마워.”
“이히히, 뭘.”
시우가 샤론의 머리를 쓰다듬자 샤론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참 이상하다.
육체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니.
하지만 두 사람이 쉬쉬하며 일련의 행위를 당연시하는 가운데 어느덧 자연스럽게 일상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남사친 여사친 간의 유사성 행위를 그저 섹드립 정도의 ‘야릇한 장난’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건 섹파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가끔은 시우도 혼란스러웠다.
“영화 잠깐만 멈춰주라. 나 입만 헹구고 올게.”
“알겠어.”
뒷정리를 끝낸 샤론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멀어지는 샤론의 엉덩이를 시우는 무심코 살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샤워기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흠....”
오늘은 가슴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그저 입과 손으로만 봉사를 받았다.
그 말은 수도꼭지를 틀었으면 틀었지 구태여 샤워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쏴아아아아
게다가 그 시간이 조금 길다.
그저 입을 헹구는 것이 아니라 양치를 한다고 생각해봐도 통상 10분 이상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시우는 2주 전에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홍수라도 난 듯이 애액으로 펑 젖어있던 샤론의 음부.
이를 바탕으로 유추하자면 샤론은 입이나 가슴으로 시우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한편, 그것만으로 아랫도리가 엉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여분의 시간은 그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이고 말이다.
조금 머리가 복잡했다.
사실 시우는 샤론과 거리를 재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이러니 저러니 동정은 탈출 했지만 정상적인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쌍둥이의 경우를 보자.
처음에는 협박으로 시작했던 어정쩡한 성교육은 사랑의 묘약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섞는 관계로 발전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얼마간의 귀여운 협박과 강압이 있었지만 기댈 곳 없던 노예 생활 중에서 좋았던 일로 기억되고 있다.
예빈의 경우에는 애초부터 원나잇을 제안한 예빈이 적극적으로 몰아붙였다.
아멜리아와의 결별로 마음이 공허하게 비어있던 시우는 충동에 이끌리듯 예빈과 살을 섞었다.
그렇다면 샤론은 어떤 케이스일까?
그녀와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면 서로를 어떤 표정과 자세로 대하게 될까?
미지의 영역이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시우는 괜스레 멋쩍어졌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샤론과 이 이상의 관계를 맺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나온 것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샤론을 너무 오랫동안 지그시 바라봤던 모양이다.
샤론이 갑자기 우뚝 멈춰선 채 물었다.
“왜...왜?”
조금 당황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
슬쩍 시우의 눈치를 보는 표정도 그렇고 괜스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손바닥도 그렇다.
굉장히 제 발 저린 모습.
시우는 슬쩍 샤론을 떠보았다.
대놓고 ‘너 혹시 자지를 빨면 보지가 젖니?’라고 물을 수는 없으니 최대한 완곡한 화법을 사용했다.
“그냥 평소보다 오래 걸리길래 뭐하나 싶어서.”
“아... 아니? 평소대론대? 아,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반응은 꽤 격렬했다.
고양이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샤론이 펄쩍 뛴 것이다.
다시 봐도 수상쩍은 반응이지만 이 이상을 추궁하는 것도 좀 그래서 관두었다.
“누가 뭐래, 아무튼 오늘도 고마웠어.”
“고맙긴요~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괜한 어색함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먼저 말을 걸자 여지없이 샤론의 너스레가 들려왔다.
털썩 시우의 옆에 앉은 샤론.
안도했기 때문인지 뭔지 샤론이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3.
하루일과의 마무리와 계속되는 영화 상영.
오늘 영화는 샤론이 손수 고른 것이었다.
하지만 샤론은 조금도 집중하지 못한 채로 콩닥거리는 심장을 잠재우고 있었다.
설마 뭔가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일단은 조금이나마 시우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계기로 시작한 봉사활동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난감한 점이 생겼다.
바로 그와 야한 놀이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팬티가 축축하게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입을 헹군다, 가슴을 씻는다는 명목하에 미리 갈아입을 속옷을 준비해 둔 화장실로 곧장 직행했다.
그리고 혹시 빨래할 팬티의 개수가 늘어나면 시우가 수상쩍게 여길 가능성이 있기에 마법으로 일차 세탁을 하고 따로 모아두었다가 손빨래를 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샤론이 화장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것은 비단 뒤처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샤워기로 음부를 씻어내리던 중 알게 된 사실.
샤워기를 강하게 틀어놓고 그 수압을 이용해 생식기를 쓸어주면 간지러웠던 곳을 살살 긁는 것처럼 쾌감이 생겨난다는 것.
평소 씻을 때는 그다지 특별한 감각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시우의 물건을 물고 빨다 흥분한 상태라면 믿을 수 없는 개운함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뒤처리를 겸해 소중이 씻기를 하던 샤론이었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 뒤 거실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시우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샤론에게 하여금 ‘들켰나?’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하지만 뭔가 숨기는 게 서툰 시우인 만큼 평소대로의 모습인 걸 보면 샤론의 소소한 일탈을 알아차린 것 같진 않았다.
내심 부끄러운 몰골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아쉽다.
왜 이렇게 제자리 걸음을 하는 느낌일까?
차라리 시우 쪽에서 흥분을 못 참고 전에 키스했던 때처럼 덮쳐준다면, 가령 그 이상의 행위를 요구해준다면. 못이기는 척 넘어가 줄 자신이 있는데.
시우는 이 이상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걸까?
아니면 처음에 말했던 ‘대등한 관계가 되었을 때 다른 것들도 허락하겠다’라는 샤론의 발언을 존중해주는 걸까?
만약 후자라면 당장 철회하고 싶지만 그렇게 철회했을 때 시우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고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TV에 흐르는 영화의 줄거리는 조금도 파악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때.
-띵동 띵동
-똑똑
벨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노크소리도 들린다.
아닌 밤중의 인기척에 시우도 샤론도 어리둥절해졌다.
“뭐야? 뭐 시켰어?”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아리송한 표정으로 얼굴을 마주 보는 두 사람.
한편 시우의 표정이 긴장한 것이 보인다.
샤론도 덩달아 심각한 분위기를 느꼈다.
“왜?”
“지금까지 내 인생의 흐름을 보면 슬슬 트러블이 생길 타이밍이긴 하거든? 전에 사주 보는 아줌마도 그랬어 올해는 마가 꼈으니까 몸조심해 줘야 한다고.”
“그 아줌마 나한테도 똑같은 소리 했는걸? 별거 아닐 거야.”
“.... 옆집 여자인가?”
전에도 소음 공해 때문에 찾아왔던 이웃집 여자인가 싶었다.
“내가 나가볼까?”
“같이 나가자.”
잠시 영화를 멈춰두고 조용히 일어선 두 사람.
여차할 경우를 대비해 시우는 리본 한 가닥을 뽑아내어 보이지 않게 등 뒤로 숨겼다.
샤론이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사람은.
“오랜만에 뵙겠어요.”
“엑...”
제머나이 백작, 정확히는 그중에서도 제머나이 데네브였다.
샤론은 거품을 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