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1.
본래 호문쿨루스는 마녀를 사냥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해왔다.
수백 년 전만 해도 마녀는 충분히 많았고, 호문쿨루스는 충분히 적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여러 사건 사고, 자살, 피살 등을 이유로 마녀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그에 비해 기나긴 세월이 흘러 안배에 따라 동면에서 깨어난 호문쿨루스의 개체 수는 늘어만 갔다.
중세 이전 마녀와 호문쿨루스의 비율이 10대 1 정도였더라면, 근대를 거치며 1대1, 현대에 이르러 1대 10이라는 극단적이고 비율 역전이 발생했으며 이 차이는 급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때부터 먹잇감이 부족해진 호문쿨루스는 인간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원래 그런 수단이 있었는지, 아니면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던 호문쿨루스가 모종의 수단을 떠올려낸 것인지는 알 도리 없지만 호문쿨루스에게는 인간의 ‘연’을 마력으로 치환할 방법이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호문쿨루스는 오지와 험지를 떠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먹잇감이 먹기 좋게 옹기종기 뭉쳐있는 대도시로 몰려들기를 택했다.
이것이 대부분의 위치포인트가 대도시에 위치한 이유다.
보더 타운의 ‘문’을 거쳐 한강으로 이동한 엘로아 티페레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위치포인트.
그중에서도 마카오, 오다오커우, 신주쿠 지부와 더불어 동부에서 가장 활발한 사냥 활동이 이루어지는 광화문 지부였다.
“.........”
“......오.”
엘로아가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북적거리던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도서관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마녀와 인간 직원 할 것 없이 작게 묵례를 취해 예를 갖췄다.
위치포인트를 창립한 것이 티페레트라해도 그녀는 50년 전에 모든 권한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토벌에 관한 모든 정보는 위치포인트의 DB를 통해 공유하는바, 그녀가 달성한 업적을 한결 체감하는 것은 게헨나의 마녀가 아닌 추방자들이다.
그들이 엘로아에게 보내는 예우는 살아있는 전설, 혹은 성인에게 갖추는 것이었다.
“다들 업무 보게.”
그 반응에 손을 슬쩍 들어 화답한 티페레트는 곧장 최상층에 있는 지부장실로 향했다.
마녀 대다수는 독립적이고 독선적이다.
제각기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야 하는 마녀를 임무와 소임이 정해진 요직에 앉혀둔다면 열에 아홉은 줄행랑을 칠 것이다.
그러나 마녀라고 모두 성향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안정된 질서, 통제, 관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광화문 지부의 지부장 ‘수아 아가사’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티페레트가 누군가를 추대하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귀찮은 일이 한가득인 지부장 자리를 꿰어 찼으니 말이다.
계단을 올라가 당도한 최상층은 흡사 고풍스러운 양반집 혹은 요정(料亭)을 연상케 했다.
서양식 나무문 대신 한지가 발라진 창호가 줄줄이 서 있고 온돌이 깔린 바닥부터가 신발을 벗고 들어서야 하는 구조이다.
엘로아가 신발을 벗자 앞을 가로막던 창호가 줄줄이 걷히며 널찍한 집무실이 드러났다.
수아 지부장은 사군자가 그려진 병풍 앞에 찻상을 들여놓고 차를 우리는 도중이었다.
“오랜만이네 수아 선생. 여전히 변함이 없군.”
“10년 만에 뵙는군요. 앉으시지요. 하동에서 좋은 차를 들여왔사옵니다.”
“그리하지.”
여느 때와 같은 평온한 표정과 여유로운 태도.
미인도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고운 한복차림, 곱게 땋아 묶어올린 흑발과 명경지수처럼 맑은 잿빛의 눈동자.
다소곳이 앉아 두 잔의 찻잔에 차를 따르는 수아의 모습은 난초처럼 단아했고 방울꽃처럼 청초했다.
총명과 이지로 닦인 수아의 시선이 연민의 기색을 띤 채 엘로아를 바라보았다.
“이리 귀한 걸음을 들이셨다하옴은 귀주(貴主)께서 쫓던 보병궁의 마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겠지요?”
“그렇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상심이랄 것도 없지. 내가 늑장을 부린 탓 아니겠는가?”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내듯 담담하게 입을 여는 엘로아.
헛되이 흩어진 원망에도 곧게 허리를 펴 앉은 엘로아의 모습은 무인의 귀감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태도였으나 그녀의 오랜 벗인 수아의 눈에는 보였다.
진눈깨비 같은 우울과 방황이 엘로아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말이다.
“소녀 또한 소문을 전해 듣고 즉시 귀주께 기별을 전했사오나...”
“알고 있네. 가장 먼저 확인한 연락이 수아 선생의 것이었으니까.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자 이곳에 온 것은 아니야.”
“하오면?”
“추적하던 적기사가 이곳으로 도주했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받고 싶네.”
“적기사 말이옵니까?”
수아는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엘로아에게 묻는 수아.
“귀주께는 예의 ‘계약’이 있지 않으신가요?”
티페레트가 주로 사용하는 계약마법 중에는 ‘서로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그 계약을 이용해 한번 눈에 들어온 호문쿨루스는 어렵지 않게 추적하던 그녀다.
“있었지. 허나 갑자기 소멸했어. 마치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엘로아가 잠시 게헨나에 들린 사이.
거짓말처럼 계약이 끊어져 버렸다.
공적이라면 몰라도 호문쿨루스 따위에게 계약을 해제할 지성 따위는 없을 텐데 말이다.
따라서 위치포인트를 찾은 것이다.
“저런....”
“실종자 통계를 확인할 수 있겠나?”
“가장 최근 갱신한 정보가 석달 전이온데...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우선 보고 싶군.”
적기사.
그 악명 높은 호문쿨루스의 도주 소식에 수아는 붓으로 그린 듯 고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선발로 사뿐히 걸음을 옮긴 수아는 온갖 서류가 빽빽하게 꽂힌 서장 앞에서 한 문서를 가져왔다.
“여기 있사옵니다.”
“고맙네.”
티페레트는 서류를 팔랑팔랑 넘기며 실종자 통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호문쿨루스에게 먹힌 자들은 현세에서의 기록이 사라져 버리기에 보험사나 관공서에서 제공하는 일반적인 통계로는 누가 사라졌는지 분별할 수 없다.
따라서 위치포인트에서 별도로 작성한 통계를 활용해 실종자의 추이를 분석하고, 그 분석을 바탕으로 호문쿨루스의 활동 구역을 특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서울 정도의 대도시와 인구밀도라면 월 100명 정도의 실종자는 특이한 것이 아니다.
“달리 보고 받은 것이나 수상한 징조는 없나? 놈은 거의 빈사 상태였으니 어떻게든 민간인을 습격해 마력을 회복하려 들 걸세.”
“그러고 보니 금일, 대량의 결정을 환전해 간 마녀가 넘긴 수상한 물건이 있사옵니다. 분석실에서 전해 듣기로는 기형적인 호문쿨루스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라 하더군요.”
“기형적인 호문쿨루스?”
“예, 눈이 일천 개가 족히 넘으며 결정도 유산도 아닌 기이한 것을 품고 있었다더군요.”
“직접 보고 싶군.”
“안내해 드리겠사옵니다.”
나란히 일어난 두 사람이 분석실로 향하기 전 수아는 엘로아를 보았다.
마법에 관한 연구조차 내려놓은 채 오직 복수를 위해, 또한 자신이 겪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하도록 헌신하던 엘로아.
살아가는 이유의 절반을 잃어버린 지금 의무를 수행하려드는 그녀의 심정은 어떨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귀주, 이번 일은 소녀에게 일임하시고 휴식을 취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엘로아는 잠깐 멈칫하더니 엷은 웃음을 지었다.
톡 건드리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애처로운 웃음이었다.
“마음만 받겠네 선생,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조금 쉴 생각이야. 한번 낚싯바늘을 걸어놓은 물고기는 손으로 잡아야지 않겠나?”
“주제넘은 말씀 죄송하옵니다.”
“아닐세, 무엇보다 나는 그 간악한 악녀가 이리 쉽게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그 치밀하고, 끈질긴 년이라면 분명 내가 떠올리지 못한 방법으로 살아있을 거야.”
“분명 그리할 것입니다.”
망집이나 다름없는 엘로아의 말에도 수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석실로 함께 들어섰다.
2.
샤론은 다시 한번 하늘을 원망했다.
“........”
“........”
“........”
델라 출현 고 위험지이던 위치포인트까지 무사히 빠져나왔는데 하필이면 길거리에서 마주하다니.
심장이 쿵쾅거린다.
샤론은 델라에게 켕기는 것이 있었다.
일방적인 억지라고는 하나 결투에 의해 빼앗긴 사냥터에서 사냥한 것.
거기서 수십억에 달한 수익을 올리고 환전한 것.
무슨 원한이 있는지 아무 일이 없어도 끈덕지게 다가와 시비를 걸며 샤론의 담당 일진 노릇을 하던 델라다.
그런데 이런 사실까지 들킨다면 분명 돈을 빼앗거나 도둑년이니 뭐니 빈정거리거나 할 것이다.
게다가...
샤론을 힐끗 시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우는 샤론을 위해 델라를 쓰러뜨렸다는 허세를 부렸고, 샤론은 그것을 모른 체하며 넘어가 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델라와 마주해버리면 그의 거짓말도, 샤론의 거짓말도 모두 소용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시우를 다른 곳으로 먼저 보내고 뒷일은 혼자 감당하자.
라고 생각한 샤론이 시우를 부르려던 때였다.
“안녕하세요.”
예상외로 시우가 델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동시에 아래로 일그러지는 델라의 입꼬리.
샤론은 델라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보았다.
뭔가 질린 것 같기도 하고 거부감을 역력하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
샤론이 델라를 만나면 항상 하게 되던 표정이었다.
그런데 자신만만하다 못해 나르시시즘에 절어있고, 당당하다 못해 오만한 델라가 저런 표정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안녕해요.”
그리고 시우의 인사에 델라가 퉁명스레 대답했을 때 샤론은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저 오만한 델라가 시비를 걸기도 전에 남자의 인사에 대꾸해준다?
게다가 샤론을 본채 만 채 한다?
이건 꿈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번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치신 곳은 괜찮으세요?”
“...당신이 신경 쓸 것 없어요.”
다치신 곳이 괜찮냐고?
신경쓸 것 없다고?
샤론은 도저히 이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다.
더불어 두 사람의 대화 맥락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어...?”
그 이상의 의리는 없다는 듯이 꾸벅 가볍게 인사하고 델라를 지나쳐 가는 시우.
둘은 팔짱을 낀 채였기 때문에 뻣뻣이 굳어있던 샤론도 반쯤 끌려가듯 그를 따라 걷게 되었다.
시우에게는 무서워하는 기색도, 혹은 거짓말이 들킬까 봐 염려하는 기색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태평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델라가 이렇게 쉽게 지나쳐 갈 수 있던 여자던가?
저 뒤끝은 늦가을 모기 같고 집념은 찰거머리 같은 여자가 정말 이 정도로 보내준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얼떨떨함에 샤론은 좌우도 분간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이봐요.”
그럼 그렇지.
이제야 세상이 좀 상식적으로 돌아간다.
분명 델라라면 이 타이밍에 온갖 모욕이란 모욕은 죄다 쏟아부으면서...
그러나 제자리에서 뒤만 돌아본 델라는 못마땅한 듯이 입술을 잘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다음에 싸우면, 내가 이겨요.”
마치 원수를 쏘아보는 것처럼 표독스러운 눈길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아니, 달려들지 못하는 눈길이기도 했다.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다시 덤벼들지 않은 건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약조했기 때문이에요. 알겠나요?”
“네... 뭐, 그러시겠죠?”
그녀의 열띤 반응에 반응하기 어렵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리는 시우.
실로 애매하고 어떻게보면 빈정거림으로까지 보이는 대답이었다.
평소 델라였더라면 그것으로도 지랄을 세 번은 했을 텐데...
델라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노려보기만 할 뿐 이내 모델처럼 휙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이 어찌 익숙하다.
델라에게 불만을 잔뜩 품으면서도 한마디도 못 하고 도망쳐야 했던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뭐해, 예약시간 지나겠다.”
“어? 어어... 알겠어.”
어안이 벙벙해진 샤론은 시우에게 이끌려 눈을 끔뻑이며 파스타 집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