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77화 (177/917)

#177

1.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정수리까지 거하게 올라온 취기, 시끌벅적한 번화가에서 살짝 삐져나온 골목에서 한 남학생은 담배를 물고 낄낄거렸다.

“어떻게 물어왔대? 존나 예쁘던데.”

맞은편 돌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친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와 그의 친구 모두 얼큰하게 취해있었기에 모든 말끝에 월척을 낚은 낚시꾼들의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태현이가 누나들 잘 꼬신다고.”

“딱 세 명 데려왔는데 다 와꾸 좋은 게 신기하다는 거지.”

“넌 누가 제일 맘에 드는데?”

“그, 소연이였나? 제일 오른쪽에 앉았던 단발. 걔가 제일 꼴려. 내가 아는데 저렇게 얌전하게 생긴 년이 침대에서 좆된다니까?”

여름방학 금요일 밤.

자취방에서 무료하게 뒹굴거리던 그는 친구의 호출을 받고 감성주점으로 달려 나왔다.

30분에 걸친 머리 세팅, 백화점에서 산 아껴두었던 옷.

귀찮음을 감수하고 치장에 노력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서 안에 남아있는(더불어 합석한 여성분들의 도주를 방지하는) 태현이 꼬셔온 여자들의 퀄리티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다들 마음에 드는 여자가 달라서 매칭도 잘됐고, 술 게임으로 하나씩 간을 본 결과 스킨십에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

“내가 분위기 하난 잘 잡지 않았냐?”

“뭔 소리야, 내가 옆에서 열심히 띄워줬는데. 그걸 홀라당 혼자 잘했다고 지랄이네.”

“어, 그건 인정.”

능글맞고 말재주와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경계심을 낮추고 짓궂은 남사친 포지션으로 변환.

2차를 칵테일 바에서 보내며 은근한 분위기를 만들고 자취방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필승의 원 패턴이다.

이렇게 살을 섞고 다닌 여자만 40명이 넘어간다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였고 말이다.

“이제 슬슬 들어가서 스퍼트 올리자. 너무 늦으면 또 집 간다고 지랄할지도 몰라.”

“오케 이거만 마저 피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를 두고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갑자기 요의가 몰려왔다.

“야, 씨바 나 갑자기 오줌마려운데 여기 화장실 어딨냐.”

“걍 여기서 싸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내가 망봐 줄게.”

“누구 오면 알려 줘.”

그는 바지춤을 주섬주섬 풀어헤치고 좁은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술에 취하면 기분은 좋아졌지만 몸은 무거워진다.

굳이 귀찮게 화장실을 찾아 방황하느니 여기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으로 들어온 순간 느껴지는 으스스한 한기.

“오줌도 안 쌌는데 지랄이네.”

대충 배수구에 조준한 채 소맥으로 빵빵해졌을 방광을 비운다.

“그런데 2차는 어디로 갈 거냐?”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골목 바깥에 서 있는 친구를 불러봤다.

대답이 없었다.

“야, 2차는 어느 쪽으로 갈 거냐니까?”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고 이 거리에 이 소리라면 못 들었을 리는 없는데.

낄낄거리며 농담을 지껄여 보았다.

“쓰러져서 자냐?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임마.”

돌아오는 것은 적적한 적막.

끊기지 않는 소변 줄기 가운데 그는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지금은 불금의 피크타임이라고 해도 좋을 새벽 1시이다.

아무리 번화가의 중심지에서 살짝 떨어진, 원룸촌에 섞여 있는 술집 근처라 해도 시끌벅적한 소란이 들려와야 정상이었다.

술에 취한 여자들이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거기에 껄떡이는 남자들이 있기도 하고, 거나하게 취해 노상주점에서 소란을 떠는 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마치 도서관에 온 것처럼 적막만이 가득하다.

심지어 그 흔한 차 소리나 배달 오토바이 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죽 위화감이 들었으면 술에 취한 그가 그따위 사소한 문제에 이상함을 느꼈겠는가?

“별 좆같은 일이 있네.”

영문 모를 불안감이 골목의 악취보다 짙게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반쯤 억지로 낄낄거리며 별일은 아니겠거니 스스로를 다독였다.

갑자기 쭈뼛 돋은 소름도 어디까지나 알코올에 맛탱이가 간 몸이 이상 작용을 일으키는 거라 믿었다.

그도 그럴 게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이었지 않은가?

술과 밤과 여자와 친구.

인생에 단 몇 년만 주어지는 짧은 전성기를 별똥별처럼 불태우는 청춘의 반짝임.

그것을 만끽하고 있었을 뿐이다.

“왜 대답을 안 해 씹새야.”

시끌벅적해야 할 밤거리가 침묵에 잠긴 이 기이한 현상.

술자리로 돌아가 그걸로 한동안 얘기를 나눌 생각으로 골목을 돌아 나온 순간.

그는 멍청히 굳어버렸다.

“......하하.”

아까까지 담배를 피우며 숙박 앱을 만지작거리던 친구가 귀신의 집에 나오는 장식처럼 변해있다면.

누구나 이런 웃음을 짓지 않을까?

흉골과 폐를 꿰뚫고 아마도 심장까지 꿰뚫었을 붉디붉은 꼬챙이에 꿰어진 채, 허공에서 50cm는 떠올라 대롱대롱 매달려있다면.

누구나 실소가 흐르지 않을까?

“뭔데 이건 또 시발.”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확장된 동공.

반쯤 벌어진 입으로 삐져나온 붉은 혓바닥.

가슴의 관통부부터 녹물이 흐른것 것처럼 새빨갛게 옷을 적시는 핏자국.

아까까지 웃고 떠들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공포에 질린 채 뻣뻣하게 굳은 얼굴은 우스꽝스러운 분장처럼만 느껴졌다.

친구가 갑자기 공중부양을 터득했을 리는 없으니.

친구를 들고 있는 것이 있을 터다.

고개가 조금씩 뒤로 젖혀지며 친구 뒤의 존재를 바라보았다.

코스프레? MMORPG 게임 기사? 반지의 제왕? 건담?

그가 2M에 달하는 거대한 갑옷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떠올린 단어들이었다.

붉게 치장되고 과장될 정도로 이것저것 장식이 달린 풀 플레이트 아머.

투구 안쪽 검은 공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눈동자가 희번덕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거미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무기질한 시선.

그저 먹이를 내려다보는 무감정한 눈길이 사정없이 전신을 꿰뚫는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이건 장난 따위가 아니다.

헛웃음을 지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다.

몰래카메라 따위도, 당연히 아니다.

“사....사....”

사람살려라고 외치려 했지만 목구멍이 납으로 땜질이라도 되었는지 바람이 빠지는 쇳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와줄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도망가자, 도망이라도 가자.

그렇게 헛된 희망을 품으며 부리나케 달려가려던 도중.

그는 가슴에 화끈한 통증을 느꼈다.

휘두르는 장면조차 보지 못했다.

불길할 정도로 붉은 창이 가슴을 꿰뚫고 있다.

원래 그 끝에 꼬치처럼 매달려있던 친구는 어느새 상반신 한쪽이 뜯겨 나간 채 쓰레기처럼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최후로 간직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2.

순식간의 사냥터로 초대한 먹이를 해치운 호문쿨루스는 창을 거둬들였다.

이미 사냥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모든 연과 존재를 박탈당한 시체는 허무한 잿가루가 되어 핏물에 섞여 아스팔트를 장식할 뿐.

붉은 기사는 거기에 대한 어떤 애도도 감정도 품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은 무슨 감정을 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유산을 노리는 자들을 처단한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마녀를 죽여 마력을 뺏는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인간을 습격해 ‘연’을 먹어치워 마력으로 전환한 뒤 보충받는다.

수백 년 동안 그래왔듯이 기계적인 알고리즘에 의해 작업을 수행할 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세월이 쌓인 만큼 일련의 동작을 수행하는 것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것저것 요령이 붙었을 뿐.

조촐한 식사를 끝낸 적기사는 생각했다.

부족하다.

아직 배고프다.

이 정도로는 연이은 격전으로 손상된 피해를 전혀 수복할 수 없다.

수백 년 간 맞선 마녀 중에 가장 강했던 분홍 머리의 강적.

일격으로 산을 베고, 일각으로 지진을 일으키며, 붉은 가지가 일으키는 왜곡까지 몸 하나로 버텨내는 강력함.

붉은 가지로 아무리 추적을 피해 위장한다 한들, 그녀는 반드시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과 적기사가 지니고 있는 논리회로는 모두 필패를 알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적기사는 거기에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았다.

다만 기계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검토할 뿐이다.

우선 더욱 많은 마력이, 아니면 더욱더 많은 인간이 필요하다.

기체에 남아있는 마력은 정상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반의반.

다시 한번 분홍 마녀와 충돌이 일어난다면 제대로 된 전투는커녕 도망칠 수조차 없다.

이런 상태로 다른 마녀를 사냥하는 것은 리스크가 높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 상태로 전투를 벌여도 좋을 대상은 기껏해야 정식 마녀가 아닌 견습마녀 정도이다.

그렇다면...

적기사는 가장 마지막으로 떠오른 선택지를 선뜻 택했다.

인간을, 더욱 많은 인간을 먹어치우자.

필요한 마력의 양과 인간 하나를 죽여 얻을 수 있는 마력을 계산한다.

약 4000명.

그 정도면 마녀를 사냥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다.

-찰박

끈적한 피 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어딘가 파충류의 발소리를 닮아있었다.

적기사의 시선이 뒤를 돌아보았고 동시에 인지했다.

수명이 다해 어스름해져가는 가로등 아래.

바닥에 마저 스며들지 못한 핏물을 밟고 마녀가 서 있다.

상복에 어울리는 새까만 드레스를 걸친 우아한 마녀가.

까마귀처럼 검은 흑발과 진녹색의 눈동자.

마녀답게 통상적인 의견에 따르면 ‘미인’이라는 평가가 전혀 아쉽지 않을 외견이다.

그러나 그 미모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얼굴 정중앙에 선을 그었을 때 한쪽 얼굴만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로 지진 듯한 화상 자국 같기도 했고, 화학 약품에 녹아내린 고깃덩어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언제 이 결계 안으로 들어왔는지 감지도 못했는데 벌써 뒤를 잡혔다는 것.

지금 상태로는 감당하지 못할 강력한 마녀라는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다.

적기사는 섣부르게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붉은 가지를 겨누었다.

어설프게 도망가다 뒤를 잡히는 것보다 대치 중 빈틈을 노려 도주하는 것이 더 확률이 높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니?”

그런 적의의 표출에도 아랑곳않고 마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의도를 짐작하지 못할, 기이한 친절에 적기사의 움직임이 우뚝 멎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케이스임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것에 지장이 생긴 까닭이다.

“배가 많이 고프구나.”

마녀는 적기사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 거리는 창을 내밀기만 해도 확실한 유효타를 낼 수 있는 사정거리 안이었다.

상대는 공격당할 것을 전혀 상정하지 않은 듯한 무방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 방심이라면 가능성이 생긴다.

반사적으로 창을 내질러 심장을 꿰뚫으려 했던 적기사의 움직임이 녹이 잔뜩 슨 기계처럼 삐걱인다.

단단히 속박된 듯이 움직이지 않는 기체.

완력도, 마력도, 붉은가지의 능력도 동원해 빠져 나와보려 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녀는 옴싹달싹 못하는 적기사에게 다가가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방금 뽑아낸 것처럼 열심히 꿈틀거리고 있는 심장이었다.

“이걸 먹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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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아, 델라를 그려주셨던 빌런 전문 팬아터 멘탈박살난환쟁이 님의 3번째 팬아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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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기사 팬아트라고 하시네요 ㅎㄷㄷ

어째 제 머릿속에 그렸던 것보다 훨씬 멋져 보이는건 기분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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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적기사와 맞다이 치는 갑옷 시우(상상도)라고 하십니다

가슴이 웅장해져버리네요

너무 멋진 그림 감사합니다!

갤러리에 고이 모셔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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