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72화 (172/917)

#172

1.

역시 아무리 괴물 같은 형태를 띤 생명체라도 머리는 약점인 모양이다.

마상 시합용 창처럼 긴 랜스를 만들어내어 미간(이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한가운데에 푹 꽂아주자 괴물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움찔하더니 죽어버렸다.

남아있던 8개의 눈알에서 빛이 사라지자마자 녹아내리는 살점.

타르처럼 검게 번들거리던 몸뚱이는 거의 액체가 되어 건물 잔해 틈새로 스며들었다.

그때 검은 액체 곳곳에 반짝거리는 물체가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어미 호문쿨루스의 몸에 박혀있던 눈알, 즉 결정이었다.

“어....! 어! 어!”

“샤론! 빨리 주워!”

행여 호문쿨루스가 최후의 난동을 부릴까 봐 시우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샤론이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샤론은 질겁을 하며 결정을 손으로 하나하나씩 주웠고 시우도 재빨리 달려가 결정을 회수하는 것을 도왔다.

금싸라기같이 귀중한, 이라기보다는 금보다 비싼 결정이 건물 틈새로 사라져 못 찾게 되는 것은 시우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센과 치히로의 머시기 영화에서 나온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허겁지겁 결정을 모으던 시우와 샤론.

말로는 쉽게 했지만 시우가 어설픈 염동까지 동원하여 2시간 내내 모은 수확은 다음과 같았다.

호문쿨루스의 결정 도합 4091개.

총 무게는 샤론피셜 5.4kg.

위치포인트에 가져다주면 받을 수 있는 현상금은 54억 원.

“오...오... 오십 사억.....”

마지막 개수를 확인한 샤론은 입을 떡벌린 채 비틀거렸다.

당연히 방방 뛰며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워낙에 큰 금액인지라 외려 뻣뻣이 굳은 모양새다.

휘청거리며 쓰러지려 들었기에 시우가 허리를 받쳐 부축해주었다.

“54억을 벌려면... 편의점 알바 60만 시간....”

“야야야, 정신차려.”

“미쳤어, 너무 기뻐 어떡해...”

이것까지만 해도 로또라고 볼 수 있는데 시우는 추가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호문쿨루스의 심장 부근에 있던 심장 형태의 조각이 있다.

결정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녹아내렸는데 이것만큼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절할 듯 기뻐하는 샤론을 보는 한편 시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심장을 보았다.

겨우 시우의 주먹 정도의 크기이긴 한데 몹시 징그럽게 생겼다.

시금 당장 유리관에 넣어 전시해도 포르말린에 넣은 심장 표본으로 보일 지경이니.

“샤론 이건 뭐일 것 같아?”

“나도, 나도 몰라.... 에헤...에헤헤.... 54억... 54억...”

급기야 모르핀에 취한 것처럼 히죽히죽 웃으면서 시우에게 앵겨붙는 샤론.

막 과도한 스킨십까지는 아니었지만 꽉 끌어안는 통에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이 팔에 비벼졌다.

“어휴.”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시우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사실 샤론은 조금 보답받으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 사람이긴 하지.

그런 감상을 품던 중 연체동물이 되어 흐느적거리던 샤론의 몸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었다.

“앗...!”

샤론이 이제껏 잊고 있던 한 가지를 떠올린 것이다.

바로 델라.

샤론은 델라에게 패배했고 사냥터를 빼앗겼다.

즉,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는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델라가 오늘의 전리품을 전부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그, 그건 안 돼...”

겨울잠을 위해 모은 도토리를 모두 뺏길 위기에 처한 다람쥐처럼 오돌오돌 떨기 시작한 샤론을 시우는 의아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빨리 돌아가자. 최대한 빨리.”

“왜 무슨 일 있어?”

샤론은 아차 싶었다.

여기서 델라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또 샤론이 시우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나버린다.

따라서 샤론은 즉각 허리를 곧게 세우고 능청을 떨었다.

“아아, 너무 피곤해서 그렇지. 오늘도 집에 가서 영화 보면서 야식 먹자.”

“오늘은 너가 사는 거랬지?”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오늘은 누나가 쏠게! 그리고 좀 씻고 싶기도 하고.”

샤론은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듯이 팔을 쫙 펼쳐 보였다.

불에 그슬려 검댕이가 묻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진을 뒤집어쓴 탓에 회색빛이다.

시우도 마찬가지여서 둘은 서로의 지저분한 모습을 보고 쿡쿡 웃었다.

아무튼 오늘의 고생은 여기까지.

시우와 샤론은 이면결계가 점차 축소되며 사라지는 모습을 뒤로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2.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찬을 준비했다.

맛있다고 소문난 족발집에서 반반 족발과 막국수, 느끼한 것만 먹으면 지겨우니까 떡볶이 한가득, 뜨겁고 자극적인 것만 먹다 보면 리프레시가 필요하니까 참치 회 한 대접 이런 생각에 메뉴를 하나둘씩 늘려갔다.

마지막으로 후식으로 즐길 아이스크림까지 준비 끝.

그렇게 식탁에 도란도란 마주 앉아 이것저것 나눠 먹던 시우는 분배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안 돼, 이걸 어떻게 나 혼자 다 받아....”

“뭐 어때? 내가 말했잖아. 나는 마법 실력이 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당연히 시우는 모든 결정의 소유권을 샤론에게 넘기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제머나이 백작이 준 블랙 카드가 있는 이상 시우가 돈 부족으로 허덕일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인생관 자체가 돈 욕심은 그렇게 크지 않던 시우다.

“나한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라면 조금 더 필요한 사람이 갖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내가 돈 더 모아서 뭘 어쩌겠어 어차피 지금도 풍족하게 살고 있잖아.”

“그래도 고생은 너가 다 했잖아.... 나만 이렇게 덜컥 가져가 버리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아 시우야... 다시 생각해 보자.”

“에이 됐다니까 그러네. 어차피 너가 가르쳐준 원소 마법이 없었으며 오늘 개밥 돼서 죽었어.”

이건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림자의 법칙에 질량을 부여하는 접목도 샤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백화점에서 사냥한 1억 초반대의 결정을 준다고 했을 때는 고맙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4억이다.

54억.

샤론의 총 빚의 10분의 1을 탕감할 수 있는 목돈.

호의로 준다고 덜컥 받을 수 있을 만큼 샤론은 뻔뻔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 부담스러움을 토로하는 샤론과 괜찮으니 주머니에 넣어두시죠를 반복하는 시우.

결국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화목한 다툼은 샤론의 눈물로 끝이 났다.

“됐어, 부담은 무슨. 아니 진짜 괜찮다니까. 어어, 울지마. 왜 울어?”

“...너, 진짜 좋은 사람이야... 훌쩍.... 고마워... 고마워 진짜....”

“그래그래, 고마우면 쌈이나 하나 싸줘.”

“응... 싸 줄게...”

샤론은 훌쩍훌쩍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상추, 깻잎 위에 족발을 얹고 막국수와 생마늘까지 얹은 근사한 쌈을 만들었다.

이거 참...

좀 부끄럽기도 하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하는 샤론의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그렇다.

“아... 아.... 해... 훌쩍....”

샤론이 건넨 한 쌈을 입안 가득 문 시우는 깜짝 놀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샤론이 뒤에서 시우의 머리를 꾹 껴안은 것이다.

말랑말랑한 샤론의 가슴이 쿠션처럼 뒤통수를 받쳐 들고 슬쩍 위를 보자 울먹이는 샤론의 눈물이 시우의 이마 위로 툭툭 떨어졌다.

“고마워 시우야... 정말로.”

그녀가 활짝 미소짓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3.

식사가 끝난 이후에 대충 식탁을 치운 시우는 테이블 위에 예의 심장을 올려놓았다.

은은한 붉은빛으로 빛나는 살덩이는 막 살아있는 심장을 적출한 것처럼 생생했지만 아무런 냄새도 움직임도 없다.

“이건 뭘까?”

처음에는 당연히 유산이겠거니 싶었던 시우.

샤론은 한참이나 심장을 만지작거리면서도 쉽게 그 정체를 특정하지 못했다.

“그노시스의 알은 당연히 아닌 것 같고... 아니 애초에 유산이 아닌 것 같아.”

보통 호문쿨루스의 유산이라 함은 한눈에 봐도 그 용도를 알 수 있게 생겼다.

희귀한 포션이면 포션, 아티펙트면 아티펙트, 그노시스의 알이면 알, 연구 문헌이면 문헌.

하지만 이건 조목조목 뜯어봐도 용도를 점칠 수 없었다.

“한 번 해부해 볼까?”

“막 갈라보고 그래도 되는 거야?”

“어차피 이거 자체로는 아무런 쓸데가 없잖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두 사람.

상의 끝에 심장을 갈라보기로 했다.

시우는 그림자를 아주 조금만 뽑아내 메스처럼 만들어 심장을 갈랐다.

보기와는 달리 굉장히 단단하고 살덩이라기보다는 돌덩이에 가까운 감촉이었으므로 제법 힘을 주고 나서야 안이 갈라진다.

“어....”

그리고 심장을 절반으로 갈랐을 때 무엇인가 등장했다.

“결정이잖아?”

그건 호문쿨루스의 결정이었다.

그것도 지름 5cm 정도로 꽤 컸다.

대단한 것이 나오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냥 결정이라니.

“거창할 것 같았는데 별거 없네.”

“.........”

하지만 샤론은 턱을 괸 채 심장에서 꺼낸 호문쿨루스의 결정을 이리저리 빛에 비춰 보았다.

표정이 심각하다.

“왜?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했어?”

“어, 완전 이상해.”

“뭐가?”

“원래 호문쿨루스는 죽고 나면 유산과 결정을 제외하곤 천천히 몸체가 사라져. 우리도 오늘 봤지?”

“그렇지?”

샤론은 결정을 내려놓고 가운데가 갈라진 심장을 들어 보였다.

“그런데 이게 남아있잖아. 이건 결정도 뭣도 아닌데 말이야.”

마법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한 시우는 샤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샤론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 개입한 거야.”

“개입?”

“응,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호문쿨루스의 결정에 마법적 조치를 취해놨어. 외부에서 간섭해 놓은 거니까 호문쿨루스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거지.”

“그러니까, 저 심장이 호문쿨루스를 조종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것까진 모르겠어. 강화해놓은 건지, 조종을 한 건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인지까지는... 심장 안에 결정이 감싸여있는 걸 보면... 아마도 인신공양을 통한 주술적 강화일테고...”

샤론은 조목조목 심장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가벼이 넘기지 못할 단어를 들은 시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신공양이라고?”

“응, 그래서 아무래도... 공적의 소행일 것 같긴 해. 이거 누가 봐도 사람 심장이잖아.”

“전혀 예상 못 했는데.”

갑자기 반으로 갈라진 심장이 그로테스크해 보인다.

어쩐지 저 커다란 괴물이 갖기에는 너무 작다 싶었는데 시발 그게 사람 심장이었다고?

“그런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어. 어차피 내일 위치포인트에 결정 맡기면서 보고만 하면 되거든.”

“그런 거야?”

“응, 그러니까 이 이후의 일은 나한테 맡기고 오늘은 푹 쉬어. 고생 많았잖아.”

사실 샤론의 말대로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지쳐서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오늘의 활약을 생각해보면 하룻밤 정도는 복잡한 생각 없이 푹 쉬어도 되겠지.

필요한 보상이다.

“오늘도 같이 영화 볼 거야?”

“응.”

“그럼, 나 씻고 나올게. 따뜻한 물로 릴렉스 좀 하고 싶어.”

“그래, 영화는 뭐 골라놔?”

“오늘은 바쁜 하루였으니까 좀 잔잔한 거로 보고 싶어. 너는 어때?”

“나도 좋지.”

그렇게 얼추 함께 볼 영화까지 정한 샤론은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갔고 시우는 소파에 누워 시원한 맥주를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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