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71화 (171/917)

#171

1.

마력을 전부 소진한 샤론은 전력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몰려드는 검은 개들로부터 샤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 굳이 분류하자면 패널티지.

샤론을 지켜야 하는 것, 바글바글 몰려드는 검은 개를 상대해야 하는 것, 아직도 건물 측면을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쓰는 어미 개에게 먹일 한 방을 준비하는 것.

그야말로 삼중고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이미 비슷한 경험은 많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시우가 차곡차곡 쌓아온 ‘마법’은 언제나 계획의 성공을 안겨주었다.

지금 시우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일신의 힘을 믿을 뿐.

“좀 더 물러나 있어!”

시우는 그림자의 창을 힘껏 내지르며 샤론에게 외쳤다.

샤론 역시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발만 동동 구르며 시우의 분투를 지켜봐야 하는 것은 역시 분하다.

하다못해 아까 결정을 벌겠답시고 모았던 마력을 소진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거들 수 있었을 텐데.

“히...힘내! 시우야!”

결국 응원이라도 하는 샤론.

창이 기묘한 각도로 휘어지며 달려드는 검은 개 두 마리를 동시에 꿰뚫고 방패로는 측면에서 날아오는 검은 개를 후려친다.

왼손과 오른손은 전혀 다른 동작임에도 물 흐르는 듯이 어색함이 없었다.

“피어라!”

동시에 시우는 마력을 증폭시켰다.

마안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준 왼쪽 눈으로 마력을 흡수하고 그것을 증폭.

증폭, 또 증폭시킨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건 굉장히 위험한 행위였다.

마력의 증폭은 그 과정에서 노이즈가 생겨나는 만큼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한 계산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잡음이 섞인 마력이 마력회로를 쇼트시키며 자칫 술자 본인에게 중대한 내상을 입히기 떄문이다.

적어도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마력의 증폭과 노이즈 정류는 시우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노예시절 시우가 마력 한 방울 저장할 수 없는 몸으로 대규모 마법식을 발동하기 위해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던 부분이었으니까.

“아.....”

샤론은 곡예와도 다름없는 위험천만한 행위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도 잠시, 아무리 봐도 신기한 광경에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점차 증폭된 시우의 마력 총량이 샤론이 완전한 컨디션일 때 다룰 수 있는 마력만큼이나 농밀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우는 그저 마력을 증폭시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증폭시킨 마력을 즉각 그림자로 변환하고 있다.

샤론과 시우가 서 있는 옥상 측면에는 어느새 막대한 양의 그림자가 차곡차곡 쌓인다.

그림자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달랐다.

그전에는 입자가 워낙에 미세해 연기와 같은 느낌을 풍겼다면 지금은 연기보다는 사철(沙鐵)에 가깝다.

“크윽!”

시우는 방패를 휘둘러 팔을 물고 늘어지던 개 한 마리를 쳐냈다.

갑옷을 뚫은 이빨이 팔뚝까지 닿았는지 화끈한 통증이 퍼졌다.

아무래도 연산을 해가며 전투를 하는 건 수행능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러나저러나 죽은 목숨이라면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

시우는 증폭한 마력으로 그림자를 무작정 뽑아냈다.

입자를 보면 알겠지만 이 그림자는 평소와 같은 것이 아니다.

수은보다도 밀도가 높고 월등히 무겁게 압축된 그림자.

흙의 원소와 결합에 중량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림자의 날개를 만들거나 갑주로 전신을 강화하는 것과 요령이 비슷하다.

다만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시우는 부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질량을 머금은 그림자는 옥상 한쪽에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일견 이 행위는 무의미해 보인다.

단순히 마력이 많은 것과 그것을 장악할 능력이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시우가 아무리 마법을 증폭시켜 그림자를 복사해낸 다 한들 시우는 그것들을 거의 활용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림자가 흩어지지 않고 모이도록 통제하는 것이 전부.

하지만 이 사전작업이야말로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것이다.

-쿠쿠쿠쿵!

건물이 크게 휘청였다.

저 멀리서 도약해온 어미 개가 30층이 넘는 빌딩의 중간 부분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빌딩 전체가 강진에 휘말린 듯 휘청이며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기 시작한다.

“시...시우야! 점점 더 몰려와! 건물도 이러다가 무너지겠어!”

샤론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수백 마리의 검은 개가 몰려드는 광경을 내려보았다.

가랑비에 몸이 젖는 법이다.

아무리 시우가 이 허접한 개들을 상대로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 해도 이 정도의 숫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옥상에 올라온 이상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

“조금만 더....”

아직 부족하다.

조금 더 모아야 한다.

일격으로 끝내지 않으면 외통수에 몰리는 것은 이쪽이다.

시우는 연신 증폭을 사용하며 그림자를 더 뽑아냈다.

슬슬 머리와 눈이 아프기 시작한다.

전신에 뻗은 마력회로는 명백한 과로 탓에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선사하고 있었다.

뜨거운 불꽃이 혈관 구석구석을 타고 흐르는 끔찍한 감각이다.

-쿠오오오오오!!!

“거의! 거의 다 올라왔어!”

먹잇감을 코앞에 둔 기쁨의 포효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건물에 발톱을 박아 넣으며 위태로운 등반에 성공한 어미 개.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

“됐다!”

시우는 힘껏 리본을 휘둘러 옥상 주변에 있던 호문쿨루스들을 전부 쳐냈다.

훌쩍 뒤로 물러선 채 샤론의 허리를 감싸고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그림자에 일제히 마력을 주입한다.

“피어라.”

그리고 동시에.

-끼이이이이익!

소름끼치는 굉음을 내며 빌딩이 기우뚱 쓰러진다.

2.

시우가 떠올린 발상은 단순했다.

어찌 보면 아까 백화점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

백화점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충격은 질량병기 그 자체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고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실로 재앙에 가까운 충격과 힘.

건물이라는 건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요새 따위가 아니다.

테러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정밀하게 설계했다던 쌍둥이 빌딩도 고작 비행기와의 충돌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았던가?

건물을 철거할 때도 하중을 받치는 몇 개의 기둥만을 제거하면 나머지는 건물 자체의 중량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지금 시우가 대피한 빌딩은 이미 호문쿨루스가 난동을 부린 까닭에 중간부와 하부가 무너지며 기울고 있던 상태였다.

즉, 언제 부서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그렇다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 상황에 시우가 살짝 숟가락 얹었다.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은 빌딩이 쓰러지는 ‘방향’을 결정하고 ‘타이밍’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옥상 한쪽에 수십 톤 정도의 그림자가 쌓였다.

당연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리 부실해진 건물이라도 버텨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순간적으로 마력 주입해 단순한 명령을 한다면?

창이나 갑옷을 만드는 것처럼 복잡한 명령일 필요는 없다.

그러기에는 시우의 마력 장악력이 너무 달린다.

하지만 단순히 ‘수초 간 질량을 증폭시킨다’ 정도의 단순한 시행은 가능하다.

시우는 이제껏 증폭시켰던 모든 마력을 그림자에 단번에 쏟아부어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질량을 그림자에 부여했다.

여기서 질문.

일순간 증가한 수천, 아니 수만 톤의 질량이 건물의 부실해진 측면으로 쏠린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괴수가 난동을 부리던 방향으로 쓰러진다.

묵직한 그림자와 건물 전체의 중량이 외벽을 기어오르던 호문쿨루스를 짓눌렀다.

호문쿨루스가 내지르는 비명조차 천둥이 바로 옆에서 치는 듯한 굉음에 파묻혔다.

자욱한 분진은 때마침 내려주는 소나기에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3.

“우웩..... 우웨에에엑....!”

배를 얻어맞은 것처럼 울렁이는 속에 시우는 엎드린 자세로 신물을 게워냈다.

샤론은 먼지투성이가 된 채 시우의 등을 두드렸다.

“괜, 괜찮아?”

폐허가 된 신촌 로터리.

평소 맛집 탐방부터 전단지 붙이기까지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었던 풍경은 폭격이 지나간 것처럼 황량했다.

“뒤, 뒤질 것 같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빌딩을 무너뜨려 호문쿨루스를 퇴치한다는 시우의 도박수는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순간적으로 수만 톤의 중량으로 불어난 그림자에 깔린 호문쿨루스는 이후 무너지는 빌딩의 잔해에 연달아 얻어맞으며 압사당했고, 시우는 리본을 옆 건물로 뻗어 아슬아슬하게 샤론과 함께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던 스턴트 액션이었다.

어미 개가 죽자마자 그놈의 몸에서 나왔던 작은 호문쿨루스들도 모두 죽어버린 것은 시우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몸 상태를 보아하니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기껏 보스몹을 잡아놓고 그대로 잡몹에게 당할 뻔했으니 말이다.

“끄으윽.....”

“시우야! 죽으면 안 돼!”

시우가 신음하며 바닥에 대자로 뻗자 임종을 앞두기라도 한양 눈물을 철철 흘리는 샤론.

제아무리 영체라도 이 정도로 험하게 굴리면 사달이 나는 것은 뻔했다.

“안 죽어... 5분만 더 누워있을래.”

“여기, 여기에 누워.”

샤론은 냉큼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자신의 허벅지 위로 시우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야 됐어, 맨바닥인데 무릎 아프게.”

“난 괜찮아. 아무것도 못 했으니까 이렇게라도 하게 해줘.”

샤론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기도 했고, 잡다한 일로 투닥거릴 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시우는 잠자코 그녀의 무릎베개 서비스를 받아들였다.

“아... 진짜 고생많았다.”

“고생이야... 너가 다했지...”

“아냐, 그래도 너가 건물 중간에서 한번 활약 안 해줬으면 그대로 잡혀서 개먹이였어.”

“나는 너가 안고 달리지 않았으면 진작에 잡아 먹혔을걸?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갈 때도 너가 잡아 채줘서 안 끌려갔잖아. 얼마나 고마웠는데.”

서로 오늘 레이드의 공훈을 칭찬하는 두 사람.

하지만 시우가 생각하기에도, 샤론이 생각하기에도 오늘 싸움은 시우의 원맨쇼였다.

무너지는 백화점 아래서 탈출하고, 쫓아오는 괴물로부터 도망치고, 원흉의 정체를 간파하고, 결국에는 딜까지 혼자 넣었으니.

근데 그렇다고 다 인정하기에는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순전히 실력이라기엔 운적인 요소가 많이 따라주었으니까.

톡톡 뺨을 때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편안하게 누워있는 시우.

모든 계획이 맞아떨어졌을 때 성취감.

적의 전력을 분석하고 이쪽과 비교해 공략을 알아내는 순간 느껴지는 희열.

살아남아서 드는 생각이겠지만 아찔하고 짜릿한 순간이었다.

“나도 정신이 나갔지....”

“응?”

“아무것도 아니야.”

시우는 고개만 슬쩍 돌려 호문쿨루스의 무덤이 된 빌딩의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에 삐죽빼죽 튀어나온 이형 철근, 구부러진 아이빔 철골과 전선, 뭐가 뭔지도 모를 잡다한 것들이 쌓여있고 안에서는 메케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이사이 시우와 샤론을 괴롭혔던 검은 개가 짓이겨지거나 토막이 난 채 끼어있는 것은 덤이다.

-쿠구구궁....!

“아, 제발 좀....”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건물 잔해들이 들썩이더니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한다.

저 아래 묻혀있던 호문쿨루스가 몸을 일으켜 빠져나오려는 것이다.

딜량이 부족했나?

수십 미터 상공에서 자유낙하 한 것도 모자라 그 많은 잔해에 얻어맞다 파묻혔는데도 살아있다고?

시우는 가공할 만한 호문쿨루스의 내구도에 혀를 내둘렀다.

“시우야! 업혀!”

왜 진작에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후회하던 중.

샤론이 재빨리 시우를 들어 올렸다.

“내 발로 걸을 수 있어.”

시우는 비틀거리며 도망치려다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크오오오....

마침내 가장 큰 잔해 하나를 비집고 나온 호문쿨루스.

그 모습이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발 하나를 제외한 모든 발은 잘려나가 있고 온몸에서 붉게 빛나던 눈알은 터지거나 으깨져 검은 진액 같은 것이 줄줄 흐른다.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울부짖음 대신 다 죽어가는 짐승의 쇳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잘됐네.”

마침 결정을 회수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아쉽기도 했었는데.

시우는 샤론의 부축에서 벗어나 그림자의 창을 하나 만들어 냈다.

가능한 날카롭고 첨예하게 제련한 창을 들고 호문쿨루스의 머리 앞에 선다.

대가리만 똑 떼어놓고 봐도 중형 세단만 하니 이 정도의 충격에도 숨은 붙어있는 것이겠지.

시우는 볼 수 있었다.

개의 머리 부위에 빛을 잃지 않고 있는 네 쌍의 눈알을.

어디를 보는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기묘한 눈빛은 숨통을 끓으려는 시우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 업보니까 달게 받아들여라.”

저항 없는 상대를 공격하려니 뭔가 싱숭생숭한 느낌이었지만 상대는 인간을 잡아먹고 재앙을 일으키는 데다가 오늘 밤에는 샤론과 시우를 주전부리로 삼으려 했던 괴물이다.

시우는 창을 머리 중앙에 겨누고 깊숙이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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