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1.
흔히들 말하길 지옥에는 그 입구를 지키는 괴물들이 존재한다고 하지.
왜 있지 않은가?
그리스 신화에서 머리 세 개 달린 개라던가.
하지만 시우는 단언할 수 있었다.
지옥을 지키기 위해 괴물 한 마리를 들여놓을 거라면 지금 미친 듯이 시우와 샤론을 쫓아오는 저 개새끼를 놓는 편이 훨씬 효과가 좋으리란 걸 말이다.
양자 간의 속력 차를 고려할 때 도로를 따라 이면결계의 경계로 달리면 금세 잡힐 것이 눈에 선했다.
따라서 시우는 건물 사이 골목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놈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쾅! 쿠쾅! 콰과광!
하지만 호문쿨루스는 멈추지 않았다.
정차해있는 버스를 머리로 들이받아 허공으로 날려버리면서, 상가 건물의 옆구리를 죄다 박살 내면서, 전봇대나 가로등 따위를 잔가지 헤치듯 무너뜨리면서 추적을 계속한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특수촬영용 미니 세트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개새끼 같다.
아무튼 장애물을 이용해 빙글빙글 돌면서 거리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아예 떨쳐내거나 결계 밖으로 나가는 건 힘들어 보였다.
직선으로 달려나가는 순간 우월한 피지컬 차이에 의해 따라잡힐 테니 말이다.
-쿠오오오오오오!!
“거 존나게 빠르네!”
“음븜븜븜븜...!”
가장 처음 들린 소리는 약이 바짝 오른 괴수가 내지르는 표호.
두 번째는 아무리 도망쳐도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괴수에 대한 시우의 짜증.
마지막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안긴 탓에 흉갑에 계속 뺨이 부딪치는 샤론이 내는 이상한 소리였다.
“샤론! 저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뭐야!”
“모, 몰라 나도...! 저런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어보지만 샤론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기만 할 뿐 시원한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차라리 싸우면 안 되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어보는 시우.
“저거 싸우면 어떻게든 안 될까? 내가 해볼게!”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을 일으켰던 호문쿨루스가 눈이 스무 쌍이었어! 저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야!”
눈깔 40개가 역대 최악이었다고?
시우는 힐끗 어깨너머로 시선을 던져 광분하고 있는 호문쿨루스를 바라보았다.
“존나 역겹게 생겼네.”
그것만으로 살짝 기분이 나빠진다.
마치 초등학생이 새까만 찰흙으로 대충 빚어 놓은 듯한 생김새이다.
어디가 앞발이고, 어디가 뒷발이고, 어디가 머리인지 정도는 분간이 가지만 마치 한번 밟아 놓은 듯이 엉망진창인 생김새.
놈이 포효 할 때마다 풍기는 악취와 굉음은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저 호문쿨루스가 지옥에서 올라온 짐승처럼 역겹고 징그럽게 생겼다는 것이 아니다.
몸 어느 곳도 빼놓지 않고 빼곡하게 박혀 있는 저 눈깔.
그 개수는 족히 네 자릿수는 넘어 보였다.
“그럼 저거 잡으려면 누가와야 하는 거지?”
“몰라아아!!! 왜 이런 일만 생기는 거야!!”
시우의 품에 꼭 달라붙은 샤론이 훌쩍이며 인생 한탄을 시작한다.
“낙인은 이상하게 계승돼! 실험 중에 폭발이나 일어나고! 하필이면 연구문서를 날려서 빚쟁이나 되고! 게다가... 게다가 저 괴물은 뭐냐고!”
“이, 일단 진정하시고 꽉 잡아 뛴다!”
-쿠오오오오오오!
또 바짝 거리가 좁혀졌기에 이번에는 빌딩을 활용하기로 했다.
한걸음에 수십 미터 좁혀지는 속도를 이용해 3단 뛰기를 하듯 훌쩍훌쩍 달려 그것을 점프력으로 전환해 도약한다.
-와장창!
시우는 샤론에게 유리 조각이 튀지 않게 그림자를 펼친 채 빌딩 4층으로 단숨에 뛰어들었다.
아무래도 사무실로 이용되던 공간이었는지 컴퓨터며 서류며 와장창 깨뜨린 채 건물 내부로 들어선 시우.
그리고 거의 시차 없이 괴물의 주둥이가 벌레를 파먹는 딱따구리의 주둥이처럼 건물 안을 파고들었다.
“이런 미친!”
“꺄아아악!”
잠깐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시우는 괴물에게 발목을 물릴 뻔한 샤론을 잽싸게 들춰 매고 건물의 반대쪽으로 달려나갔다.
-키아아아아아
아슬아슬하게 먹잇감을 놓친 짐승의 포효가 귓등을 때린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바람이 새어 나와 복도의 온갖 것들을 휘날리게 했다.
“됐다!”
그러나 이것은 길조다.
아직도 저놈이 뒤에 존재한다는 것은 반대 측 빌딩 창문을 깨며 달려나갈 때 빌딩이라는 벽 하나를 사이에 세워 둘 수 있다는 의미다.
추적에도 유예가 생기고, 그 틈을 타 오르골의 효과로 은폐하거나 더 멀리 도망친다면 이면결계 밖으로 나가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와.... 진짜 지랄맞네.”
그러나 시우의 꿈은 별안간 들려오는 기척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비누거품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크르르릉!
-컹컹 컹컹!
어디서 나온 건지 낌새도 없이 나타난 검은 개 수십 마리가 복도를 이리저리 박차며 시우와 샤론을 어머니께 선물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우우우!
-아우우우!
게다가 그 중 몇몇은 시우가 도망치는 위치를 하울링으로 보고하는 중으로 보인다.
이래서야 유일한 희망이던 따돌리기나 숨바꼭질도 가망이 없다.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나빠지기만 하는 걸 보니 되려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잡힌다.
이제 곧이다.
확실히 검은 개들은 덩치가 작은 만큼 어미보다도 빨랐다.
문제는 여기서 드잡이를 하는 순간 완전히 발목을 잡혀버린다는 것.
간신히 유지되던 거리가 좁혀지면 남은 것은 정면 승부밖에 없다.
시우의 바로 뒤까지 쫓아온 검은 개가 거칠게 도약했다.
그때 가슴팍에 안겨있던 샤론이 주섬주섬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으로 털어 넣더니 뒤쪽으로 완드를 겨눈다.
“균형이여!”
샤론의 영창과 동시에 귓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완드 앞에 떠오른 조그마한 불의 공이 떠오르더니 부채꼴로 화염을 방사했다.
영화에서 보곤 했던 화염방사기 정도의 느낌이 아니다.
파도처럼 퍼져나간 화염은 건물 한 층을 구석구석 통째로 불태워버렸다.
“방금께 마지막이야... 도망치는 중에 모은 마력도 다 써버렸어!”
“잘했어 샤론! 그래도 덕분에 살았다!”
간발의 차이로 개떼를 따돌리고 도착한 빌딩의 맞은편.
그대로 뛰어내릴 수 없다.
착지점의 바로 옆에서 시우와 샤론의 위치를 특정한 어미 개가 거대한 앞발로 빌딩 옆면을 후려갈겼으니 말이다.
-쿠쿵!
건물 전체에 울리는 진동.
빨간 눈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검은 개의 앞발은 레고를 무너뜨리듯 건물을 성뚱 뜯어냈다.
그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저것의 몸에는 마치 시체에 들끓는 구더기들처럼 전에 없던 굴곡이 올록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가죽과 살을 물어뜯으며 검은 개가 후두둑 튀어나와 맹렬히 건물 외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저건 뭐지?
“샤론 나한테 안겨!”
“이미 안겨있어!”
“더 꽉!”
이대로라면 가만히 있더라도 휘말린다.
그렇게 판단한 시우는 샤론을 단단히 붙잡은 체 지체 없이 리본을 빌딩 위쪽으로 뻗었다.
순식간에 뻗어나간 리본의 탄력을 이용해 공중으로 내던져지듯 날아 옥상에 착지했다.
슬쩍 아래를 보니 벌써부터 어미개는 건물 벽에 몸을 부딪치고 있고 검은 개들은 바퀴벌레처럼 외벽에 달라붙어 달리는 듯한 속도로 기어 오고 있었다.
“흩어지자. 내가 주의를 끌 테니까 넌 먼저 도망쳐.”
“샤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게 아니긴! 이대로라면 둘 다 죽는다니까? 널 사냥에 끌어들인 건 나니까 내가 책임질게! 빨리! 빨리 도망쳐 너 먼저!”
“샤론!”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샤론의 어깨를 시우가 단단히 감싸 쥔다.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할 시간이 생겼다.
어쩌면 이 막장 같은 상황 속을 벗어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저 덩치로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그전까지는 잡다한 놈들만 올라 올 거고.”
시우의 말대로다.
아무리 저 호문쿨루스가 덩치에 비해 빠르다 해도 거구인만큼 몸이 무겁다.
평지를 달리는 것과 건물을 오르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 들어 봐. 저 녀석 뭔가 이상해.”
“뭐가?”
시우는 도망치면서 발견한 단서들을 최대한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샤론, 너 저놈이 진짜 눈 몇천 개를 지닌 호문쿨루스라고 생각해?”
“생각이고 자시고, 너도 봤잖아. 몸 전체가 눈깔 투성인거.”
“그런데 저 녀석이 정말 역사상 최악의 호문쿨루스보다 수십 배 강할 것 같냐고.”
“그건....”
“봐봐.”
처음에는 그저 겁에 질렸다.
백화점을 통째로 무너뜨려 버리지를 않나, 그저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압도적인 체격 차이에서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미심쩍은 점이 생겼다.
저 호문쿨루스에게는 강자 특유의 관록이 없었다.
시우가 상대해왔던 모든 강적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아우라가 있었다.
예를 들면 옆에서 숨만 쉬어도 질식해버릴 것 같은 위압감을 풍기던 에아 사달멜리크.
예를 들면 아주 잠깐만 방심해도 주도권을 완전히 뺏겨버릴 것 같던 델라 레드클리프.
그녀들은 모두 20 위계 이상의 대마녀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에아는 작위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21 위계의 마녀였고 말이다.
백화점을 무너뜨리는 힘은 대단하다.
밤거리를 죄다 박살 내며 쉴새 없이 쫓아오는 순발력도 대단하다.
허나 그뿐이다.
시우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만약 저기에 있는 게 에아 였다면?
과연 시우가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었을까?
그럴 리 없다.
아무리 시우가 여러 사건을 통해 강해졌다 한들 전력을 다한 에아가 상대라면 1분도 버티지 못하리란 것을 경험으로, 머리로 알고 있다.
에아가 ‘살짝’ 진심을 섞은 공격에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던 전적이 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냥 감이야. 하지만 봐. 저 검은 개들이 모두 저 녀석에게서 나오는 거 봤지?”
“응, 나도 봤어! 방금 올라오면서.”
샤론도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곧 죽을 사람 같던 초조함이 가셨다.
대신 귀를 쫑긋 세운 채 시우의 말을 경청했다.
“조금 전에 내 눈으로 저 호문쿨루스의 마력을 읽었어. 아주 중구난방이야. 한 곳에 집중된 게 아니라 흩뿌려놓은 듯이 퍼져있었어.”
“어.....?”
“만약 저 몸에 있는 눈이 전부 한 개체의 것이 아니라면? 저 어미 개가 그저 ‘군체’에 불과하다면?”
급박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사고는 협소하고 편협해진다.
따라서 샤론은 온몸의 눈깔을 장식처럼 박아넣은 어미개에게 도망치면서 조금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호문쿨루스는 강할수록 즉, 보유한 유산이 중요한 것일수록 강해진다.
마녀 못지않은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기에 그만큼 사냥이 까다로워진다.
그런데 저 어미개는?
새끼 개를 흩뿌리는 것 말고는 변변한 마법도 사용하지 않는다.
샤론과 시우를 추적할 때도 오로지 신체적인 능력만을 사용해왔다.
심지어 닭 쫓던 개꼴이 된 지금도 건물 외벽을 후려치거나 기어오르려다 떨어지기나 할 뿐이다.
저 꼴사나운 모습이 과연 ‘눈’이 네자릿수가 넘어가는 호문쿨루스가 보일 추태인가?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차라리 어정쩡하게 눈알이 20개 이렇게 있었으면 시우에게 되지도 않는 소리하지 말고 도망칠 준비나 하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개수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시우의 설득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벌써 외벽을 타고 올라온 새끼 개들이 옥상에 있던 시우와 샤론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래서는 단순히 제자리 점프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어미 개가 멀찍이 떨어져 도움닫기를 하며 건물 외벽에 매달리고 있었다.
둔중한 동체가 건물에 달라붙을 때마다 건물이 부서져 나가고 동시에 크게 출렁인다.
“그래서, 어쩔 셈인데?”
마력이 없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드를 꾹 움켜쥐는 샤론.
시우는 창을 겨눈 채 새끼개들을 노려보며 짓씹듯이 말했다.
“덕분에 조뺑이 실컷 깠으니까. 우리도 한 방 먹여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