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68화 (168/917)

#168

1.

밤과 낮이라는 것은 어떻게 이리도 다른 걸까.

백화점 1층이라는 동일한 공간임에도 사위를 물들인 어둠은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아니,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포위를 끝냈음에도 덮쳐들지 않고 주위를 서성이는 괴수들 탓인가.

시우는 중얼거렸다.

이 시간이 과연 필요한 시간일까, 싶은 대치가 계속되었다.

대치가 길어질수록 등 뒤로는 한 되나 되는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싼 붉은 눈동자는 마치 경보등처럼 깜빡이며 긴장감을 더해갔지만 무엇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양 서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이 살벌한 대치는 샤론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짐작 가는 게 있어?”

“아무것도. 하지만 뭔가 이상해... 이렇게 많은 숫자가 있었더라면 아무리 호문쿨루스가 평상시 주머니 차원에 몸을 숨긴다고 하더라도 수색하면서 발견했을 거야.”

샤론의 의견에 대해선 시우도 동의했다.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아마도 수십, 이 건물의 크기를 생각하면 수백까지도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것들을 단 한번도 발견하지 못했었다고?

“호문쿨루스는 지능이 높은 편이야?”

“눈의 개수와 형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너도 봤잖아. 얘네는 짐승이나 다를 바 없어.”

“그런데 이건 뭐야. 누가 통솔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잖아.”

“통솔....?”

시우는 당연히 샤론이 알고 있으리라 여겼던 것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지금까지 우리의 수색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을 숨겨왔다는 점. 150M 간격을 유지하면서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게 유인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우리가 도망칠 곳이 없는 백화점 한가운데로 올 때까지 거리를 유지하다가 일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는 점. 이상하지 않아?”

너무 주도면밀하다.

짐승이나 진배없는 것들이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니.

호문쿨루스, 통솔....

순간 샤론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마녀가 있었다.

“아..... 설마.”

“짚이는 게 있어?”

하지만 샤론은 곧장 자신의 가설을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

그 ‘공적’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진작에 이것보다 훨씬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거대한 재앙이 닥치거나 했겠지.

이 검은 개들과 만나게 된 시기가 대충 3달 전이니, 일련의 사건의 원흉이 ‘비겁의 마녀’였다면 이렇게 작은 스케일의 사고를 쳤을 리 없다.

더군다나 비겁의 마녀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예의 체르노빌 사건 때가 아닌가?

수십 년간 현세에서조차 모습을 감추었던 그녀다.

“아니야, 우선은 여기를 빠져나가는 데 집중하자.”

“남은 마력으로 몇 마리까지 상대할 수 있겠어?”

“20마리 가량. 너는?”

“...해봐야 알 것 같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우가 생각보다 훨씬 침착하다는 것이다.

제법 사냥의 경험을 쌓아온 샤론으로서도 이 상황은 꽤 위기다.

액션 영화에선 어떨지 몰라도 실제 싸움에서 머릿수라는 것은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뒤집기도 하니 말이다.

굳이 그런 사실을 모르더라도 포위당했다는 중압감과 사방에서 으르렁거리는 괴수를 보고 있으면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한데.

시우에게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만약 시우가 없었더라면 오히려 샤론이 허둥지둥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의 침착함이 전염되어 이쪽까지 머리가 차가워지는 기분이다.

“믿음직한걸?”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시우는 조금 놀란 듯이 샤론을 봤다가 피식 웃었다.

“이 녀석들 쪽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지금 바로 움직이자는 얘기야?”

“가능한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다는 말이지. 그런데 문제가 있어. 출입구 쪽의 포위가 이상할 정도로 헐거워.”

샤론은 시우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사방에서 반짝이는 안광의 개수가 조금 적어지는 곳이 있다.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들어볼래? 아니다 싶으면 무시해줘. 경험은 네가 더 풍부할 테니까.”

“뭔데? 들어볼게.”

시우는 자신이 관찰해 이끌어낸 결론을 샤론에게 말해주었다.

아마도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음을 직감했기 때문인지 무척 빠른 속도였다.

“입구 쪽 포위망이 헐거운 것에 비해 또 다른 탈출구인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쪽 포위망은 굉장히 촘촘해. 이놈들이 일부러 우릴 입구 쪽으로 내몰고 있다고 봐. 거기까지 지능이 닿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입구로 도망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정황상 우린 여기까지 유인당한 사냥감이야. 쉽게 보내줄 필요는 없잖아.”

샤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의 의견은 썩 그럴듯하다.

그저 쫓아내기만 할 심산이었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포위망을 구축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러니까 지하상가를 통해서 지하철 쪽으로 빠져나가자는 게 내 생각. 넌 어때?”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이면 눈앞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우는 주어진 정보를 조합해 정확히 상황을 진단해냈다.

“우리가 먼저 가자. 내가 정면을 뚫을 테니까 넌 내가 반응하지 못할 때만 엄호해줘. 최대한 마력을 비축하면서. 만에 하나 큰 위험요소가 생기면 그때는 나보다 네 힘이 더 필요하니까.”

게다가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가장 많은 눈이 빛나고 있는 방향에 선다.

샤론은 내심 감탄했다.

“좋아, 네 말대로 하자.”

“지금 바로....”

시우의 발이 땅을 박찬다.

샤론조차도 아차 싶을 정도의 순발력 있는 가속이었기 때문인지 장식불에 몸을 슬쩍 드러낸 검은 개 무리가 움츠러드는 것이 보였다.

“달려!”

시우의 오른손에 뭉실뭉실 그림자의 입자가 뭉치더니 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허리뼈 부근에서 돋아난 리본 한 가닥이 날카롭게 주변을 후려친다.

-크릉 크릉!

-키에에에엑!

팽팽한 적막이 내려앉았던 백화점 내부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옷가지고, 화장품이고, 귀금속 진열대고 파괴에 예외는 없었다.

리본에 처맞고 수십 미터를 날아가는 놈, 이빨을 들이밀며 명렬히 달려드는 놈, 달려가는 샤론과 시우의 뒤를 뒤쫓는 놈.

“앗!”

샤론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완드를 휘두르려 했다.

동시에 도약해 시우의 앞길을 가로막는 검은 개 세 마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속도는 맨눈으로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사람을 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생각하면 대충 비슷한 속력과 힘일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시우였더라면 막아낸다 한들 뒤로 밀렸겠지.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투를 통해 시우는 자신의 약점을 분석해냈다.

바로 시우의 근접전투를 담당하는 그림자의 법칙이 물리적으로는 굉장히 약한 마법이라는 점.

마법을 방해하는 극소 마법진이 입자 형태로 뭉쳐있는 만큼 대 마법전에는 강할지 몰라도 물리적 파괴력 자체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게다가 순수하고 농밀한 마력 앞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 가벼움을 보완한 것이 샤론에게 배운 원소마법, 그중에서도 흙의 속성이다.

무겁고 둔중한 흙의 원소의 특질을 이용해 그림자에 중량을 부여하고 밀도를 높였다.

지금까지 시우가 싸워왔던 무기가 솜방망이라면 지금은 안까지 꽉꽉 찬 쇠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다.

-텅!

동시에 트럭에 치이기는 소리가 울렸다.

공중에서 한 뭉텅이가 되어 떨어져 나가는 호문쿨루스.

일상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보통 인간의 몸에는 그 정도의 운동 수행능력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맛이 증명해준다.

같은 힘이라도 중량이 실리는 것만으로 그 파괴력은 월등히 상향된다는 것을.

-캬오오오!

시우가 자세를 회복하기도 전에 천장을 박찬 괴수가 내려꽂히는 공대지 미사일처럼 시우에게 쏘아진다.

자세를 교정하기엔 늦는다.

우에서 좌로 큰 동작으로 쳐냈기 때문에 왼손의 방패를 들어 가로막는 것도 시간에 맞지 않았다.

그 찰나의 틈새.

시우는 주저 없이 방금 호문쿨루스를 휘둘러 쳐냈던 검의 형태를 수정했다.

롱소드 대신 곧은 창으로 변한 그림자를 공중에서 날아오던 호문쿨루스에게 비스듬히 세운다.

꼿꼿하게 세워진 창에 달려든 괴수의 말로는 비참했다.

-키에에에엑!

끔찍한 비명을 뒤로 시우는 즉시 창을 해제해 충격을 줄인 뒤 다시 전진.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시우는 마법전투 이외에는 딱히 몸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익히지 못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녔다는 태권도 학원조차도 시우에게는 남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 현세에서 호문쿨루스를 사냥할 때도 볼썽사납게 검을 휘둘러대지 않았는가?

아니, 그때 모습을 설명하자면 검에 휘둘렸다는 말이 더 걸맞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움직인다.

마치 몸에 기억이 각인된 것처럼 ‘어떻게 적을 쓰러뜨려야겠다’라는 생각도 전에 자연스럽게 무기를 만들고 가장 예리한 빈틈을 틈타 적을 죽인다.

그 몸놀림과 움직임은 델라와의 격전 때보다도 훨씬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끼에에에엑!

샤론은 반쯤 멍하니 달려가듯 포위를 헤쳐나가는 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걱정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아무리 시우가 호문쿨루스와의 전투 경험이 있다 한들 샤론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더군다나 이 정도의 숫자와 한 번에 하는 교전, 일반인이라면 패닉이 와서 손발이 꼬일 법도 한데...

-부우우웅!

날카로운 채찍처럼 휘둘러진 리본 한 가닥이 등 뒤에서 샤론을 습격하던 호문쿨루스 두 마리를 동시에 쳐낸다.

그와 동시에 방패에 체중을 실은 일격으로 한 마리를 쓰러뜨린 뒤 발로 머리를 터뜨렸다.

바라보지도 않고 샤론에게 달려드는 호문쿨루스를 쳐내고 동시에 앞에서 달려드는 괴수를 상대하는 것이다.

샤론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한 단어를 떠올렸다.

융통무애(融通無碍).

사고나 행동이 통하여 막히는 곳이 없고 자유롭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그만큼이나 그의 동작에는 거침이 없었다.

잠깐의 멈칫하는 순간이나 흐름이 끊기는 것조차 없다.

닳고 닳은 사냥꾼처럼 능숙하게 자신의 마법을 사용해 쉼 없이 무구의 형태를 바꿔가며 호문쿨루스를 도살했다.

그 덕에 샤론은 몰이망에서 벗어나는 동안 완드 한 번 휘두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샤론이 때 아닌 잡념에 빠진 눈 깜짝할 사이 시우는 세 마리의 호문쿨루스를 추가로 죽였다.

마도의 길을 걷는 샤론이지만, 무술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술을 사용해 난관을 돌파하는 시우의 모습에서 일말의 경외심을 느꼈다.

그의 기술은 필경 오랫동안 자신을 몰아붙이고, 학대에 가까운 단련 끝에나 얻을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기술이라면 마법적 역량 차에도 불구하고 델라를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정말로 시우가 델라를 이겼던 걸까?

같은 말도 안 되는 망상조차 생겨났다.

흩날리는 호문쿨루스의 체액과 비명 속에서 묵묵히 길을 개척하던 시우.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던 에스컬레이터 입구가 보였다.

-크르르르르....

“후우....”

그러나 호문쿨루스들은 시우를 적극적으로 막아서려고 달려들기는커녕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최초의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그 덕에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시우는 턱밑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바글바글할 정도로 장내를 가득 채웠던 괴물의 숫자가 눈대중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많던, 지긋지긋하던 놈들이 죄다 꼬리를 내린 채 뒷걸음질 치고 있다.

뭐랄까.

생각보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처음 호문쿨루스를 쓰러뜨렸을 때 시우는 무리한 마법의 부작용으로 아픈 몸을 끌고 방방 뛰었다.

그간의 성과와 노력이 고스란히 보상받는 것 같았으니까.

근데 이 정도로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싸움이 된다면 성취심에 기쁘다기보다는 뭐랄까, ‘이걸 진짜 내가 해냈다고?’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러면 굳이 도망 안 쳐도 되겠는데?”

어차피 호문쿨루스를 사냥하기 위해 밤마다 활보했던 시우와 샤론이다.

이렇게 대거 사냥에 성공했는데 굳이 도망쳐야 하냐는 것이 시우의 의견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긴 하잖아. 놈들이 더 매복해 있을지도 모르고.”

뜻밖에 샤론도 신중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미심쩍은 점이 많긴 하지만 도중에 추가된 녀석들을 포함해 시우가 잡은 호문쿨루스의 숫자는 얼추 80여 마리.

나머지 녀석들을 정리하면 대충 100마리 정도가 된다.

마리당 100만 원만 나온다고 해도 1억.

평범한 일을 해서는 절대로 단기간에 벌 수 없는 1억을 시체만 조금 뒤적이면 벌 수 있다.

1억만 있으면 시우에게 기대지 않아도 된다.

물론 샤론도 이 모든 수확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비록 시우와 샤론가 맺은 조약: ‘같이 사냥해서 얻은 결정의 소유권은 샤론에게 있으며 샤론은 이를 마법 수업으로 대신한다’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20마리만 잡아도 최소 2000만 원. 무리 없이 다음 분기 최저 납부금을 맞출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샤론의 현실판단능력을 잠시 앗아갔다.

“그럼 나머지는 내가 정리할게.”

샤론은 완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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