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61화 (161/917)

#161

1.

샤론은 즉시 시우를 치료해주었다.

많은 신화에서 인간이 흙으로 빚어졌듯, 원소 계통에서 인체의 치유와 회복을 담당하는 것은 흙의 원소의 역할이다.

샤론은 중요한 순간에 쓰기 위해 아껴두었던 흙의 원소의 제물, 좁쌀만 한 비취 6알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균형이여.”

샤론이 지팡이를 휘두르자마자 시우의 몸 곳곳에 올려져 있던 비취가 상처 부위에 연고처럼 녹아 스몄다.

철 지난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부위, 기포처럼 물집이 올라오려는 부위가 가라앉으며 곧바로 새살이 돋아난다.

시우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와, 엄청 빨리 낫는데?”

“당연하지 마법인걸.”

부상의 정도를 보아하니 다행히 델라가 손대중을 한 것인지 대체로 1도 화상이었다.

시우의 몸은 영체이다.

이 정도의 경미한 부상이라면 일주일 이내에 회복할 테지만 샤론은 도저히 그렇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 때문에 델라와 맞서다가 부상을 입었는데 이깟 보석 쪼가리 몇 개가 아깝다고 방치할 순 없지.

“그나저나 너 정말 대단하다. 그 델라를 어떻게 쓰러뜨렸어? 성격도 개차반이고 생긴 것도 못생겼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한데.”

“다 방법이 있지. 내가 누구한테 배웠는데.”

시우는 자신만만하게 씩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샤론을 가슴에 뭔가 울컥 치밀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걸 꾸역꾸역 아래로 밀어넣은 샤론은 시계를 힐끗보고 말했다.

“아, 벌써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네. 오늘 수업은 빼먹어서 어째?”

“됐어, 나도 하루 정도는 쉬어야 할 것 같고. 이따 와서 밥이나 맛있게 먹자.”

“그럼 나도 씻고 출근 준비할게. 좀 쉬고 있어.”

“어.”

샤론은 간신히 떠올린 시우의 미소를 뒤로하고 후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훌렁훌렁 벗고 샤워기를 튼다.

그리고는 욕조에 쭈그려 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쏴아아아아!

“큽....크흡.....”

상처를 치료할 때도 몇 번이고 눈물이 나올 뻔했는데 겨우겨우 참았던 울음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온 것이다.

시우의 앞에서는 델라를 쓰러뜨렸다는 말에 열심히 맞장구쳐주었지만 사실 샤론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델라 레드클리프가 누구인가?

20 위계의 대마녀, 게다가 불의 원소 분야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는 단독주자이다.

시우의 위계는 델라는 커녕 샤론에게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고 말이다.

일반적인 경우 마녀들의 결투에서 두 단계 이상 위계 차이가 벌어지면 싸움이 성립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상성이나 전투 경험을 운운할 수 있는 것도 위계가 한 단계 정도 차이 날 때의 이야기다.

나름 원소 마법에 정통한 17 위계의 자신조차 손쉽게 제압당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마력수와 화산재로 특수 처리한 담배를 제물로 바쳐가며 싸웠는데 말이다.

“흑....흐흑....”

그런데 시우가 델라를 이겼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바로 샤론을 위해서였다.

그의 몸에 있는 갖은 화상 자국과 진탕이 된 마력 회로는 분명 전투가 있었음을 증명했다.

델라의 성격을 고려하면 아마도 장난감처럼 농락당하다 무참하게 패배했겠지.

이 세상에는 아무리 분전해도 뒤집을 수 없는 차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얼마나 무기력했을까?

얼마나 힘든 전투였을까?

얼마나 괴로울까?

샤론은 감히 그의 심정에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벽과 마주하는 것은 지독히도 잔혹한 일임을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다.

그렇게 괴로울 와중에도 시우는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시우가 상처를 입은 것이 샤론 탓임을 아는 이상 그녀가 자책할 것이 뻔했으니까.

하다못해 델라를 이겼다는 말로 샤론의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것이다.

태생부터 착하고 상냥한 시우라면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나마 샤론을 위로해 줌 직했다.

상냥한 거짓말.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샤론도 시우를 굳게 믿는 척했다.

조금도 의심하는 티를 내지 않은 채 그의 배려를 받아들이고 함께 맞장구를 쳐주었다.

생각해보면 시우는 언제나 그랬다.

다른 추방자의 눈에 들어오면 신상에 위험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구태여 호문쿨루스를 사냥하기 위해 나섰다.

비록 독선이긴 했으나 샤론이 빚으로 곤란해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돈을 대신 내주겠다고 말했다.

오갈 곳이 없는 샤론을 받아들여 주고 위로해주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하는 샤론을 위해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그녀의 메뉴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샤론을 위해 위험한 마녀와 맞섰다.

무참히 패배하고도 자신의 슬픔을 내세우기보다는 샤론을 걱정해 거짓말해 주었다.

“아....”

워낙에 정신없이 울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부정맥이라도 온 것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 뒤로 모호하지 않은, 선명한 충동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훌쩍.....”

이상한 일이었다.

샤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법으로 대충 샤워를 마무리했다.

아르바이트에 다녀오면 그에게 잘 대해줘야지.

절대로 의심하거나 믿지 않는 기색이 없이 그의 배려에 어울려 줘야지.

또 굳이 이 주제를 언급해서 그가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샤론은 화장실을 나왔다.

2.

샤론의 마법 효과는 대단했다.

영체라 회복빨이 잘 받는 건지 그만한 상처와 근육통, 그리고 너덜너덜해졌던 마력회로가 순식간에 회복되었으니 말이다.

“음.....”

시우는 샤론이 알바를 가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굴다리에서 벌어진 델라와의 전투를 복기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일로 확신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다.

만약 그때 시우가 델라에게 졌더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우선 샤론은 잡혀갔겠지.

델라에게 무슨 일을 당해도 당했을 것이다.

또 시우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정보가 일파만파 퍼지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존재에 주목한 델라가 시우의 납치를 시도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오늘은 여러가지 조건이 좋게 맞아 들어가 이겼지만 다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정작 시우의 전투는 운과 임기응변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지닌 힘을 미리 갈고 닦아 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것이 방만한 행동이었음을 깨달았다.

“좋아, 정리해보자.”

우선 지니고 있는 마법에 대한 정리.

단순히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전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 추출이다.

‘좌표이동식’.

오늘 경험한 바에 따르면 좌표이동식은 당장 전투에 적용할 수 없다.

마녀와의 마법전은 초 단위를 다투며 긴박하고 촘촘한 페이스로 이루어졌다.

만약 시우가 중간에 도망갈 요량으로 느긋하게 좌표이동식이나 계산하고 있었다면 팔다리 중 하나는 새까맣게 탔겠지.

“그러니 이건 보류...”

나중에 아무런 수가 없을 때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시도해 볼 만한 탈출수단이지 당장 전투에 직접 응용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처녀의 베틀’.

오늘 전투의 1등 공신 중 하나.

베틀에서 짜인 리본은 팔의 움직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공격, 수비, 보조에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조커이다.

개수를 늘린 상태에서도 지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디스펠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고, 유용한 공격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리본의 무서움은 에아와 격돌한 시우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에아가 리본을 비비 꼬아 반탄력을 사용했던 방식도 참고 할 만하다.

“개수를 늘려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끔 훈련... 그리고 형태 변환도 연습해두고...”

‘그림자의 법칙’.

시우가 마녀와 싸울 수 있는 근간엔 이 마법의 지분이 매우 컸다.

그림자의 법칙이 없었더라면 감히 마법전을 벌일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율방어가 존재하지 않는 시우에게 최소한의 보호구를 제공한다.

파워드 슈트처럼 완력 자체를 보조해주거나 직접적인 공격 수단도 만들어준다.

즉, 기본기가 없는 시우가 링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베이스를 닦아주는 것이 그림자의 법칙이었다.

추가로 마법식에 간섭해 상대방의 마법을 일부분 파훼한다는 특이성, 얼마든지 형태 변환이 가능한 유용성은 이미 처녀의 베틀과 결합해 잘 써먹고 있는 중이다.

“마법진을 파훼하는 성질은 참 좋은데 말이지....”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극소마법진의 결합이라는 특정상 농밀한 마력 앞에서는 별 쪽도 못 쓴다는 명확한 한계.

이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이걸 개선해야 한다.

“이거다.”

시우는 목표의 방향을 설정했다.

쓰러지고 일어나니 그림자의 법칙이 처녀의 베틀에 적용되었던 것처럼 마법의 특성을 조금 손봐볼 예정이었다.

오늘은 그 청사진을 그려보는 것으로 자습 일과를 잡았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극소마법진을 그물 형태로 엮어 마력의 압력에 영향을 받는 정도를 줄여야 하나?

안된다.

그렇게 해버리면 지금의 자유로운 운용은 망가지고 갑주나 방패의 경도에도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흐음.....”

시우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3.

알바가 끝난 샤론은 현관을 벌컥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어.”

“오늘 좀 늦었네? 뭐 하다 왔어?”

방에 있다 도어락 소리를 듣고 어슬렁어슬렁 나온 시우가 발견한 것은 양손 가득 비닐 봉지를 들고 있는 샤론이었다.

샤론은 시우의 놀란 표정을 보며 슬쩍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항상 내가 너한테 받기만 한 것 같아서. 나도 밥 한 끼 사려고.”

“그게 뭔데?”

“대게. 막 쪄왔어.”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샤론은 집 앞에 있는 대게 집으로 직행했다.

거기서 무려 거금 40만 원을 탈탈 털어 대게를 양껏 샀다.

이것저것 맛있게 먹는 시우지만 특히 갑각류나 해산물을 먹을 때 특히 만족도가 높았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현세에 도착한 이래로 먹거리에 이렇게 큰돈을 써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탓에 계산할 때 손이 덜덜 떨리긴 했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 뭐야. 너가 마법 가르쳐주는 대신 내가 밥 사기로 했잖아. 돈 줄게 얼마야?”

예상대로 시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지갑을 꺼내 들었지만 샤론은 한사코 만류한다.

이렇게라도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지 않으면 샤론 자신이 찝찝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마. 이거 안 받으면 나 진짜 화낼 거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오늘 치유 마법에 보석도 쓴 것 같은데...”

“괜찮아.”

“아니...”

“괜찮다니까!”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는 샤론을 보며 시우도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샤론이 고집을 부렸을 때 시우가 자기 고집을 부린 적이 없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부담스러운데...”

“됐어, 이대로 넘어가는 게 내가 부담스럽지. 식기 전에 빨리 먹자.”

테이블 위에 한껏 대게를 펼친 샤론과 시우.

시우는 거의 먹을 때마다 고맙다, 고맙다 반복해서 말했다.

그가 좋아하고 뿌듯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델라를 무찔렀다는 거짓말도 샤론이 믿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아 어색한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솔직히 연기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게 한 마리를 넣고 라면 세 개까지 싹싹 먹은 두 사람은 포만감이 가득한 상태로 거실로 나섰다.

“바로 영화 볼래?”

“좋지.”

사실 오늘 기껏 사냥한 호문쿨루스의 결정도 없고 막대한 지출도 있어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샤론은 평소처럼 행동했다.

괜히 이쪽의 사정으로 생겨난 초조함을 시우에게까지 전염시키고 싶진 않았다.

오늘은 푹 쉬게 해주자.

“그럼 난 옷 갈아입고 올게.”

“영화 내가 골라?”

“응, 오늘은 너가 골라.”

평소 같은 대화를 끝으로 샤론은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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