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1.
마법을 이용한 전투란 무엇인가?
수많은 견습마녀가 수업 도중 이런 질문을 한다.
그에 대해 수많은 마녀가 빗대는 게임이 하나 있다.
64칸의 좁은 보드 위에서 벌어지는 작은 전쟁, 체스다.
서로의 의중을 읽는 수 싸움, 지략과 계산의 대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마법 전투는 체스와 몹시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유를 들 때면 항상 뒤에 추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진다.
마법 전투는 서로가 같은 기물, 같은 시간, 같은 규칙을 지닌 채 한 턴씩 주고받는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총 64칸의 체스판이 아닌 1만 칸의 체스판, 때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넓이를 지닌 보드가 무대가 되며 사용하는 말의 숫자와 움직일 수 있는 횟수, 그리고 기물의 움직임마저 플레이어마다 다르게 주어진다.
얼마나 많은 마력을 보유했느냐에 따라 ‘한 게임에 보유할 수 있는 기물의 개수’가 정해진다.
얼마나 능숙하게 마력을 운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한 턴에 움직일 수 있는 기물의 수’가 한정된다.
얼마나 뛰어난 마법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기물의 움직임과 성능’이 달라진다.
이 모든 변수를 보드 위에 올려놓고 누구의 마법이 더 정제되었는지, 얼마나 예리하게 갈고 닦아졌는지를 겨루는 두뇌 게임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델라는 시우의 모든 것을 압도했다.
20 위계의 마녀로서 오랜 세월 자신의 마법을 갈고 닦아온 델라.
겨우 1대에 걸쳐져 급조된 야매 마녀 시우.
둘을 굳이 비교하는 것조차 입 아프다.
플레이어의 기량이 다르니 자연스럽게 서로 쥐고 있는 패에도 커다란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크윽!”
1분 안에 끝나리라 예상했던 전투가 자꾸만 길어진다.
-콰앙!
시우가 힘껏 휘두른 칼날이 델라가 전개한 ‘경화된 불’에 막혔다.
단순히 완력으로 따진다면 커다란 화강암 바위를 두 쪽 낼 수 있는 흉흉한 일격이지만 델라의 방어를 뚫어내기엔 미흡한 공격이었다.
그와 동시에 역으로 분출된 화염을 방패로 막은 시우는 방패를 휘감던 불꽃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다시 델라를 호위하는 불의 벽에 힘껏 롱소드를 휘두른다.
-콰앙!
“이게 무슨.....”
처음 시우가 델라에게 달려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 판단을 높게 샀다.
물론 어디까지나 압도적인 우위를 확신하는 강자가 약자를 내려다보며 내리는 평가였다.
델라의 유일한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중계식’을 통해 마법이 발현되는 만큼 인터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강한 마법을 사용하려 하면 할수록 많은 중계식이 필요하며 또한 긴 딜레이를 요구한다.
따라서 마력도, 운용력도, 마법의 수준도 달리는 시우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틈을 주지 않고 델라를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여유를 주지 않고 파상공세로 달라붙어 큰 공격을 예방한다.
보면 알겠지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델라의 ‘경화된 불’은 자율방어 시스템처럼 자동 반격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공격을 받으면 그에 걸맞게 화염을 쏟아내는 것이다.
지성이 있는 생명체인 이상 강맹한 화염 앞에는 본능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화염을 막아낸다 해도 불길과 열기가 시야를 가리고 피부가 그을리면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기 마련이다.
-콰앙!
그럼에도 다시 한번 그림자의 검이 화염의 벽에 격돌한다.
우수수 쏟아지는 불똥과 시우의 뺨을 스치는 뜨거운 불길.
이미 투구 아래로 드러난 그의 얼굴은 화상을 입어 벌겋게 익어있다.
화려한 불길 사이로 흐르는 찰나의 순간 델라는 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눈동자와 금빛 눈동자의 오드아이가 흔들림 없이 델라를 응시한다.
조금만 실수하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상황임에도 목표를 쫓는 사냥개처럼 한눈을 팔지 않고 맹공을 이어간다.
이제야 델라는 확신했다.
이 남자는 이런 전투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는 경험자라는 것을.
“당신 정말 제머나이 백작의 비밀 병기...?”
이런 의문을 품는 것도 합당한 것이었으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쯤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는 시우에게 그녀의 목소리가 닿을 리 없다.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는 델라는 이를 잘근 물었다.
5초만, 아니 3초만 물러서 틈을 보인다면 잿가루로 만들 수 있는 허접쓰레기가 송곳니를 벼르며 호시탐탐 델라의 목덜미를 노린다.
더욱 분한 것은 현재로서 진득하게 달라붙는 그를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핑! 핑! 핑! 핑!
델라는 시선을 잠깐 옮겨 그 원인을 보았다.
시우의 등허리에서 시작되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허공을 꿰뚫는 한 가닥의 검은 리본.
굶주린 살모사처럼 신속하게 움직이는 리본이 핵을 관통할 때마다 식의 구성이 망가지며 중계식 자체가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나간다.
“이이익...!”
중계식은 델라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다.
일정 이상의 숫자가 되어야 경화된 불같은 허접한 마법 말고 대규모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시우는 그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애초에 중계식의 전개 자체를 방해하고 부수는 것이다.
그 탓에 아까부터 40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여유롭던 델라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중계식을 흩뿌리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마법인 이상 엄연히 마력이라는 코스트를 요구한다.
무의미한 소모만을 계속하는 가운데 여유롭던 델라의 마력도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천천히 소진되어가고 있었다.
“이 졸렬한 자식!”
델라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딴 건 결투가 아니다.
모름지기 결투란 갈고 닦아온 자성마법을 무기 삼아 서로의 지략과 능력을 겨누는 고차원적인 대결이다.
팔을 물고 늘어지는 개처럼 막무가내로 진흙탕 싸움에 끌어들이는 것 자체로도 델라에겐 커다란 모욕이었다.
“좋아요, 나도 방법이 있어요.”
델라는 불의 벽을 유지하면서 마법을 재정립했다.
이대로는 그의 페이스에 놀아나다가는 결말이 보였기 때문이다.
생각조차 못 했던 ‘패배’라는 두 글자가 선연히 머리에 떠올랐다.
요구하는 마력의 코스트를 낮추는 대신 위력을 약소화한다.
그녀가 목표로 하는 술식은 ‘춤추는 불’.
적의 팔과 다리를 휘감아 노릇노릇하게 구워버리는 별 볼 일 없는 마법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저지력을 지닌 만큼 격렬한 시우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 정도는 도움이 될 터.
“타올라라!”
델라가 팔을 휘두르자 흩뿌려진 중계식 중 몇 개가 진동을 시작한다.
변형된 춤추는 불에 요구될 중계식은 최소 5개, 델라가 방금 마력을 짜내 연동해 흩뿌린 중계식은 16개.
게다가 이미 공중에 38개의 중계식이 떠 있다.
무자비하게 중계식을 학살 중인 리본이 설령 새로이 뿌려진 16개의 중계식 중 과반수를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5개 이상만 남아있다면 춤추는 불은 발동한다.
그 짧은 사이에 마법의 형태를 변형했을뿐더러 추가적인 보험과 눈속임을 동시에 건 것이다.
델라 역시 ‘대마녀’라는 칭호를 받는 20 위계의 마녀다.
이대로 무력하게 패배할 녹록한 상대는 아니었다.
좋아.
이제 이 지긋지긋한 교착상태도 끝이다.
-핑! 핑! 핑! 핑!
라고 생각했다.
무작위로 중계식을 꿰뚫던 검은 리본이 정확히 ‘춤추는 불’을 발동하기 위해 설치된 ‘16개의 중계식만을’ 꿰뚫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떻게?”
남은 마력의 절반을 쥐어짜낸 회심의 반격이 눈 깜빡한 사이에 무산으로 돌아갔다.
이 정확도는 우연 따위가 아니다.
그는 무작위로 중계식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이 될 중계식’을 골라서 순서대로 파괴한 것이다.
그 순간 델라는 떠올렸다.
겉보기에는 상위 호문쿨루스보다도 약해 보였던 이 남자.
자신보다 까마득히 낮은 위치에 존재한다고 여겼던 이 남자가 처음부터 개싸움을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이 교착 상태 중 아주 조금의 머뭇거림이라도 있었더라면?
승리의 여신은 주저 없이 델라의 뺨에 키스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그는 전투에 들어서자마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주 작은 찰나의 약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고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결국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기어이 상황을 뒤집어냈다.
승패가 갈린 요인은 거창하지 않았다.
델라가 뒷짐 진 채 게임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이 남자는 목숨을 건 생사결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이게 훈련받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절대 아니다.
제머나이 백작가의 손님임을 나타내는 반지.
낙인을 지닌 남자.
가공할만한 전투 감각.
마법식의 구성을 흐트러뜨리는 특이한 그림자와 그것으로 이루어진 무장.
아마도 마력의 흐름을 읽는 눈.
그리고 빈틈을 커버하는 리본까지.
틀림없다.
그는 부족해진 마녀 수를 보충해 호문쿨루스 혹은 공적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머나이 가문의 비밀병기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이렇게 수세에 몰릴 리가 없지.
단순히 힘의 우열로 논할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 마녀 전을 상정해 특화된 것처럼 까다롭기 그지없는 상대다.
델라는 시우를 인정했다.
그는 아낌없이 실력을 행사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상대이다.
전력을 다해 솜씨를 발휘해야 할 호적수.
겉으로 보이는 전력과 남자라는 선입견이 여태 그 진실을 가리고 있었다.
“좋아, 개싸움을 원한다면 어울려 주겠어요.”
이미 마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것이 아마 마지막 한 수일 것이다.
델라는 시우가 방패를 드는 틈을 타서 경화된 불로 만들어진 불의 벽을 거둬들였다.
동시에 그곳에 투자되고 있던 마력을 신체 강화로 돌린다.
전신 곳곳에 뻗은 회로를 타고 내달리는 마력.
영체의 내구도가 최고 경도까지 올라간다.
마력을 가장 빠르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은 달리 말할 것도 없이 마녀 본인의 신체이다.
남은 마력을 전부 뽑아내다시피 투자해 육체 강화와 자율방어의 극대화를 진행.
곧장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검을 휘두르기 전 활짝 열린 시우의 품을 파고든다.
육탄전.
평소의 델라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지금은 이 싸움의 승패가 더 중요했다.
여태껏 기계적으로 불의 벽을 두들겨 패던 시우의 빈틈이라면 충분히 파고들만 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근접전이 마음에 든다면 이쪽도 똑같이 해주면 된다.
일격 정도라면 자율방어를 통해 받아내 주마.
이후 자율방어의 반탄력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며 시간을 벌고 이미 흩뿌려져 있는 중계식으로 최후의 일격을 날려주마.
굳은 다짐을 하고 몸을 내던졌을 때.
우연이었을까?
그와 눈을 마주쳤다.
반쯤 날아간 투구 속에서 쏘아지는 강렬한 시선을 마주한 순간 델라는 자연히 알게 되었다.
그녀가 자존심마저 버리며 획책한 최후의 발악마저 그의 눈에 읽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다....!”
지금까지 악착같이 달라붙어 오던 주제에 델라가 몸을 던짐과 동시에 공격을 멈추고 거리를 벌리는 시우.
이제껏 델라가 그토록 바라던 전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장 그녀의 마력은 오롯이 육체 강화와 자율방어의 활성화에 투자된 상태다.
그가 반드시 받아 쳐주어야 자율방어가 발동하고, 그렇게 시간을 벌어야 다시 중계식을 활성화해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다.
이래서야 무의미하게 마력을 낭비한 꼴이 되는 것이다.
델라는 다급하게 영체에 투자되던 마력의 흐름을 돌렸다.
이렇게 허망하게 마지막 기회가 날아가게 되자 부랴부랴 꺼두었던 중계식을 활성화하려 한 것이다.
-쾅!
그리고 반 박자 늦게 델라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검은 리본.
이제까지 중계식을 박살 내기 위해 허공을 누비며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던 리본이 기다렸다는 듯이 크로스카운터를 날린다.
이제껏 단 한번도 직접 전투에 개입된 적이 없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으겍!”
입에서 괴상한 비명과 함께 침이 튀어나오며 델라의 몸이 공중에서 옆으로 접힌 채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