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1.
잿불의 마녀, 델라 레드클리프는 어렸을 때부터 반짝이는 것을 좋아했다.
화려한 보석으로 세공된 반지, 유리로 만든 공예품, 복잡한 장식의 브로치.
은은한 불빛에서 비추어보면 볼수록 찬연히 빛나며 제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치품을 특히나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반짝이는 것을 모아 둥지를 치장하는 까마귀처럼 델라 역시 견습마녀 시절부터 온갖 것들을 침소에 쌓아두었을 뿐이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반드시 손에 넣어왔다.
선대가 가진 낙인이 너무나도 탐났다.
수 대에 걸쳐 쌓인 레드클리프의 자성마법이, 그것을 계승했을 때 함께 주어지는 남작이라는 작위가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또 정진했다.
20년은 족히 걸리리라 예상되었던 수업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하고 당당하게 낙인을 계승 받았다.
마녀가 된 이후에는 게헨나에 온갖 아티펙트와 장식품이 탐났다.
델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들을 모았다.
팔지 않으려 하는 물건은 세배 네 배의 웃돈을 얹어 구매한다.
웃돈을 주었는데도 팔지 않으면 외부 또는 내부로 압력을 조성해 팔지 않고는 못배기게끔로 상하 관계를 만든다.
결국 마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델라의 손에 들어왔다.
아르스 마그나 타운에서 가장 커다랗고 근사한 저택.
단 한 권의 필사본도 존재하지 않는 고대의 마도서.
붉은 지붕 살롱에서 경매에 부쳐진 저주받은 다이아몬드.
혀끝을 적시는 단 한 방울만으로 아찔한 황홀경을 느끼게 하는 극상의 미주.
어여쁘고 귀여운 마녀의 때 타지 않은 풋풋한 육신 등.
원하는 것이 뭐가 됐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델라 레드클리프는 많고 많은 마녀 중에서도 선택받은 남작이었으며 20 위계의 대마녀였으니 말이다.
델라가 바란 물건은 머지않아 그녀의 손안으로 굴러떨어졌다.
‘시시해요.’
허나, 그렇게 손에 들어온 물건은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가치가 사라진다.
처음 그것을 갈망하고, 욕정하고, 탐닉하고, 집착하고, 구도할 때의 두근거림은 금방 권태라는 묵은 먼지에 뒤덮인다.
최초의 설렘도, 흥분도, 열정도, 환희도, 충족감도 아주 옛것의 기억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는 곧 가치의 사장을 의미한다.
가슴에 아무런 전율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 어찌 소중한 것일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델라는 현세로 시선을 돌렸다.
게헨나의 대부분의 것들이 질려버렸다 해도 더 넓은 세상이라면, 말초적인 쾌락과 놀 거리로 뒤덮인 속세라면.
자신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몇 년은 즐거웠다.
주제도 모르는 추방자들을 찍어 누르고, 공적을 사냥하고, 호문쿨루스를 구축했다.
거대한 크루저에 몸을 맡긴 채 대양을 횡단하거나 카지노가 모여있는 사막의 도시에서 온갖 쾌락과 환락에 잠겨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문명의 이기는 잠시동안 델라의 굶주린 속을 거짓된 포만감으로 채워주었다.
그래, ‘잠시동안’.
‘이것도 시시해요.’
되돌이표였다.
1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 델라의 갈증과 허기는 또다시 눈을 떴다.
그쯤에서 델라는 체념하고 있었다.
자신의 권태와 지루한 나날들은 그녀에게 내재하여있는 원초적인 기벽이라고.
영원히 이것을 채울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동방의 분단국가에서 한 마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여기는 내가 원래 사냥하던 곳이었다고!’
‘그래서요? 이제부터는 제가 이곳을 차지하겠다고요.’
‘아니.... 미친년인가? 남작이면 다야?’
‘경망스럽기는... 마녀라면 모름지기 마법으로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당차게 덤벼오는 마녀를 힘으로 찍어 눌렀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주제도 모르고 사납게 덤벼드는 그녀의 위계는 고작해야 17 위계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델라는 본능적인 끌림을 느꼈다.
갸름하고 가련한 얼굴과 패배의 순간에도 마음이 꺾이지 않는 곧은 마음.
진녹색의 머리에 군데군데 섞여 있는 밝은 청록빛의 머리카락.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눈이다.
옥빛을 띤 연푸른 눈동자는 델라가 지닌 그 어떤 보석보다도 탐스러웠고 가치 있어 보였다.
델라는 언제나 그녀를 충동하던 욕망의 화살표가 샤론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장 뒷조사에 들어갔다.
샤론 에버그린.
게헨나에서 커다란 사고를 쳐버려 추방당한 빚쟁이 마녀.
선대로부터 낙인을 불완전 계승한 미숙아.
그 정보를 들었을 때 일이 몹시 잘 풀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댈 곳이 없고, 매달릴 곳이 없는 부족한 인간이야말로 유혹에 넘어오기 쉬운 상태이니 말이다.
‘뭐? 목욕 시중을 들면 1억을 주겠다고?’
‘그래요, 일종의 자비랍니다. 당신의 딱한 사정은 익히 알고 있으니까요.’
샤론을 다시 찾은 델라는 목돈을 대가로 목욕을 도울 것을 제안했다.
물론 정말 목욕만 시킬 심산으로 샤론을 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목욕 시중만.
그다음에는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
그다음에는 침대에서 허리가 휠 정도로 황홀한 밤까지.
허들을 하나씩 낮춰가는 것이다.
지금이야 쫓겨난 지 얼마 안 되어 같잖은 긍지를 운운하며 아르바이트와 호문쿨루스로 푼돈 벌이를 하고 있지만 그건 금세 벗겨질 허울에 불과하다.
샤론에게 쉽게 돈을 버는 맛을 들여놓는다면, 그것을 잊지 못하고 찾아올 것이 뻔했다.
따라서 델라는 처음으로 제안할 때부터 벌써 샤론의 알몸을 마음껏 주무르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샤론은 냉담한 답변이 돌아왔다.
일말의 망설임도 고민도 없는 즉답이었다.
‘뭐래? 꺼져.’
샤론은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듯이 눈을 잔뜩 찌푸린 채 델라를 노려보았다.
이런 표현이 우습지만.
몹시도 아름답고, 고고한 눈동자였다.
그리고 그때 델라는 깨달아버렸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샤론을 손에 넣지 않는다면.
그녀의 맑은 눈을 흐린 쾌감으로 덮어씌워 장난감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이 갈증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2.
고작 1분간의 격돌이었으나 이 일대를 황폐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굴다리 내부는 마치 가마처럼 변해서 수백 도의 잔열을 내뿜고 있다.
완파된 천장 부분에는 위로 깔려있던 철로는 엿가락처럼 늘어뜨린 채 뜨거운 쇳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차로에 깔려있던 아스팔트는 끈적하게 녹아내려 메케한 석유 냄새를 뿜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뜨겁게 달아오른 보도블록에는 샤론이 쓰러져 있었다.
얼굴과 예복 곳곳에 그을린 흔적이 가득한 샤론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린다.
17 위계와 20 위계 마녀의 싸움.
델라가 샤론의 수준에 맞춰 적당히 힘을 빼주었지만 그 정도의 여파로도 굴다리는 물론 이면결계 내부에 있는 모든 건물을 불살라 버렸다.
“하아....흐윽....윽....”
불의 원소를 활용하기 위해 제물로 바쳤던 곰방대가 힘없이 부러진다.
샤론은 멍한 눈빛으로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델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되나요?”
굴다리 안의 공기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들이마시는 즉시 폐가 익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하지만 델라는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고는 주위의 열기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60도 부근까지 내려가는 굴다리 내부의 온도.
사실 샤론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레드클리프는 불의 원소 마법에 있어서라면 현존하는 마녀 중 가장 높은 성취를 보이는 마녀이다.
어중간한 반쪽짜리인 자신이 덤벼봐야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훨씬 나아졌네요.”
델라는 슬쩍 그을린 자신의 붉은 드레스 자락을 들춰 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10년 동안 놀고먹었던 것은 아닌지 제법 발악해 주었다.
그 덕에 낙인에 쌓았던 마력의 7할가량이 소모되었고 말이다.
물론 힘 조절을 위해 낭비된 마력이 절반 이상이지만 말이다.
“흐....으...으....”
샤론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지만 입술을 달짝일 힘도 남지 않아 눈만 힘겹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겨우겨우 일어나려던 샤론의 가슴을 델라의 구두가 꾹 짓누른다.
“어머, 그렇게 일어나려고 하지 말아요. 더 다치면 어쩌려고.”
구두 아래로 느껴지는 몰캉몰캉한 젖가슴의 감촉을 즐기던 델라가 입술을 슬쩍 핥는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 표정일까?
불과 같던 분노는 차디찬 무력감에 젖고.
새하얀 천 같던 긍지는 모멸과 굴욕이라는 얼룩으로 더럽혀진다.
이 얼굴이 보고 싶어 그렇게 고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선 자세 그대로 오르가즘을 느껴버릴 것 같았다.
“음, 음.... 역시 예쁜 몸이네요.”
몇 차례 무게를 싣지 않고 가슴을 꾹꾹 밟아대던 델라가 발을 치웠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내가 이겼으니까 승자의 전리품을 챙겨 가야겠어요. 앞으로는 이 일대에서 사냥하지 마세요. 당신의 구역까지 내가 넘겨받을 테니까요.”
“헛....소...리.... 집어....쳐....”
공허하게 변해가던 샤론의 눈동자에 분노와 투기가 재점화된다.
그러나 그것이 지쳐 쓰러진 몸을 다시 일으킬 원동력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델라는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아 샤론과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당장 돈을 벌 곳이 없어지잖아요? 제대로 납부금을 내지 못하면 시민권을 되찾는 일도 영영 물 건너가겠죠?”
“..........”
손을 뻗어 샤론의 뺨을 상냥하게, 아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약간 까칠해진 피부가 손등을 간질인다.
“그러니까 내가 일자리를 줄게요. 어차피 묵을 곳도 없을 테니 내가 머무는 호텔 방에서 지내도록 해요. 샤론이 귀여운 짓을 할 때마다 돈을 줄게요. 자, 이거 봐요.”
샤론의 입 바로 앞에 손가락을 들이미는 델라.
동시에 지갑에 두툼하게 쌓여있는 수표 중 두 장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숫자와 금일천만원정이라는 글자가 병기되어 있었다.
“아기가 젖을 빨듯이 쪽쪽 빨면 이걸 줄게요. 일종의 계약이에요. 앞으로는 내 말을 잘 따르면서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 계약.”
샤론에겐 이제 집도 없다.
사냥터도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580억이라는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한 선택지 중 가장 편한 것은 자존심을 꺾고 델라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샤론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고.
델라는 그녀가 손가락을 빨기 쉽게끔 입안에 손을 넣어주었다.
“옳지, 잘하네요.”
델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고 긍지가 넘쳐봐야 결국엔 빚의 노예이다.
여기까지 고립시키고 떨어뜨려 놓았으니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그녀를 잠식해 갈 예정이었다.
이후 제머나이 백작에게 채권을 사들여 샤론을 인형처럼 가지고 놀며 그녀가 자신을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 최종목표이다.
이것은 그 웅대한 쾌락을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으직!
그러나 만족스러웠던 델라의 눈이 찌푸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샤론이 안간힘을 다해 델라의 손끝을 깨문 것이다.
제 딴에는 손가락을 잘라낼 기백으로 깨무는 것 같지만 느껴지는 고통은 어린 강아지가 이갈이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통증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샤론이 제 고집을 꺾지 않고 발악한다는 것.
새파랗게 달아오른 샤론의 눈동자가 델라를 쏘아본다.
델라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영문모를 굴욕감이 가슴을 쑤시고 머릿속의 리미터가 딸깍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굴복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취하는 수밖에.
“샤론 양 이제 보니 너무 많이 다쳤네요.”
델라의 목소리를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감히 반편이 마녀 주제에, 이렇게까지 사정을 봐주는데 아직도 기어오르다니.
이대로 호텔로 데려가자.
자율방어를 작동할 마력조차 거의 소진한 상태라면 델라가 무슨 짓을 해도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할 것이다.
강제로 몸을 취하고 헐떡이는 모습을 구경하자.
이후의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내가 치료해줄게요. 일단 내 방으로 가요.”
“이...이거...놔....”
샤론은 안간힘을 다해 멱살을 쥐어 그녀를 일으키려는 델라는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델라는 꿈쩍도 하지 않고 냉혹한 눈길로 샤론을 일으켰다.
“자꾸 버티지 말아요. 귀찮게.”
“우욱!”
성가시니 일단은 기절시켜둘까?
델라는 마력의 파동을 밀어 넣어 샤론의 속을 진탕으로 만들었다.
몸 안을 파고드는 마력에 저항하지도 못한 채 축 늘어진 샤론.
-휘릭!
그때 무엇인가 손목에 감기는 감촉이 났다.
“어라?”
갑작스러운 감각에 델라는 시선을 옮겼다.
선홍빛의 드레스 밖으로 드러난 손목에 어느샌가 검은 리본이 감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