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55화 (155/917)

#155

1.

호기롭게 밖으로 나선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시우와 함께 수색을 끝냈다.

‘꼭 열심히 돈을 벌어야지!’라는 마음만으로 안되던 일이 쑥쑥 잘 풀린다면 샤론은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아.....”

신촌의 번화가 일대가 까마득한 부감으로 변하는 대학병원의 옥상.

물탱크 위에 주저앉은 샤론은 암울한 표정으로 나침반을 보았다.

“진짜 이럴 때만 항상 없어. 짜증나게.”

선선했던 아침 공기가 태양볓을 만나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반면 뜨겁게 달아올랐던 샤론의 포부는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샅샅이 뒤졌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질 않는다.

슬슬 시우에게 마법을 가르쳐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샤론의 마음도 몰라주는 나침반의 자침은 야속하게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냐...”

그간 너무 마음 편하게 있던 탓일까?

오랜만에 마주한 압박감은 평소보다 무겁게 샤론의 가슴을 짓눌렀다.

이러다가 두 달이 지나도록 갚을 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어쩌지?

제머나이 가문은 원체 유명한 부잣집이고 하루 이틀 변제가 밀린다고 직접 찾아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압박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직접 찾아온다면 사정을 설명할 기회라도 있지...”

경험에 따르면 납부 기일이나 금액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할 시 연체료라는 명목으로 해당 분기의 납부금이 추가로 얹어진다.

즉, 다음 분기에는 원래 금액에 거의 3배에 달하는 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너무하다 싶은 조건이었지만 빈털터리나 다름없던 샤론이 그 정도의 목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온갖 독소조항이 들어간 빚문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절대 안 돼.”

샤론은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나무 위를 사뿐사뿐 밟아가며 호문쿨루스를 찾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어!”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정처 없이 빙글거리던 자침이 어느 한 곳을 확실하게 가리키기 시작한다.

샤론은 정신없이 자침을 따라 통통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호문쿨루스!

최소 100만 원!

걸어 다니는 3등 복권!

샤론은 머지않아 호문쿨루스가 자연적으로 발생시킨 이면결계의 내부로 침투했다.

“이 귀여운 놈들 얌전히 내 변제의 거름이 되어라.”

위로 전철 선로가 깔려있는 어두컴컴한 굴다리.

하지만 워낙에 오래됐고 동쪽으로 새로운 지하터널이 뚫린지라 오가는 차도, 사람도 없는 으슥한 곳이다.

샤론은 만연의 미소를 지으며 모처럼 마주한 호문쿨루스를 반겼다.

호문쿨루스의 정체를 확인한 샤론의 고개가 갸우뚱 옆으로 기울었다.

-크릉...크르릉....

“또 야?”

저번에 만났던 검은 개 형태의 호문쿨루스와 오늘도 마주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다섯 마리나 있다.

이미 몇 마리나 봤기 때문에 앞으로도 마주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누가 호문쿨루스를 복사해내고 있다고 여기는 게 납득이 쉬울 정도이다.

“그래도 반가워, 얘들아.”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자세한 사유는 모르겠지만 당장 인생이 고달프면 가장자리에 있는 것들은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겨우 눈 하나쯤이야 수십 마리가 덤벼든다고 해도 모조리 처리할 자신이 있으니, 샤론에게 5마리의 호문쿨루스는 걸어 다니는 돈다발로 보일 뿐이었다.

“균형이여!”

샤론은 고이 챙겨두었던 페트병의 물을 제물로 바치며 완드를 휘둘렀다.

2.

모처럼의 사냥은 어렵지 않게 끝났다.

애초에 호문쿨루스 사냥의 가장 위험한 면모는 그것들이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냥에 임해야 하는 것에 있다.

모든 호문쿨루스는 품고 있는 유산에 따라 고유의 마법을 사용하기도 하니 말이다.

뭐, 그것도 눈 하나짜리는 거의 없는 경우지만.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검은 개 무리는 샤론에게 위협 요소가 아니었다.

공격수단 이래 봐야 변변찮은 물리 공격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특유의 날렵한 움직임도 눈에 익혀두었다.

굴다리 아래서 고무공처럼 튕기며 덮쳐 드는 괴수를 죽이는 것도 샤론에게는 도마 위의 생선 대가리를 내려치는 정도의 단순작업이다.

“우후후, 이게 얼마야.”

사냥의 여파로 반파되어 무너진 굴다리 아래 쪼그려 앉은 샤론.

그녀는 열심히 호문쿨루스의 잔해를 뒤적이며 결정을 캐냈다.

예상대로 유산 같은 것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의 결정이라면 600만 원 상당의 수확이다.

갑갑했던 숨통이 탁 트이는 느낌이라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샤론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또각또각

굴다리 안을 울리는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귓가에 박혔기 때문이다.

뒤이어 오만하고 고압적인, 지극히 마녀다운 음색이 언짢은 비음과 함께 샤론에게 향한다.

“흐음~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건가요?”

“보면 몰라? 사냥 중이잖아.”

샤론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편두통의 조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그곳에는 붉은 드레스로 자신을 치장한 썅년... 이 아니라 델라 레드클리프가 서 있었다.

구두 굽 소리에 이어, 목소리, 그리고 직접 두 눈으로 델라를 확인한 샤론의 표정이 피망이 잔뜩 쌓인 접시를 본 아이처럼 일그러짐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니까 왜 이곳에서 사냥 중이냐고 물은 건데요?”

“그야 당연히...!”

아.

어떻게든 만병의 근원, 델라를 떨쳐내려던 샤론은 주위를 살폈다.

이 굴다리는 샤론의 순찰 루트에 없는 곳이다.

아까는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간절한 마음에 나침반에만 시선을 고정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 사이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델라가 저렇게 텃세를 부리러 온 것을 보면 아마도...

“아니, 잠깐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쯧쯧, 멍청하고 비루한 줄만 알았는데 염치도 없네요.”

델라는 당황하는 샤론의 모습을 보며 모든 상황을 짐작했음이 틀림없다.

아무리 샤론이라도 이곳이 델라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얼씬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좋은 건수라도 잡았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델라에게 진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전에 결투로 두 번 다시는 내 사냥터에서 놀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텐데요?”

“........”

약점을 잡은 것이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흉소를 지은 채 걸어오는 델라의 모습에 샤론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홍옥같은 눈동자가 몹시도 꺼림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랄까... 먹잇감을 앞에 둔 뱀과 같다고 해야 하나?

“약속을 어기려던 건 아니야. 이건 네가 가져.”

샤론은 입술을 꾹 깨물고 델라에게 결정을 던졌다.

괜히 그녀와 시비가 걸리는 것보다는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생긴다.

하필이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델라에게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델라는 반짝이며 날아온 결정을 멋들어지게 손에 쥐었다.

잠깐 그것을 손바닥에서 굴려보더니 바닥에 툭 던진다.

결정은 데구르르 아스팔트 위를 굴러 아무렇게나 흩어졌다.

-촤르륵!

“이딴 게 나한테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얼마 하지도 않는 거.”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샤론의 눈은 슬프게도 처량하게 흩어지는 결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델라의 존재를 떠올리고 시선을 수정했지만 그녀는 쿡쿡 웃으면서 샤론을 조롱했다.

“당신처럼 천하고, 가난한 마녀나 주섬주섬 주워가는 거지. 안 그래요?”

“...결정을 주면 됐잖아. 네 사냥터인 줄 알았더라면 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물건을 훔치다 걸린 도둑이 본래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준다라.... 고작 그걸로 끝?”

샤론은 이를 바득 갈았다.

델라는 충분히 부유한 마녀 중 하나이다.

이런 저급한 호문쿨루스를 사냥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면 그냥 몇 마리 사냥하게 놔두지 구태여 훼방을 놓으며 도둑질 운운하는 것이다.

고약하게 꼬인 델라의 성격은 샤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부류였다.

“그래서 어쩔 건데? 네 말대로 난 가난한 빈털터리라 너한테 줄 수 있는 돈은 한 푼도 없거든? 저리 비켜 나갈 거니까.”

괜히 기분만 잡쳤다.

샤론이 씩씩거리면서 델라를 지나쳐 갈 때 여지없이 비웃음이 뒤통수에 꽂혔다.

“그럼요~ 빚도 산더미고, 집에서도 쫓겨나고... 나 델라가 그런 가난뱅이에게 돈을 뜯을 정도로 잔인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불길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이죽이는 델라를 무시하고 갈 길을 가려던 샤론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집에서 쫓겨나?

머릿속의 퍼즐이 맞춰지는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샤론의 눈가가 좁아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무슨 의미인가요?”

“내가 집에서 쫓겨난 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다 아는 방법이 있죠. 이래 봬도 샤론 양을 무척 예의주시하고 있으니까요. 혹시 법에 어긋나는 나쁜 짓이라도 할까... 얼마나 전전긍긍한 줄 알아요?”

어깨를 으쓱 떨며 비릿한 미소를 띠는 델라의 가증스러움에 샤론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모했다.

그녀가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분명 델라가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해 있다는 것을.

“증거를 보여줄까요?”

이를 악물고 자신을 노려보는 샤론의 눈길에도 델라는 태연자약할 뿐이다.

그도 그럴게 두 사람의 결투는 이미 압도적인 델라의 승리로 끝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샤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델라의 옷깃 하나 스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꺼져.”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샤론을 걱정하고 배려하고 싶어하는지 증거를 보여주고 싶어요.”

델라는 뾰족한 구두 끝으로 재주 좋게 결정을 걷어찼다.

데굴데굴 굴러온 결정이 샤론의 발치에 멈추어 선다.

“그 푼돈도 주워갈 수 있게 해줄게요. 나한테는 한 잔 술값이지만 샤론에게는 아니잖아요?”

모멸감에 꽉 문 턱이 떨린다.

도대체 어떤 원한이 있길래 이렇게 철저하고 악랄하게 괴롭혀대는지... 샤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 병자년, 미친년.

아무리 속으로 욕을 쏟아부어도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다.

“안 주워요? 그 정도면 꽤 될 텐데 그래도. 허리를 숙이고 주워가기만 하면 전단지 수만 장 붙여야 하는 돈을 얻을 수 있다니까요?”

“..........”

샤론은 입을 꾹 다물고 휙 뒤를 돌았다.

더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

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상대다.

그런 샤론의 발목을 붙잡으려는 듯이 뒤에서 쉴새 없이 도발을 계속하는 델라.

“후후, 꼴에 자존심이나 챙기려드니까 여태 돈도 못 갚고 허덕이는 거랍니다.”

“........”

“그런 주제에 내가 준다는 일거리도 내팽개치고, 주제를 모르고 분수도 모르니 비참한 빚쟁이 인생을 살게 되는 거죠.”

“........”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되뇌어도, 미친개가 짖는 소리라고 치부해도.

날카로운 비수처럼 푹푹 날아와 꽂히는 말들.

“선대 에버그린은 정말 슬프겠네요. 모처럼 내세운 후계가 제대로 낙인을 계승 받지도 못한 미숙아인데다가 제 빚도 제대로 감당못하고 있으니...”

샤론의 발걸음이 우뚝 멎는다.

많이 참았다.

정말 많이 참았다.

“알겠다. 네가 뭘 원하는지.”

스산한 목소리가 굴다리를 울린다.

낮게 가라앉은 차가운 음색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격정이 묻어나왔다.

“오? 뭔가요? 전 딱히 아무런 의도 없었는데.”

그 모습에 델라는 히죽 웃었다.

“썅년아, 한 판 다시 뜨자.”

샤론은 망토에서 빼낸 기다란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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