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54화 (154/917)

#154

1.

샤론과 시우의 알콩달콩한 동거 생활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간 두 사람의 일정을 얼추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2PM~ 6PM.

하루 중 아무런 일정이 없는 자유시간.

두 사람 각자 편한 일을 하며 지낸다.

6PM~ 0AM.

샤론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동안 시우는 마법 공부에 열중했다.

0AM~ 3AM.

샤론의 알바가 끝나고 나면 곧장 전단지를 붙이러 돌아다닌다.

당연히 전단지를 붙인다는 일 자체보다는 호문쿨루스를 찾아다니는게 우선이지만...

아직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3AM~ 6AM.

간단한 야식과 함께 영화감상 타임이다.

원래는 그냥 한 두 시간 정도 야식을 먹고 끝이었는데 샤론이 영화를 너무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영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지 틈틈이 상의하는 것이 일과의 즐거움이 된 것은 덤이다.

6AM~ 10AM.

잠깐의 수면타임.

샤론에 침대가 주중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제 잠자리로 다툴 일은 없어졌다.

10AM~ 2PM.

또 식비+집세를 충당한다는 명목하에 샤론의 원소마법교실이 열린다.

샤론은 시우에게 이것저것 알고 있는 마법 지식을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샤론이 강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자, 오늘은 4대 원소 중 두 번째인 ‘물’에 대해서 알아보자. 진도가 정말 빠르네.”

“다 현명하신 스승님 덕분이죠.”

“그런가?”

어느덧 친근하게 장난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진 샤론과 시우.

샤론은 화이트보드를 마커로 탁탁 치며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제는 서로 가까워져 가벼운 장난을 시도 때도 없이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그는 누구보다도 진지해졌다.

“저번에 배웠던 흙의 원소가 토대, 교반, 기조를 제공한다면 물은 흐름, 운행, 재변화를 관장해. 한 마디로 두 번째로 중요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사실 샤론이 시우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그리 높은 수준의 수업이 아니었다.

견습마녀들에게 필수적으로 교수되는 기초 중의 기초인 데다가 시우는 이미 한 분야에서 자성마법을 완성할 정도로 조예가 깊다.

학습이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지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샤론은 시우의 학습능력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우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을 복습하는 것처럼 놀라운 속도로 모든 정보를 습득했기 때문이다.

“.....흙의 원소가 모든 원소 마법의 토대를 이해하는데 주효했던 것처럼, 물의 원소는 원소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시작이 될 거야. 인간의 몸의 70%는 물로 이루어져 있잖아? 마법이 시행되는 외부와 마법을 시행하는 내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원소인 거지. 여기까지 오케이?”

“어, 대충은.”

단순히 암기력이 뛰어난 것인가? 하면 아니다.

물론 일반인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긴 했지만 기상천외한 천재와 날고기는 영재로 가득한 견습마녀들과 비교하면, 특출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평범한 수준이다.

그러나 마법은 단순한 암기의 학문이 아니다.

만약 계산과 암기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문제였더라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녀는 컴퓨터였을 것이다.

마녀의 사고가속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컴퓨터에는 미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시우의 강점은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능력, 그리고 틀에 박힌 방식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는 영감에 있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확장해 스스로 깨닫고, 샤론조차도 떠올리지 못했던 지름길을 생각해내어 제시한다.

“질문이 있어.”

“응, 물어봐.”

견습마녀 시절 샤론이 일주일 넘게 걸렸던 이론 강의가 불과 한두 시간 만에 끝났다.

샤론이 모든 것을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도화지 위에 점만 찍어주면 시우가 그걸 죄다 연결하며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좀 복잡하네.”

샤론은 각기 다른 원소의 성질만을 알려줄 예정이었지만 질문이 끝날 무렵 시우는 벌써 흙의 원소와 물의 원소의 상호관계에 주목해 나름의 결론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성과를 내놓고도 별로 만족하는 표정이 아니다.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아예 모르기 때문에 가능할 일일 테지.

샤론도 일일이 그의 대단함을 추켜세우지 않았다.

무릇 자만이란 배움에 있어 언제나 독이 되기 때문이다.

“뭐가 복잡한데?”

“뭐랄까... 마법은 나한테는 수학에 가까웠거든. 공식에 숫자를 대입하면 값이 나오는 거 말이야.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새로운 공식과 증명을 이용하면 됐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면 됐는데 네가 가르쳐주는 건 ,널 탓하는 건 아니야, 그냥 좀 모호해서.”

시우가 생각하기에 샤론의 강의는 마치 그림이나 음악처럼 예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로 쓸모 없어 보여?”

“아니, 이걸 어떤 식으로 적용해야 할까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네. ‘주어진 문제를 예술적으로 푸시오’ 같은 느낌이라.”

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샤론은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끔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난처하면서도 그것을 내색하려 하지 않는 노력이 좋다고 해야 할까?

“이리 와 봐.”

“또 손잡아야 되는 건가?”

“싫어?”

“싫은 건 아닌데.”

샤론은 손바닥을 쫙 펼쳐 시우에게 내밀었다.

시우는 그 손에 깍지를 껴 잡았다.

샤론의 심상을 공유하기 위한 일종의 작업이다.

본래는 맞닿는 신체 면적이 많아질수록 ‘공명’이 쉬워지지만 남녀가 유별하니 일단은 손을 잡는 것으로 서로 타협을 보았다.

그래도 조금 익숙해진 것인지 예전처럼 심장이 정신없이 뛰거나 하진 않는다.

시우와 샤론은 동시에 눈을 감았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그러나 오늘은 조금 변화가 있었다.

샤론이 한 손을 잡은 상태에서 시우의 빈손까지 끌어들여 맞잡은 것이다.

당황해서 눈을 뜬 시우.

눈앞에는 시우와 거의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 샤론이 보였다.

“모든 걸 숫자와 계산으로 생각하면 마법은 금세 재미없어져. 지금 너가 해야 할 건 원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야.”

바로 코앞에서 속삭이는 샤론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땅이 꺼지는 것처럼 샤론과 시우의 의식이 동시에 침잠한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점묘화를 그려봐. 원소로 이루어진 커다란 그림. 단순히 지식으로 마법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느끼고, 감동하고, 동화하는 거야.”

-똑!

“.....어?”

“느껴지지?”

순간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눈꺼풀 뒤 깜깜한 어둠 한가운데로 맑게 떨어진 한 방울의 물방울은 이내 세상을 출렁인다.

이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수면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시우는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물의 요정들이 축제를 여는 듯한 세계의 모습을.

텅 빈 우주를 가득 채운 푸르른 빛의 분류를.

거대하게 솟구친 푸른 입자들은 용오름치고, 굽이치고, 회전하며 드넓은 세계를 감싼다.

그것은 변화하고, 수용하고, 녹아들며, 춤추는 마치 축제와도 같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몽환적인 배경을 등지고 샤론이 서 있다.

시우의 손을 단단히 맞잡은 채로 경이로워하는 그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고.

“아....”

샤론이 손을 놓자 짧았던 여행도 끝났다.

시우와 샤론은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원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우리는 그저 그 존재를 믿으며 간절히 기도할 뿐이야. 기적을 내려주세요~ 하고.”

한편 시우는 그 장엄했던 풍경에 마음이 잠식당해 있었다.

몸은 현실세계로 돌아왔는데 정신은 아직도 그곳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처음 아인을 접했을 때의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마법을 대하는 또 다른 경계를 허문 기분이었다.

“이것도 마녀마다 관점이 달라. 원소를 통제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쪽도 있고, 선악도 호오도 없는 세계를 구성하는 기계장치일 뿐이라는 관점도 있지. 하지만 난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저절로 기도하게 되더라고.”

“미안, 나 잠깐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아! 알겠어.”

침착하게 말하는 시우의 말에 샤론은 재빨리 자리를 비워주었다.

언제나 샤론의 말에 맞장구쳐주는 그가 저렇게 칼같이 나온다는 건 뭔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예상한 것이다.

곧장 테이블에 앉아 눈을 감는 시우를 보며 샤론은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방을 나왔다.

“부럽다....”

그리고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정체한 샤론과 다르게 새로운 과외선생을 얻은 시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만약 여자로 태어나 정식으로 마녀의 낙인을 이어받았더라면 어떤 괴물이 되었을까?

그의 재능은 가르치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눈이 부셨다.

가끔 질투가 생길 정도로 말이다.

“이러다 나중에는 내가 배우는 거 아니야?”

이제 막 기초강의를 시작했을 뿐이지만 영 허망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시우가 떠올린 의문이 샤론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던 적도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이럴 때가 아니네.”

오늘 수업은 조금 일찍 끝나 시간이 남는다.

샤론은 마지막으로 시우의 방문을 힐끗 바라보고 자신의 연구를 시작했다.

2.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의 끝.

시우와 샤론은 각기 잠자리에 들었다만 샤론은 눈을 끔뻑끔뻑 뜨고 있었다.

커다란 문제를 자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너무 놀았어....”

그렇다.

그간 너무 타이트하게 살아왔던 반동 덕인지 샤론의 최근 마음가짐은 해이하기 그지없었다.

잠시나마 빚 걱정을 잊고, 영화를 감상하고, 오늘은 무슨 메뉴를 먹을지 고민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시우의 호의 덕분에 생활 환경이 급속도로 좋아졌고 불필요한 월세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샤론의 빚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

호문쿨루스 사냥도 거의 3주 가까이 못 하고 있고, 짬짬이 돈을 벌어주던 코인장을 손절 했으니 2달 뒤에 찾아올 상납기일에 돈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드는 것이다.

“하아....”

샤론은 한숨을 푹 쉬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래는 잠도 자지 않고 뭐라도 해서 돈을 모으기 위해 발버둥 쳤었는데 동거 이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잠도 자고 있고...

포근한 잠자리, 풍족한 음식, 즐거운 취미생활 등, 갑자기 바뀐 환경이 묘하게 현실감각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때 샤론의 머릿속으로 퍼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첫 만남 때 시우가 샤론에게 했던 제안이었다.

‘제가 여윳돈이 넉넉하게 있는 편이어서요. 이자라도 대신 내드리는 식으로...’

당연히 샤론은 단칼에 거절했다.

불쾌하고 기분도 나빴었던 까닭이다.

비록 불운이 겹쳐 빚쟁이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샤론의 심지에는 마녀의 긍지가 있었다.

적선하듯이 던져주는 동정을 넙죽 받아먹을 성격이었다면 위치포인트의 추적을 감수하고 마법을 악용해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으으.....”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때는 시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그의 알량한 동정심이 불쾌하게 다가왔지만, 그와 함께 살며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움을 받아도 심리적인 거부감이 커지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졌다.

혹시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선의에 편승해 이 고난을 해결하려던 것이 아닐까?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시우가 어떻게든 구제해 줄 것이라는 보험이 생기자 간절함이 줄어버린 것은 아닐까?

샤론은 옷을 갈아입었다.

원소마법을 활용하기 위한 예복과 완드가 손이 쥐어진다.

“...그럴 수는 없지.”

시우는 좋은 친구이다.

샤론이 정말로 곤란해하면 아무런 주저함 없이 도움의 손길을 뻗으리란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샤론은 그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와 대등한 친구 관계로 남아있고 싶었다.

한쪽이 물질적인 도움을 받는 순간 수평적인 관계는 깨져버린다.

설령 시우가 전혀 개의치 않다고 해도 샤론 자신의 마음의 빚까지는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샤론은 발코니를 열고 그대로 훌쩍 뛰어내렸다.

호문쿨루스를 찾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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