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53화 (153/917)

#153

1.

영화관람이 끝난 이후 샤론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티슈를 거의 한 갑이나 쓰며 눈물과 콧물을 훔치고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저렇게 눈이 퉁퉁 부어있는데도 전혀 흉해 보이지 않는 것은 원판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려나?

시우가 소파 위에 이불을 펼치며 아직도 감동의 도가니에 젖어있는 샤론에게 물었다.

“그래서, 잠깐 눈 좀 붙일 건데 넌 어때?”

“잠? 오랜만에 좋지.”

“평소에도 자는 편이야?”

“평소에는 잘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잠자는 것 자체는 좋아해. 오늘은 기분도 좋으니까 한숨자는 것도 좋을 것 같네.”

마녀에게 수면이란 철저하게 기호이지만 오히려 잠을 자지 않는 마녀의 비율이 훨씬 드물다.

마녀도 결국 본판은 인간.

수면이란 아무런 생각없이 사고의 공백을 둔 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갓 마녀가 된 어린 마녀일수록 수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시우도 항상 하루 세 네시간은 눈을 붙였고 말이다.

암막 커튼 밖으로는 이미 동이 트고 있었기에 꽁꽁 문을 싸맨 시우.

사실 말이 소파지 어지간한 침대보다 넓고 부드러워서 대충 이불과 베개만 있으면 숙면할 수 있다.

“오늘은 내가 거실에서 잘게. 네가 내 방에서 자.”

“응? 아냐! 내가 거실에서 잘게.”

“그래도 손님인데 어떻게 소파에서 재워.”

“나야말로 얹혀사는 처지잖아.”

어차피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도 시켰겠다.

한 이틀 정도만 거실에서 자면 되는 건데 샤론은 절대로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샤론이 후다닥 달려들어 시우가 깔아놓은 이불 안에 쏙 들어가 베개를 꼭 끌어안은 채 영역 선포를 했다.

“내가 여기서 잘 거야.”

“그럼 난 오늘 안 잘 테니까. 네가 침대에서 자.”

“아냐! 나 때문에 괜히 자고 싶은 거 안자는 거 아니야? 그럼 나도 안 잘래.”

“난 정말 괜찮다니까? 어차피 소파도 침대처럼 푹신하고 편해.”

“그럼 나야말로 더더더 괜찮겠네? 소파도 침대처럼 푹신하다며.”

모처럼 초대한 손님을, 그것도 여자를 소파 위에서 재우는 건 불편하다는데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간 두 사람 모두 자지 않은 채로 어영부영 넘어갈 것 같은데.

그때 샤론이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침대에서 같이 잘래? 어차피 침대 넓잖아.”

시우는 단호히 말했다.

“안 돼.”

“왜?”

하지만 즉답해온 샤론의 질문에는 당장 대답할 거리가 궁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침대에서는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왜? 영화에서도 같이 자잖아.”

오늘 본 로맨스 영화에서 남녀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깨어나는 장면이 많긴 했다.

더불어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히 묘사된 섹스신도 있었고 말이다.

그 탓에 같이 보면서 좀 낯부끄러웠다.

“어... 음.... 걔네는 커플이잖아. 서로 사랑하는 사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면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면 안 되는 거야?

물론 영화에서는 한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성교까지 한다지만 너도 그럴 생각이 없을 거고, 나도 그럴 생각이 없는데? 문제 없는 거 아니야?”

시우가 샤론에게 음흉한 목적으로 동거를 제안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서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괜히 한 침대에서 뒹굴다가 서로 어색한 에피소드가 발생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말이다.

“아무튼 안 돼.”

“그럼 난 안 잘 거야.”

“나도 안자지 뭐.”

“........”

“........”

샤론은 도저히 그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시우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뭔가 간질간질했다.

샤론은 쿡쿡 웃으면서 먼저 사과했다.

“미안, 내가 너무 고집부렸네. 그래도 오늘은 내가 소파에서 잘게. 부담스러워서 그래. 침대는 어차피 며칠 뒤에 오는 거잖아?”

“알았어. 나도 기왕 쉬는 거 네가 더 편히 쉬면 좋겠으니 그랬지 뭐.”

“진짜 편하니까 걱정 말고. 알람 맞춰뒀으니까 한 세 시간 뒤에 보자.”

“그래.”

결국 시우는 침대에서, 샤론은 소파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2.

“나도 밥값을 할 시간이 왔군! 샤론 에버그린의 마법 교실, 시작해 봅시다.”

아침 식사를 대충 와플과 팬케이크로 때운 샤론은 씩씩하게 시우의 방으로 들어섰다.

뒷정리를 끝낸 시우도 그녀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샤론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의 방을 살폈다.

“음, 생각해보니까 나 남자 방에 들어오는 거 처음이야.”

“그래? 남자 집에 들어오는 것도 처음 아니야? 아깐 아무말 안 했잖아.”

“아까까지는 별생각 없었는데 영화에서 하도 의미부여를 하니까 괜히 신경 쓰이네.”

확실히, 조금 어색하게 웃는 샤론을 보면 뭔가 영화를 보다가 뭔가 느낀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시우가 느끼는 애매한 감정의 절반분도 신경 쓰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같은 침대에서 자자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을 거고 당장 저 눈두기 민망한 옷부터 갈아입으러 갔겠지.

“너 열심히 연구하는구나.”

“이렇게 두는 편이 보기도 쉽잖아.”

“그래도 뭔가... 뭔가 전문적으로 보여.”

한쪽 벽을 꽉 채운 코르크 보드에 형사들이 추리하는 것처럼 각 단서와 지식의 유기적 관계를 끈으로 표현해 두었다.

마찬가지로 화이트보드에는 마법진의 대략적인 형태를 수식으로 나타내어 옮겨적어 두었다.

시우가 짐작하기에 아인에 있는 마법의 50% 정도밖에 해석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한번 훑어봐도 괜찮을까?”

“내가 부탁하고 싶은걸.”

“이해 못하는 부분을 물어볼 테니 옆에서 설명 좀 부탁할게.”

샤론은 시우가 정리해 놓은 마법진을 유심히 살피며 코르크 보드에 붙여놓은 마법식과 비교했다.

정확히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전에 그가 어느 분야에서 어느 수준의 마법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시우의 보조 설명과 마법식을 확인하던 샤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알 것 같네. 어떤 상황인지.”

“그래?”

시우는 반색했다.

최근 시우의 마법연구는 아예 벽에 마주한 상태였다.

참고할 자료도 조언자도 없는 처지로서는 도저히 넘어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 벽이 말이다.

“응, 우선 여기 앉아볼래?”

샤론은 시우를 옆에 앉혔다.

그리고 종이 위에 정리해가며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마법에는 크게 4 계통이 있다는 건 알지?”

“어, 그렇지.”

원소, 연금, 언령, 결계.

최소 마녀의 숫자만큼의 자성마법이 존재하기에 이 카테고리 안에 전부 넣을 순 없지만 9할 이상의 마녀들은 이 네 가지의 계통으로 하위분류가 가능하다.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가장 먼저....

원소.

동서양 문화권을 불문하고 주로 다뤄지는 물, 불, 흙, 바람의 원소의 조화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마법을 사용하는 계통이다.

기원전부터 축적된 유구한 전통을 지닌 만큼 유서 깊은 정통파 마녀들은 대부분 이쪽 계통을 사용하며 그 숫자도 가장 많다.

게헨나에서 원소 계통의 마녀들이 모이는 학회는 ‘진리진명 학술회’.

바람과 물의 원소를 융합한 ‘입자 마법’을 사용하는 아멜리아 메리골드도 이쪽 계통이었다.

그다음은 연금.

원소마법이 마력을 통해 술자 본인이 직접적으로 신비를 일으키는 주체가 된다면, 이쪽은 조금 더 도구와 촉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엘릭서, 시약, 묘약 등을 만드는 약물 제조 분야와 아티펙트, 마도구를 만드는  마공학 분야가 전부 이쪽에 속하는 만큼 원소 마법만큼이나 범용성이 높고 당연히 연금 계통의 마녀도 많다.

게헨나에서는 연금 계통의 마녀들이 모여 ‘에메랄드 타블렛’이라는 학회가 만들어진 상태이며 원소 계통과 연금 계통의 자성마법을 사용하는 마녀들을 합치면 전체 마녀의 90%가 넘어간다는 통계도 존재한다지.

또 다음은 언령.

여기부터는 계통이라고 하기도 모호할 정도로 사용자가 줄어든다.

자신의 심상을 ‘언령’이라는 말로서 현상화 시키는 것, 이 자체가 대부분의 마법에 들어가는 ‘영창’의 하위 분류이기 때문이다.

‘말’이 마법의 주체가 되는 만큼 규격화도 체계화도 힘든 고리타분한 마법이라는 의견이 많이졌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언령 사용자는 원소 계통 쪽으로 대를 거쳐 이전했다.

따라서 작금에 이르러  언령을 사용하는 유명한 마녀는 제머나이 백작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결계.

언령도 사용자가 거의 없는 편에 속하지만 결계 계통은 사실상 실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많았다.

이제는 3대 계통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하면 나왔으니까.

많은 마녀가 결계 계통에 속하는 ‘이면 결계’를 다룰 줄 알지만 그건 케테르 공작이 마녀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개편하여 보급했기 때문이고 깊이 있게 파고드는 마녀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

따라서 게헨나 내부에서 결계 계통의 자성마법을 지닌 마녀는 케테르 공작과 ‘역장 마법’을 사용하는 예소드 백작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다.

“우선, 정말 놀랐다는 걸 알아줘. 넌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졌어.”

“그, 그 정돈가?”

“어, 눈물 쏙 나게 부러울 정도로 화려한 재능이라고 생각해.”

샤론이 자세히 살핀바 시우의 성취는 대단했다.

도저히 혼자서 몇 년 만에 이룩한 성취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참신했다.

누구도 생각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업적을 눈부신 속도로 쌓아 올린 것이다.

다만 그의 자성마법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는 제한된 재료를 바탕으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지만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의 재능을 지닌 시우가 왜 벽에 막혔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네 자성마법은 크게 두 가지 계통이 조화된 상태야.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좌표이동식이라고 했지? 이쪽은 내가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어. 유감스럽지만 결계 계통에 관해서 독자적인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아.

하지만 그림자의 법칙은 원소 계통이니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샤론이 손을 휘적이자 그녀의 몸이 번쩍 빛난다.

예의 마법소녀 변신 장면이었다.

어느샌가 마녀 정복으로 갈아입게 된 샤론이 한 손으로 지팡이를 흔들며 말한다.

“내 자성마법은 타르바의 5 원소를 응용하는 원소 계통이야. 넌 원소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

“그렇지, 내가 연구한 건 결국 차원이동식 뿐이고 저건 그노시스의 알에서 얻은 거니까.”

“오늘부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가르쳐줄게.”

샤론은 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정쩡하게 그 손을 바라보고 있는 시우.

“뭐해? 잡아.”

“손을?”

“응, 지금부터 내가 보는 세상을 너에게도 보여줄 거거든. 신체 접촉을 통한 심상의 공유라는 거야.”

시우는 주춤주춤 샤론의 손을 잡았다.

어색한 사이에 악수하는 것처럼 어정쩡한 그립이었다.

“그렇게 말고, 이렇게 제대로 잡아야 해.”

이게 아니었는지 샤론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시우의 손 틈새를 파고들면서 꽉 깍지를 꼈다.

“어....”

“앗....”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 같은 감탄을 내뱉었다.

시우는 부드럽고 앙증맞은 샤론의 손마디에, 샤론은 생각 이상으로 두껍고 단단한 그의 손바닥 때문이었다.

배시시 웃으며 어색한 침묵을 깨는 샤론.

“그냥 마법 알려주려고 한 건데. 이상한 기분이네. 로맨스 영화 괜히 봤나 봐.”

“그러게, 다음엔 전쟁 영화 보자.”

“근데 그렇게 멀리 있지 말고 조금 가까이 와줄래?”

“이렇게?”

“응, 지금 좋아.”

한 손은 깍지 껴 마주 잡은 채로 왈츠를 추듯이 바짝 마주 선 두 사람.

멋쩍어하는 시우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인 샤론이 눈을 감는다.

“자, 눈을 감고 내 손의 감촉만을 느껴.”

“했어.”

“대답은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천천히 가장 편안한 상태로... 나랑 하나가 됐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꾸욱하고 시우의 손을 움켜잡는 샤론.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력이 맞닿은 피부를 기점으로 얽혀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저 손을 잡는 것으로는 느낄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서로의 심장소리가 들리고, 샤론이 쉬는 호흡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고, 그녀가 느끼는 감각이 고스란히 공유되는 아주 신비한 일체감.

처음 느껴보는 그 감각에 멍하니 있던 사이 샤론이 불현듯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물 밖으로 갑자기 건져진 것처럼 집중이 깨진다.

샤론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미안, 너 심장이 너무 쿵쿵 뛰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어. 어디 불편해?”

시우는 무심코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 보니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시우가 샤론의 감각을 느꼈던 것처럼, 샤론도 이걸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어쩐지 부끄러웠다.

“아니, 그냥 엄....”

얼떨떨해하는 시우를 보며 샤론은 간지러운 듯이 웃는다.

다 이해한다는 웃음이었다.

“엄청 긴장했구나? 그럴 수 있어. 근데 그렇게 무서운 거 아니야. 자아, 심호흡하고.”

“후...하....후우....”

“옳지, 다시 해보자.”

시우가 샤론이 원했던 대로 온갖 원소들로 가득 찬 세상을 보기까지는 거의 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날은 샤론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가기 전까지 계속계속 원소 마법에 대해 교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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