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49화 (149/917)

#149

1.

“균형이여!”

호문쿨루스의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샤론은 완드를 꼭 끌어안은 채 영창을 외웠다.

완드 끝을 장식한 커다란 녹색 에메랄드가 빛을 발하더니 주변으로 파장을 퍼뜨린다.

녹아내리듯이 주변의 풍경을 복사하고 덮어쓰는 결계의 파장은 곧장 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마녀가 이면결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조금 신기했다.

나침반을 힐끗거리며 곧장 진로를 잡는 샤론.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훌쩍 점프해서 담벼락과 건물 외벽을 걷어차더니 날랜 고양이처럼 지붕 위로 사뿐히 올라선다.

“뭐해? 빨리 가야지!”

뭐랄까.

너무나도 가벼운 몸놀림으로 통통 튀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더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시우는 온몸을 갑주로 감싼 채 발끝에 마력을 모아 힘껏 튀어 올라 샤론의 옆에 착지했다.

샤론은 나침반을 보며 말한다.

“아무래도 저 주차타워 인근인 것 같아.”

“근데 굳이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어?”

시우가 물었다.

자신의 경우 그림자의 갑옷이 방어 겸 신체 능력 향상을 돕지만 샤론은 언뜻 보기에 완드 말고 바뀐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에버그린의 자성마법은 의식을 통해 발현되는 원소 마법이거든. 예복도 마법의 일부일 정도로 굉장히 중요해.”

이것이 전문가의 멋짐이랄까.

챙이 넓은 마녀 모자 아래서 늠름하게 빛나는 샤론의 얼굴은 돈 한 푼에 눈물을 머금는 빚쟁이의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험난한 현세를 헤쳐나간 원숙한 마녀의 관록이 느껴질 뿐.

믿음직스럽다.

“내가 앞장설 테니 조심해서 따라와.”

“알겠어.”

샤론은 발을 구르더니 물도마뱀 걸음(아마도)을 사용해 지붕과 전봇대 위를 번갈아 건너뛰며 주차 타워 쪽으로 향했다.

마력을 사용해 신체를 강화하는 것도 강화하는 거지만 그와 별개로 균형감각이 참 탁월해 보인다.

한편 은근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우는 아직 전투나 사냥에 익숙하지 않았다.

고작 몇번 사고에 휘말린 것이 전부였으니 당연한 일이지.

이번에 조우할 호문쿨루스가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 모르는 이상 조금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겠다고 한 거니까.”

그러나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민간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한 것은 자신.

이제와서 말을 바꿀 예정은 없다.

-슈왁!

시우의 등 뒤로 커다란 그림자의 날개가 피어난다.

샤론을 뒤따라 쏜살같이 밤거리를 활강했다.

귀를 스치는 바람, 중력에서 벗어나 한 마리 새처럼 밤공기를 가르는 자유로움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비행을 만끽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침반이 공간의 일그러짐을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150M, 머지않아 호문쿨루스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은 번화가에서 비좁은 토지면적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승강기형 주차 타워.

샤론이 말했던 대로 호문쿨루스는 복잡한 철골 구조물처럼 생긴 주차타워를 정글짐 삼아 매달려있었다.

당연히 먼저 사냥을 개시했을 줄 알았던 샤론.

그녀는 우두커니 멈춰선 채로 현 상황을 살핀다.

명백히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왜?”

“저거 봐.”

시우는 샤론이 손끝을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린다.

거기에는 이쪽을 내려보며 으르렁거리는 호문쿨루스 한마리가 보였다.

저번에 시민공원에서, 역사의 옥상에서 마주했던 괴수와 정확히 동일한 생김새였다.

시민공원에서 남자의 시체를 파먹던 기억이 오버랩되자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

눈을 가늘게 뜨고 주차타워를 살피던 시우는 샤론이 먼저 발견한 이상점을 확인했다.

호문쿨루스가 한 마리가 아니다.

총 세 마리의 호문쿨루스가 저마다 주차타워에서 샤론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다.

“세 마리?”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할 때가 아니네.”

“혼자 다 상대할 수 있겠어?”

“지켜보고 있어.”

샤론은 펄럭 망토 자락을 옆으로 흐트러트리며 손에 무엇인가를 쥐었다.

그것은 500mL 페트병에 담긴 생수.

당연하지만 목이 말라서 꺼낸 것은 아니다.

원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바칠 ‘제물’이었다.

예전처럼 비싼 제물을 준비할 여력은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제물의 질을 낮추는 수밖에.

“아파스.”

샤론이 페트병의 물을 줄줄 바닥에 부어내자 그곳을 기점으로 마법진이 떠오른다.

바닥으로 떨어진 물은 땅을 적실 새도 없이 곧장 사라졌다.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어느새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중에 연한 물색의 마력반사광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물기 하나 없는 아스팔트에서 샤론이 부은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이 스며 나오듯 거대한 물웅덩이를 이루었다.

샤론의 발밑에 조그마한 연못 이 생겨난 것 같다.

-크르르르....

-끼이이익!

투지가 가득한 마력이 자극한 것일까?

동시에 먹잇감을 덮치는 맹수처럼 샤론에게 달려드는 호문쿨루스.

“저놈들은 복잡한 마법을 사용하는 타입이 아니야. 그저 우수한 신체 능력으로 밀어붙이는 호문쿨루스는 상대법이 어렵지 않아.”

샤론이 완드를 치켜들자 그녀 발치의 물웅덩이에서 순식간에 3층 건물 높이의 격벽이 생겨났다.

압축된 물과 마력이 뒤섞여 이루어진, 쓰나미처럼 거대한 장벽이었다.

“더 커다란 물리적인 힘으로 사냥하면 그만이지.”

성난 들개처럼 달려들던 호문쿨루스는 갑자기 솟아난 격벽에 부딪치자 커다란 충돌음을 나뒹굴었지만 물의 벽은 잔잔한 파동이 번질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우조차 처음 일격을 받아냈을 때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는데.

샤론은 세 마리의 공격을 동시 받으면서도 눈썹 하나 찡그리지도 않은 것이다.

“그리고 명심해. 아무리 만만해 보이는 호문쿨루스라 할지라도....”

그리고 샤론의 완드가 허공에 작은 원을 그렸다.

마치 지휘자의 지휘에 반응하는 것처럼 물의 벽도 형체를 뒤바꿨다.

거대했던 물의 벽이 허공에 떠올라 구의 형태로 뭉쳤다.

압축되고 압축되어 반의반 정도 크기로 변한 구 내부의 수압은 아마 지구상 그 어떤 심해의 곳보다도 높을 것이다.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쉭 쉭 쉭 쉭

완드의 끝으로 땅을 톡 건드리자마자 회초리를 휘두르는 듯한 새된 소리가 수십 번 울려 퍼졌다.

압축된 물의 구체에서 뻗어 나온 초고압 수류 수십 가닥이 채찍처럼 휘둘러진 것이다.

시우에게 마력을 읽는 눈이 없었더라면 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변화.

수은보다도 무거운 비중을 두고 날카롭게 벼려진 수류는 호문쿨루스의 몸을 채 썰듯이 산산조각 내버렸다.

어찌나 날카롭고 깔끔한지 칼날이 괴물의 몸과 함께 아스팔트를 깊게 베어냈음에도 흙먼지는커녕 벤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와....”

시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도륙이 나버린 호문쿨루스의 시체를 보았다.

시우처럼 막무가내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깔끔하고 정제된 마법으로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효율을 내어 사냥한다.

이렇게 깔끔한 처리를 했으면서도 샤론의 표정에는 뻐기거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한 태연함 뒤에는 어딘가 못마땅한 기색이 엿보인다.

“미안, 좀 더 사냥법이라던가 알려주고 싶었는데.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뭐가?”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샤론은 공중에 떠 있던 물을 깔끔하게 역소환시키고는 턱을 매만졌다.

2.

처음으로 이면결계가 걷힐 때의 광경을 보았는데 무척 신기했다.

샤론의 일격이 잘라낸 것은 아스팔트 노면과 호문쿨루스 뿐만이 아니었다.

그 방향에 서 있던 주차타워와 가로등도 날카롭게 잘려나가 있었다.

너무 깔끔한 절단면으로 잘린 탓에 무너지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블록을 잘못 뽑은 젠가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리긴 했지만...

아무튼 난장판이 됐던 번화가의 한구석이 결계가 걷혀가며 되감기하듯 원래대로 수복되는 모습은 경외감마저 주었다.

그 위대하다는 케테르 공작이 보급한 마법답다고 해야 하나.

호문쿨루스의 사체를 뒤적여 결정을 회수한 샤론과 시우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인근 호프집으로 향했다.

“.........”

시원한 생맥주 두 잔과 치킨을 시킨 시우.

먼저 나온 맥주를 들고 치킨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이 샤론은 진중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뭐가 그렇게 큰 문제야?”

야식을 제공해준다고 했을 때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뻐하던 샤론의 모습은 없었다.

복잡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시우가 조심스레 묻는다.

“어? 아, 미안. 앞에 앉혀두고 멍하니 있었네.”

“그건 괜찮아.”

“너가 산에서 본 호문쿨루스도 아까 봤던 녀석들과 똑같이 생겼다고 했지?”

“어, 그게 이상한 거야?”

샤론은 호쾌하게 생맥주를 절반 정도 들이켜고는 테이블을 톡톡 톡톡 두드렸다.

“원래 호문쿨루스는 개체마다 외형이 달라. 그런데 난 저렇게 생긴 녀석들을 지금까지 6마리나 잡아 왔어. 오늘 사냥한 거랑 네가 잡은 것까지 포함하면 10마리가 넘는 같은 개체가 존재한다는 말이잖아?”

“그게 문제가 돼?”

이제 막 호문쿨루스 사냥에 입문한 시우에게는 그다지 체감되는 것이 없는 의문이다.

같은 형태의 호문쿨루스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특이한 일인가?

“아니, 지금 당장은 뭔가 이상하다고밖에는 말을 못 하겠어. 내가 과민한 거일 수도 있고... 내일 위치포인트에 가서 정보공유 정도는 해봐야겠네.”

위치포인트라....

어떤 곳일지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직접 가보기에는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추방자들이 득실득실할 장소에 굳이 먼저 발을 들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후라이드, 양념, 소이갈릭 콤보 나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치킨이 나왔다.

아까까지 더없이 신중하게 안건을 곱씹던 샤론은 고소한 튀김옷 냄새에 눈을 번쩍 떴다.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치킨을 바라본다.

만약 시우가 샤론의 남자친구였다면 치킨에게 질투를 느낄 정도로 뜨거운 시선이었다.

시우는 닭다리 하나를 집어 샤론의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미리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은 이거나 맛있게 먹자.”

“응응!”

막 튀겨 나온 거라 제법 뜨거울 텐데 전혀 개의치 않고 한입 가득 닭다리를 베어 물었다.

시우는 그런 샤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호문쿨루스를 가볍게 학살하던 모습과는 도저히 매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 와... 와...! 이게 치킨이구나... 내가 편의점에서 먹던 것들은 치킨이 아니었어...!”

지금까지 폐기로 남은 닭다리나 주워 먹던 샤론에게 진정한 코리안 치킨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솔직히 편의점에서 피스로 파는 치킨은 튀김옷도 바삭거리지 않고 닭 누린내도 심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먹는 치킨은 어쩜 이리 맥주랑 찰떡궁합인지 한국인들이 치맥 치맥 하면서 단체로 눈이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맛의 혁신!

육즙이 한껏 흘러나오는 닭다리는 맛의 황금을 안겨다 주는 엘도라도요, 머리가 찡할 정도로 차가운 맥주는 지친 영혼을 위한 주유소였다.

“천천히 먹어.”

“고마워...! 이렇게 맛있는 거 사줘서 고마워!”

은근슬쩍 닭다리를 죄다 모아 앞 접시에 덜어주는 시우와 감탄사를 연호하며 치킨을 우물우물 먹는 샤론.

이 순간만큼은 기이한 호문쿨루스도 막대한 빚도 뒷전이었다.

시우는 샤론을 위해 두 마리나 더 치킨을 시켜주었고 두 사람은 새벽 늦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처럼의 행복 탓일까?

샤론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상상도 못 했던 비극이, 내일의 그녀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 세계는 약자에게 한없이 비정하고 냉혹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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