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1.
샤론과 시우는 함께 밤거리를 거닐었다.
그녀의 옥탑방에 들러 한 보따리의 전단지를 챙겨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각자 한 손에 한 뭉치씩 사이좋게 전단지 뭉치를 들고 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여기가 좋겠다.”
꼼꼼이 잘붙인다고 소문이 났다는 샤론의 말은 거짓이 아닌지 그녀는 어느곳하나 허투루 붙이지 않고 꼼꼼하게 장소를 물색했다.
사실 시우가 이렇게 샤론을 돕기 위해 나선 건 단순히 사과를 위함이 아니었다.
물론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어느 정도는 그녀를 돕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샤론의 존재는 시우에게도 꼭 필요하다.
우선 호문쿨루스의 사냥.
호문쿨루스는 인간에게 명확하게 해를 끼친다.
그냥 해를 끼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을 사냥해 잡아먹거나 재해를 일으킨다.
시우는 자신을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이나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무고한 생명이 죽어 나가고 그것을 구해낼 힘이 있다면 적어도 할 수 있는 일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샤론의 말대로 호문쿨루스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마녀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생긴다.
샤론의 경우 제머나이의 반지를 보고 순순히 넘어가 주었지만 모든 마녀가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
즉, 샤론을 옆에 두고 함께 사냥하는 편이 안전을 보장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식 마녀인 그녀에게 마법 연구의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시우는 전반적인 마법지식에 해박한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만 치우친 극단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다.
마법 연구란 발상의 전환과 영감도 필요하지만 기초적인 마법 지식도 필수적이다.
블록을 어떤 형태로 쌓을지 고민하기 전에 블록을 준비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이 잘려나가 변변한 인연조차 맺을 수 없는 시우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다.
길지 않은 기간 현세를 살아가며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웠는가?
시간이 지나도 그를 잊지 않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위안이 됐다.
물론 이런 계산적인 속내를 전부 내려놓고서라도 샤론을 도와주고 싶은 것이지만.
“...음, 나를 따라다니면서 호문쿨루스를 같이 사냥하고 싶다는 거지? 겸사겸사 마법도 배우고?”
“맞아, 막힌 부분이 나왔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더라고.”
“흐음....”
샤론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글쎄... 네가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알겠지만 호문쿨루스 사냥은 장난이 아니야.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 안일한 마음가짐은 곤란해.”
“한번 기회라도 주면 안 될까?”
“내가 괜히 기회줬다가 너가 덜컥 죽어버리면 좀 찝찝할 것 같은데. 눈 3개짜리까지 잡은 경험이 있댔지?”
“어.”
샤론은 다시 흐음하고 입가를 매만지며 골똘히 고민에 잠겼다.
만약 그녀가 적당히 시우를 이용해 먹을 생각이었더라면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좋아, 나랑 같이 탐색과 사냥을 하자. 대신 내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바로 뒤로 빠진다는 게 조건이야.”
“알았어.”
“그리고 네 마법을 도와주는 대신 결정에서 나오는 수익은 내가 전부 가져갈게.”
“좋아.”
시우라고 무리하게 호문쿨루스를 토벌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괜히 샤론의 상환에 누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니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조건이었다.
“고마워.”
“고맙긴 뭘, 서로 윈윈이잖아?”
아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럴듯한 계약 관계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샤론에게 딱히 득이 될 게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혼자서 호문쿨루스를 잘 사냥해왔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초심자인 시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임에도 그녀는 그의 실력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거기에 사냥시 획득한 돈을 샤론이 가져간다는 조건은 마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것.
샤론으로서는 시간을 뺏기면 뺏겼지 결코 득이 될 요소가 없는 것이다.
계약을 빙자해 현세에 적응하지 못한 시우를 돕기 위한 상냥한 배려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시우도 나름의 감사 표현을 하기로 했다.
“나도 조건을 걸게. 받기만 하는 건 뭐하니까.”
“됐어, 무슨.”
“매일 탐색이 끝나고 야식을 제공할게.”
“야, 야식?”
무심한 듯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던 샤론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
놀란 고양이처럼 동그랗게 변한 그녀의 눈동자가 주홍색 조명 아래서 반짝반짝 빛난다.
“원래 자주 먹거든. 한 사람 더 있다고 해서 부담될 것도 아니고. 밥도 혼자만 먹으면 심심하니까.”
“무, 무슨 야식....?”
“그때그때 먹고 싶은거. 어제처럼 게를 먹어도 좋고, 생맥주에 치킨도 좋고. 어차피 이 근처는 밤늦게까지 하는 가게 많잖아.”
“게... 생맥주... 치킨...”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을 반쯤 벌린 샤론의 입술 사이로 침이 주륵 흘러나온다.
좋아하는 게 한눈에 보여서 시우도 뿌듯했다.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른 조건인데 성공적이었나 보다.
샤론은 주륵 흐른 침을 황급히 소매로 닦고 뒤늦게 체면을 차렸다.
“뭐! 그렇게까지 말해주면 거절하는 것도 도리는 아닐까 싶네. 그렇지?”
“맞아, 속상할 것 같아.”
“빨리 마저 붙이자!”
“그래 그래.”
샤론은 거의 팔짝팔짝 뛰어다닌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신을 내며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다.
그렇게 몇 골목이나 돌았을까?
샤론은 전단지를 붙이던 내내 몇 번이나 목에 걸린 시계를 꺼내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왜 시간을 그렇게 봐? 약속이라도 있어?”
“시간?”
시우의 질문에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묻던 샤론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내가 아직 설명을 안했었구나. 이게 내가 호문쿨루스를 탐지하는 아티펙트야.”
목걸이를 풀려는 듯이 목줄을 꼼지락거리는 샤론.
두 팔이 목 뒤로 넘어가면서 바람막이 뒤로도 풍성한 볼륨을 드러내는 가슴이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과장 좀 보태어 한 줌이 될 것 같은 허리에 저런 가슴이라니...
저도 모르게 눈이 가는 것이 남자의 본능인 걸 어쩌겠는가?
시우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리자 샤론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바닥 위에 계속 확인하던 물건을 올려놓았다.
시우는 물끄러미 샤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회중시계라고 생각했던 물건은 시우의 예상과는 달랐다.
시침, 초침, 분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침반처럼 한쪽 끝이 빨갛게 칠해진 바늘이 있었다.
“호문쿨루스는 죄다 이면결계를 몸에 두르고 다니잖아. 이 나침반은 그때 발생하는 공간의 미세한 왜곡을 감지해. 반경 150M 안에 있는 이상징후를 미리 발견할 수 있어.”
“좀 자세히 봐도 될까?”
“얼마든지. 근데 조심해 줘. 인천항 접선소에서 1259만 7800원이나 주고 산 비싼 거야.”
“알았어.”
시우는 조심스레 그녀에게서 나침판을 건네받았다.
그렇게 크지 않아 딱 손목시계라의 크기이다.
유리 덮개로 덮여 있는 공간 아래는 회전판이 방위를 표시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자침이 느릿하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재질은 아마도 은.
뒤를 보자 제머나이 가문의 상징인 흑백의 새가 음각되어 있었다.
예상대로 이것도 쌍둥이네 물건인 모양이다.
“신기하네.”
“그치? 근데 너는 어떻게 호문쿨루스를 찾았어? 탐색기도 없었잖아.”
“나는 그냥 눈으로 보고 찾았지.”
“뭐?”
샤론은 깜짝 놀란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마법을 사용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놀라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는 왼쪽 눈에 낙인이 있어.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의 흐름이 보이거든, 이면결계 밖에서 봐도 호문쿨루스가 일그러진 그림자처럼 보이고.”
“.........”
그래도 앞으로 동업관계가 될 예정이니 영업비밀을 슬쩍 알려주었다.
그런데 샤론은 입을 떡 벌리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아, 아니... 널 10년만 일찍 만났어도... 1259만 7800원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졌어...”
“1000만원을 넘게 냈는데 7800원까지 다 받아?”
“나쁜 놈들이 잔돈 없다고 거스름돈도 안 줬어.”
“어차피 10년 전에 만났으면 난 평범한 학생이었을걸?”
“응, 그것도 방금 깨달아서 마음이 덜 아파지던 참이야.”
실없는 대화.
시우의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
이게 뭐라고 그렇게 즐거운지 시우는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동안 사람이 그립긴 했구나 싶었다.
“야.”
그때 불쑥 샤론의 얼굴이 앞에 들이밀어졌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데도 얼굴이 시야를 꽉 채우지 않는다.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눈망울이 커다랗게 끔뻑거렸다.
전혀 뜬금없긴 하지만 키스라도 하려나 싶었다.
“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샤론의 태도에 당황한 나머지 존댓말을 하고만 시우.
그런 시우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샤론은 그의 안대를 톡톡 건드렸다.
“나 눈 한 번만 자세히 봐도 돼?”
“그 정도야 뭐....”
누구 보여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그런 부탁이라면 어렵지 않다.
시우는 안대를 슬쩍 치웠다.
검은 오른쪽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금빛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시우도 한번 거울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는데 새롭게 얻게 된 그의 눈은 꽤 독특한 생김새다.
유리체와 동공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
그러나 동공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금빛의 프렉탈이 마치 가지처럼 홍채를 대신하고 있다.
마녀의 하복부에 새겨져 육안으로 뚜렷하게 위계를 확인할 수 있던 정식 낙인과는 달리, 세는 것도 구분하기도 모호한 특이한 형태의 낙인이다.
“오....”
샤론은 거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달라붙어 빤히 시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신기한지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눈을 끔뻑이는 샤론.
그녀의 눈동자에 조금 당황한 듯한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신기하네 진짜. 이런 형태의 낙인은 처음 봐.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지?”
사실 시우는 샤론의 마법적 탐구심이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샤론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 듯하지만 시우로선 두 사람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웠으니 말이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으니 숨을 쉬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체취가 풍겨온다.
마녀들이 신기한 점이 있다면 저마다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허름한 옥탑방에서 사는 샤론도 예외는 없었다.
이걸 무슨 향기라고 해야 하나....
상큼한 귤 향에 벤조인 계열의 달짝지근한 바닐라 향이 섞여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계속계속 맡고 싶을 정도로 좋은 향이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왜? 불편해?”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됐지?”
“응, 볼 만큼 본 것 같아.”
그녀의 정수리와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체취를 몇 초 정도 맡고 있자 불끈하고 발기가 시작된 것이다.
특별히 어마어마한 성욕을 느낀 것 같지도 않은데 이미 팬티 안에서 잔뜩 화가 나 있다.
청바지를 입고 온 게 아니었더라면 조금 곤혹스러웠을 것 같다.
“아무튼 보여줘서 고마워. 나머지 붙이러 가자.”
“아, 어.”
시우는 안대를 고쳐 쓰고 샤론의 나침반을 돌려주려다 멈칫했다.
“왜?”
“아니, 자침이 한 쪽을 가리키고 있어.”
조금 전까지 북극점에라도 온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던 자침이 정확하게 어느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샤론이 팔을 한번 휘젓자 그녀의 몸이 변신하는 마법소녀 같이 잠깐 빛났다.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샤론은 어느새 완벽한 마녀 정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꼬깔모자, 완드, 로브, 밑단이 짧은 드레스, 폼포니처럼 겹겹의 프릴로 장식된 속치마에 라이딩부츠까지.
그 잠깐 사이에 변신을 끝낸다.
마법소녀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마법소녀 그 자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잘됐네. 선배로서 호문쿨루스 사냥이 뭔지 보여줄게.”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샤론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우와 함께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