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47화 (147/917)

#147

1.

평온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던 게헨나에서의 마지막 날을 샤론은 똑똑히 기억한다.

에버그린의 자성마법은 타르바의 5 원소를 기반으로 한 원소마법.

그날의 실험주제는 원소마법진을 이용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낙인의 성장을 촉진하는 마법식이었다.

선대로부터 불완전하게 낙인을 물려받은 샤론이 그녀의 스승과 같이 20 위계로 당당히 올라서기 위한 마지막 작업이기도 했다.

“후우....좋아.”

며칠 동안 소금과 정화수를 뿌려 단단하게 다져진 땅.

대기 중에 마력이 가장 충만해지는 자정까지 5분 전.

그리고 몇 개월 동안 정성을 들여 모은 제물까지 완벽했다.

샤론은 긴장된 표정으로 완드를 꼭 끌어안은 채 자신이 설치한 마법진을 내려보았다.

동서남북에 모서리를 뻗은 마름모 형태의 마법진은 그동안 샤론의 피와 침을 섞어 그려낸 것이다.

마법진의 각 꼭짓점에는 제물을 올려놓는 ‘제단’이 원의 형태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계산과 수식의 학문이지만 동시에 상징과 의식의 학문이기도 하다.

특히 전통적인 만큼 고리타분한 뒷말을 들을 정도로 의식을 중요시하는 에버그린의 원소마법의 경우에는 제물의 중요도가 매우 높았다.

아무리 세세하게 마법식을 계산해 놓았다 한들 어떤 제물을 바치느냐에 따라 구현되는 신비가 다르니 말이다.

따라서 샤론은 제단 위에 올라간 제물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언뜻 보기에 아무렇게나 놓은 것 같은 제물도 전부 최적의 위치에 최적의 상징성을 내포하도록 위치해 놓은 것이다.

“좋아, 볼까?”

마름모의 동쪽 제단에 올라갈 원소는 아파스(水).

의식의 질서와 운행을 담당한다.

비싼 돈을 주고 붉은 지붕 살롱에서 구한 남옥(藍玉)과 질이 좋고 깨끗한 산호(珊瑚)를 제물로 올렸다.

마름모의 서쪽 제단에 올라갈 원소는 테자스(火).

의식의 연결과 전달을 담당한다.

숯과 유황을 섞어 만든 흑색화약과 불의 돌이라고도 불리는 토파즈를 제물로 올렸다.

마름모의 남쪽 제단에 올라갈 원소는 프리티비(土).

의식의 균형과 토대를 담당한다.

밀 이삭이 섞인 한 줌의 흙과 쌀알처럼 작은 비취를 섞어 제물로 올렸다.

마름모의 북쪽 제단에 올라갈 원소는 바유(風).

의식의 변화와 발현을 담당한다.

아직 짝짓기의 경험이 없는 암말의 하얀 갈기와 달빛 아래서 오랫동안 바람을 쐰 크리스탈 스톤을 제물로 올렸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샤론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이 이상의 완벽한 마법진은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괜찮아, 침착하자... 할 수 있어.”

시계는 어느덧 자정에서 2분 남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의식은 정확히 12시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냉정한 이성은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대에게 물려받은 낙인을 완벽하게 발현하지 못했다는 건 샤론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수치다.

그 오점을 닦아내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위험부담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마름모의 정중앙 제단에 올라갈 원소는 아카샤(空).

모든 의식이 발현될 공간이다.

샤론은 그 한가운데로 발을 들였다.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종국에는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샤론은 신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마저 고요한 밤하늘 아래.

처음으로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를 기도를 올린다.

“이것만 끝나면... 나도....”

미숙아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아도 된다.

불량품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필요도 없다.

완벽하게 낙인을 계승한 완전한 마녀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되었다.

샤론이 품고 있는 완드에 박힌 에메랄드가 찬연하게 빛났다.

샤론은 지금껏 몇 번이고 외쳤던 영창을 입에 올린다.

“균형이여!”

그리고...

무엇이 실수였을까?

제물의 상태가 좋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조급한 마음에 마력의 운용에 실수가 있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부족한 실력에 비해 너무 좋은 제물을 준비하는 바람에 통제하지 못했던 걸까?

결과는 참담했다.

마법진을 중심으로 구름버섯 빌리지에 뻗어 나간 의식의 파장은 샤론이 아닌 인근 도토리들의 성장을 대폭 증가시켰다.

수천 개의 도토리가 일제히 싹을 트고 거목이 되어 저택을 부수는 광경을 끝으로 샤론은 정신을 잃었다.

2.

마녀들은 대체로 부유하다.

낙인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산의 상속이 이뤄지는데 세상의 많은 것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다.

샤론 역시 선대 에버그린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120년 전 선대가 사두었던 파리의 근교 포도밭이 도심지로 개발되면서 어마어마한 차익을 남겼으니 말이다.

따라서 샤론은 사고 다음 날에도 그다지 커다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집을 부쉈다면 물어주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보다는 여전히 낙인을 완벽하게 물려받지 못했다는 자괴감만이 가슴을 쿡쿡 쑤셨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샤론의 실험 실패가 그저 저택만 부쉈던 것으로 그쳤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버섯구름 빌리지는 보더 타운의 마녀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고 무분별하게 자라난 상수리나무는 주택뿐 아니라 마녀의 공방을 여럿 부숴버렸다.

그간의 연구 성과가 담긴 엘릭서가 산산이 깨진 마녀도 있었고, 정성껏 그려가던 마법진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변한 마녀도 있었다.

마법 연구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 마녀 17명은 샤론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물려받은 유산을 처분하고 필사적으로 돈을 마련했음에도 샤론은 모든 피해보상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빈털터리가 된 샤론에게 남은 것은 중앙 시청에서 날아온 약 금화 9만 장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 보상청구서.

처음 문서 위에 적힌 숫자를 봤을 때,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액수였다.

샤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게헨나에서 도망쳐 현세로 야반도주하거나, 돈을 빌려 손해배상을 끝낸 이후 빚을 갚아가거나.

결국 샤론은 여러 귀족을 찾아가 고개를 조아리며 빚문서를 작성했다.

레바나 대욕장의 소유주인 예소드 백작, 진리진명 학술회의 학회장인 에렐림 공작, 마지막으로 부유하기로 유명한 제머나이 백작에게 시민권과 낙인을 담보로 총 90213장의 금화를 빌렸다.

이 액수를 게헨나 내부에서 갚을 방법은 도저히 없었기에 샤론은 임시 추방 명령을 받아들이고 현세로 향했다.

이게 무려 10년 전의 이야기.

“일룬 머스크 이 배신자 새끼야!”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편의점 계산대.

샤론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누군가의 행보로 인해 떡락한 코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분이 치솟았다.

“이걸로 차도 살 수 있다며..... 화성 갈 거라며....꿈의 화폐라며....”

그렇게 말한 주제에 하루아침에 말을 뒤엎고 팔아치워 대폭락을 일으키다니!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이 자식이 정말 사람 새끼인가 싶었다.

샤론은 주먹을 꽉 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눈물이 글썽거린다.

물론 샤론도 바보는 아닌지라 가상화폐에 많은 돈을 쏟아 넣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알음알음 모은 알바비를 꽂았기에 투자 원금은 약 500만 원 정도.

한 푼 한 푼 희망을 모아 넣어두었던 돈이 출근하고 휴대폰을 보는 사이 350만 원이 됐다.

게다가 이 추세로 보면 더 내려갈 것은 뻔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email protected]가 증발해버린 것이다.

“아... 두통....”

샤론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지금이라도 손절매를 해야 할까? 아니면 존버타며 반등을 노려야 할까.

이번에 딱 700만 원만 찍고 팔아치울 예정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내 닭강정... 떡볶이... 김밥... 순대... 돌려줘....”

그날 즐길 예정이던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흐릿해지며 하늘로 사라지는 환상이 보였다.

손님이 없는 계산대에서 한숨을 푹푹 쉬던 샤론은 슬슬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것을 확인하고 문득 떠올렸다.

“오늘은 담배 사러 안 오네...”

바로 시우에 관한 생각이었다.

그녀의 근무시간은 저녁 6시부터 자정 0시.

생활루틴이 겹치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이에는 꼭 왔는데 말이다.

사실 정식으로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어제가 처음이지만 샤론은 전부터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잘생긴 얼굴은 둘째치고 매일 가죽 안대를 차고 담배와 콜라를 사러 오는 인상적인 손님이 어떻게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있겠어.

어제 대화한 결과 샤론 못지않게 기구한 팔자의 사나이였다.

남자가 마녀가 된 것도 신기한데 호문쿨루스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마법의 정통한 것도 신기하다.

거기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호문쿨루스를 사냥하려는 점도 가산점이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킹크랩도 사줬고 좋은 사람이겠거니~ 하고 있다.

다만 마지막 헤어질 때 말했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던 말.

그건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

비록 지금은 빚쟁이 마녀에 불과하지만 샤론에게는 마녀로서 어엿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다.

무슨 불우이웃 돕기 하듯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을 이유는 없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근데 뭐 특별히 악의로 한 말도 아니고, 사과도 곧장 했으니 마음에 남겨두지 않았는데.

정작 본인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수룩해 보이기도 하고 심성도 착해 보여 이것저것 알려주려 했던 샤론으로서는 조금 머쓱했다.

“어제 반응이 너무 까칠했나?”

다음 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편의점 앞을 나오자 근처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익숙한 인상이 보였다.

샤론 씩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간다.

“여기서 뭐 해?”

툭하고 어깨를 치며 말을 걸자 깜짝 놀라는 시우.

첫 만남보다 어색해하는 것을 보니 분명 어제 일을 마음 쓰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샤론 씨.”

“편하게 불러 샤론이라고 말도 편하게 하고.”

“어....”

“비슷한 처지끼리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자고. 같이 마도의 길을 걷는 동업자에 비슷한 처지잖아?”

“그건 좀 제가 불편해서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꼭 확인시켜주고 싶으니까?”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은근슬쩍 장난을 쳤을 뿐인데도 쩔쩔매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게 아니면 말 편하게 해.”

“...알겠어.”

말을 하고서도 좀 불편한 것인지 머리를 긁적이는 시우를 보며 샤론은 피식 웃었다.

숫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좀 순둥순둥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성격, 싫어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어제 했던 경솔한 발언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어서.”

“에이, 괜찮다고 했잖아.”

“그래도,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던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어어어, 이러지 마.”

장난스러운 샤론의 반응에도 웃음기 없이 꾸벅 허리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에 도리어 샤론이 좀 당황했다.

애초에 응어리가 졌던 부분도 없던지라 황급히 시우를 일으켰다.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오늘 전단지 붙이는 거 같이 해도 괜찮을까? 호문쿨루스도 탐색할 겸.”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시우를 보며 샤론은 방긋 미소짓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