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46화 (146/917)

#146

1.

1인용 앉은뱅이책상은 킹크랩 두 마리를 펼쳐놓는 것만으로 꽉 차버렸다.

살을 파먹기 쉽게 가위질이 들어간 껍질과 등딱지 한가득 담겨있는 볶음밥에서 피어오르는 고소한 게의 향기는 좁디좁은 옥탑방을 가득 채우기 충분했다.

“마, 맛, 맛있어...!”

“전 한 마리만 먹으면 되니까 천천히 드세요.”

“움움!”

샤론은 한 손에 포크, 한 손에 게다리를 잡고 열심히 내용물을 긁어먹기 시작했다.

본인은 나름 점잖은 모양새를 유지하려는 듯하지만 그야말로 허겁지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속도와 박자였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게야...”

입가에 게 부스러기를 잔뜩 묻히고 있음에도 전혀 미워 보이지 않는다.

샤론이 먹는 품새가 꼭 시우가 처음 게헨나에서 돌아와 치킨을 먹을 때의 모습 같아서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빵빵해진 볼 위로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우물거리는 입술까지 귀여워 보였다.

“평소에는 뭐 드시는데요?”

“나? 보통 폐기 먹지.”

“아...”

시우는 조금 놀랐다.

마녀 중에 수면을 불필요한 일이라 여겨 전혀 잠을 자지 않는 마녀는 많다.

그러나 시우가 아는 한 삼시 세끼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마녀는 못 봤다.

식도락이 인생의 큰 기쁨이라는 것은 별도의 영양섭취가 불필요한 마녀라 한들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폐기 도시락이나 근근이 먹는 마녀라니...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집에 냉장고가 없었다.

얼마나 눈물겨운 생활을 하고 있던 걸까?

“일주일에 한 번 특식의 날을 정해두긴 했는데 그것도 종종 걸러.”

먹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주알고주알 묻지도 않은 것까지 털어놓는 샤론.

한 달에 20만 원도 안 나올 식비까지 모조리 빚을 갚는데 투자하고 있는 모양이다.

“역사 앞에 닭강정 파는데 엄청 맛있다? 다음에 답례로 사줄게.”

인근 온갖 맛집을 탐방해온 시우도 먹어본 적 있었다.

소자가 3000원, 중자가 6000원, 대자가 10000원하는 티비에도 나온 유명 닭강정 집이란다.

일주일에 한 번 한다는 특식이 만 원 이내...

지독한 짠내를 느낀 시우는 슬그머니 손에 들고 있던 게다리를 내려놓았다.

많이 먹여주자.

그러던 중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아까 처음 옥상에서 만났을 때 샤론이 흘러가듯이 말하던 것 말이다.

“그나저나 호문쿨루스를 잡아서 돈을 버시는 건가요?”

“아, 응.”

“어떻게요? 아까 위치포인트니 뭐니 하셨는데.”

솔직히 시우로서는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호문쿨루스가 유산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샤론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호문쿨루스의 시체를 뒤적여 결정을 챙겼다.

시우가 보기에는 유리구슬이나 다름이 없었던 그 결정을 말이다.

“아, 넌 아무것도 모른댔지?”

“네.”

샤론은 먹고 있던 게를 잠시 내려놓고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호문쿨루스를 사냥해서 돈을 버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이미 알고 있겠지? 창조의 마녀의 유산을 획득해서 파는 거. 이게 떼돈을 벌 수 있는 지름길이지 나도 이걸 노리고 있고.”

“다음은요?”

“위치포인트에 호문쿨루스의 결정을 넘겨주면 돼.”

샤론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결정을 꺼내 시우에게 보여주었다.

“보통 호문쿨루스의 결정은 호문쿨루스가 생전 보유했던 마력에 비례해. 여기가 그 괴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핵이거든.”

“사리 같은 건가요?”

“비슷하지. 아무튼 광화문에 있는 위치포인트 지부에서는 무게를 재서 0.1g당 만 원으로 쳐줘. 이 정도 크기면 대략 130만 원 정도 되겠네.”

“결정 자체에 마법적인 효과가 있는 건가요?”

시우가 봤을 때는 재질을 알 수 없는 평범한 구슬에 불과했다.

딱히 예쁘지도 않았고 마력을 저장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있긴 한데 거의 쓸모없지. 더 싸고 구하기 쉽고 좋은 대체재가 많거든. 유리라던가, 석영이라던가, 크리스탈이라던가.”

샤론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 쓸모없는 작은 구슬을 130만 원이라는 값에 사주는 걸까?

“이걸 설명하려면 좀 긴데... 이거만 먹고 해도 될까? 식기 전에 먹고 싶어서...”

“아, 넵. 맘껏 드세요. 혹시 술도 하시나요?”

“술? 좋지!”

겉보기에는 진짜 차갑고 도도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런웨이를 걷게 생겼는데 고작 술을 사준다는 말에 이렇게 좋아하다니.

애잔하다고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본인은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섣불리 동정하는 것도 뭐한 애매한 심정이다.

“네, 그럼 좋아하시는 술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앞에 편의점 다녀올게요.”

“나랑 같이 가자. 네가 사는 건데 어떻게 혼자 보내.”

“어차피 담배 피울 겸 나가는 거라서요.”

“아, 그럼 브랜드는 상관없고 흑맥주로 부탁할게.”

“네.”

따라나서려는 샤론을 다시 밥상에 앉힌 채 잠시 밖으로 나섰다.

맥주를 사서 돌아왔을 때 샤론은 벌써 새로운 게 한 마리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있었다.

시우도 앞에 앉아 먹는 시늉을 했다.

멀뚱히 앉아있다간 그녀가 부담을 느낄 테니 말이다.

결국 그 커다랗던 킹크랩이 고작 2시간 만에 동났다.

샤론은 행복 가득한 표정으로 방실방실 웃으며 몸을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무척 행복해 보여서 보는 사람까지 흐뭇해진다.

배고파하는 떠돌이 개에게 음식을 챙겨준 기분이랄까...

이런 생각은 샤론에게 실례니 입 밖으로는 절대 꺼내지 않을테지만 말이다.

“덕분에 잘 먹었어. 이렇게 비싼 거 원 없이 먹는 건 10년 만이네.”

“다행이네요.”

“너무 나 혼자 다 먹은 거 아니야?”

“아뇨, 전 원래 많이 먹는 사람이랑 밥 먹는 거 좋아해요. 저까지 배불러져서 기분이 좋거든요.”

혹시나 해서 사 온 푸딩까지 후식으로 먹으며 다시 대화를 재개했다.

엄밀히 말하면 현세살이에 잔뼈가 굵은 샤론의 강의시간 겸 Q&A 시간이었다.

“그럼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위치포인트라는 곳에서 호문쿨루스의 결정을 돈 주고 사는 이유요.”

“아, 거기였지? 우선 위치포인트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네.”

샤론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적어도 5년 이상은 된 모델인 것 같았다.

시우가 게헨나로 잡혀가기 전에도 무료로 뿌리던 폰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지도를 켜더니 광화문 인근 건물을 콕 짚었다.

“여기가 위치포인트. 티페레트 공작이 100년 전에 만든 호문쿨루스 및 공적 토벌의 전초기지, 그중에서도 서울 지부야. 추방자들이 모인 일종의 커뮤니티지.

날 보면 알겠지만 추방자라고 다 못돼 먹은 마녀는 아니야. 물론 그런 년도 하나 있긴 한데. 아무튼 간에 추방자들이 모여서 정보나 물건을 교환하기도 하는 곳.”

“티페레트 공작이요?”

조금 더 이어진 설명.

듣자하니 한 공적에게 견습마녀가 목숨을 잃은 이후 분노와 슬픔에 잠겼던 티페레트 공작이 세계 곳곳에 만든 기구라고 한다.

창설자 본인은 여전히 현세를 떠돌며 호문쿨루스와 공적을 잡아들이고 있고 말이다.

이건 추측인데 이름의 유래는 감시기지를 뜻하는 워치포인트(Watch Point)에서 한 글자만 슬쩍 바꾼 것으로 보였다.

“아하....”

아무튼 샤론의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호문쿨루스가 커다란 재앙인 것은 어디까지나 대응 방법이 없는 ‘인간’에 한해서지 ‘마녀’에겐 아니다.

사실 변변한 물건도 떨어뜨리지 않는 눈 하나의 호문쿨루스 정도야 잡아도 그만 내버려 둬도 그만이다.

그러나 티페레트 공작은 상실의 아픔을 직접 경험한 만큼 제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 솔선해서 기관을 만들었다.

“티페레트 공작 본인이 장려 차원에서 포상금을 내건 건가요?”

“반만 맞아. 처음엔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야.”

“네?”

“티페레트 공작이 현상금을 내건지 10년 만에 그녀의 전 재산이 동나버렸거든. 세계 각지에서 결정을 들고 찾아오는데 아무리 부자라도 허리가 휘청하지.”

그럼 지금도 지급되는 포상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현대에 이르러 귀족 마녀들과 각국 정·재계 인사들 간에는 핫라인이 존재하게 됐어. 그리고 인간이 어떤 수를 써도 대응할 수 없는 재액의 짐승은 높으신 인간들이 굉장히 꺼림칙해 하겠지?

그러니까 마녀들과 모종의 계약을 맺은 거야. 전 세계의 위치포인트에 국가 차원에서 지원금이 들어가도록.”

“제 세금이 그렇게도 쓰였군요....”

추방자들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호문쿨루스의 결정으로 용돈을 버니 좋고.

국가는 해결할 수 없는 골칫거리를 돈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좋고.

이렇듯 현세에서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던 두 집단이 기묘한 상생 관계를 이루고 있던 것이다.

“그럼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왜 하시는 건가요?”

“바보야, 10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해서 14억을 어떻게 벌었겠어.”

“그냥 계속 호문쿨루스만 사냥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말이었어요.”

한 마리에 130만 원이라면 최저시급 기준 대충 144시간이다.

“나도 마력을 계속 보충해줘야 하고, 또 호문쿨루스가 RPG몹들처럼 사냥터만 나가면 있는 게 아니니까. 나도 고정적인 수익은 있어야지.”

“그렇네요.”

그마저도 참 씁쓸한 이유였다.

“아무튼 오늘 정말 잘 먹었어. 어차피 너 사는 곳이랑 근무지랑 가까우니까 종종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보러 와. 너도 심심하다며.”

“네, 그럴게요.”

시간도 너무 늦었겠다.

슬슬 일어날 채비를 하는 시우.

샤론도 뒷정리를 대충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배웅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아냐, 나도 나가서 할 일 하려는 거야.”

그러면서 샤론이 장롱을 열어 꺼내 든 것은 두툼한 전단지 뭉치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에 잠깐 입을 다물었던 시우.

“그것까지 하시는 건가요?”

“어차피 마녀는 잠을 안 자도 되잖아? 이래 봬도 구석구석 꼼꼼히 붙인다고 소문나서 장당 100원이나 줘. 이게 또 짭짤하단 말이지”

스냅백을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은 샤론과 다시 밤거리를 나섰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보통 그 정도 빚이 생겼다면 낙담한 끝에 전부 포기하거나 타협할 법도 하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해 부당한 이윤을 취득하더라도 시우는 감히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샤론은 그런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법으로 꿋꿋이 돈을 모으는 것이다.

어쩐지 소녀 가장을 보는 듯한 가슴의 뭉클함이 전해져왔다.

“이렇게 전단지 붙이면서 호문쿨루스가 있는지 탐색하고 발견하면 사냥하고 하는 거지 뭐. 어차피 계속 찾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긍정적이시네요.”

“그런 말 많이 들어.”

샤론은 테이프를 뜯어 전다지를 벽에 붙이며 싱긋 웃었다.

실례라는 걸 알지만 시우는 저도 모르게 아까부터 생각하던 것을 말했다.

사실 아까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때부터 떠오르던 것이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냐, 내가 해야 할 일인걸.”

“아니, 전단지 말고 그... 빚 갚는 거요.”

“무슨 좋은 돈벌이라도 있어?”

샤론은 솔깃했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의 채비를 갖췄다.

뭐 돈벌 방법이야 찾아보면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목돈을 마련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만 시우에게는 제머나이 백작에게 감사의 보상으로 받은 평생 쓰지도 못할 만큼 막대한 돈이 있다.

어차피 노력해서 번 돈도 아닌데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녀를 도와주는 게 나쁜 일일까?

“아뇨, 제가 여윳돈이 넉넉하게 있는 편이어서요. 이자라도 대신 내드리는 식으로...”

그리고 그 말이 실책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포만감과 적당한 취기에 행복해하던 샤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으니 말이다.

그녀는 전단지 뭉치를 거칠게 끌어안으며 굉장히 기분 나쁘다는 눈빛을 보냈다.

꿈틀꿈틀 입술이 움직이긴 했지만 끝내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 반응에 시우는 아차 싶었다.

“죄송해요,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응, 굉장히, 정말로 기분 나빴어.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정말 죄송합니다.”

시우 입장에서는 순수한 호의와 친절이었어도 받는 사람으로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어쩌면 알량한 동정심이라고 느껴져 화나고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르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바르지 못한 형태로 섣부른 제안을 한 것은 명백한 시우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샤론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하는 시우에게 더 모진 말을 쏟아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대신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됐어, 다들 실수도 하는 거지. 난 가볼 테니까. 다음에 또 보자.”

친절이란 명목으로 무례를 저지른 시우를 쿨하게 용서한 샤론은 손을 흔들며 반대쪽 골목에 전단지를 붙이러 사라졌다.

“하아...”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조금 후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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