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43화 (143/917)

#143

1.

아무런 의미 없이 밤거리를 거닐던 산책에 목적이 생겼다.

다름 아닌 호문쿨루스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주제넘은, 위험한 행동이라는 자각은 있다.

수많은 마녀를 죽여온 호문쿨루스를 전부 시우의 손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확증도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수수방관하는 것보다 이게 좋잖아?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해봐야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는다.

“좋은 생각 하자, 좋은 생각.”

호문쿨루스는 일정 확률로 새로운 마법 지식을 드랍한다.

혼자서 벽을 뚫는 것에 한계가 생긴 시우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줄 수도 있다.

시우는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야밤에 산책하며 선글라스는 무슨 미친 짓이냐고 할지 모르는데 호문쿨루스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마력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눈을 드러내놓고 ‘나 왼쪽 눈에 낙인이 있소’라고 광고하고 다닐 수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착용하는 것이었다.

“더럽게 안 보이긴 하네.”

연예인들은 외출할 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는 걸까?

실없는 생각을 묵혀두고 발길이 닿는 대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사실 큰 수확은 없었다.

하루 두 시간 정도씩 구석구석 뒤져봤지만 기껏해야 알게 된 건 이 북적북적 사람 많은 동네에도 으슥한 곳은 얼마든지 있다는 새로운 사실 정도다.

원룸촌의 으슥한 골목길,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민공원, 방치된 채로 사용되지 않는 지하주차장과 주차타워.

대학가 앞 로터리에는 한참 동안 유치권 행사 중인 커다란 빌딩이 무려 세 채나 모여있고, 아예 점포들만 싹 빠져나가 철거만을 기다리는 상가 건물도 하나 있다.

“이거면 된 건가.”

시민 방범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촌을 거쳐 홍대까지 구석구석 뒤져보았지만 마땅히 이상 전조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인지 뭔지 참 찝찝한 심정이었다.

굳이 생판 모르는 남의 목숨을 위해 제 목숨 걸고 싸울 필요는 없어졌다는 점에는 안도.

잘못된 방식으로 수색하는 까닭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는 불편함.

그 두 가지가 뒤섞여서 참 찝찝하기 짝이 없다.

시우는 근처 벤치에 앉았다.

게헨나에서 콜라 안 먹으면 죽는 병이 생겼는지 하루에도 5L씩 물 대신 흡입 중이다.

땀으로 무거워진 셔츠의 옷깃을 퍼럭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눈앞에는 불야성 같은 현대의 풍경이 흐른다.

이제야 야근이 끝나 허겁지겁 막차에 오르는 직장인도 시험공부를 끝내고 도서관에서 근처 자취방으로 향하는 여대생들도 보였다.

“쌍둥이는 잘 지내려나?”

제머나이 백작의 제지로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헤어진 건 조금 아쉬웠다.

여기 온 지 대략 4개월이 흘러가니 앞으로 이걸 15번은 반복해야 쌍둥이를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영락없이 사나운 악동이었지만 제법 정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심성도 곱고, 무엇보다 톡톡 튀는 듯한 귀여움이 있으니까.

현세와 비교해도 그렇게 가까운 관계가 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쌍둥이가 정식으로 낙인을 승계받고 유희를 나오면 데려갈 맛집 리스트도 빼곡하게 작성해두었다.

둘이 좋아할 디저트 가게는 이 근처에 한가득 있으니 말이다.

조금 얄궂었다.

예전에는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이 모습을 그리던 자신이 지금은 그 풍경 속에 앉아 게헨나에서의 인연을 그리워하고 있다니.

“또....”

이것저것 떠올리자 생각나는 건 많았다.

현세로 돌아오기 직전 야한 몸과 적극적인 어필로 끈적이는 성교를 선사해주었던 예빈도 생각이나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참 좋은 여자였던 것 같다.

게헨나의 시민을 위해서 치료소를 차린다니.

어떤 마녀가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타카쇼도 은근히 보고 싶네.

적응력이 바퀴벌레 수준인 타카쇼라면 어디서 뭘 하든지 잘할 것이다.

시차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곳과 시간이 같다면 아마 지금쯤 마녀의 침소에서 희희낙락하고 있겠지.

다 마신 콜라 캔을 저 멀리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시우는 문득 억누르고 있던 한 사람의 기억과 마주한다.

아멜리아 메리골드.

다시 생각해도 참 골 빠개지게 하는 사람이다.

노예상에게 잡혀가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관리인을 맡게 되었을 때 다짜고짜 찾아와 밤시중을 들라 했다.

당황한 시우가 거절하자 온갖 진상을 피우며 사람을 들들 볶았지.

가장 가관인 것은 아카데미 남쪽 사슴 숲에서 사슴을 잡아 오라고 시켰던 일이다.

대놓고 마법을 쓸 수도 없고 도구라 해봤자 삽 한 자루.

결국 하루종일 유유히 도망치는 사슴의 뒤꽁무니만 쫓으며 이를 갈았었지.

지나가던 소피아가 사정을 듣고 사슴을 대신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멜리아에게 추가로 갈굼을 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 후 5년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아멜리아도 조금씩 변해갔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시우가 에아 사달멜리크에게 반죽음 상태가 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갔을 때였다.

그녀는 기억이 없는 시우를 마치 자신의 견습마녀라도 되는 양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함께 별을 보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수영도 하고.

굴피나무 숲속의 오두막에서 하루하루 행복한 추억을 남기며 함께 지냈다.

그리고 시우의 기억이 온전히 돌아온 순간.

그 추억들은 산산이 부서져 날카로운 파편이 되었다.

배신감 그리고 애증이라는 이름의 파편이었다.

시우가 가장 용서할 수 없던 것은 하나였다.

기억을 되찾아도 저를 용서해주실 수 없냐고 묻던 그녀의 가증스러움.

물론 알고는 있었다.

시우의 시간 감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왔으니 당연하다.

그토록 고고하고 까탈스럽게만 보였던 아멜리아가 실은 굉장히 서툰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시우를 가지고 놀 요량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감정에는 격차가 존재했다.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는 망설임에 쪽지를 남긴 채 일별을 고했다.

아마 지금쯤 읽었겠지.

그 쪽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그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싫은 건데.”

시우는 생각의 나래를 접었다.

괜히 아멜리아를 떠올리면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걸 보면 진짜 사람이 그립긴한가 보다.

-툭 툭 투툭

머리에 촉촉한 느낌이 들어 위를 올려보자 뺨에 빗물이 떨어졌다.

“아, 우산 안 가져왔는데.”

안 그래도 바람이 심상찮다 싶더니 소나기가 내리는 모양이다.

처음엔 두꺼운 물방울을 몇 개씩 뿌리던 잿빛의 하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울듯이 빗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감성 터지네.”

계산할 때, 주문할 때, 혼잣말 말고 누구랑 대화해 본 게 얼마나 지났는지.

조금은 외로운 것 같기도 하다.

다급하게 우산을 꺼내 드는 사람들도, 가게 처마 밑으로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자신이 갈 곳이 있겠지.

지금의 시우는 어중간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어정쩡함이 괜스레 불편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어?”

하늘을 바라보던 시우의 눈에 일그러짐이 들어왔다.

로터리 맞은편에 위치한 신촌 경의선 기차역.

그 옆에는 기차역과 연결되는 5층짜리 역사 건물이 있다.

나름 노른자 땅인 것 같은데도 공실률이 너무 많아 맨 위층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을 제외하고는 폐가처럼 변해버린 건물.

왠지 꼭 호문쿨루스가 잠복하고 있을 것 같아 여러 차례 들락날락거렸던 건물이었다.

그 역사의 외벽에 기어오르듯이 꿈틀거리는 검은 그림자가 옥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찾았다.

곧장 달리기 시작한다.

보는 눈이 많은 곳이기도 하니 마법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전력 질주로 역사로 향한다.

시위용으로 입구에 비치해 놓은 컨테이너 사이를 지나 비상계단을 통해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여기부터는 남의 눈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물도마뱀의 걸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거의 날듯이 옥상까지 튀어 올라간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반투명한 막 안으로 들어가자 열린 계단 창문으로 넘어오던 도시의 소음이 사라졌다.

여기부터 호문쿨루스가 자연 발생시키는 이면결계의 영역인 것이다.

“피어라.”

시우의 영창과 동시에 등허리부터 뻗어 나온 그림자의 갑주가 뱀처럼 몸을 감쌌다.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자연스럽다.

철그렁거리는 건틀렛으로 옥상 손잡이를 잡는다.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잠겨있는 것 같지만 문제 될 것 없다.

시우가 갑주의 힘을 조금만 빌린다면 이 정도 두께의 철문은 골판지처럼 찢으며 옥상으로 나가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과연 이 호문쿨루스가 시우가 잡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지다.

아무리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는 것이 싫어 자경단 역할을 자처했지만 죽음까지 각오했느냐 하면... 잘 모르겠다.

-철컥!

“여차하면 튀면 되지.”

그럼에도 시우는 잠긴 문을 비틀어 열었다.

잠금장치가 박살 나는 손맛과 함께 문이 열린다.

옥상의 구조는 뭐, 그렇게 특별해 보이는 건 없었다.

역사 전체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원이 보인다.

그 원은 옥상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호문쿨루스의 주변에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크릉...끄응..끄응...”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신음하며 몸을 연신 핥는 호문쿨루스는 굉장히 눈에 익었다.

저번 시민 공원의 산책로에서 봤던 그 괴수의 모습 그대로다.

커다란 사냥개처럼 생긴 외형.

워낙 검어 마치 끈적거리는 진흙을 빚어 만든듯한 피부의 질감까지 쏙 빼닮았다.

저건 저번에 확실하게 죽였었는데?

죽어서 결정만 남기고 사라지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호문쿨루스는 모두 제각기 형태가 다르다고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지식이었던 걸까?

시우는 당황하면서도 단단히 무구를 챙겼다.

전과 같이 전신 갑옷, 투구, 방패, 롱소드 조합이다.

지난번과 비슷한 상대라면 이쪽에서 먼저 도망쳐야 할 일은 없다.

침착하게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시우는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한참을 나아가도 호문쿨루스는 이쪽을 향해 덤벼들기는커녕 제 몸을 열심히 핥고 있을 뿐이다.

시우와 호문쿨루스의 거리가 5M 남짓으로 좁혀졌을 때, 시우는 비로소 보았다.

호문쿨루스의 옆구리가 쩍 갈라져 있다.

그 틈새로는 타르 같은 체액이 왈칵왈칵 흘러나오며 바닥을 끈적이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도 으르렁거리기나 할 뿐 얌전히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반쯤 죽어있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애잔한 마음 따위는 없다.

이게 함정은 아닌지만 조금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뒤에서 쨍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어디서 굴러먹던 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내 꺼야!”

굉장히 높고 신경질적인 여자의 목소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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