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42화 (142/917)

#142

1.

날 것의 역겨움이 속을 한차례 뒤흔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아저씨다.

시민공원에 우연히 만난 타인에 불과하다.

만약 이런 일이 아니었더라면 서로가 서로를 없는 체하며 각기 할 일을 하러 갈 그런 타인 말이다.

그러나 그 타인의 피로 주둥이를 벌겋게 물들인 호문쿨루스가 시우에게 이를 드러냈을 때.

시우는 강렬한 살의를 느꼈다.

자연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살기 위해 먹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다.

고도화된 문명에 의해 식탁과 도축 공간은 분리됐기에 오늘날 그 사실을 실감하는 현대인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눈 앞에 펼쳐진 비인륜적인 식사 광경은 시우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돌아왔다.

야트막한 동산 정도인 시민공원.

이 아저씨도 건강을 생각해서 여기에 왔을 것이다.

나가서 뱃살을 좀 빼라고 가족 중 하나가 등을 떠밀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쯤 너무 늦어지는 가장의 귀가에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이 과연 한 끼 식사로 끝나도 좋은 것인가?

“하압!”

시우의 손에서 벗어난 그림자의 창이 기합보다 빠르게 날아간다.

잔영은 마치 허공에 검은 선 하나를 붓으로 휘갈긴 것 같았다.

그에 대한 호문쿨루스의 반응은 기민했다.

민첩하게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해낸다.

거대한 동체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의 부드러움이었다.

그 일격으로 시우를 적대 대상이라고 확실히 인지한 것인지 뒷발로 땅을 차며 20M 남짓한 거리를 눈 깜빡할 사이에 좁혀온다.

-쾅!

“큭!”

격돌이 일었다.

시우는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버티다 뒤로 나뒹굴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그림자의 갑옷과 방패.

그건 일반적인 플레이트 갑옷과는 성능 자체가 다르다.

외부의 충격에 반응해 능동적으로 힘을 분산시키고 흘려낼뿐더러 마법해 한해 일부 무효화 효과까지 지니고 있다.

그런데 고작 몸통박치기에 부딪혔을 뿐인데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듯이 뒤로 붕 날아가다니.

시우는 새삼 상대가 호문쿨루스임을 자각했다.

겉보기에는 그냥저냥 큰 개라도 창조의 마녀가 만들어낸 전투병기인 것이다.

헐레벌떡 일어나 방패를 고쳐 들었다.

등골이 저릿하다.

만약 몸 전체를 받쳐주던 갑옷이 없었더라면 척추가 뒤로 꺾이지 않았을까?

“크르르르....”

한편 시우의 저항은 호문쿨루스에게도 의외였던 모양이다.

무방비한 사냥감을 덮치던 좀 전의 기세와는 달리 몸을 바짝 낮춘 채 으르렁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동안 권태와 타성에 젖어 살아온 까닭일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빠르게 울려대는 심장의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귓가에 울린다.

시우는 방패를 가슴께까지 들어 올려 목과 심장을 보호하는 한편 창의 형태를 바꿨다.

창의 유효한 공격 범위는 어디까지나 찌르기라는 ‘점’에 국한된다.

한편 저 괴수는 마치 고무공처럼 통통 튀어 다니며 빠른 속도로 공격해온다.

이럴 때는 공격면적이 보다 넓으며 ‘선’의 공격이 가능한 무기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최적의 형태가 바로 검이다.

1M 이상 길게 뻗은 긴 칼날.

손이 미끄러져 검날을 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크로스 가드.

시우는 서양 검술을 배워본 경험은커녕 진검을 쥐어본 경험도 없다.

하지만 그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그림자에는 중량이 없다.

날카롭게 벼려진 날로 상대를 찌르거나 벨 수만 있다면 그만이다.

그때.

웅크린 채 몸을 낮추던 호문쿨루스가 다시 공격을 개시한다.

땅을 내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점프를 통해 나무를 박차는 둥 Z축까지 자유롭게 이동하며 어둠 속에서 현란하게 움직였다.

역시 빠르다.

마치 중력을 무시하는 오토바이가 풀 스로틀을 당기며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것 같았다.

“후웁....!”

시우는 침착하게 그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바로 위에서 덮쳐드는 호문쿨루스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그저 휘두른 것이 아니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등의 잔재주가 없는 시우가 그런 짓을 했다간 도리어 팔이 부러지거나 어깨가 빠질 것이다.

따라서 마치 파워드 슈트를 입고 있는 것처럼 갑옷 자체에 마력을 주입해 경도와 완력을 높였다.

-쾅!

“깨갱!”

형편없이 뒤로 나뒹굴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시우.

반면에 주둥이를 들이밀었다가 방패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호문쿨루스는 복날의 개처럼 깨갱거리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바로 지금이 시우가 노리던 때이다.

아까 만들어두었던 롱소드를 힘차게 휘두른다.

-퍼석!

되는대로 휘둘러진 롱소드의 검날이 둔탁하게 괴수의 목을 파고들었다.

정말 기이한 감각이었다.

생김새대로인지 두꺼운 고무를 썰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칼자루로 전달되는 무게감 있는 진동은 불쾌함 그 자체이다.

“끄륵...끄르륵....!”

거품을 물고 죽어가는 호문쿨루스를 보며 시우는 한 차례 더 강하게 칼날을 짓눌렀다.

이미 절단면을 깊게 파고들었던 그림자의 검이다.

갑옷이 추가해주는 압력은 마치 공장의 절단기처럼 깊숙하게 호문쿨루스의 머리를 잘라냈다.

“후우....후우....”

머리가 잘린 뒤에도 생선처럼 한참이나 사지를 경련하다가 죽어버리는 호문쿨루스.

시우는 아직도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전신을 감싸던 무장을 해제했다.

죽였다.

이겼다.

“시발....”

털썩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손쉽게 죽일 수 있던 것도 아니다.

만약 시우의 방패치기가 빗나가서 무게와 속력에 짓눌렸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모른다.

탈력감에 온 몸이 젖은 듯 무거웠다.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하는 것만으로 힘이 쭉 빠지는데 하물며 생사를 건 사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면서 숨을 고른다.

아직은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제자리에 주저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자니 기이했던 호문쿨루스의 사체가 한겹 한겹 벗겨지며 이내 숯검댕이 같은 얼룩만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그 가운데 텅 비어있는 결정 같은 것이 보였다.

시우는 말없이 결정을 주워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노시스의 알과 무척 생김새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런 마력도, 마법적인 작용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이래서야 그냥 유리구슬이다.

“.........”

시우는 그걸 주머니에 대충 찔러놓고는 전망대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내장이 줄줄 끌려 나올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으니 아저씨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럼에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조치를 취하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비틀비틀 걸어간 시우가 도착한 전망대.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호문쿨루스에게 물어뜯기던 시체도, 하다못해 바닥을 검붉게 물들이던 혈흔이나 내장 쪼가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양 깔끔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대신 주홍색 조명만이 텅 빈 노면을 비추고 있을 뿐.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혹한 시체를 보지 않아도 됐으니 다행이라고 여기는 건 너무 쓰레기 같을까?

“하...하...”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공허한 웃음이었다.

2.

시우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찬물로 샤워를 했다.

한바탕 나뒹구는 통에 갑옷 안으로 파고들었던 흙과 모래로 더럽혀진 옷은 세탁 바구니에 넣어두었다.

“호문쿨루스....”

시우가 호문쿨루스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없었다.

창조의 마녀의 유산을 수호하는 가디언.

평소에는 결정 상태로 존재하다가 랜덤하게 깨어나면 이면결계에 둘러싸인 채로 세상을 배회한다는 것.

개체마다 사용하는 마법이 다른 탓에 무척 사냥이 까다로워 어지간한 마녀에게는 사냥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

이뿐이다.

시우가 읽었던 책에도 겨우 이 정도의 내용 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봤던 장면은 무엇일까?

호문쿨루스가 인간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게다가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 그 시체가 깔끔하게 증발해 있었다.

“하....”

시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제머나이 백작에 따르면 현세의 호문쿨루스들의 개체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 중이라고 한다.

시우는 낙인을 지니게 되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던 당부도 추가로 들었다.

그 호문쿨루스가 왜 마녀가 아닌 인간을 사냥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늘 시우가 우연히 마주한 장면이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기는 어려웠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한국 곳곳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여태껏 사람들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뻔하지.”

주어진 정보를 통한 추론은 생각보다 쉽게 결론을 도출해냈다.

시우도 일찍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호문쿨루스에게 잡아먹히면서 연이 잘려나가 이 세계에서 아예 없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추모받을 자격조차 상실한 채 한낱 짐승의 먹잇감이 되었다.

시우는 샤워기를 끄고 몸을 대충 닦고는 방으로 나왔다.

소파에 털썩 앉아 맥주캔을 땄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멀리서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 그다지 큰 충격은 없었다.

아니 사실 충격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머리가 멍해져서 질겅거리며 내장을 뜯던 호문쿨루스의 소리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시우는 문득 떠올렸다.

현세에 돌아와 백화점의 전광판에 매달려있던 거무틔틔한 형체.

재빨리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사라졌었지.

“그것도 호문쿨루스?”

아직 이 세상에는 몇이나 되는 호문쿨루스가 남아있는 걸까?

정말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죽어가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건 뭘까.

“...........”

예전이었다면 몰랐을 일이다.

알아도 별도리 없었을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시우에게는 호문쿨루스를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그것과 맞설 수 있는 힘도 있다.

마냥 방관자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남은 위험요소를 잡아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의 일이야.”

반대로 말하면 시우는 어지간한 호문쿨루스에게 당하지 않는다.

적당히 피할 수도 있고 저항할 힘도 있다.

적어도 ‘호문쿨루스를 사냥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가 지닌 불이익은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시우는 현세에서 은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들을 잡겠다고 설치는 동안 다른 마녀의 눈에 들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일이 꼬일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시우는 힐끗 검지에 끼우고 있는 반지를 보았다.

검고 희게 염색이 된 은이 비비 꼬여있는 형태이다.

제머나이의 손님임을 상징하는 반지.

어지간한 트러블을 이걸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관두자.”

시우는 젖은 머리를 털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눈을 좀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알량한 정의심에, 그것도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에, 그것도 우회할 길이 있는 시점에서 구태여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영웅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시우는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우는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누웠다.

“.........”

그냥 그 사람들은 자연재해에 휘말린 거라고 생각해야지.

그저 조금 운이 안 좋은 사람이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해야지.

물론 오늘 봤던 아저씨의 일은 매우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비겁한 변명이자 자기합리화겠지만 시우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3.

“에라이, 내가 미쳤지.”

결국 침대 밖으로 나온 시우는 욕설을 뇌까리며 아까 호문쿨루스를 잡았던 야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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