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41화 (141/917)

#141

1.

열대야라는 말을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열대+밤이라니 딱 봐도 이미지가 잡히지 않는가?

새벽 2시 하릴없이 손가락만 빨며 시간을 보내던 시우는 여느 때처럼 담배를 사고 집 앞을 나섰다.

별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산책이다.

노예 시절에야 힘이 들어서 못 했지 시우는 복잡한 머리를 비우거나 분위기 전환을 할 때 종종 밤거리를 나서곤 했다.

시우가 안대를 차고 있는 이상 육안만으로는 낙인의 여부를 확인할 순 없고 게헨나 내부에서도 시우가 마법을 쓸 줄 아는 걸 아는 사람은 몇 없으니 밖에서 소란만 떨지 않는다면 설령 우연히 추방자와 마주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이다.

한가한 나날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귀향 초기에 비하면 비교적 느슨한 마음가짐으로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시우의 오피스텔이 있는 번화가 쪽은 밤을 잊은 매미들이 화려한 조명 속에서 울어댔지만 번화가에서 살짝만 빠져나오면 나오는 으슥한 원룸촌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요새 신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봇대와 전깃줄 그리고 누리끼리한 나트륨등이 발밑을 비춰주었다.

“역시 덥네.”

작게 불평한 시우는 셔츠 깃을 펄럭거리며 가로등 밑 자판기를 찾았다.

산책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루틴이 중요하다.

다들 아는 사실처럼 서울은 땅값이 비싸다.

좁고 비싼 땅덩이를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 산을 깎아 만든 원룸촌, 그가파른 오르막길을 등반하다 보면 산의 정상 부분을 보존한 시민공원이 하나 있었다.

공원의 입구에 있는 허름한 자판기가 시우의 루틴 포인트이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음료수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오늘은 어디 쪽으로 산책 루트를 짤지 생각하는 것이다.

“콜라.”

시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콜라 한 캔을 뽑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조금 메말랐던 몸에 달고 상쾌한 탄산이 퍼지자 조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아, 더럽게 불편하네.”

비탈길을 오르며 어찌나 땀이 흘렀는지 안대와 피부가 맞닿는 곳에 눅눅하게 땀이 차 있다.

“에이 시발, 차라리 불알에 생기지. 마녀들은 자궁에 있는데 왜 나만...”

한쪽 눈을 가리고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꽤 불편한 일이다.

영체인 만큼 외안을 고집한다고 시력이 감퇴하거나 그러진 않겠지만 거리감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안대를 풀고 살자니 마법식이 새겨진 찬연한 금빛의 눈동자가 너무 어그로를 끈다는 것이 난관이었다.

일반인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상관없다 해도 나쁜 맘을 품은 추방자가 본다면... 뻔한 일이지.

그렇게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던 시우는 무엇인가 눈치챘다.

안대를 벗자마자 멀리 봤다면 조금 더 빨리 알 수 있었을까?

주변의 기류가 엉켜있다.

물에 둥둥 떠다니는 실타래처럼, 아니 좀 더 면밀한 솜처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위의 마력이 정체되어 있다.

마력은 본래 물리적 실체도 무엇도 없는 미지의 ‘흐름’이다.

그러나 외부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통상적인 환경에서 대기 중에 떠도는 마력은 흐르는 강처럼 유유히 떠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마치 컵 안에 담긴 서로 다른 온도의 액체가 대류하듯 일정한 반경 안에서 체류하고 있었다.

“.........”

시우는 주머니에 안대를 꽂아 넣고 곧장 일어나 담배꽁초를 튕겼다.

이미 너무 늦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오르골의 적용 범위와 강도를 최고로 높인다.

심장이 뛰었다.

시우는 이런 현상을 일직이 경험한 적이 있다.

에아 사달멜리크가 만들었던 물병 즉, ‘이면결계’.

하나의 세계를 오려내고, 그 위에 또 다른 세계를 덧그리는 결계식의 일종이다.

이미 케테르 공작에 의해 분리된 게헨나에서는 그저 마법의 기척을 줄여주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현세에서는 다르다.

이면결계로 분리된 공간은 또 하나의 세상이 되어 결계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현세와 유리되게 된다.

쉽게 말해 이면결계로 나눠진 A라는 공간이 B라는 복사된 공간으로 대체된다는 것.

이 이상 복잡한 걸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피어라.”

시우는 조용히 영창을 읊조렸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마력은 곧장 검은 그림자로 치환된다.

시우가 가장 자신 있고 확실한 마법, 얼마 전 재정립이 끝난 그림자의 법칙 ver. 2였다.

그렇게 뽑아낸 그림자로 갑옷을 만들어 몸에 둘러쌌다.

날렵한 플레이트 갑옷의 모양새.

겉보기에는 그다지 대단한 방어력이 없을 것 같지만 그 성능은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방호복보다 뛰어날 것이다.

시야를 방해할 투구를 제외하고 완전무장을 끝낸 시우.

“후우...후우....”

위기상황에 맞닥뜨리자 아드레날린이 분비된 탓일까?

지루한 일상 속에서 타성적인 반복에 잠잠해졌던 심장이 뜨겁게 혈류를 신체 말단까지 펌핑한다.

여관에서 밀수꾼들에게 맞섰을 때, 라티푼디움에서 호문쿨루스와 맞섰을 때, 에아 사달멜리크와 맞섰을 때.

모두 지금과 같았다.

시우가 아는 한 현세에 갑작스레 펼쳐진 ‘이면결계’의 원인은 두 가지다.

“추방자인가?”

하나는 당연히 마녀.

이면결계는 본디 게헨나가 생겨나기 전, 케테르 공작이 호문쿨루스를 잡아 연구하여 널리 보급한 마법이다.

그 당시에도 마녀의 힘은 자연재해에 버금갔고 마녀끼리 격돌이 일어났을 때 여파가 너무나도 괴멸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14세기 유럽 전역을 강타해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케 했던 흑사병은 ‘역병의 마녀’와 케테르가 여러 차례 격돌하는 과정에서 역병의 마녀의 저주가 퍼져나간 것이라고 한다.

워낙 오래된 문서이기에 믿거나 말거나긴 했지만, 아무튼 현세에 나온 마녀는 현세에서 사냥을 하거나 싸움을 벌일 땐 반드시 이면결계를 선포한 뒤 사용한다.

“호문쿨루스?”

다른 하나는 호문쿨루스이다.

케테르 공작이 호문쿨루스를 연구해 만들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호문쿨루스의 ‘핵’에는 이면결계를 상시 선포하는 마법식이 내장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유유히 현세를 배회하고 있음에도 인간이 그 존재를 알지 못하고, 마녀들도 사냥하는데 골치를 앓는 것이다.

주위를 꼼꼼히 경계하면서도 커다란 반구 형태로 만들어진 결계의 옆면을 훑어보았다.

눈대중으로 가늠했을 때 직경은 약 100m 남짓.

시민공원뿐만이 아니라 원룸촌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

경계면의 결을 보았을 때 에아의 물병처럼 정교하진 않다.

안에서 밖으로 도망치는 사냥감을 녹이는 끔찍한 마법식이 구현된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가장 베스트는 조심스럽게 결계를 빠져나오는 것이다.

“아니지.”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상책이 될 수 없다.

이곳은 게헨나가 아니다.

현세에선 그 누구도 시우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으므로 자신의 옷에 떨어진 불똥은 직접 떨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분자일지 모르는 존재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내뺀다?

당장은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부재는 언젠가 예방할 여지도 주지 않고 위기로 돌아올 수 있다.

시우는 한계까지 펼쳐진 오르골을 확인하고는 시민공원의 계단을 올랐다.

오르골의 효과는 우수하다.

마력의 파장, 인기척, 소리를 차단해 줄 뿐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풍경처럼 흘려보게 만든다.

일종의 길리슈트인 것이다.

언제든지 도주 및 교전에 들어갈 준비를 한 시우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을 옮겼다.

사실 오래된 만큼 시설이 좋지는 않다.

비탈길을 따라 설치된 운동기구들은 마지막으로 사용된 게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녹이 슬어 있었고, 오르기 쉬우라고 만들어 놓은 나무 계단도 군데군데가 썩어 있다.

조금 더 등산로를 따라 오르자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났다.

아니, 이 인기척이라는 표현은 사실 썩 올바른 것이 못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렌지빛 나트륨등.

명물거리 일대와 대로 맞은편 대학병원, 그리고 캠퍼스를 동시에 내려볼 수 있는 전망대.

그 위쪽으로 한 마리의 짐승이 웅크려있다.

대략 커다란 대형견의 크기.

만약 웅크린 몸을 쭉 펼치고 다리를 들어 올린다면 어렵지 않게 시우의 정수리를 앞발로 짚을 수 있을 것 같은 크기다.

“..........”

지방이나 산동네도 아니고 저런 크기의 야생동물이 신촌 야산에 돌아다닐 리가 없다.

게다가 이 주변에 펼쳐진 이면결계가 시우의 확신을 더한다.

저것이 호문쿨루스라는 사실을.

한층 더 몸을 낮추고 자세히 관찰한다.

호문쿨르스의 가죽 위를 덮는 것은 털이 아니다.

대신 두꺼운 고무 위에 녹은 타르를 바른 것처럼 윤이 났고, 붉게 빛나는 한 개의 눈동자가 미간 사이에 박혀있다.

워낙에 검은 탓에 입체감이 없었다.

“........”

시우는 숨을 죽였다.

호문쿨루스는 15 위계 이상 즉, 자율방어가 활성화된 마녀에 한해서 사냥이 권장된다.

정식적인 낙인이 아닌 시우에게는 자율방어가 없었으며 정확하게 위계를 측정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다.

다만 보고 주워들은 지식과 주변과의 비교로 미루어 볼 때 시우 자신의 수준은 대략 14~15 위계.

아슬아슬하게 호문쿨루스를 잡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호문쿨루스에게 당할 수도 있는 레벨이다.

아직 이쪽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조용히 빠져나간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라티푼디움에서 이미 호문쿨루스를 사냥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천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눈가림을 하고 시간을 벌어줄 쌍둥이의 조력도 있었고, 호문쿨루스가 사용하는 그림자의 법칙이 고압축 마력에 약하다는 명확한 약점이 존재했으며, 또한 필요한 마력을 보충할 수 있는 마력수가 근처에 있었다.

지금은?

꼴랑 시우의 몸뚱이 하나뿐이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법의 수준이 높아졌다 한들 호문쿨루스도 개체별로 전투력에 차이가 존재한다.

괜히 시우가 덤벼들었다가 역관광이 날 가능성도 다분하다는 것이다.

냅두고 튀자.

그것이 시우의 결론이었다.

주황빛 조명 속에서 불길하게 움직이는 괴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우적, 우적 까드득 까득

시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아직 확실히 확인한 것도 아닌데 기이할 정도 귓바퀴 밑에서 크게 들리는 저 소리.

고깃덩어리를 헤집는 것 같기도 하고, 단단한 물체를 깨무는 것 같기도 한 저 소리.

본능적인 역겨움과 불쾌함에 시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까득 까드드득 까득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괴물이 앉아있는 주변의 나무가 유독 검붉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

주변에 너부러진, 밧줄이라고 여겼던 것이 배 안에서 강제로 끄집어내진 내장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저것은 ‘인간’을 먹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반시체가 된 경험은 있지만 시체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시우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러자 더욱 확실하게 보인다.

아마도 달밤에 체조를 위해서 나온 아저씨겠지.

싸구려 등산복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그 뒤에 거의 속이 비어버린 뱃가죽은 커튼처럼 펼쳐져 너덜너덜해진 채이다.

웅크리고 있던 시우를 일으켰던, 황망함 속에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이 부싯돌이 부딪친 것처럼 불똥을 피운다.

같은 인간이 한낱 짐승이나 다름없는 호문쿨루스에게 뜯어먹히고 있는 광경은 두려움이나 공포 이전에 메스꺼움과 분노를 끌어냈다.

“이... 개새끼가...”

“크르르....”

아까까지 식사를 즐기던 호문쿨루스의 목이 빙글 돌아간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돌아갈 수 없는 관절의 기동 범위.

목만을 180도 돌려 시우를 바라보는 괴수의 으르렁거림에는 두 가지의 감정이 공존했다.

하나는 식사를 방해받았다는 불쾌감.

또 하나는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났다는 기쁨.

“피어라.”

시우는 창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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