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39화 (139/917)

#139

1.

현세로 돌아온 지 어느덧 이주가 흘렀다.

그 간 시우의 생활을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 황제라도 된 것 마냥 상다리 부러질 때까지 음식을 시킨다.

그것도 하루에 다섯끼 씩.

어차피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몸이고 소화나 건강 걱정 없이 얼마든지 먹어치울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대충 포만감만 사라지면 곧바로 밥을 시켰다.

영체였기에 망정이지 사람이었더라면 변기가 막혀도 몇 번은 막혔을 거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이었다.”

움직이기도 어려울 만큼 밥을 먹고 나면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침실 겸 공부방으로 간다.

아예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서 벽 한쪽은 코르크 보드로, 나머지 벽 한쪽은 화이트보드로, 마지막 한 쪽은 서류철을 쌓아둘 수 있는 붙박이 선반으로 시공했다.

마치 예전에 사용하던 랩실처럼 말이다.

시우는 수성 마커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오늘도 놀아볼까.”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마법 연구이다.

사실 처음부터 각잡고 마법을 잡고 연구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시우가 전공하고 연구했던 복소해석학, 그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석사 학위를 안겨주었던 본질적 특이점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려고 했었다.

그가 열심히 작성했던 논문도 없던 것이 되어버렸으니 심심풀이로 괜찮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손을 댈 수 없었다.

기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련의 수식이 어떤 방향성을 지니는지 중요한 공식이 무엇인지는 대략의 윤곽을 잡을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5년을 쉬었다고 해서 오는 슬럼프 혹은 재능의 감퇴 같은 것이 아니었다.

뇌가 그쪽으로 사고하는 것을 아예 거부하는 것처럼 뚝뚝 끊기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시우가 떠올린 가능성.

일직이 시우는 뇌에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거의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느꼈지만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시우는 좌절하지 않고 다음 길을 찾았다.

패닉에 빠졌던 시우가 불과 반나절 만에 다시 펜을 잡은 것은 어쩌면 그간의 멘탈 단련이 효과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 능력이 제한되어 버린 것인지 골똘히 궁리하던 시우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수학을 응용할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이래서야 마치 뇌가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 재구성되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흐음.... 여기는 이렇게 되는 건가? 아니야, 이건 너무 구닥다리 같아.”

시우는 턱에 손을 짚은 채 중얼거리며 화이트보드를 채워갔다.

거기에는 이미 거대한 마법식이 그려져 있었고 시우는 회로와 회로 사이에 룬 문자와 수식을 적어 내려가며 빈칸 채우기 퀴즈처럼 새로운 공식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재정립된 마법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보기 쉽게 정리하는 것이다.

“이거 도대체 몇 개가 섞인 거야?”

시우는 안대를 벗은 왼쪽 눈을 찡그리며 조금 멀찍이 떨어져 일주일에 걸쳐 얼추 설계가 끝난 마법식을 바라보았다.

새로이 얻은 좌안으로 마법식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치 아인에 접속한 것처럼 3차원의 구조물로 변형되어 인식한다.

원치 않는 세세한 마력의 흐름까지 잡아내는지라 일상생활에서의 피로도가 너무 심해 가려놓지만 이럴 때는 또 편했다.

아무튼 대충 시우가 짐작한 바로, 그의 낙인에는 총 5개의 마법이 섞여서 한 몸처럼 얽혀있는 상태였다.

기존에 시우가 연구하던 자성마법 차원이동식.

호문쿨루스를 죽이고 그노시스의 알로부터 얻은 그림자의 법칙.

“여기까지는 뭔지 알겠는데....”

그런데 조금도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마법식이 셋이나 더 있다.

굳이 떠올리려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다는 듯이 떠오른다.

언제 이런 걸 얻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참 곤란하다.

“....역시 직접 해봐야 하나.”

직접 시행하지 않고 설계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원래 천재 작곡가들도 하나하나 건반을 눌러보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작곡하지 않는가?

다만 걸리는 것은 시우가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이다.

“흐음....”

시우는 품에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는 오르골을 꺼내 들었다.

태엽 옆에 달려있는 세 가지 기믹.

오딜에게 제법 자세히 사용법을 들었기 때문에 각 기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대충 알고 있다.

“이렇게가 맞던가?”

태엽을 끝까지 감은 상태에서 두 번째 레번 같은 것을 살짝 당겼다가 놓아주면 내부에서 일어나는 마력의 파장을 완벽하게 위장한다고 들었다.

대신 그만큼 마력의 소비가 많아지기에 1시간마다 태엽을 다시 감아야 하는 귀찮음이 동반되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피어라.”

은폐장이 확실히 형성된 것을 육안으로 확인한 시우는 손을 뻗고 마력을 증폭시켰다.

너무 많은 양은 필요 없다.

딱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식을 기동시킬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낙인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마력이 찬연한 금빛을 흘리며 시우의 손으로 이동했다.

형태는 얼추 잡혀있지만 어떤 형식으로 발현되는지 알 수 없는 마법식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전신에 뻗은 마력회로를 일주천하는 마력의 흐름.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천천히 분배해준다.

하나의 연성, 세 개 의 변화, 또 세 개 전개.

연성 과정에서 꾸물꾸물 모여든 마력이 마치 가느다란 실처럼 물리적인 형체를 지녔다.

다음은 변화 과정을 거쳐 마력의 실이 세로로 길게 나열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열된 실낱에 다른 실들이 올올히 엉키며 마치 기다란 리본 형태를 취한다.

“시발 뭐야.”

그 정체를 직감적으로 깨달은 시우.

이것은 이미 한 번 그와 격돌한 적이 있던 에아 사달멜리크의 자성 마법이었다.

전력을 다한 시우를 무참히 찢어발긴 그 흉악한 리본 말이다.

“이게 왜 나한테 있지?”

다시 눈을 떴을 땐 보기만 해도 트라우마 스위치를 자극하는 한 가닥의 리본이 낭창거리면서 시우의 코앞을 떠돌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 에아가 다루던 리본과는 어딘가 형체가 다르다.

일반적인 마력의 실낱이 아니라 원래 그가 지니고 있던 그림자의 입자로 만들어진 까닭에 그 색이 검고 어둡다.

더욱 소름 끼치는 사실은 너무나도 낯선 마법임에도 이미 리본은 시우의 수족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몸에서 팔 하나가 새로이 돋아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나 세세하게 움직이는지 이걸로 딸도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안 할 거지만.

도대체 쓰러져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시우가 지닌 마법적 지식을 총동원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 이건 다음에 생각하자.”

지금은 하나하나 가지고 있는 것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선 리본을 갈무리한 시우는 다른 마법도 천천히 점검해갔다.

다른 하나의 정체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해당 마법식에 마력을 집중하는 순간 드러난 공간은 이미 시우가 알고 있는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일전 기억을 되찾을 때 아인에 들어섰던 시우.

거기서 시우는 검은 공간 속 무수히 많은 계단과 문을 마주했다.

이건 아마도 ‘기억’을 관장하는 마법인 것 같았다.

아쉽게도 충분히 시간을 쏟았지만 마지막 하나의 정체는 끝끝내 밝히지 못했다.

마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식의 형태를 특정할 수 없다.

하나처럼 엉겨 붙어 있는 마법을 좀 더 꼼꼼히 세분화해 정리하고 나서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삐삐삐삐삐

또 한참을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끄적이던 시우는 휴대폰 알림을 듣고 마커를 내려놓았다.

“밥 먹을 시간이네.”

4시간에 한 번.

시우는 자기 자신과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5끼를 먹겠다고.

음식이 준비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지금쯤부터 준비해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

하도 머리를 썼는지 머리가 뜨끈뜨끈했다.

조금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도 좋겠지.

시우는 대충 바람막이를 걸치고 배달 앱으로 포장주문을 잔뜩 시킨 뒤 거리를 나섰다.

확실히 근처에 대학들과 자취방이 많아서인지 온갖 맛집들이 총집합해있다.

그만큼 맛집의 탈을 쓴 지뢰들도 많았지만.

“오늘은 명물 거리로 가자.”

시우의 집을 기준으로 원룸촌 맞은편에 있는 명물거리는 그야말로 놀거리와 맛집의 보고였다.

내려간 김에 담배도 좀 피울 겸 옷 안을 뒤적였지만 텅빈 담배갑만이 잡힌다.

“가는 길에 하나 사야겠네.”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이런 점이 편했다.

2층에 카페를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있었고 1층에는 편의점이 있었으니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 롤라 하나 주세요. 아, 라이터도요.”

곧장 계산대로 향한 시우는 힐끗 알바생을 보았다.

시우가 딱히 타카쇼처럼 여자를 밝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이 알바생을 본다면 남녀불문하고 눈이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신촌이라 그런지 알바생도 멋을 제대로 부렸다.

앞머리가 없는 긴 생머리.

어두컴컴한 카키색에 조금 짙은 민트색이 그라데이션처럼 섞인 투톤 염색이다.

중성적인 기성복도 뭔가 맞춤복처럼 자연스럽고 스타일리쉬하다.

사실 그냥 여기까지였다면 꾸미기 좋아하는 여대생이겠거니 하며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알바생은 예뻐도 너무 예뻤다.

사심이 들어가거나 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외모와 몸매 모두 굉장히 뛰어났다.

짙은 쌍꺼풀 아래에서 진녹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오뚝한 콧날에 편의점 조끼를 들어 올리는 풍만한 가슴.

이국적인 생김새에도 묘하게 친근한 익숙한 인상임을 보면 아무래도 혼혈 같은데 게헨나에 돌아다니는 마녀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가서 모델을 하겠다고 하면 곳곳에서 줄을 설 것 같은데 왜 이런 데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5000원이요.”

그런데 예쁜 여자는 도도하다고 할까.

이 알바생은 그리 일에 열성이 아니었다.

항상 폰을 손에 붙잡고 있을 뿐 아니라 손님이 와도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고 한 손으로 폰을 톡톡 두드리며 무뚝뚝하게 계산만 한다.

“일을 저렇게 해도 예쁘니까 안 잘리네.”

언제나와 같은 감상을 품으며 돌아온 시우는 담배를 물었다.

오늘은 어떤 맛집을 갈지 머릿속으로 마인드맵을 그린 뒤 길을 걷던 시우.

거의 산등성이에 지어놓은 것처럼 가파른 원룸촌을 등반하고 나면 원래의 목적지가 보인다.

“어?”

시우는 눈을 비볐다.

처음에는 한쪽 눈만 쓰는 까닭에 뭔가 잘못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저 멀리 백화점의 전광판에 거뭇거뭇한 무엇인가가 매달리듯이 기어 다니고 있던 것이다.

너무 먼거리에 있어서 정확한 형태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지만 여기서도 보일 정도라면 절대 작은 크기는 아니다.

시우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게 무엇인지 육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백화점 앞까지 달려온 시우가 다시 전광판을 보았을 땐.

평범하게 휴대폰 광고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인도에 가득한 사람들은 여태까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갈 길을 가거나 수다를 떨거나 한다.

시우의 눈가가 좁아졌다.

“....잘못본 건 아닌데.”

분명, 똑똑히 보았다.

괜스레 오싹해진 등골.

품 안에 오르골을 꺼내 클로킹 수치를 최대로 올린 뒤 다시 넣었다.

결국 괜히 불길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기에 대게 서른 마리 정도만 포장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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