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1.
“오딜 님, 오데트 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제머나이 가문의 시녀장 갈리나는 오늘도 쌍둥이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접시가 한가득 담긴 트레이를 옆에 둔 그녀의 이마에는 근심이 가득 섞인 주름살이 꿈틀거렸다.
“........”
“........”
아침부터 몇번이나 들렀지만 꽁꽁 걸어잠긴 문 뒤로는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후우... 오딜 님, 오데트 님.”
무단 외박 사건 이후 잔뜩 풀이 죽어 귀가한 쌍둥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견습마녀라고는 해도 이미 반영체인만큼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 먹을 이유는 없지만 그것이 갈리나가 걱정을 거둘 이유는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달콤한 디저트로 유혹해도 방문을 꽁꽁 걸어 잠글 만큼 속상해하는 쌍둥이의 모습을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보라는 말인가?
“갈리나.”
허리에 손을 얹고 무거운 한숨을 쉬던 갈리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 저택의 주인인 알비레오 백작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백작 님....”
“항상 고생이 많아요. 쌍둥이는 제게 맡기세요. 들어가 볼게요.”
알비레오는 갈리나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주고는 마법으로 잠긴 문을 덜컥 열고 들어갔다.
쌍둥이의 침실은 어두컴컴했다.
암막 커튼을 죄다 쳐놓은 데다가 불까지 끄고 있으니 대낮에도 어둑하기 짝이 없다.
방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침대.
그 위에는 불룩불룩 튀어나온 이불이 놓여 있다.
쌍둥이가 안을 파고들어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시우와 약속이 끝난 이후 쌍둥이를 데려온 알비레오 백작은 쌍둥이에게 엄명을 내렸다.
앞으로는 시우를 만나지 말라고 말이다.
그 결과가 보이는 대로이다.
쌍둥이는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식음을 전폐하고 알비레오 백작의 지시에 불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영체에게 음식물을 통한 영양 공급은 필요 없다.
즉 단식투쟁은 그다지 호소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단수면 투쟁에 돌입했다.
‘조수님을 못 만나게 하면 저희 이제부터 잠 안 잘 거에요!’
‘잠 안 자다가 죽으면 다 스승님 탓이에요!’
같은 말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틀도 가지 못해 소파 위에 나란히 곯아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알비레오가 손수 침대로 옮겨주고 이불을 덮어주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이 상태다.
방에 불을 끈 뒤 누구의 발걸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가정교사 초빙을 통한 교육도 모두 거부하고 있다.
말괄량이들이긴 해도 조금 엄한 목소리를 내면 말을 잘 따랐던 쌍둥이였는데.
이번만큼은 뿔이 단단히 난 것 같았다.
“오딜, 오데트.”
알비레오는 쌍둥이가 머리끝까지 덮고 있는 이불을 치우려 했지만 안에서 잡고 있는 것인지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다.
“잠시만 이야기 좀 하자꾸나.”
““....싫어요.””
울다 쉰 조그마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온다.
알비레오는 쌍둥이가 이렇게 우울해하는 것을 태어나서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사랑을 억지로 뜯어놓은 부모가 된 기분이라 그녀도 썩 편치 않았다.
“오늘 신시우 군이 떠나는 날인 건 알고 있니?”
“........”
“........”
아무런 말도 없이 꾸물꾸물 내려간 이불.
쌍둥이의 얼굴이 나란히 어둑한 어둠 속에 드러난다.
알비레오는 염동을 사용해 모든 암막 커튼을 활짝 열었다.
시야가 밝게 트이자 쌍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 쌍둥이는 살짝 곱슬머리이기에 손이 많이 가는 머리카락이다.
그 머리는 변변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퉁퉁 부은 뺨과 애벌레가 기어간 것처럼 부푼 눈이 보인다.
아마 이불을 뒤집어쓰는 내내 훌쩍이며 울고 있던 모양이다.
“왜 못 만나게 하시는 거예요....”
“진짜 조심하면 된단 말이에요....”
사실 알비레오 백작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전 시우가 호문쿨루스를 쓰러뜨렸을 때, 그를 현세로 되돌려보내주기로 약속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쌍둥이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는 이렇게까지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우가 또 한 번 목숨을 걸고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탓일까?
그를 향한 쌍둥이의 애착이 훨씬 강해진 것 같았다.
단수면 투쟁을 하는 이틀 내내 얼마나 알비레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투정을 부리던지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너희를 위해서야. 우리 귀여운 쌍둥이들 앞일 잘못되면 어떡해.”
“진짜 안 그럴 수 있는데...”
“저희도 바보 아니에요!”
“순간에 실수에 너희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
알비레오는 침대에 슬쩍 걸터앉아 쌍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코를 훌쩍이면서도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이는 쌍둥이.
“나중에 정식 마녀가 되면 얼마든지 보러 갈 수 있잖니. 지금은 못 하는 것도 그때 되면 실컷 할 수 있고.”
“그래도, 마지막 시간 정도는 같이 보내고 싶었어요...”
“맞아요! 언니는 졸렬하게 저 몰래 나가서 밤산책 했다는데... 전 쿨쿨 자느라 아무것도 못 했단 말이에요.”
강아지처럼 알비레오의 다정한 손길에 얼굴을 가져다 대는 쌍둥이.
성정이 모질지 못한 쌍둥이에게 불만 표시는 고작 일주일이 한계였던 모양이다.
금방 애정결핍에 걸린 아이들처럼 알비레오를 반기니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하러 가야지 않겠어?”
“.....준비할게요.”
“저두요.”
“그래, 착하지.”
알비레오는 한쪽 팔에 한 명씩 쌍둥이를 꼭 끌어안았다.
뺨에 번갈아 뽀뽀를 해주며 말한다.
오딜도 오데트도 알비레오 백작에게 푹 안겼다.
“나중에 훌륭한 마녀가 되면 밖으로 나가서 만나러 갈 수 있어. 그때까지 노력할 거지?”
“네, 열심히 할게요.”
“네, 스승님.”
“자, 갈리나 시녀장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서 나가서 준비하렴.”
그간의 설움을 어떻게든 풀어낸 것인지 침대에 내려가 쪼르륵 문밖으로 달려가는 쌍둥이를 보며 알비레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처음 쌍둥이를 제머나이 가문으로 데려올 때까지만 해도 공과 사를 구별해서 대할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이래서야 영락없이 딸 아이에게 극성인 엄마의 모습이 아닌가?
“뭐, 나쁠 건 없지.”
알비레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2.
“시우 씨 오늘 가는 거죠?”
“그렇죠.”
“좀 아쉽다. 안 그래요?”
“하하...”
침대 위의 예빈은 나른한 목소리로 시우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불을 덮은 채 햇살을 만끽하는 그녀는 지금 알몸이다.
조금 전까지 시우와 질펀한 섹스를 나눴으니 당연했다.
이런 걸 원나잇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두 날을 함께 잤으니 투나잇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녀의 몸은 몇 번이고 파고들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성욕이 식질 않는 예빈 덕분에 귀향까지의 나날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첫날밤 보여줬던 음란함으로 틈만 나면 시우를 침대로 유혹해 끌어들였으니 말이다.
후배위, 정상위, 굴곡위, 대면좌위, 옆치기 등등...
야동에서 봤던 모든 체위를 직접 해봤던 것 같다.
말도 잘 통하고 속궁합도 좋고(이게 속궁합이 좋은 것인지는 비교 대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함께 나눌 것도 많은 예빈인지라 시우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뜨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이틀 간 그녀 자궁에 집어넣은 정액만 모아도 물컵 반 잔 분량은 나올 것이다.
“나중에 한국 갈 일 생기면 한 번 놀러 갈게요.”
“네, 예빈 씨도 그동안 잘 지내시길 빌게요.”
“배웅 나가 드릴까요?”
“전에도 말씀 드린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그래도 그대로 휭 떠나기는 좀 그랬기에 시우는 예빈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예빈은 굳이 시우를 막아 세우지 않고 후련하게 보내주었다.
아쉬움이 남긴 해도 서로 즐거웠으니 됐다는 듯한 분위기여서 시우도 미련 없이 저택을 나설 수 있었다.
“후우...”
집 밖에 나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빨아들인다.
진정한 남자가 된 이후 피우는 담배.
시우는 진짜 사나이가 된 것이다!
“섹스 짜릿해. 최고야.”
아직도 끈끈하게 엉겨 붙는 예빈의 속살이 자지에 흔적이라도 남긴 듯하다.
그 감각이 잊혀지질 않았다.
그보다 여러 차례의 성교를 하며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바로 성교를 통해 사정하게 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마력의 증폭 작용.
사정 직전부터 자궁에 있는 낙인을 통해 대량의 마력을 흡수하고, 증폭한 뒤 돌려주는 일련의 시퀀스가 시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능력이 왜 생겼는지는 시우도 예빈도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시우는 성교를 통해 전례 없는 순수한 마력 증폭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배출되는 마력을 정액과 함께 받은 여성은 거의 혼절할 정도로 황홀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섹스킹 됐네.”
그 어떤 AV에서도 본 적 없는 반응을 그냥 질싸만 하면 볼 수 있다.
저 차분해 보이는 예빈이 배를 까뒤집고 헥헥거리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들어가서 한 번만 더 하고 올까?”
이렇게 마음 편하게 섹스해본 것은 처음인지라 슬쩍 음심이 동했지만 이내 단념했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는 정말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시우는 쌍둥이의 별장에 들러 짐을 챙기고 정리도 좀 해두었다.
보더 타운으로 가는 포탈을 타고 넘어가자 게이트에서 기다리는 세 사람이 보인다.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하프보닛을 쓴, 평상시보다 훨씬 곱게 차려입은 오딜과 오데트.
그리고 팔짱을 끼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알비레오다.
“안녕하...”
“조수님!”
“조수님!”
“끄악!”
삐약삐약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려온 오딜과 오데트가 시우에게 몸을 던져 더블 어택을 감행했다.
시우는 허리가 꺾일 뻔한 것을 간신히 막고 쌍둥이를 안았다.
“우리 잘 지내고 있을게. 조수님도 밖에서 조심조심해야 해?”
“조수님, 저희 잊으시면 안 돼요? 아셨죠? 저희 선물은 잘 챙기셨어요?”
“무슨 일 생기면 그 반지 보여주면서 으름장을 놔버려.”
“맞아요! 제머나이 백작가의 이름이면 어지간한 추방자들도 후다닥 도망갈걸요?”
파병에서 돌아온 주인님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정신없이 시우를 반기는 쌍둥이.
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쌍둥이의 열렬한 응대를 받아주었다.
“네네, 안 잊을게요. 오딜 님도 오데트 님도 몸 건강히 지내셔야 합니다.”
“응... 나 꼭 대단한 마녀가 되어서 놀러 갈게.”
“오딜 님이라면 잘 해내실 겁니다.”
“조수님 전 놀러 가면 현세의 디저트 가게 구경하고 싶어요! 전에 한 번 먹어 봤는데 너무 맛있었거든요!”
“네, 미리 조사해 둘게요.”
이렇게라도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겼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해맑게 웃는 오딜과 오데트.
그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이런저런 인연을 생각해보면 여기서 5년 동안 보냈던 시간이 아주 낭비된 것 같지는 않기도 했다.
저만치서 시우와 쌍둥이의 작별인사를 지켜보던 알비레오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시우 군, 여기 제가 준비한 자료들이에요.”
그녀는 두툼한 종이봉투 하나와 여권, 그리고 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이건 위조 여권과 위조 신분증이에요. 정말 시우 씨 명의로 된 걸 만들어 버렸다가는 며칠 가지도 않아서 없어질 테니까요. 다만 비행기를 통해 해외로 가고 싶을 때는 여권 사이에 끼어있는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 주세요.”
“그런 식으로 우회할 수도 있는 거군요.”
시우와 관련된 모든 연이 잘려나가는 것이니 타인의 명의를 시우처럼 위장한다면 신분증 자체는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시우 씨가 지낼 집 주소들이에요. 한국 각지에 열 채까지 준비해두었으니 마음에 드는 곳에서 지내시면 돼요.”
“아, 네.”
“그리고 이건 저희 가문 소유 카드사에서 발급하는 블랙 카드. 위장된 명의와 연결되어있으니 원하시는 대로 긁고 다니세요. 동봉된 카탈로그에서 각종 혜택 확인하시고요.”
“어?”
거주지를 마련해주겠다고도 들었고 위장 신분도 마련해주겠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퍼부어줄 줄은 몰랐는데.
자꾸자꾸 품에 뭔가 쌓인다.
“실례지만 이거 한도는 어떻게 확인하나요?”
“시우 군이 갑자기 전용기를 사거나 하지 않는 이상 문제 없을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사용하셔도 좋아요.”
“이,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제 성의 표시라고 봐주세요.”
어마어마한 선물들.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 놀 수 있을 정도의 선물을 받아든 시우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알비레오는 줄 것만 건네주고는 다시 쌍둥이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애초에 그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것은 쌍둥이고 시우도 썩 알비레오가 편하지 않을 것을 알고 배려한 것이다.
물론 애먼 짓은 못하게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조수님. 기다려, 우리 진짜 금방 갈게.”
“딱 3년만 기다리세요! 정말요!”
마지막 시우의 입에 가볍게 뽀뽀를 하는 것으로 쌍둥이는 작별인사를 끝냈다.
거대한 거울처럼 일렁이는 ‘문’의 일부분.
이제 문을 거쳐 몇 발자국만 앞으로 나아간다면 현세로 돌아가게 된다.
쌍둥이는 눈물을 꾹 참으며 시우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시우는 품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백작님.”
“네.”
“이걸 아멜리아 님께 전달해주실 수 있을까요?”
시우가 건넨 것은 두 번 접혀 있는 종이였다.
알비레오는 그것을 받아들고 품에 넣었다.
“알겠어요. 전해드릴게요.”
시우는 그제야 속이 시원한 표정으로 쌍둥이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준 뒤 다시 문을 향해 걷는다.
“잘 지내세요. 오딜 님, 오데트 님.”
“조수님 건강해야 해!”
“나중에 또 재밌게 놀자!”
울먹이는 쌍둥이의 외침을 끝으로.
세상이 뒤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