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31화 (131/917)

#131

1.

“시우 군이 현세에 나가게 되면 겪을 일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설명을 해보죠.”

“네.”

세 가지나 있어?

시우는 속으로 슬쩍 걱정을 표하는 한편 백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 마녀라면 누구든 낙인을 지니게 된 남성에게 호기심이 동할 거예요. 지금까지 전례 없던 사례란, 전례 없는 학구적 진보로 이어질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낙인이 없이 마법만 사용할 줄 아는 상태였어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텐데, 낙인을 지니게 된 지금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이목이 쏠릴 거예요.”

“제가 낙인이 있다는 사실만 숨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게 저렇게 각잡고 이야기 해야 할 일인가?

그 정도는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가벼운 마음가짐이라면 곤란해요.”

“현재 시우 씨는 노예증서가 폐기되면서 자연스럽게 게헨나의 시민이 되었죠. 설령 시우 씨가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당신을 함부로 해할 순 없어요.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해악을 끼치려는 정황이 보인다면 저희 제머나이 가문은 물론 메리골드 남작 또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 해당 마녀의 시민권과 재산을 몰수할 것이니까요.”

“좀 피곤할 정도의 관심을 받기는 할지라도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겠죠.”

알비레오는 한 차례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추방자들은 달라요. 당신도 만나보니 느끼지 않았나요? 에아 사달멜리크라는 추방자가 얼마나 잔인한 인물이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각오하고 있던 일이에요.”

데네브의 말투는 꼭 우물가로 기어가는 어린아이를 말리는 듯한 뉘앙스였다.

하지만 오딜이 준 오르골도 있고, 들키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니.

시우의 귀소 본능을 억누르기에는 부족했다.

“추방자 중에서 정말 악질이라 불릴만한 부류는 소수이지만, 그래도 조심하세요. 추방자들에게는 시민권이라는 담보가 없어요. 순간의 충동으로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시우는 백작이 말하는 바를 이해했다.

이런 묘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우는 남자라면 누구든 눈 돌아가는 경국지색의 미녀이고, 현세로 향한다고 함은 CCTV도 경찰도 없는 세상에 던져진다고 보면 되겠다.

누구든 순간의 충동에 덮쳐보는 것 정도는 생각할지도 모르지.

“이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네요.”

알비레오는 품을 뒤적이더니 반지를 하나 꺼내어 시우의 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저희 가문의 손님임을 증명하는 반지에요. 이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을 건드리는 것은 제머나이와 척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증표죠.”

거기서 시우는 이해했다.

제머나이는 정말로 시우의 현세 행을 만류할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 편의와 안전선 제공해주다니.

순간 그녀들을 겉과 속이 다른 마녀면 어쩔지 걱정하던 자신의 생각이 바보 같게 느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반지가 외부에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겠네요. 항상 주의하셔야 해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다음은 뭔가요?”

이 정도면 충분한 주의를 들은 것 같아 다음으로 주제를 넘겼다.

“두 번째는 호문쿨루스에요.”

그건 예상도 못 했던 답변인지라 잠깐 멍해졌다.

호문쿨루스? 그게 뭐 어쨌다고?

“현세의 호문쿨루스는 비약적으로 활동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10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10배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죠.”

“그게... 저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호문쿨루스는 기본적으로 낙인을 노려요. 새로이 낙인을 지니게 된 시우 군 역시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물론 쌍둥이에게서 오르골을 받아간 듯하니 잘 휴대하고 다닌다면 커다란 문제는 없을 거예요.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유의 사항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오르골.... 알고 계셨군요.”

“일단은 보호자니까요.”

제머나이 백작은 오딜이 시우에게 오르골을 넘긴 것까지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쌍둥이를 꾀어서 귀한 아티팩트를 뜯어내는 좆뱀쯤으로 보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하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묵인하고 넘어가는 듯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네요.”

알비레오는 맥주를 홀짝 마시고는 묻는다.

“게헨나가 노예를 어떤 방식으로 들여오는지 알고 있나요?”

“아니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녀 중에서도 알고 있는 이가 적고 또 굳이 노예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게헨나로 불러들여지는 현세의 인간은 크게 두 부류에요.”

데네브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그중 하나를 접으며 말한다.

“하나, 사형수.”

“예?”

“마녀들과 여러 국가의 고위층과 은밀한 거래 관계에 있어요. 그 내역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노예 인도 조약에 관한 것만 놓고 말하죠.”

“사형집행이 결정되었거나 혹은 사형을 선고받은 채로 오지 않을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은 사노예로 끌려오곤 해요.”

“게헨나 측은 인력을 공급받으니 좋고 해당 국가에서는 쓸데없이 세금을 축내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형수를 처리할 수 있으니 서로가 상호이익인 계약이죠.”

그런 사실은 조금도 알지 못했던 시우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렇다면 실험에 잡혀가서 고통받거나 마녀들의 아집에 의해 헛된 노동으로 삶을 낭비한다 여겼던 보더 타운의 노예들이 죄다 사형수라는 말인가?

“그럼, 저는 뭐죠?”

“둘, 실종자.”

데네브는 나머지 한 손가락을 마저 접었다.

“조금 알아본 결과, 신시우 씨는 비행기 사고였죠?”

난기류를 만나 비틀거리던 비행기.

주렁주렁 내려오던 산소마스크와 분주하게 다급한 기장의 방송음.

이후에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보더 타운의 항구였지.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운명’을 따라 움직여요. 세피로트의 나무의 ‘예언 기관’에서 그 운명을 점지합니다. 그리고 운명에 따라 곧 죽게 될 인간 중에 게헨나에 ‘쓸모 있을 것 같은 인간’을 따로 선별해요.”

“자, 자, 잠시만요. 그럼 제가 이미 죽었다는 말씀인가요?”

극심한 혼란이 왔다.

시우는 영락없이 자신이 무도한 마녀에 의한 피해자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죽음에서 구조받은 거라고?

그간의 노예 생황이 대가 없는 종신 노동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아니요, 제가 말했잖아요. 곧 죽을 예정인 인간을 데려온다고.”

믿고 있던 것들이 또다시 부서진다.

그러나 시우는 금방 마음을 정리해냈다.

침착하자.

어차피 나가게 된다면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떠올렸을때.

시우는 백작의 말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어?”

그 말대로다.

시우가 어떤 선별을 통해 게헨나에 잡혀 왔는지는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시우는 곧 게헨나를 나갈 사람이 아닌가?

영문 모를 한기가 등골을 저민다.

술렁이는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재빨리 불길함을 감지했다.

“왜.... 이 말씀을 하시는 거죠?”

“운명,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특정할 수 있는 것이 ‘죽음의 운명’이죠. 사인을 논하자면 병사, 교통사고, 살인 사건에 연루... 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한 다양한 이유지만 ‘죽음의 운명’은 한 가지 강한 성질을 지녀요.”

“뭔가요?”

알비레오는 진중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며 말한다.

“필연성이죠.”

“한 번 점지된 죽음의 운명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집행돼요.”

“원래 교통사고로 죽었어야 할 사람이 아주아주 드문 확률로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해도. 운명의 강제력이 작용하죠.”

“다음날에 심장마비로 죽거나, 아니면 가스 폭발로 유명을 달리하거나. 이유는 다르지만 머지않은 시일 내에  죽는다는 말이에요.”

시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나가게 된다면 ‘필연성’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이곳을 나가겠다는 시우의 다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그는 죽음을 위해서 5년 동안 발버둥 쳤다는 것이다.

허무함에 힘이 빠지려는 그때 데네브가 오류를 지적했다.

“아니요, 노예로 선별된 실종자는 보더 타운의 ‘문’을 넘어온 직후 수정이 가해져요. 그대로 데려왔다간 어차피 머지않아 죽을 테니까요.”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가위를 만들고 싹뚝 무엇인가 자르는 흉내를 내었다.

“바로 현세에서의 운명을 잘라내는 거예요.”

알비레오와 데네브는 시우가 어떤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이 말기암 환자에게 카운트 다운을 선고하는 의사처럼 비치는 것은 착각일까?

마치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 같았다.

“다만, ‘죽음의 운명’만을 선별해서 잘라낼 수는 없어요. 때문에 현세와 연결된 모든 ‘연(緣)’을 끊어내요. 호문쿨루스가 종종 인간을 잡아먹을 때 그러는 것처럼요.”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현세에서 시우 군이 쌓아 올렸던 모든 인연, 업적, 성취, 기억, 운명에 이르러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어 존재 자체가 소멸했다는 말이에요.”

“아.....”

솔직히 말로 들어도 잘 실감이 나는 것이 없다.

연을 잘라냈다느니.

인연, 업적, 성취, 기억, 운명이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느니.

마녀들은 말을 어렵게 하는 구석이 있다.

저렇게 어렵게 말하면 누가 이해할 수 있다고.

현실도피적인 생각이 무분별하게 난무한다.

손끝이 저려온다.

“뿐만이 아니에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이것까진 마저 듣고 생각을 하시는 게...”

“죄송합니다. 잠깐이면 돼요.”

시우가 허탈하게 앉아있자 알비레오가 맥주 한 병을 건네주었다.

감사 인사를 표할 새도 없이 타는 목을 맥주로 적시는 시우.

어안이 벙벙하다.

솔직하게 말해서,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됐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정 힘드시다면 조금 더 시간을 드릴 수 있어요.”

“아니에요, 지금 들을게요.”

어차피 제머나이 백작의 말대로라면 죽을 운명에서 살아난 몸이다.

만약 그때 비행기 사고로 죽어버렸더라면 이런 고뇌와 박탈감을 느낄 수도 없지 않았겠는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결연한 표정을 짓는 시우의 앞에서 데네브는 아주 긴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한 ‘세계’에서 잘려나간 연(緣)은... 현재로선 수복할 방법이 없어요. 단순히 연을 끊어내는 것과 운명을 완전 새롭게 다시 쓰는 일은 전혀 난이도가 다르니까요.”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요?”

“만약 시우 씨가 돌아간다고 해도.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사나흘마다 ‘초기화’가 이뤄질 거에요.”

“쉬운 설명으로 부탁드릴게요.”

“시우 군이 현세로 돌아가서 무엇인가를 해도 금세 ‘없던 일’로 되돌아간다는 말이죠. 지금 시우와 연결되어있는 ‘연’은 현세와 완전히 분리된 이면 세계 즉, 게헨나 뿐이니까요.”

정리를 해보자.

안된다.

그냥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시우는 느껴진바 그대로를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유령이 되는 거군요.”

어떤 행동도 타인의 기억에 남지 못하고, 자취를 남기지도 못한다.

그저 배회하고 부유할 뿐인 그런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명쾌하게 핵심을 짚은 시우의 요약에도 제머나이 백작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안쓰럽다는 듯이 덧붙이는 데네브.

“제머나이 가문의 권세는 현세에도 충분히 작용하는 만큼 시우 씨에게는 충분한 지원이 주어질 거에요.

시우 씨의 명의로 해도 의미가 없으니 저희의 명의로 된 거주지와 차를 지급할 것이고, 5년마다 한화로 100억 정도의 보상금도 예정되어 있어요. 이와는 별개로 게헨나에 남겠다고 말씀하신다면 저희 가문의 식객으로서 정중히 모신다는 선택지도 있죠.”

시우는 깍지를 낀 채 한동안 멍하니 고민에 잠겼다.

현세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소원은 거의 인생의 목표나 다름이 없었다.

무지개의 끝을 쫓아 죽도록 달렸는데 결국 도달한 곳이 실은 낭떠러지였다는 허무함이 가슴을 덮는다.

“....아멜리아 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남작이라면, 아마도요.”

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혹시 너무나도 서투른 그녀이기에 차마 전달하지 못한 걸까?

잔혹한 진실을 알게 된 그가 상심할 것을 염려해 탈출을 막은 걸까?

시우는 반사적으로 아멜리아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이런 걸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

뭐가 됐건 상관없는 일이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릴게요.”

“데네브.”

“응?”

“먼저 돌아가 줄래? 나는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아서.”

데네브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비레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중에 무슨 일인지 말해 줘야 해.”

데네브가 먼저 자리를 뜨고 알비레오와 단둘이 남게 된 시우.

알비레오는 잠시 기다리다가 고개를 든 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혼란스럽겠지만 마저 할 얘기가 있어요.”

“뭔가요....”

어깨가 축 늘어진 시우는 한눈에 보기에도 딱해 보였지만 언제나 업무와 마법 연구에 치여 사는 그녀이다.

알비레오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저는 당신이 현세로 돌아가 주었으면 해요.”

따라서.

구태여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본론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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