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17화 (117/917)

#117

1.

오두막에는 별달리 식당이 없었다.

부엌을 들여놓을 공간이 부족해 별채를 지어놓은 마당에 식사 테이블을 따로 놓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같이 목욕할까요?”

“푸훕!”

벽난로 앞에 앉은뱅이책상에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내어준 푸룬 주스를 마시던 시우는 실로 만화 같은 기세로 주스를 뿜어냈다.

“콜록! 콜록! 콜록!”

아멜리아의 멋들어진 염동 덕분에 단 한 방울도 튀거나 새어나가지 않고 빈 그릇으로 들어갔지만 말이다.

이 정도의 반응은 합당한 것이었다.

갑자기 함께 목욕하자니, 이게 무슨 말인가?

“네....?”

“제가 이곳에서 지낼 때 스승님과 함께 자주 목욕을 했었거든요. 저도 시우와 하고 싶어요.”

아멜리아는 또박또박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더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몸이 더 자란다면 꽤 어색한 그림이 나올 것 같았기에 한시라도 빨리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그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아멜리아의 작은 욕심이었다.

시우는 당황했다.

물론 쌍둥이와 함께 대욕장에 들러 그녀들의 알몸을 구경한 전례는 있다지만 그렇다고 혼욕이라는 파렴치한 행위가 자연스레 수긍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우의 반응을 본 아멜리아가 덧붙였다.

“물론 속옷은 입을 거예요. 시우도 속옷 입을 거고요.”

아멜리아의 머리 위에는 오늘 낮에 시우가 만들어주었던 화관이 아직도 씌워져 있었다.

꺾인 꽃대에서 풀물이 흘러나와도 아멜리아의 금발을 적셔도 그녀는 한사코 그 화관을 벗지 않았다.

“저는 상관없는데...”

속옷을 입어도 괜찮다는 말에 시우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멜리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물을 덥힐게요. 준비하고 나오세요.”

“네.”

아멜리아는 밖으로 나와 별채로 향했다.

창고처럼 생긴 좁은 별채에서 커다란 나무통 하나를 꺼내고 불을 지펴 물을 덥혔다.

주변의 보는 눈이 있더라면 이렇게 대담한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엔 병풍처럼 둘러선 굴피나무가 있고 달리 찾아오는 손님도 없다.

따뜻한 물로 가득 찬 나무통을 마당 앞까지 끌어낸 아멜리아, 그 뒤로 팬티 바람에 가운을 걸친 시우가 걸어온다.

“목욕을 여기서 하는 건가요?”

“네, 시우 먼저 들어갈래요?”

아멜리아는 시우가 벗은 가운을 받아들었다.

어차피 속옷도 있겠다 수영복차림과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남사스럽지는 않다.

나무통을 딛고 올라선 시우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봄이라 한들 밤은 꽤 쌀쌀했는데 온수에 입욕하자마자 따뜻함과 나른함이 몰려온다.

“잠시만 기다려요.”

가운을 곱게 개어 잔디밭에 올려놓은 아멜리아도 드레스를 벗기 시작했다.

시우는 열탕의 기운 때문인지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시선을 억지로 돌리고 있었다.

허리에 매어진 리본을 풀고 금세 속옷 차림이 된 아멜리아.

지금 아멜리아의 옷차림은 그녀가 가진 속옷 중에 그나마 노출도가 낮은 하얀 란제리였다.

사뿐사뿐 걸어간 아멜리아도 퐁당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첨벙첨벙

고즈넉한 숲속에 울리는 물소리.

나무통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아멜리아와 시우가 함께 들어간다면 어떻게든 피부가 맞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작다.

시우의 눈에는 허리까지 물에 잠겨있는 아멜리아의 상체가 들어왔다.

하얀 브래지어에 감싸인 탄력 넘치는 가슴과 일자로 곱게 뻗은 쇄골.

머리를 올려 묶은 까닭에 유독 돋보이는 사슴 같은 목선까지.

천재 조각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처럼 흠잡을 곳 하나 없는 토르소 같다.

“그렇게 불편하게 있지 말고 편히 앉아요.”

거의 쪼그라들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몸을 움츠리고 있는 시우에게 아멜리아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아멜리아 님과... 닿는걸요...”

“잘 때는 매일 같이 붙어서 자잖아요.”

그때는 엄연히 옷을 입고 있으니까요... 라고 굳이 꼬치꼬치 답하지는 않았다.

시우는 아멜리아의 말대로 조금 몸을 펼쳤다.

매끄러운 피부가 서로 맞닿는 것이 느껴진다.

시우가 자세를 편하게 하자 그제야 아멜리아도 욕조 바닥에 완전히 궁둥이를 붙였다.

시우는 턱밑까지 아멜리아는 가슴까지 잠기는 정도의 수위였다.

“잠깐만 눈 감아 볼래요?”

“네? 네.”

아멜리아의 말에 순순히 눈을 감는 시우.

-딱!

아멜리아는 마술사처럼 손가락을 튕기고는 시우에게 말했다.

“이제 떠요.”

슬며시 눈을 뜬 시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와아...!”

오두막에서 흘러나오던 은은한 불빛이 사라졌다.

도심의 광공해도 없는 숲의 한가운데서 그나마 빛을 밝혀주던 오두막에 마저 불빛이 사라졌으니 아주 어두컴컴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너무... 너무 예뻐요 아멜리아 님...”

욕조 주변은 주홍색의 불빛 대신 은빛의 광채로 반짝이고 있었다.

굴피나무로 둘러싸인 하늘은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 파랗게 빛나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시우는 한참이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쏟아질 듯한 별을 올려보았다.

“다 셀 수도 없을 것 같아요...”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은 잘 닦은 흑요석처럼 빛이 난다.

“시우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화려하지도 않고 특별히 호화롭지도 않지만 이 풍경만큼은 그와 함께 보고 싶었다.

그때 멍하니 뻗은 시우의 발이 아멜리아의 허벅지 안쪽을 꾹 눌렀다.

아무래도 자리가 좁다 보니 한 사람만 움직여도 서로 몸이 부딪친다.

“아,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뒤로 갈게요.”

그렇게 말한 아멜리아는 목 아래까지 푹 잠수하던 상태에 상체만 살짝 뒤로 들었다.

그 덕에 물에 잠시 잠겨있던 아멜리아의 윗몸이 물살을 가르며 떠올랐다.

“........”

시우는 별을 바라보던 것도 잊고 입을 벌린 채 아멜리아 쪽을 바라보았다.

뚫어지라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제 몰골을 확인하는 아멜리아.

아멜리아가 착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일반적인 속옷은 수영복과는 다르다.

안감이 두꺼워 물에 젖어도 끄떡없는 수영복과는 달리 수분을 머금은 속옷은 아래로 축 처지고 피부에 달라붙으며 아멜리아의 하얀 살갗을 고스란히 비쳐냈다.

시우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바라보고 있던 것도 연유가 있던 것이다.

아멜리아의 앙증맞은 유두부터 그 주변에 풋풋한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있는 유륜까지 흰 천 너머로 얼핏얼핏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죄, 죄송해요.”

시우는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힐끗힐끗 아멜리아의 가슴을 시선으로 훑는 것이 괜히 귀여워 보였다.

만약 시우와 정식으로 교제하게 되었다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막연한 거부감이 들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자신의 마음이 의외로 잔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상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반신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다른 수치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은 콩닥거리며 뛰고 있지만 가리고 싶다거나, 그가 보는 것이 싫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어린 모습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의 무언가가 변한 걸까.

“이리 와요. 씻겨 줄게요.”

아멜리아는 손으로 물을 떠 눈을 꼭 감고 있는 시우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미리 챙겨온 조그마한 바가지로 그의 머리까지 꼼꼼히 감겨준다.

마법으로 하면 한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느릿하고 비효율적인 행동 하나하나가 또다시 이토록 소중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는데.

살짝 뜨거웠던 물이 서늘하게 느껴질 때까지 아멜리아와 시우는 함께 몸을 씻었다.

3.

“푸하...”

시우는 아멜리아가 가져다준 차가운 우유를 마시며 벌게진 얼굴을 달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물에 들어가 있어서인지 손끝이 쭈글쭈글해졌다.

어차피 속옷을 입고하는 목욕이니 괜찮겠다는 생각은 꽤 안일했음이 틀림없다.

오히려 은근슬쩍만 가려주는 모양새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바람에 시우는 다리를 꼬고 목욕하느라 꽤나 곤욕을 치러야 했다.

‘고마워요, 시우.’

텅 빈 우유병을 내려놓고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던 시우는 문득 오늘 오전 아멜리아와 있던 일을 떠올렸다.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금잔화처럼 빛나던 아멜리아의 미소를.

별안간 가슴이 간질거렸다.

실실 웃음이 나올 것 같이 입꼬리가 움찔거린다.

“정신차리자.”

시우는 뺨을 찰싹찰싹 손으로 때렸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환한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더불어 여태껏 손의 촉감으로만 알고 있다가 오늘 눈으로 확인하게 된 아멜리아의 가슴이 회상의 디테일을 더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 너머로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시우 오늘도 같이 잘 건가요?”

“네,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갈게요.”

“알겠어요.”

겨우 짧은 문답을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괜스레 몸이 비비 꼬이는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아멜리아와 함께 잘 때 그녀는 가슴을 마음껏 만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시간이 늦어 함께 자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어제 그녀의 야릇한 모습도 떠올랐다.

한참 이성에 관심이 많이 생길 사내아이에게는 조금 자극적인 모습들이 말이다.

그 청순하고 인자한 스승 같던 아멜리아가 젖꼭지를 쪼물거릴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떨던 모습은 시우에게 묘한 정복감을 심어주었다.

오늘도 허락받을 수 있을까?

질척질척한 성욕이라기보다는 강렬한 호기심에 의해 시우는 아랫도리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멜리아가 새로 가져다준 베이지색 파자마로 옷을 갈아입은 시우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아멜리아의 방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세요.”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지붕 모양에 따라 삼각형으로 난 창문이다.

창문을 머리판으로 둔 것처럼 놓여있는 침대에는 아멜리아가 베개에 등을 기댄 채 이불 안에 쏙 들어가 있었다.

그녀의 고운 머릿결이 달빛에서 파스락거린다.

“시우, 아직도 혼자 자는 게 무서운가요?”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아멜리아와 함께 자는 것이 좋을 뿐이다, 라는 말을 숙맥이나 다름없는 시우가 꺼낼 수 있을 리 없다.

머뭇거리는 시우에게 아멜리아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우.”

“네?”

“아까 왜 제 가슴을 봤나요?”

“네...?”

“목욕할 때요.”

아멜리아의 직설적인 질문에 시우는 사색이 되었다.

둘의 관계가 어찌 됐건 함부로 몸을 보는 것은 실례이다.

그래서 최대한 본능적으로 가슴을 향하는 시선을 억눌렀던 것인데, 아멜리아는 모두 눈치채고 있던 것이다.

“저, 아, 그게....”

어쩔 줄 몰라하는 시우.

질책이 떨어질까 겁을 내는 그에게 아멜리아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화내려는게 아니에요.”

“죄송해요....”

아멜리아의 옆에 서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시우는 면목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다.

“솔직하게 말해 줄래요?”

“........”

잠깐 망설이던 시우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게 화난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저절로 눈이 가서...”

“시우, 괜찮아요. 혼내는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고개 들어요.”

당황한 그를 진정시키는 듯한 다정다감한 말에 시우도 용기를 얻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멜리아는 여전히 베개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 시우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시우, 고마웠어요. 저한테 멋진 화관을 선물해줘서.”

“아, 네. 다음에도 또 만들어 드릴게요.”

“네, 기대할게요.”

그 눈빛이 멋쩍어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대화가 끊긴 까닭에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멜리아는 헛기침을 하더니 시우를 바라보고 말한다.

“원래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알아요.”

사라락.

하얀 이불이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멜리아가 앉은 자세 그대로 턱밑까지 끌어올려 붙잡고 있던 이불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옷 위로 태가 드러난다, 젖은 속옷 탓에 안이 비쳐 보인다,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알몸이다.

살짝 위로 솟은 물방울 형의 가슴이 실 한 올의 방해도 없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있다.

달콤한 복숭아처럼 생긴 아멜리아의 가슴은 그녀가 수줍은 듯 입가를 가릴 때마다 은은하게 흔들렸다.

“그래도, 저도 시우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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