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1.
쌍둥이와 시우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아르스 마그나 타운에 있는 플로라 양장점이었다.
모처럼 귀여운 조수님이 되었으니 옷을 맞춰주자고 생각한 것이다.
“어린 남자아이 옷도 맞춰주실 수 있나요?”
“돈은 많이 낼게요!”
여느때와 다름없이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플로라는 신이 잔뜩 나 재잘거리는 쌍둥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머나이 가문의 쌍둥이가 말썽꾸러기라는 말은 백작에게서 들어 누누이 알고 있었다.
옷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각오가 엿보이는 모습에 소원을 들어주었다.
“안될 것도 없지.”
그것도 그렇지만 새로 찾아온 꼬마 손님이 퍽 귀여웠기에 플로라는 흔쾌히 허락했다.
몸의 치수를 재고 나이에 걸맞게 꼬마 양복을 만들어 주었다.
정장 바지에 하얀 셔츠, 파란 넥타이와 조끼라는 귀여운 스타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깔끔하게 올백으로 넘겨 마무리.
옷을 갈아입고 나온 시우를 본 쌍둥이는 거의 혼절할 지경으로 꺄아꺄아 소리를 질러댔다.
“조수님! 너무 귀여워!”
“언니... 나 현기증 나...”
시우의 주변에서 포위섬멸진을 펼친 것처럼 빙빙 도는 쌍둥이.
플로라도 모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 광경을 구경했다.
원래 창작가는 반응이 좋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안대는 서비스야. 제머나이 백작에게 안부라도 전해줘.”
“네! 감사합니다!”
“너무 이뻐요. 아라베스크님!”
오딜과 오데트는 시우의 손을 한쪽씩 잡았다.
“조수님 이럴 때가 아니야.”
“아르스 마그나 타운에 조수님의 귀여움을 설파해야 해요.”
“이,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마세요~라고 하는 조수님도 귀여워!”
온갖 호들갑과 깨방정을 떨어대는 쌍둥이와 그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하고 쩔쩔매는 시우.
모처럼 예쁜 옷도 생겼고 칭찬도 기분 좋다지만 이건 좀 과하다.
게다가 시우는 귀엽다는 말보다 멋있다는 말이 듣고 싶은 남자아이였다.
“우우우웅....! 껴안아서 터뜨리고 싶다.”
“언니! 다음엔 내가 안을래!”
쌍둥이는 시우를 번갈아 안으며 타운의 인도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내가 말했잖아. 공중 욕장이라고.”
“아, 목욕탕이요?”
“네, 레바나 대욕장이라는 곳인데 마녀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욕장이에요.”
“그럼... 목욕탕을 같이 가는 건가요?”
“당연하지!”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 사색이 된 시우.
아무리 시우를 예뻐해 준다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구태여 뭔가를 말하지는 않는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불안한 마음을 안고 묵묵히 따라갈 뿐.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여기가 진짜 목욕탕 입구라고?’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의 앞이었다.
2.
레바나 대욕장.
예소드 백작이 1800년도에 건설한 게헨나 최대 규모의 호화 욕장이다.
동네 목욕탕처럼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며 아르스 마그나 타운의 알짜배기 땅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어지간한 재산으로는 연회비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이용료가 비싸다.
다만 ‘레바나 대욕장의 회원권이 없다면 게헨나의 풍요를 절반만 누리는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값비싼 이용료에 견주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저 욕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교회 역할을 하는 회당 및 카지노, 온갖 서적들이 모인 도서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전세계 미주들이 총집합한 바, 연극이나 오페라 또는 오케스트라를 공연하는 극장 등 위락시설이 군집해 있는 마녀들의 천국이다.
추가로 넓은 부지 내에 저택을 지어 욕장 근처에 지내며 생활할 마녀에게 대여하며 숙박업도 겸하고 있다.
작위가 없어 아르그 마그나 타운에서 거주할 수 없는 마녀들의 대다수는 이곳에서 생활할 만큼 규모가 큰 시설이었으니, 그저 으리으리한 목욕탕을 예상했던 시우로서는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어때?”
“아름다워요...”
“그치? 안에는 더 예뻐.”
“입 벌린 조수님도 귀여워요....”
여전히 시우에게 정신이 팔려 자꾸만 그를 끌어안는 오데트와 씩씩하게 앞장서는 오딜.
시우는 박물관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여기가 정말 목욕탕이 맞나요?”
“응, 이제부터 옷을 갈아입을 거야. 따라와.”
“네?”
오딜은 어리둥절하는 시우의 팔을 이끌고 한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마중을 나왔다.
“레바나 대욕장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머나이 오딜 님, 제머나이 오데트 님.”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환대한 여자는 시우를 보고 흠칫한다.
쌍둥이가 욕장에 누군가를 데려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녕?”
“이분도 함께 들어가시는 건가요? 아니면 곧장 개인 욕장으로 가시는 건가요?”
“중앙 욕탕 정도는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다면 이걸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접객원이라 해야 할지 안내원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여자는 오딜의 손에 얇은 천으로 된 띠를 건네주었고 오딜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받아들었다.
“귀중품은 저희 대욕장에서 맡아드리겠습니다. 오늘도 부디 레바나 대욕장에서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다시 고개를 꾸벅 조아리고 사라지는 여자.
그녀가 나가자마자 오딜과 오데트가 드레스를 벗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시우는 황급하게 손을 휘적이며 당황한다.
“뭐 어때? 여기 탈의실인걸?”
“네? 탈의실이요?”
“저희는 돈을 많이 내서 개인 탈의실이 지급돼요. 아! 전용 욕장도요.”
일종의 VIP 회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까?
그러나 시우가 당황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설마하니 탈의실에서 함께 옷을 갈아입을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거기에 어지간한 호텔 객실보다 좋아 보이는 방이 탈의실이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스트립쇼에 당황한 것이다..
“저, 저는 역시 안 들어갈래요.”
“뭐 어때요? 괜찮아요! 어차피 저희 이미...”
오데트가 무언가 알려주려 하자 오딜이 재빨리 만류한다.
“쉿 오데트, 굳이 말할 필요 있어? 귀엽잖아. 반응 더 지켜보자.”
“그럴까?”
시우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사락사락 드레스의 끈이 풀려가는 소리와 옷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조수님, 부끄러워?”
“부끄러워하는 조수님도 귀여워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시우의 옷에 닿는 손길들.
시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대로 눈 꼭 감고 있어.”
“저희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 벗고 있어요. 눈 뜨면 안 돼요~ 조수님 변태 아니시죠?”
“아, 아니에요....”
일부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슬쩍슬쩍 귀에 바람까지 불어넣으며 속삭이는 탓에 시우의 얼굴이 거의 폭발 직전까지 붉어졌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시우의 손을 조심스럽게 끌어내리는 오딜.
안대가 풀리고 대신 검은 천을 그의 눈가에 감았다.
“이제 눈 떠 볼래요?”
“싫어요.”
“괜찮아, 눈가리개 씌웠잖아. 정말 안 보일 거라니까?”
쌍둥이에 채근에 어쩔 수 없이 조심조심 고개를 들고 눈을 뜨는 시우.
“앗!”
그러나 시우의 눈에 둘린 천은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기에는 너무나도 얇았다.
나란히 서 있는 오딜과 오데트의 희끗한 알몸이 보이는 듯하여 다시 고개를 숙이려 하자 쌍둥이는 꺄아꺄아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조수님 부끄러운 거야?”
“정말 괜찮다니까요! 한 번 보세요!”
“저, 정말요?”
“그럼요!”
속는 셈 치고 다시 고개를 드는 시우.
사실 아리땁고 붙임성 좋은 쌍둥이의 알몸이 보고 싶지 않냐면 그건 거짓말이다.
한참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인 것이다.
“아....”
그제야 시우는 볼 수 있었다.
겹겹이 올이 짜인 눈가리대 사이로 쌍둥이의 알몸이 보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희끄무레했다.
다른 곳은 사물이 식별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비쳐 보였지만 음부와 가슴은 무슨 모자이크 보정이라도 들어간 듯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법이 걸린 눈가리개야. 신기하지? 남자는 그걸 두르고 들어가야 해.”
“조수님 당황하는 것도 귀여워요...”
시우의 반응이 재밌는 듯이 씨익 웃는 오딜과 현기증이 난 것처럼 휘청이는 오데트.
“조수님은 옷 다 벗고 이걸 허리에 두르면 돼.”
오딜은 시우의 손에 커다란 수건을 건네주었다.
시우는 주춤거리며 눈치를 보다 말했다.
“저 혼자 갈아입고 와도 괜찮을까요?”
“음....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허가를 받은 시우는 눈치를 보고 탈의석 구석탱이로 갔다.
옷을 재빨리 벗은 뒤 허리에 착용하게끔 되어있는 수건을 두른다.
뭔가 치마 같아서 아랫도리가 훤하긴 했지만 다행히 알몸이 아닌 것을 위안으로 여겼다.
“이제 들어가 볼까?”
“꼭... 가야 하나요?”
““응! 꼭!””
단호하게 답한 쌍둥이는 시우의 손을 한쪽씩 붙잡고 중앙 욕장으로 향했다.
3.
“와....”
탈의실에서 중앙욕장까지 닿는 회랑을 거쳐 발을 들인 시우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선 굉장히 넓다, 높다, 밝다.
축구장만큼이나 널따란 욕장 바닥에는 이집트에서 들여온 대리석이 타일 대신 깔려있었고, 높다란 돔형 지붕에 설치된 팔각형의 장식 유리는 햇빛을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만들어 주었다.
회벽을 바른 천장과 벽에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호화로움을 더하고, 뜨거운 온천수가 넘실거리는 욕조마다 조각상과 분수대가 놓여있었다.
욕장 안을 뿌옇게 채운 수증기에서 기분 좋은 물 냄새와 함께 향긋한 허브향이 풍겨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반응 똑같다. 그치?”
“응! 영산 놀러 갔을 때 조수님 보는 것 같아.”
쌍둥이가 재잘거리건 말건 시우는 욕장을 둘러보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2000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대규모의 욕장인데 정작 사람은 몇 없다.
수십 명이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좀 더 둘러봐도 될까요?”
“다른 마녀들을 너무 빤히 바라보지만 않으면 괜찮아.”
“네!”
“그럼 우리는 뱅쇼 마시고 있을게!”
어디선가 들고 온 뱅쇼에 빨대를 꽂아 쪽쪽 마시는 쌍둥이를 뒤로하고 시우는 매끄러운 바닥을 밟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녀들의 복장도, 욕장을 즐기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드레스를 갖춰 입고 썬베드에 여유롭게 드러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누군가는 옷을 홀딱 벗은 채 장미가 떠다니는 욕조에 누워 술을 마신다.
어딘가에서는 생허브를 모아만든 붓을 든 시녀가 향유를 찍어 마녀의 몸 위에 바르고 있었고, 몇몇 마녀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평화롭고, 화려하고, 압도당하는 듯한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이 곳곳에서 줄기줄기 뻗어있다.
시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자 한 마녀가 다가왔다.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육감적인 몸매의 마녀였다.
눈가리개를 넘어서까지 신체 볼륨이 독보적인 것이 보였으니까.
“길을 잃었니? 꼬마야?”
허리를 숙여 시우와 눈높이를 맞추고 귀 뒤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묻는 상냥하게 말하는 마녀.
어째서인지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은 입술을 날름 핥고 있었다.
“아, 아니요... 그냥 구경 중이었어요...”
“아하, 구경 중이었구나? 참 예쁘지?”
“네, 너무 멋져요...”
“어디가 가장 마음에 들어?”
“저는 벽화가 가장 예쁜 것 같아요.”
아예 자리에서 쪼그려 앉아 시우와 대화를 시작한 붉은 머리의 마녀.
“혹시 누나가 곤란한 일이 생겼는데 도와줄 수 있을까?”
“제가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몸에 향유를 발라줄 사람이 필요해서 말이야. 구석구석, 아~주 구석구석.”
“네..네...네?”
시우가 허둥지둥거리고 있자 그 주위로 몇몇 마녀가 더 몰려들었다.
“어머, 이 애는 누구야?”
“그냥 구경 왔다네. 귀여워서 놀아주고 있었어.”
“놀아주긴 무슨. 또 데려가서 키우려고? 근데 정말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네.”
“그렇지?”
아예 시우의 주위를 둘러싼 마녀들은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손톱을 세운 손끝으로 슬쩍 어깨를 더듬거나 했다.
다분히 성적인 의미가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꼬마야, 네 주인님은 어딨니?”
“저, 저기에...”
시우의 손끝을 시선으로 따라간 마녀들은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흩어졌다.
거기에는 뿔이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쌍둥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견습마녀라 할지라도 지체 높은 제머나이의 노예를 탐낼 정도로 배포가 크진 않았던 것이다.
“조수님! 이게 뭐야! 잠깐 안 본 사이에...”
낯선 누님들에게 둘러싸여 몹쓸 짓을 당할 뻔했던 시우는 미아가 됐다 엄마를 발견한 아이처럼 반갑게 오딜에게 달려갔다.
“나쁜 짓 당하지는 않았어요?”
시우가 오자마자 걱정스레 묻는 오데트.
“네, 네 좀 놀랐을 뿐이에요.”
“조수님 미안해, 계속 붙어 있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그냥 말을 걸어주신 것뿐인데요.”
“이리와, 괜찮아 괜찮아.”
오딜은 시우를 품으로 쏙 끌어당겼다.
별안간 그녀의 맨살과 맞닿게 된 시우는 촉촉하고도 부드러운 맨살의 감촉에 쭈뼛쭈뼛 굳었다.
“여기는 너무 위험해서 안 되겠다. 개인 욕장으로 가자.”
“맞아요, 조수님, 저희끼리 가서 놀아요.”
“그, 그럴까요?”
어리둥절해 하는 시우의 팔목을 끌고 쌍둥이는 제머나이 백작가가 대여한 개인 욕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