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10화 (110/917)

#110

1.

한가로운 아멜리아 저택의 정원을 가로지르는 떠들썩한 목소리.

아카데미에서 포탈로 나온 쌍둥이는 물도마뱀 걸음을 펑펑 사용하며 정원을 달리고 있었다.

“오데트 달려! 오데트! 왤케 느려!”

“언니이이! 조금만 기다려어!”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시우가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왔던 쌍둥이,

그들이 발견한 것은 꼭두각시처럼 무뚝뚝한 시우였다.

이후 슬픔에 잠긴 쌍둥이는 저택에 돌아가자마자 제머나이 백작을 붙잡고 치유마법을 가르쳐달라고 떼썼다.

쌍둥이의 심정을 짐작하는 제머나이는 어쩔 수 없이 저택의 비고를 열어 쌍둥이를 들였고 쌍둥이는 공부에 열중했다.

거기서 이해할 수도 없는 전문 서적들을 뒤적이며 끙끙거리길 얼마나 지났을까?

시녀장 갈리나를 통해 희보가 전해졌다.

무려 케테르 공작이 손수 나서서 시우를 치료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책더미와 종이들을 내던지고 시우를 찾아왔다.

다름 아닌 케테르 공작의 치료라면 이번에야말로 완치되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정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호다닥 2층으로 올라가 곧장 아멜리아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두들기는 쌍둥이.

“부교수님! 부교수님!”

“들어가도 될까요?”

스르륵 열리는 문.

그렇게 마주한 아멜리아는 오랜만에 꽤 밝은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는 감정이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중충한 먹구름이 머리에 둥둥 떠다니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화창한 햇살과 함께 무지개가 떠 있는 듯하다.

“조수님 만나도 괜찮을까요?”

“조수님이 회복하셨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같이 놀러 가고 싶어요!””

쌍둥이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아멜리아가 말했다.

“이제는 제 허락을 받을 필요 없어요. 신시우 조수는 이제 노예가 아니니까요.”

“네?”

“가보세요.”

자세한 설명 없이 떨어지는 축객령에 쌍둥이는 얌전히 나왔다.

노예가 아니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의미일까?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심사숙고하기에는 조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급선무이다.

게다가 뭐가 어찌 됐건 더 이상 허락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그와 놀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모르겠어. 근데 그게 중요해?”

“아니지. 오히려 잘된 거 아닌가?”

쌍둥이는 마실 나온 새끼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 시우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조수님 우리 왔어!”

“조수님 저희 왔어요!”

오늘따라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방안.

테이블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던 시우가 화들짝 놀라며 갑자기 열린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쌍둥이는 보았다.

건장한 청년 조수 신시우를 대신해 그의 자리에 앉아있는 쪼끄마한 꼬맹이를.

“읭?”

“어라?”

잠깐의 정적.

시우는 열심히 끄적이던 종이를 정리하고 의자에서 내려와 쌍둥이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검은 눈에 검은 머리카락.

시우의 것과 똑같다.

게다가 왼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는 것까지 말이다.

묘하게 닮은 생김새까지 쌍둥이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 묻는다.

“얘야, 혹시 신시우 조수님이 어디 계신지 아니?”

“아, 제가 신시우...인데...”

“......?”

“......?”

한참 시우의 얼굴을 보다 서로를 마주 보는 쌍둥이.

혼란이 가중되기 전에 시우가 설명했다.

자세한 영문을 알 수는 없지만 어찌어찌한 일을 겪어 지금 몸이 어려졌다.

기억도 부분부분 섞이고 흐릿해진 상태이다.

그래도 곧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까지.

차분하게 말을 듣던 쌍둥이는 나란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 그럼 조수님이 꼬마가 된 거구나?”

“네, 네... 그런 것 같아요.”

“조수님, 제가 누구인지는 기억하시겠어요?”

시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데트에게 말했다.

아주 오래전에 암기했던 수학 공식을 떠올리는 것 같달까.

필사적으로 집중하면 흐릿하게 기억 같은 것이 떠오르기는 한다.

“오데트 님, 맞으신가요?”

“정답!”

“그럼, 나는?”

오딜도 제 가슴에 척 손가락을 얹으며 물었다.

시우는 이번에도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딜 님이세요.”

“역시 나는 안 까먹는구나?”

오딜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확인작업과 상황판단이 끝나자 새삼 시우의 모습을 가만히 보는 쌍둥이.

첫 만남의 당황스러움이 그의 해명으로 쓸려나가자 지금 시우의 상태가 눈에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딜과 오데트는 사뿐사뿐 걸어와 시우의 앞에 섰다.

그의 무사함을 눈으로 확인하자 한동안 시끌벅적한 꼬마 시우 품평회가 일어났다.

“키가 나보다 작아졌잖아?”

오딜의 턱끝에 간신히 닿는 작은 키부터.

“언니, 피부 좀 봐. 완전 애기 피부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탓에 흉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조수님 파자마 너무 잘 어울린다!”

하늘색 땡땡이 파자마.

위화감이 전혀 없이 쏙 들어맞는다.

이 사람이 그 훤칠했던 시우 조수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마치 인형을 구경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들춰 보았다.

팔을 잡고 빙글빙글 돌려보기도 하고 뺨을 콕콕 찔러보기도 했다.

야단법석이 난 쌍둥이들의 환영식에 어안이 벙벙해진 시우가 멍하니 있을 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오딜이 헛기침을 했다.

“조수님.”

“네, 오딜 님.”

이 모습을 보자마자 꼭 시켜보고 싶은 것이 방금 생겼기 때문이다.

오딜은 흥분으로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오딜 누나라고 말해 봐주라.”

“어? 저도요! 오데트 누나라고 해주세요!”

“가만히 있으렴 오데트, 내가 제일 먼저 들을 거야!”

“가위바위보로 하자 언니! 이런 건 불공평해!”

“무슨 소리야? 아이디어를 내가 먼저 냈잖아? 이제와서 끼어들려는 네 태도가 불공평한 거지.”

한마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따다다다 서로 신경전을 시작한 쌍둥이를 보며 시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시우 조수와 쏙 빼닮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조수님 어린 시절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오딜 누나, 오데트 누나.... 이렇게요?”

쓸데없는 쌍둥이의 다툼을 막기 위해서인지 거의 틈 없이 재빠르게 말하는 시우.

“........”

“........”

누가 먼저 누나 소리를 듣겠냐로 시끄러웠던 쌍둥이들이 입을 꼭 다문다.

시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동시에 조용해졌다.

뭔가 잘못했나 싶어 순서를 바꿔서 한 번 더 말하는 시우.

“오데트 누나, 오딜 누나. 괜히 싸우실까 봐요...”

“........”

“........”

정정 이후에도 쌍둥이는 입을 반쯤 벌리고 시우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비록 오딜과 오데트가 견습마녀라지만 그 이전에 귀엽고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다.

귀여운 시우와 달콤한 시우의 애교 아닌 애교는 분단으로 금이 갔던 쌍둥이의 마음을 사르륵 녹이기에 충분한 화력이었다.

“꺄아! 꼬마 조수님 너무 귀여워. 여기여기 볼 말랑말랑한 거 봐.”

“귀여워, 귀여워! 조수님 귀여워요!”

오딜은 시우에게 찰싹 달라붙어 말랑말랑한 볼을 꼬집으며 제 뺨을 비볐다.

오데트도 호들갑을 떨며 시우를 끌어안았다가 놓았다가 머리를 쓰다듬다 한다.

한참 동안 시우를 쓰다듬으며 귀엽다를 각각 200회 정도 연호한 오딜과 오데트는 시우를 꼬옥 끌어안았다.

열렬히 시우를 귀여워하던 쌍둥이는 그에게 찰싹 달라붙은 채 입꼬리가 녹아버렸다.

“약간 안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가 와...”

“언니, 우리 조수님 데려가서 키우자...”

“사이에 두고 껴안고 자면 좋겠지?”

“웅....”

머릿속에서 벌써 시우를 저택으로 데리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쌍둥이 샌드위치 사이에 끼어버린 시우는 쩔쩔매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조수님, 그럼 기억은 거의 안 돌아온 거야? 어디까지 기억해?”

“저희랑 놀았던 것도 기억 안 나요?”

“네, 두 분 성함이랑 견습마녀라는 것밖엔... 근데 저 목 좀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아, 미안미안.”

쌍둥이는 답답해하는 시우를 보고 나서야 겨우 그를 풀어주었다.

“조수님은 우리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줬어.”

“어른일 때 조수님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지금 이 모습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시시덕거리는 쌍둥이의 모습에 시우는 괜스레 쑥스러워져 시선을 피했다.

쌍둥이는 그런 시우의 소매를 잡아 당기며 재촉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맞아요, 조수님! 저희랑 놀러 가지 않을래요?”

“놀러....?”

“응! 사양할 것 없어. 옷도 사고 같이 대욕장도 가자.”

“언니, 그거 좋다! 조수님조수님! 대욕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세요? 꼭 함께 가고 싶어요. 저희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거든요.”

“하지만...”

사실 시우에게 쌍둥이는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간 쌓았던 기억이 모조리 봉인 중이니 말이다.

그러나 묘한 친밀감이 느껴지는 데다가 워낙에 잘 대해주는 탓에 아멜리아를 처음 봤을 때 같은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네, 가볼래요.”

“와!”

“잘 생각했어 조수님! 으휴~ 귀여워.”

고작 대답 한 번 했을 뿐인데 머리를 잔뜩 쓰다듬는 오딜.

뭘 해도 귀엽다 귀엽다를 외치며 방방 날뛰는 쌍둥이들 덕에 시우도 약간 기분이 업 되었다.

원래 어린 나이에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 전에 아멜리아 님에게 허락을 받고 올게요.”

“네? 조수님은 이제 노예가 아니라고...”

“가만히 있어 오데트, 그래야겠네.”

“네.”

시우에게 맞는 옷이라곤 케테르 공작이 입혀서 돌려준 파자마밖에 없었기에 파자마 차림으로 나섰다.

“언니, 왜 굳이 허락을 받아야 해?”

“우선은 예의라는 게 있잖아.”

닫히는 문틈으로 쌍둥이의 수다를 들으며 복도를 가로지른다.

-똑똑

노크를 하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아멜리아는 테이블에 앉아 그동안 밀린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사실 22 위계라는 벽을 한 번 더 뛰어넘으며 얻은 것이 많다.

시우의 상태가 어느 정도 정상이 된 인제야 그것을 정리해가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요?”

분명히 쌍둥이들과 놀기로 했던 것 같은데 혼자서 쪼르륵 들어온 시우를 아멜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았다.

“아멜리아 님, 견습마녀분들과 함께 놀러 갔다 와도 괜찮을까요?”

어제와 비교하면 아멜리아를 대하는 시우의 태도에선 한결 여유가 느껴졌다.

그녀는 마치 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시우를 정성껏 돌봐주었기에 좋은 인상이 남은 것이다.

게다가...

어제 만지작거렸던 아멜리아의 가슴이 떠오른다.

그때는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짓이다.

그 감촉이 자꾸만 떠올라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정작 그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태연했지만 말이다.

“다녀오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꾸벅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자 아멜리아가 덧붙였다.

“그리고 시우, 이제 제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이제 제 노예도 무엇도 아닌걸요.”

“그래도 저를 돌봐주시는 분이잖아요. 예의상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상외의 답변에 멈칫한 아멜리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딘가를 오갈 때는 행선지만 말해주세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네. 그럼.....”

“마지막으로 시우.”

“네?”

아멜리아는 시우를 불러세웠다.

퍼득 머릿속을 무언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바로 본격적인 성교는 아니더라도 쌍둥이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던 과거 그의 모습을 말이다.

어떻게 말을 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주 크게 빙 돌아 말했다.

“...견습마녀들과 너무 못된 짓은 하지 말아요.”

시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알아들은 기색은 아니었지만 사실 별일 있을까 싶었다.

“네,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아멜리아 님.”

시우는 마찬가지로 배꼽 인사를 하더니 방을 나섰다.

아멜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섰다.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에게 한 손씩 이끌린 시우가 아카데미 쪽으로 내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자신이 선대 메리골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멜리아가 그에게 해주고 있는 것은 죄다 스승님께 받았던 일들이니 말이다.

이것으로 용서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자꾸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곰곰이 생각에 잠긴 아멜리아의 눈에서 세 사람이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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