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03화 (103/917)

#103

1.

방안에 우두커니 선 시우는 자신이 그린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원과 경계에 간섭하기 위한 게헨나의 결계 마법을 시우만의 방법으로 풀어내 해석한 것이었다.

“.........”

머릿속으로 끝없이 마법에 대해 연산을 하는 한편 고민에 잠긴다.

아니, 새삼 고민의 잠긴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마법에 대해 사고했고, 의식이 있는 동안에 마법 이외의 것은 떠올리지 않았다.

시우는 나무의 줄기 부분에 손을 대었다.

그 손바닥에 마력이 발현되어 나무의 줄기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남성은 마력을 보존할 수 없고 지금의 시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주아주 조금의 마력만 있다면 충분했다.

마력 회로에 억지로 붙잡아두며 보존했던 마력을 일 회 증폭한다.

그렇게 증폭시킨 마력을 다시 증폭한다.

증폭한 마력을 또다시 증폭한다.

통상 이런 기법은 ‘마력의 거듭증폭’이라 불린다.

마법진을 짤 때 최대한의 효율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다.

단, 이 기법이 완전무결하다면 시중에 상급 마력수가 값비싼 가격에 팔려나갈리 없다.

거듭증폭 기법은 두 가지 부분에서 한계를 지닌다.

하나, 마력은 증폭될수록 총량이 늘어나나 순도는 점차 떨어진다는 것.

둘, 순도가 떨어진 마력은 언제든지 노이즈가 발생할 수 있으며, 강력한 휘발성이 생겨 회로 세부에 작용하기도 전에 소멸한다는 것.

보통 두 번만 거듭증폭을 해도 마력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지기에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우는 달랐다.

외부로부터 마력을 ‘흡수’하고 그걸 ‘정제’해 자기화하는 능력은 일전에도 특출났던 시우다.

뇌 기능의 99%가 마법을 위해 재설계된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증폭시킨 마력이 거의 일정한 순도를 유지한다.

그렇게 증폭된 마력이 나무에 스며들고 계속 무엇인가를 탐지한다.

이 나무는 게헨나 전체를 둘러싼 케테르 공작의 이면결계와 연결되어 있다.

시우가 찾고 있는 것은 결계에 뚫린 구멍.

예전부터 그의 감각을 거슬리게 했던 아주 작은 틈새다.

특별히 목적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법의 향상을 위해 결계를 관찰하던 중 이질감을 느껴 그 부분을 집요하게 찾고 있을 뿐.

그 틈새가 남아있는 이상 케테르 공작의 결계는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시우는 그 불완전함을 참을 수 없었다.

이토록 완벽한 결계에 흠이 가 있다니.

신발을 신은 채 침대에서 자는 것 같은 생리적인 거부감에 그것을 제거하고 싶다는 사고만을 떠올릴 뿐이다.

그때.

매끈한 비단을 쓰다듬는 중 느껴진 보풀처럼 시우는 결계의 흠결이 느껴지던 장소를 특정했다.

시우는 주저하지 않았다.

증폭시켰던 마력을 모조리 회수하여 ‘문’을 연다.

그의 발밑에 금빛의 원이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일렁이며 역류하는 마력의 파동 속에서 시우는 까마득한 거리를 단숨에 주파했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것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류를 발견했다.

어떤 물건이 결계를 강제로 박리시키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마법의 작용이었기에 시우는 한동안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해석할 수 있을까?

따라 할 수 있을까?

마법에 보탬이 될까?

“마침 분해 죽을 것 같았는데. 아주 잘 됐어.”

소란과 함께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마력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시우는 최초로 자신의 앞에선 인물의 존재를 인식했다.

여자다.

알몸이다.

그녀는 명백히 적대적인 마법을 시우에게 행사하고 있었다.

그제야 시우는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즉각 콧잔등이 찌푸려진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구와 거기에 연결된 시신경, 그리고 시신경으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는 뇌까지.

이미 마법을 위해 특화되어 있다.

마력의 흐름을 읽고, 법칙을 꿰뚫어 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모든 사물이 마법적으로 해석되어 머릿속의 황금빛 프랙탈을 그렸지만 정작 그 대가로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은 한참이나 퇴보했다.

따라서 에아의 얼굴은 짓뭉개진 찰흙처럼 이리저리 뒤틀려 보였고 그마저도 수많은 수식과 기하학적인 문양의 잔재에 흐려진다.

곰곰이 생각하던 시우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상대의 마력 패턴, 지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고유의 패턴이 무척이나 익숙하다고.

안대로 덮인 왼쪽 눈이 지끈거려온다.

가슴 속에서 붉은색 불꽃이 튀었다.

불쾌감, 분노, 짜증.

마법에 하등 상관없는 불편한 감정들이 마음을 뒤덮는다.

그리고 시우는 깨달았다.

우선 저것을 제거하는 것이 먼저임을.

2.

에아는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유유자적 쌍둥이와 마법을 사용하는 노예를 놀아주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에아는 무척 화가 나 있었고 눈앞에는 딱 적당한 분풀이 상대가 있었다.

“피어라.”

시우가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그 몸 위로 그림자가 흘러나온다.

거기서 에아는 눈을 찌푸렸다.

저번 대치 때 그는 비싼 마력수를 들이마셔가며 매우 비효율적인 전투를 감행했다.

낙인이 없다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 꼴이 참 우스웠는데.

이번에는 마력수를 사용하지도 않고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흘러나온 그림자는 그의 몸을 뱀처럼 휘감는다.

먹빛의 갑주.

여전히 광택은 없다.

그러나 에아는 알 수 있었다.

예전과 비교하면 정교함이 다르다.

그 전의 갑옷이 그저 투박하게 모양만 흉내를 낸 조잡한 방어구였다면 지금은 얼추 모양새가 그럴듯하다.

꼼꼼히 뜯어보아도 저것이 그림자로 찍어낸 것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플레이트 갑옷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에아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어디서 구르는 재주를 배워왔는지는 몰라도 고작해야 남자다.

그 전처럼 일수에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일제사격.”

-기기기긱

뭘 하든지 팔다리는 떼어놓고 시작하자.

탈출하기까지 남은 30분 동안 태어난 걸 후회할 정도로 절절한 고통을 안겨주자.

공중에서 꼬아진 10가닥의 리본이 동시에 시우에게 쏘아진다.

-투쾅!

눈 깜짝할 사이에 시우에게 쇄도한 리본은 그의 몸을 멀리멀리 날려버렸다.

폭음과 함께 포탄처럼 날아간 그는 바위틈에 처박히고서야 난데없는 비행을 멈췄다.

“뭐야!”

놀란 것은 에아였다.

다르게 단단히 벼르고 나온 듯한 모양새에 나름 전력으로 응해주었다.

물론 위계가 내려가기 전 힘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어떻게 막아보려는 시도는 해볼 줄 알고 공격을 날렸는데 그대로 몸으로 받아버리다니.

분풀이도 못 하고 단번에 곤죽이 되어 버렸다면 곤란하다.

에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시우를 걱정하는 한편.

바위를 부스며 날아간 시우는 멀뚱히 제 몸을 바라보았다.

“.........”

너무 빨라서 뭐가 뭔지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다.

충격을 받은 몸 전체가 찌릿찌릿거리며 떨린다.

입가에서는 주르륵 피가 흘렀다.

그러나 회심의 일격이 작렬한 갑옷만큼은 아주 멀쩡했다.

원래의 역할대로 충분히 충격을 감쇄시켜 준 것이다.

팔다리를 움직여 보자 아무런 지장 없이 움직인다.

뼈도, 힘줄도, 근육도, 마법 회로도 모두 정상이었다.

시우는 몸을 일으켰다.

갑옷 위로 쌓여있던 돌 부스러기들이 굴러나가고 먼지까지 깔끔하게 떨쳐지며 새로 만든 듯 깨끗하게 변했다.

그의 시선은 100M가량 앞에 있는 에아를 향해 있었다.

-화아악!

그림자의 날개가 펼쳐지고 시우의 몸은 튕겨 나가던 속도보다 빠르게 에아를 향해 돌진했다.

“그래, 벌써 죽으면 안 되지!”

신이 난 듯이 리본을 펼치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여자.

탄력을 축적하며 핑그르르 꼬이는 리본은 아까의 공격이 다시 준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우의 손에서 방패가 떠올랐다.

전신의 절반을 가릴 만큼 방패를 앞세운 채 명렬히 달려갔다.

죽음의 리본이 날아온다.

“뭐....?”

열 가닥의 리본을 이용해 시우를 요격한 에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충돌 직전의 순간 시우의 방패에 찬연한 금빛의 프랙탈이 서렸다.

설욕을 위해 제법 마법을 준비해 온 것 같기도 하니, 거기까지였더라면 에아가 그다지 놀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핑!

-콰과과광!

폭격음을 방불케 하는 굉음이 귀를 두드렸다.

에아가 보낸 리본은 모조리 시우에게서 빗겨나 제멋대로 거목을 두드리거나, 바위를 부스거나, 땅에 처박혔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방패에 닿는 순간 처녀의 베틀의 통제권을 잃었다.

올곧게 적을 꿰뚫어야 했을 열 가닥의 리본이 장갑의 굴곡에 도탄된 포탄처럼 단 하나의 유효타도 내지 못한 채 맥 없이 튕겨 나갔다.

“재밍...?”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이 그저 물리적인 역학에 따라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의 마법에 간섭당해 통제권을 잃는 재밍(Jamming)현상이 일어났다.

아음속으로 날아간 리본이 방패에 맞닿는 그 짧은 사이에.

매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시우를 보면서 에아는 경악과 의문을 잠시 뒤로 밀어두었다.

전투에 있어 그것은 사치스러운 감상이다.

방금 시우가 선보인 재밍은 인간의 반응속도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전에 격돌에서 ‘처녀의 베틀’의 작동구조를 읽어내 미리 마방진을 준비해왔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작 그걸 믿고 여기까지 혼자 온 거니?”

우습다.

그리고 어리숙하다.

분명 에아가 사용하는 처녀의 베틀은 물리적인 공격에 특화된 마법이며 비교적 대응이 쉽다.

그러나 이제껏 수많은 혈투 속에서 살아남으며 이런 경험이 없었을까?

에아는 리본을 다시금 방직(紡績)했다.

마력의 실을 얽어 전혀 다른 구조와 마법적 형태의 피륙을 짜낸다.

물리적으로 보았을 때 그 모양새와 공격 방식은 같아도 마법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에아가 ‘주먹’을 낼 것을 예상해 ‘보’라는 마방진을 준비해 왔다면 이번엔 ‘가위’로 바꿔내주면 되는 것이다.

전투 중 마법 해석과 상성 싸움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잔재주 부리기는!”

양자 간의 남은 거리는 불과 30M.

새로이 직조되어 빙글빙글 꼬아진 리본은 확실히 시우에게 락온되었다.

설령 그가 도망친다 해도 1KM 밖까지는 확실하게 추적할 것이다.

리본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에아는 필살을 확신한다.

“조금 당황했지만, 이게 경험의 차이란다.”

시우는 힐끗 리본을 보더니 유일한 활로나 다름없던 방패를 미련없이 옆으로 내던졌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춘다.

갑옷의 목 뒤에서 뻗어 나온 투구가 머리를 감싼다.

건틀렛과 팔목보호대로 감싸인 팔을 들어 가드를 올린 채 돌진하는 복서처럼 자세를 바꾸었다.

시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우회할 길을 찾거나 등을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입김이 양 뺨을 스쳐 흐른다.

주위의 빛을 모조리 삼켜버리는 듯한 검은 갑주 위로 금빛의 마방진이 피어올랐다.

-핑!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애초에 에아가 그렇게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새롭게 짜여진 마방진은 ‘가위’가 된 리본을 남김없이 패링하며 흘려냈다.

-콰콰콰쾅!

전과 같은 절차를 밟아 플레어에 낚인 유도미사일처럼 또다시 갈 길을 잃고 잘못된 방향으로 뻗어 나간 리본을 에아는 망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에아가 방직 패턴을 바꿔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그 짧은 시간에 대비했다고?

이론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방직 패턴을 어찌 달리하던 그 원류는 ‘처녀의 베틀’에 있다.

그가 완벽하게 에아의 자성마법에 대해 이해했다면 이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론상’ 가능한 최고의 대응법을 당연하다는 듯이 현실에서 수행하는 것에 대한 에아의 감상은...

“이런 게 어딨어! 사기잖아!”

그러나 에아가 취한 행동은 정답이 아니었다.

그녀가 바라봐야 할 곳은 공격이 엇나간 지점이 아니었으며, 그녀가 해야 할 행동은 자율방어의 방호 성능을 믿지 않고 시우와 거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걸 실행하지 못한 것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역전의 노장인 에아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었다.

어이없는 광경에 빽 소리를 지르는 에아의 말랑한 복부에 시우의 건틀렛이 작렬했다.

자율방어조차 꿰뚫고 무력화시킨 시우의 펀치는 에아의 몸을 허공에서 접어버렸다.

“끼야아아악!”

새된 비명과 함께 에아의 알몸이 몇 바퀴가 이끼 위를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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